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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비파미술 (Nabis)

작성자클놈인줄|작성시간22.03.04|조회수47 목록 댓글 0

 

 

    나비파[ Nabis]

 

다양한 활동으로 19세기 후반 프랑스 미술에 큰 영향을 준 화가집단.

미술작품이란 바로 한 작가가 자연을 자신의 미학적 은유와 상징들로 종합해내는 활동의 최종 결과물이며 시각적 표현이라고 주장하며 20세기초의 추상과 비구상 미술발전의 바탕이 되었다. 나비파는 일본 목판화와 프랑스 상징주의 그림, 영국 '라파엘전파'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나 무엇보다도 화가 폴 고갱을 중심으로 한 퐁타방(Pont-Aven)파의 영향이 가장 컸다. 고갱의 가르침을 받은 이 화파의 창시자 폴 세뤼지에가 최초의 나비파 작품인 〈퐁타방 부아다무르의 풍경 Landscape at the Bois d'Amour at Pont-Aven〉(〈부적 Talisman〉이라고도 함, 1888)을 그렸다.

자신의 작품과 고갱에게 배웠다는 권위를 가지고 풍타방에서 파리에 돌아온 세뤼지에는 자신의 미학적 학설을 신비로운 계시로 받아들이는 친구들을 모아 나비파('예언가', '점술가'를 뜻하는 히브리어 Navi에서 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프랑스 화가들인 모리스 드니(세뤼지에와 함께 모임의 주요이론가였음), 피에르 보나르, 앙리 가브리엘 이벨, 케르그자비에 루셀, 폴 랑송, 에두아르 뷔야르, 르네 피오가 참여했고 뒤에 네덜란드 화가 얀 베르카데와 스위스 출신 펠릭스 발로통, 프랑스 조각가 조르주 라콩브와 아리스티드 마욜이 합세했다.

1891년 나비파는 첫번째 전람회를 열어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그림이란 군마(軍馬), 여인의 누드, 몇몇 일화이기 이전에 어떤 질서에 따라 색으로 칠해진 평면이다"고 한 드니의 주장을 증명하려 했다. 그들은 이런 논리를 포스터나 스테인드글래스·무대장치·삽화 들에도 적용시키려고 노력했으나 모임 안에서 의견충돌과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하여 1899년 해체하고 말았다. 이후 자신들을 내면파(Intimists)라고 부른 뷔야르, 보나르, 그밖에 마이욜만이 계속 이 화풍을 이어왔다.

나비파는 미술에서의 색채는 사물의 원래의 색과 같을 필요가 없다는 고갱의 관념으로 부터 나온것이다. "

 

1.특징 

·19세기 말 팽배해진 물질주의에 대해 한계- 내적 탐구를 통해 삶의 의미를 모색 시작

·표현의 단순화를 통해 그 속에 영혼성을 부여

·굵은 윤곽선을 강조하는 장식적 기법을 차용(패턴화된 평면 형태와 대담한 장식 문양의 긴장감부여)

·미술에 새로운 보편성을 부여

·인간 정서를 중심

   종교적인 주제(죽음.신비주의, 악마주의)

   초자연적 존재를 주요 모티브

·일상적인 삶의 주제까지도 폭넓게 다룸

2.영향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과 연관성   

   실생활과 접하게 되는 응용 분야까지 그 표현 범위를 확장(조각, 무대 연출, 출판물, 공예, 의상, 포스터)

·일본의판화에 새로운 영감

    비대칭적 균형과 장식 문양과 같은 도안, 색면의 순수색 처리 기법

·보나르, 드니, 마이욜, 랑송, 세루지에, 뷔야르 등의 화가

 

폴 세루지에

부적 1888년, 패널에 유채, 27 x 22cm
나비파의 기원은 세루지에가 퐁 타방에서 고갱과 그림을 그렸던 1888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갱은 퐁 타방의 브아 다 무르(Bois d'Amour) 근처에서 풍경을 그리고 있던 세루지에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고, 세루지에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나무들이 어떻게 보이나? 초록색으로 보이나? 그렇다면 초록색을 칠하게나. 팔레트에서 가장 순수한 초록색을 칠해 보게. 그리고 그림자는 약간 푸른색으로 보이지 않나? 그렇다면 푸른색을 칠하는 데 주저하지 말게."
이러한 고갱의 조언은 세루지에가 더 이상 자연의 재현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 생각, 상상에 따라서 색을 쓰도록 고무하였다. 본래 풍경을 그린 이 작품에서 제대로 형태를 알아 볼 수 있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고갱의 말대로 세루지에는 나무는 초록색으로, 그림자는 푸른색으로, 흙은 붉은 색으로 칠한 듯하다. 순수한 색면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2차원의 평면성을 강조한다. 20세기 미술이 추구하는 회화 자체의 본질, 조형성을 중시하는 추상 회화의 단초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에밀 베르나르

항아리와 사과 1887년, 캔버스에 유채, 46 x 54,5cm
이 화가는 1886년 퐁 타방(Pont-Aven)에서 고갱이 이끌었던 종합주의(Synthetisme) 운동에 동참하였다. 자연의 객관적인 관찰을 극대화시켜 대상의 해체를 가져온 인상주의에 반발하고, 그림은 마음과 상상력을 종합하여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림의 주제나 내용에 있어서는 상징주의에 매료되었으며, 형식에 있어서는 순수한 색면과 선으로 구성된 장식적인 경향을 선보였다.
이 작품도 당시 종합주의에 경도되어 있던 베르나르의 회화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정물은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환원되었다. 오브제들은 화면 전경에 배치되지 않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 이렇게 확보된 전경의 여백은 작품에 안정감과 균형감을 부여한다. 베르나르는 형태와 색채를 살리기 위하여 화면을 넓은 평면으로 구획 짓고 단색조의 색채를 입혔다. 장식적 효과를 일으키는 대상을 굵게 둘러 싼 검은 선은 중세의 채색 유리창을 연상시킨다. 클루와조니즘으로 칭해지는 이러한 기법을 통해 화면에는 고요한 분위기가 감돈다.

브아 다무르의 마들렌느 1888년, 캔버스에 유채, 138 x 163cm

퐁 타방 근처의 아무르 숲은 이미 2년 전 세루지에가 고갱의 가르침 아래 그 유명한 풍경화 <부적(Talisman)>을 제작하였던 곳이다. 1888년 에밀 베르나르도 이 곳에서 고갱과 함께 인상주의의 분석적인 시각에 반대하는 종합주의를 발전시켰다. 이 작품에서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모델은 화가의 누이인 마들렌느 베르나르(Madeleine Bernard)이다.
마들렌느는 그 해 여름을 고갱, 베르나르와 함께 퐁 타방에서 지내면서 고갱의 모델이 되어 주기도 했다. 베르나르는 아무르 숲의 풍경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켰다. 하늘은 보이지 않고, 얼어붙은 듯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시냇가엔 반대편 수풀의 초록 잎들이 반사되어 있다. 마들렌느는 화면 전경에 마치 나무처럼 미동도 없이 길게 누워 있다. 시냇물처럼 움직임이 전혀 없이 단단한 그녀의 몸은 화폭 전체를 점유하고 있다. 그녀의 얼굴만이 다소의 입체감을 보여주고 있을 뿐, 그녀의 몸은 푸른색 윤곽 속에 갇혀서 평면적으로 채색되었다. 베르나르는 인물과 풍경 모두를 실제 대상처럼 묘사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순수한 색면과 선으로 환원시켰다. 이렇게 굵은 윤곽선으로 둘러싸고 색채를 칠하는 기법은 "클루아조니즘"이라고 불렸다. 이렇듯 색면으로 표현된 마들렌느는 전통적인 미술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여성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녀는 예쁘고 관능적으로 그려진 여성이 아니라, 순결함과 명상을 느끼게 하는 상징주의를 시각화한다. 퓌비 드 샤반느를 이어서 신비롭고 유토피아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풍경화이다.

해변의 수확

 에두아르 뷔야르


아침 식사, 캔버스에 유채, 57 x 60cm
19세기 말 화가들에게 실내 공간은 도시화된 파리의 거리 못지 않게 모더니티를 반영하는 공간이었다. 보나르와 함께 앵티미즘 화가로 분류되는 뷔야르의 그림에서도 실내는 그 속에 어우러진 인물들과 함께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어머니를 모델로 해서 그린 이 그림 역시 가정의 내밀한 실내 공간을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뷔야르의 작품에서 초기에 실내의 가재 도구들과 비슷한 비중을 차지했던 인물들은 후기로 갈수록 화면의 중앙으로 들어와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작품에서 인물은 아직까지 모호한 옆모습만으로 묘사될 뿐, 만년에 주로 그렸던 초상화들에서 느껴지는 인물의 심리적인 내면은 엿보이지 않는다. 실내의 벽지와 식탁보, 어머니의 실내복 등이 화가의 어린 시절의 추억, 친밀한 가족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식사 후 1890∼98년, 캔버스에 유채, 28 x 36cm

이 그림은 뷔야르가 주로 다루는 실내와 인물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프랑스 사회의 근대화, 도시화는 건축이나 집의 외관뿐만 아니라 실내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당시는 아르 누보로 대표되는 실내 디자인이 막 부상하던 시기였다.
앵티미스트인 뷔야르는 꽃무늬 벽지로 장식된 식당의 정경을 세밀하고 환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당대 부르주아 계층의 일상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서는 반점들이 프린트된 벽지, 여인의 옷, 식탁의 그릇들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듯 어렴풋하게 그려졌다. 벽지와 여인, 인물과 식탁 위의 물건들이 모호하게 융화된 실내 공간에는 왠지 따뜻한 분위기가 감돈다.

 

침대

펠릭스 발로통

 달빛, 1895년, 캔버스에 유채, 27 x 41cm

스위스 화가인 펠릭스 발로통은 1882년에 파리에 왔다. 그는 본래 목판화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데, 나비파에 합류하면서 장식적이고 평면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 작품에서 대지 위에는 작은 물길이 구불구불하게 나 있고, 지평선에는 작은 나무가 외롭게 서 있다. 구름에 가려 반쯤 내민 달이 어두운 밤하늘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이 작품은 제목을 생각하고 유심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풍경화라기보다는 추상화로 보여진다. 화면은 지평선을 중심으로 짙은 초록색과 회색이 섞인 옅은 녹색조로 이분되어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점점이 퍼져 있는 구름의 장식적인 패턴이, 하단에는 달빛이 그대로 드리운 강물의 유려한 선이 자리한다. 상하로 분할된 딱딱한 구도는 구름과 강물의 리드미컬한 선이 이루어낸 묘한 균형으로 부드러워졌다. 발로통의 감각적인 색채가 차분하고 고요하게 화면을 감싸고 있다.

, 1899년, 과슈, 49.5 x 61.9cm
이 작품에는 하늘도, 시원한 원근감이 느껴지는 풍경도 보이지 않는다. 한가로운 공원의 한 때를 가파르게 내려다보는 조감(鳥瞰)법으로 잡은 화면은 제한된 공간을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발로통은 이 작품에서도 <달빛>에서처럼 분명하게 나뉘어진 두 공간, 소녀가 공을 쫓아 뛰어가는 황토빛 공간과 어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초록색 신록이 우거진 공간으로 구성하고 있다. 두 공간은 나비파의 특징인 고르게 칠해진 색면과 간결한 선을 보여준다. 발로통이 나눈 두 공간은 시각적, 장식적인 화면을 위해 고안된 것일 뿐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까지 담고 있다. 즉, 어른과 아이가 서로 넘나들 수 없는 독자의 영역에 존재한다는 암시로 읽을 수 있다.

 피에르 보나르

흰 고양이,1894년, 캔버스에 유채, 51 x 33cm
나비파의 화가들은 공통의 미학적 신조를 견지하는 동시에 각자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개성적인 화풍을 확립해 갔다. 보나르는 나비파 중에서 가장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로 "나비 자포나르(Nabi Japonard)"로 불릴 정도로 당시 자포니즘(Japonisme)에 매료되어 있었다. 대부분 세로로 긴 그의 그림은 실제로 일본식 병풍을 연상시킨다.
19세기 말 부르주아의 단란하고 내밀한(Intime) 가정 생활을 즐겨 다룬 보나르는 앵티미즘(Intimisme) 경향을 대표한다. 일상의 모티브들을 따뜻하고 친밀하게 그렸던 그의 작품들에는 개와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들이 가족들과 함께 늘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좋아했던 동물인 고양이만을 중점적으로 묘사하였다. 화면 중앙에 크게 그려진 흰 고양이는 갈색과 짙은 녹색 면으로 채색된 배경 속에 부드럽게 융화된다. 대상과 배경을 구분 짓는 분명한 윤곽선은 찾아볼 수 없으며, 평탄한 하얀색과 갈색, 녹색의 색면으로 구성된 듯하다. 큰 색면의 실루엣이 불러일으키는 장식적인 특징은 직접적으로 일본 우키요에와 아르 누보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화장대, 1908년, 캔버스에 유채, 52.5 x 45.5cm
이 그림은 <거울(La Glace)>이라는 또다른 제목이 일러주듯, 빛과 구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경대 위의 큰그릇이 바닥을 거의 다 드러낸 것으로 보아 시선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울 속에 비춰진 여인은 작품의 시점이 하나가 아니라 좀 더 낮은 곳에도 있음을 알려준다.
여인의 인체는 결코 아름답지 않으며, 여인이 취한 자세와 동작 또한 분명하지 않다. 얼굴도 잘려진 채 그려진 이 여인은 물병이나 의자, 혹은 다른 소도구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고 있지 못하다. 화면에 긴장을 불어넣고 있는 조형 요소는 오히려 사각형과 원, 두 도형이 자아내는 형태적인 대립이다. 거울은 거울 앞의 실재로 존재하는 대상물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인과 둥근 의자, 흰 욕조는 현실 속의 사물이 아니라, 거울의 사각형의 형태에 상응하는 조형 요소로서 취해진 것이다. 자연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파악한 입체파의 태동과 그 영향을 읽을 수 있다.

 

역광을 받는 여자

그는 본능에 따라 그림을 그렸고, 소재는 일상생활의 조용하고 친근감이 넘치는 장면을 주로 하고 있다. 역광을 받은 여인의 젖힌 자세는 개방감이 느껴지고, 보이지 않는 가슴에서 허벅지에 이르는 나신을 왼쪽 위의 거울에 비추어진 모습으로 시원하게 그려내고 있다. 거울은 보나르가 가장 사랑하는 회화 소품 중 하나인데, 여기에서도 정면의 밝은 창을 사이에 두고, 실재의 여인과 거울 속의 허상과의 대화를 통해 이 방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전체적으로 따뜻한 색 중에 찬 색이 섞이고 어두운 찬 색에도 따뜻한 색이 보인다. 커튼이나 벽지, 소파의 무늬에 율동감을 주어 화면 전체에 운동감과 생기가 넘친다.

침대 위에서 잠든 여인  오페라 극장 박스  베르노네의 테라스  크로켓 시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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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화가 진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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