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미술관 박물관 산책

[스크랩] 마사초Masaccio(1401-1428)

작성자디아니|작성시간20.11.21|조회수57 목록 댓글 0

마사초 MASACCIO (1401- 1428)



마사초Masaccio (본명; 구이디(Tommaso di Giovanni di Simone Guidi))
[Italian Early Renaissance Painter, 1401-1428]


[성전세]Tribute Money
1426-27
Fresco, 255 x 598 cm
Cappella Brancacci, Santa Maria del Carmine, Florence



르네상스의 문턱에 있는 시골 소년

1424년 즈음 피렌체인들은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동방박사의 경배]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솔리노 다 파니칼레는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교회에 있는 브랑카치 예배당의 프레스코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한편 발다르노 출신의 젊은 남자가 있었다.그의 이름은 토마소였으나 모두 그를 마사초라고 불렀다.
마사초는 고향근처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다음 이미 세련된 화법을 구사하던 마솔리노의 조수가 되었다. 부지런하고 영리한 마사초는 조토의 프레스코화를 모사하면서도 산타 크로체 성당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부르넬네스키와 도나텔로가 함께 피렌체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마사초는 원근법이라는 새로운 기술의 비밀을 배우고 싶은 열망으로 그들을 따라갔다. 부랑카치의  예배실의 작은 무대는 23세의 젊은이가 새로운 회화형식의 발견을 선포하는 무대가 되었다.
젠틸레의 [동방박사의 경배]가 완성된지 1년 후 마사초의 극적인 작품[낙원의 추방]이 탄생되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는 고뇌와 절망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부짓고 있다. 그는 이 예배당의 왼쪽 벽면에 [성전세]를 그렸는데 이 작품은 위협적으로 응시하고 있는 남자들의 조용한 무리를 그린 것으로 이 화가의 엄숙하고 강력한 양식을 대표한다.
마솔리노와 함께 로마로 간 마사초는 1428년 초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2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나 이미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지금 분리되어 세계의 여러 박물관에 있는 피사 세폭제단화,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교회의 [성 삼위일체] 프레스코화가 있다.


마사초 MASACCIO, (1401- 1428),
[낙원 추방]The Expulsion from the Garden of Eden, 1426-27
Fresco, 208 x 88 cm,
Cappella Brancacci, Santa Maria del Carmine, Florence

Tribute Money (detail)
Tribute Money (detail)

마태복음
22 제자들이 갈릴리에 모여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고,
23 사람들은 그를 죽일 것이다. 그러나 삼 일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제자들은 몹시 슬퍼하였습니다.
24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 성전세를 걷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당신네 선생님은 성전세를 내지 않습니까?
25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내십니다. 베드로가 집에 들어가자,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시몬아, 이 세상의 왕들은 관세와 세금을 누구에게서 받느냐? 왕의 자녀들한테서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한테서냐?
26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자녀들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27 그러나 성전세 걷는 사람들을 자극해서는 안 되겠다. 그러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라. 그리고 첫 번째 낚은 물고기의 입을 벌려 보아라. 은돈 한 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성전세 걷는 사람에게 나와 네 몫으로 주어라.

제자들의 근심
22-23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두 번째로 예고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고난에 대해 처음 예고하실 때 예수님을 붙잡고 말리려다가 심한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누구도 그것에 대해 말하는 제자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이 같은 예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왜 예수님께서 꼭 죽음의 길을 가셔야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면 왕이 되실 분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마음에 근심이 가득했고, 혹시라도 자기의 기대가 깨어지는 것이 아닐까하여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고난과 부활에 대해 자세히 묻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눅 9:45). 우리도 혹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불필요한 근심에 빠져있지는 않나요?

성전세를 내신 예수님
성전세를 거두는 사람이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당신네 선생님은 성전세를 내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24). 그러자 베드로는 별 생각없이 내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의무였기 때문이죠.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이 세상의 왕들은 관세와 세금을 누구에게서 받느냐?(25)” 베드로가“다른 사람들에게서입니다”라고 대답하자“그러므로 왕의 자녀들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26).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자신은 성전세를 낼 의무가 없음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전세를 거두는 사람을 포함해서 아직 예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문제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킬 필요 없는 의무를 지키셨습니다. 참된 사랑은 이처럼 자기의 정당한 권리도 연약한 사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포기하는 것입니다(고전 9:12).

Tribute Money (detail)
 
Tribute Money (detail)
Trinity, 1425-28
Fresco, 667 x 317 cm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Trinity (detail)

The detail shows the figure of the Virgin.

Trinity (detail)
The detail shows the figure of Saint John the Evangelist.
 
Crucifixion, c. 1426
Panel, 83 x 63 cm
Museo Nazionale di Capodimonte, Naples

San Giovenale Triptych, 1422
Panel, 110 x 65 cm (central), 88 x 44 cm (each wing)
San Pietro, Cascia di Reggello (Florence)
St Jerome and St John the Baptist, 1428
Panel, 114 x 55 cm
National Gallery, London
Madonna with Child and Angels, 1426
Egg tempera on poplar, 136 x 73 cm
National Gallery, London
Profile Portrait of a Young Man, 1425
Wood,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The Madonna and Child with Saint Anne, 1424
Tempera on panel, 175 x 103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Plate of Nativity (Berlin Tondo), 1427-28
Tempera on wood, diameter 56 cm
Staatliche Museen, Berlin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