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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예술가

바로크는 기괴하다고.?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4.03.30|조회수10 목록 댓글 0

안녕하세요,
벌써 3월의 마지막 주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으로 한 달을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바로크는 기괴하다고?


보통 음악사에서 바로크는 1600년에서 1750년 까지라고
기술하고 있다. 연도는 시대를 구분하기 위한 대략적인
기준일 뿐 1600년 1월 1일부터 갑자기 바로크 시대가
열린 것은 아니다.
Baroque는 "일그러진 진주"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미술 건축 등 예술 전반 쓰여 졌고 실제로 보석인 진주에도
쓰여진 용어이다.
화려하고 멋진 스타일의 바로크는
왜 이름이 이런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가?


https://youtu.be/dIVqhWhDGdw?si=XMNCAqG1yGn8h-_B

Vivaldi - Double Mandolin Concerto in G Major, 1st Movement: Allegro (RV 532)


Jean-Jacque Rousseau (1712-1778) 장 자크 루쏘

당대의 철학자로 유명한 루쏘는 작곡가이며 작가이기도 했는데 그가 집필진에 참여해 저술한 백과사전(Encyclopédie)에 바로크
음악에 관해 이렇게 저술하고 있다.
“바로크 음악은 혼란과 조 옮김과 불협화음으로
가득 찬 하모니이다."

위에 비발디의 음악을 들었을 때 우리에게는
생기 넘치고 독창적이며 화려한 바로크 음악이
어떻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었을까?

물 흐르듯 화성에서 멜로디 라인이 튀지 않았던 것이
미덕이었던 르네상스 음악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겐
바로크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전되기 시작한
대위법과 함께 멜로디 라인과 그것을 돋보이게 하는
화성 진행이 너무 생소해서 적응하기 힘든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었던 것이다.
너무 간단한 사실이었다.

바로크 진주로 만든 인어 모양의 펜던트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세 명의 작곡가가 있었다.

Antonio Vivaldi(1678-1741)(안토니오 비발디)는 그 중의 한 명으로 이태리 베니스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발사였던 아버지가 바이올린 주자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음악 교육도 받고 연주도 같이 다니곤 했다.
15세부터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했는데 25세 때
성직자로 안수를 받았다. 그의 빨간색 머리 때문에 얻은
별명이 “Il Prete Ross” 즉 “붉은 신부님” 이었다.
하지만 10년 공부 끝에 성직자가 된 비발디는
곧 그 길을 접어야 했다.
신부 생활을 계속 하기에는 치명적인 건강 문제가 있었다.
바로 천식이었는데, 미사를 집도하며 노래도 불러야 하는
신부 생활을 하기에는 천식이 너무 심했다.
같은 이유로 비발디는 관악기도 연주할 수 없었다.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비발디는 음악의 길로
다시 돌아온다. 만약 천식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기
알고 있는 비발디가 존재했을지 모를 일이다.

다음은 좀 특색 있는 연주로 소니사의 한 세기에 걸친
명 연주 모음 앨범에 실린 곡으로 첼리스트 요요마와
"Don't worry be happy"로 유명한 바비 맥페런의 목소리로 재 해석한 비발디의 두 대의 만돌린을 위한 협주곡을 들어 보겠다.
필자가 학생 시절 탱글우드 음악 캠프에서 바비 멕페런의
세션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데 즉석에서 우리가 효과음으로만 합창을 만들어서 부르게 하였다.
그 때 그의 창의력에 놀란적이 있었다.

https://youtu.be/lLkoMdos3GI?si=p4cBsgMJSGOkuVrS

Concerto in D Minor for 2 Mandolins, RV. 532: Andante (Arr. For Cello and Voice)


비발디는 Ospedale della Pietà (자비의 병원)라는 기관과 30여년의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이 곳은 수녀원 과 고아원 또 학교가 같이
있는 곳이었다. 여기서 비발디는 모두 여학생들이었던 제자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그들이 같이
연주 할 수 있는 곡을 만들었다.
콘체르토는 무려 500곡에 이르고 그 외에도 오페라와 합창곡 등 많은 곡을 작곡했다. 실력을 인정 받으며 비발디의 곡 들은 안 밖으로
활발히 연주되며 명성을 쌓아갔다.

Ospedale della Pietà에서 공연되었던 비발디의 오라토리오 Juditha Triumphans(유디트의 승리) 중
한 곡을 들어보겠다.
Armatae face et anguibus(횃불과 뱀으로 무장하여)라는 곡인데 콜로라투라 메조 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노래로 들어 보겠다.
화면 밖으로 뛰쳐 나올듯한 어마 무시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실황공연이다.

https://youtu.be/5kFPc-lIrkI?si=bX38bLMB6rlTXwIV


비발디는 훌륭한 실력에 비해 당대에는 명성을 많이
얻지 못했다. 비엔나의 찰스6세를 만났을 때 그의 실력을 인정한 황제는 칭송과 함께 훈장까지 내렸다.
비발디는 뒤늦게 나타난 후견인에 대한 기대감으로
새로운 커리어 도전을 위해 비엔나로 간다.
하지만 불운한 비발디는 도착한 후 얼마 후 찰스6세의 서거 소식을 접하게 되고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는
타지 에서 후견인도 없이 가난 속에서 객사 한다.
그의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곡 들과
대조적인 생의 마감이었다.

비발디는 다음 세기 낭만파 시대가 되서야 유행한
Program Music(표제음악)의 선구자로도 인정 받는다.
표제음악이란 이름처럼 제목의 내용을 음악적으로
묘사해서 그려내는 것이다. 잘 쓰여진 표제음악을
눈을 감고 듣노라면 눈앞에 전경이 펼쳐지고 온몸으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비발디 곡 들 중 가장 잘 알려져 있고
표제음악의 시발점 역할을 하는 사계 중 겨을을 들어 보겠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 치는 느낌을 받아보시길...

참고로 우리가 아는 바로크의 대표적인 3명 중의 한 명 비발디는 20세기가 되서야 진정한 유명세를 얻었다.

https://youtu.be/Yu6Hr9kd-U0?si=jmOndCx_2tlNED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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