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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박물관 산책

[스크랩] 5) 명화 속의 거울

작성자카페여행|작성시간23.02.18|조회수44 목록 댓글 1

 

 

 

 

 

얀 반 에이크 여기에 있었다. 1434 - 결혼식의 증인

그림 정 중앙에 위치한 거울 속에는 이들 부부 말고 두 명의 인물이 더 있는데 빨간 옷의 인물과 파란옷의 인물 중 하나는 화가 자신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거울은 신의 눈동자를 의미하는데 신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며 보이지 않는 곳까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기적을 행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볼록거울 주위를 장식하고 있는 10개의 그림은 '예수의 수난 열 장면'으로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을 상징한다.

 

 

 

 

19세 청년 파르미지아니노는 이발소에 갔다가 난생 처음 볼록거울을 봤다. 그 이상한 거울에 비친 자신의 기이한 모습을 그리고 싶었지만 평면 위에 그리면 거울 속의 왜곡된 모습을 또다시 왜곡해야 하므로 그는 볼록거울과 같은 구조의 캔버스를 만들 방법을 궁리했다. 그는 결국 자기가 갖고 있던 나무 공을 반으로 잘라 그 위에 얼굴을 그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교황은 그 기묘한 그림을 보며 천상의 초월적 풍경을 떠올렸다. 당연히 청년만이 천국의 모습을 그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고 즉석에서 교황청의 벽화를 그리라고 명한다.

 

벨라스케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거울의 효과에 관심을 가졌고 화면에 허구의 공간까지 보여주기를 원했다. 모델의 배면을 묘사하기 위해 안면부 노출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을 거울의 도입으로 극복했다.

이 비너스 그림이 "록커비의 비너스"라는 별칭을 가진 이유는 이 그림이 내셔날 갤러리에 들어오기 전에 영국 요크셔의 록커비 홀에 있는 모리트 미술관에 있었기 때문이다.

 

 

 

벨라스케스를 구상회화의 거장으로 올려놓은 작품이다.

얀 반 에이크의 거울기법을 차용했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거울인지, 그림인지 구분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러한 화면 안의 거울 수용은 캔버스 표면을 경계로 놓여진 안팎의 공간을 동시에 수용하는 효과를 불러온다. 작은 거울 하나가 심인적 공간을 확장시켜주는 현상을 벨라스케스는 매우 흥미로워했다.

베르메르는 등을 보인 여성의 심리상태를 버지널 위에 빗각으로 걸려진 거울을 통해

보여준다. 앞의 작품들과 달리 기울어진 거울은 화면 내부의 공간만을 반영하고 있다. 인물 중심의 구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의 묘한 감정의 기류을 무심한 듯 포탁한 베르메르의 기지에 찬사~~!! 한적한 오후.. 햇살이 따사로운 실내에서 젊은 음악선생의 지도를 받는 여성의 심리는 많은 여성들의 로망일 것이다. 어떤가 그녀의 조심스런 연주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많은 작가들이 거울을 화면구성의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했었지만 마네의 이 작품처럼 화면을 가득 채운 경우는 드물다. 집중력이 낮은 관람객은 배경을 이루는 장면이 거울 속의 반영이라는 생각조차 못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예민한 눈을 가진 관람객일수록 뒤의 배경이 거울의 반영이 아니라고 느끼는 게 맞을 것이다. 화면 오른편으로 등을 보인 여인의 반영은 한 남성과 모종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엿듣고 싶지 않은가?

여성의 누드는 환타지를 일으켜야한다고 생각해왔었는데... 19세기의 화가들은 그와 같은 환상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았다. 밝고 통통한 피부의 여인이 바라보는 거울 속엔 알 수 없는 여인이 마주하고 있다. 거울은 여성에게 나르시스의 샘물 같은 것이리라.. 하지만 매일 생계를 위해 지친 몸을 비추어보는 거울에게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몽마르뜨르의 매춘굴에서 그녀들과 몸을 섞으며 성병조차 나누어 가진 로트렉은 이미 사창가를 찾는 남자손님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과 동료애마저 공유하고 있음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워터하우스는 그녀의 미스테리한 관능미를 표현하기 위해 화면 가득히 키르케를 채우는 한편 그녀의 뒤에 거울을 배치하여 화면 바깥의 오디세우스를 동시에 수용하고 있다.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고정관념을 깨는 소재와 구조, 발상의 전환 등의 특징을 보이며 이러한 특징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마그리트는 다른 초현실주의자들과는 달리 꿈과 욕망이 그의 회화의 기원이 아니었으며 일상 현실에 대한 내용의 역전을 통해 낯선 현실을 지성적으로 모색하려했다.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타자.. 나 역시 거울 속 나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나는 나인가 아니면 타자인가..?

 

 

일련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것이 초현실, 즉 일상의 세계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확연히 간파할 수 있게 하는 데 반해 에셔의 작품들은 아주 이성적으로 보인다, 구형 거울은 비록 상이 일그러질지라도 평면거울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공간을 빨아들인다. 검은 배경은 우주가 되고 평면(2차원)이지만 공간(3차원)인 에셔를 포함한 실내를, 미소를 품은 의인화된 새가 들여다보고 있다. 어쩌면 에셔는 육화된 아브락사스일런지도 모른다.

 

 

 

 

 

 

                                                                                                    달리 <미완성의 입체 그림> 1972

 

이 작품의 원제는 <일시적으로 여섯 개의 실제 거울에 반사된 여섯 개의 실제 각막의 뒤로부터 영원성이 부여된 갈라를 뒤에서 그리고 있는 달리>이다.

딜리가 평생 존경한 벨라스케스, 프로이드, 아인슈타인은 그의 그림에 중요한 주제가 된다. 세상을 빨아들인 거울 속에서 피사체는 거울 밖의 세상을 조용히 바라보기도, 때론 현상계에서 나누기 힘든 교감을 허락하기도 한다.

“가장 고귀한 것들은 벨라스케스와 수르바란이 이미 다 그려버렸다. 나는 오로지 갈라를 그림으로서 이들이 추구한 고귀함에 다가갈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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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유럽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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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3.02.18 자신을 비추려 하지 말자.
    지나침은 침묵(沈默)을 불러오고,
    설치면 이웃이 외면(外面)한다.
    자랑은 벌거벗은 나를 들어내 보이는 거다.
    우리 바위처럼 살자.
    겸손(謙遜)한 사람은 참 아름답다
    편안한 시간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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