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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본3 - 15세기에 세워진 병원 시료원을 구경하다!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3.07.11|조회수88 목록 댓글 2

 

부르고뉴 본3 - 본의 구시가지로 들어가 15세기에 세워진 병원인 시료원을 구경하다!

 

 

5월 23일 오후에 프랑스 리옹 파르 디외역 Lyon Part Dieu 역에서 디종 Dijon Ville

으로 가는 15시 16분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달려서 오후 5시에 화이트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의 본 Beaune (Chagny) 역에 도착해서는 역 앞에 있는 호텔

드 프랑스 레스토랑 타스트'뱅 에 체크인을 하고 3~ 4분을 걸어 구시가지 로 갑니다.

 

 

 도시를 두르는 중세 시대 성벽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본 에서 동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

가니 구시가지 Old Town 로 Rue des Tonneliers 거리 양쪽으로 와인 제조 공장 이고

라알 광장  Pl. de la Halle  을 지나 골목길을 걸어서  시료원  Hotel Dieu 에 도착 합니다.

 

 

6.5 유로를 내고 15세기인  1443년  본의 대법관 니콜라 롤랭 부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 으로 지었다는 채색 기와 에 기하학적 모양의 지붕이 아름다운 시료원 에 입장하니

병원의 부엌에는 약 항아리가 있는 약국 인데 시료원은 가톨릭 교회에서 운영한다고 합니다.

 

 

약초를 끓여서 즙  을 만드는 시설을 지나니  큰 홀에는  양쪽으로  침대 가 놓여져 있는데

옛날 위생환경이 열악 했던 시절인 15세기에 이토록이나 현대적인 설비를 갖추고

위생에 유의해 청결 을 유지하면서 직접 약초를 다려 약을 만들어 환자를 치료

했다는게 잘 믿어지지 않는데, 이런 병원이 생기게 된 "르네상스 시대" 를 생각해 봅니다.

 

 

흔히 “문명의 암흑시대” 라고 불리는 유럽 기독교 중세 천년 은 로마제국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한 392년 또는 서로마 제국이 망한 476년

 부터 르네상스가 일어난 14세기 후반 까지 천년을 말하는데....  이 때는

그리스도교가 유럽인들의 "탄생에서 부터 죽음" 까지 모든 일상생활을 관장 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이교도의 문명  이라며 거부했으니  먼저 천년을 이어온  그리스

올림픽을 폐지 했으며,  우상 숭배 타파 를 외치며 그리스 로마 시대의 신전과

동상들을 파괴했고  "그리스 문명 서적들을 모두 불살라"  버리니..... 성경등

종교 서적과 종교 음악 및 종교 미술을 제외한 모든 문명이 유럽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철학과 수학, 과학과 의학에 관한 그리스-로마 서적을 불지른 결과 사람이 병이나면 기독교

교리에 따라 “마귀가 사람 몸속에 들어와 일으킨다”고 보고 신부님이 기도 를 통해

하느님의 힘으로 쫓아내는걸 최우선으로 하고, 그 다음은 마귀가 놀라서 달아나라고

환자를 몽둥이 찜질 을 하며 다음에는 마귀는 피 속에 있다고 믿어 중환자의 피를 뽑습니다.

 

 

전염병 이 돌면 마녀가 퍼뜨렸다고 여겨 마을에서“마녀를 찾아 죽이면 되는것”이니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여자들 중에서 몸무게가 가벼운 여자가 마녀 인데..... 마녀는 새벽에

안개가 낀 지붕 위를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니  당연히 몸무게가 가벼워야 할 터입니다?

 

 

재판 할때는 신부님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 다음에  불에 달군 쇳조각을 손바닥에 얹은후

“화상을 많이 입은자가 범인”이니, 이는 하느님이 신부님이나 재판관의 기도에 응답한

결과이며 또 “결투를 통해 진 자가 범인” 입니다.  하느님이 명백하게 밝혀 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천년을 이어온  로마 가톨릭 교회 권위가 실추 되자 비로소 교회의 굴레 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옛 그리스 문화 를 되살리고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을 하는 시대가 도래했으니

이것을  “르네상스”  라고 하는데....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성전인 십자군 전쟁

에서 유럽 기독교 군대가 아랍 이슬람 군대에 패배 하고 유럽으로 쫃겨온데서 시작됩니다.

 

 

르네상스 는 학문, 예술의 재생· 부활  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 내려는 운동으로.... 사상·

문학· 미술· 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으니 “그리스도교 중심 시대를 야만시대,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 로 여겨 “고대의 부흥을 통해 극복” 하려는 것을 특징으로 합니다.

 

 

르네상스 는 14세기 후반 부터 15세기 전반에 이탈리아 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곧 프랑스· 독일· 영국 등 북유럽 지역에 전파되어 각각 특색있는 문화를 형성

하였으며 근대 유럽 문화 태동의 기반이 되었는데, 페트라르카  그리스 를 문화의

절정기로 보는 반면, 중세를 인간의 창조성 이 철저히 무시된 “암흑시대” 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문명의 재흥(再興) 과 사회의 개선은 “고전 학문의 부흥을 통하여 가능”

하다고 주장했으니 당시 인문주의자 들이 가지고 있던 크나큰 확신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단순한 라틴 학문의 부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지적(知的)·  창조적  힘을 재흥  시키려는  신념에 차  있었습니다.

 

 

16세기에  바자리 는  “이탈리아의 뛰어난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생애”   에서 고대 세계의

몰락 이후 쇠퇴한 미술이 조토 에 의해 부활했다고 하여“재생(rinascita)”말을 썼고

볼테르 는 14· 15세기의 이탈리아에 학문과 예술이 부활 했음을 지적했으며 미슐레 

16세기의 유럽을 문화적으로 새로운 시대라며 처음으로 "르네상스"  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르네상스 를  인간성의 해방과 인간의 재발견, 합리적인 사유  와 생활태도의 길을 열어 준

근대문화의 선구라고 본 이는 부르크하르트 이니 1860년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문화” 를

발표했는데 르네상스와 중세를 대립된 것으로 파악하고 근세의 시작은 중세가 아닌

고대 로 부터 라는 주장을 하였으며 “중세를 지극히 정체된 암흑시대”  라고 혹평 했습니다.

 

 

십자군 전쟁시 아랍 이슬람 세계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이 이어진데다가

그리스 문명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아랍어로 번역 되어 세 문명이 융합 을 일으켰고

수학과 과학이며 의학과 인문학 그리고 기술 에 높은 문명을 구가했으니....

“야만적인  후진  유럽  기독교  세계  사람”  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1차 십자군이 원정이 성공해 레반트에 1098년 부터  예루살렘 왕국등 5개 기독교

국가들이 성립해 현지 이슬람 아랍인들을 다스리던 시절에 시인이자 작가였던

우사마 이븐 문키드 (1095~ 1188) 는 동시대 프랑크인(유럽인) 들의

생활 모습 을 기록해 놓았는데.... 대부분은 황당하거나 부정적인 내용 들 입니다.

 

 

“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알 아크사 사원 을 찾았으니 그곳에는 나의 벗

들인 성전 기사단 이 머무르는 곳이기도 하였다. 사원 한 귀퉁이에

작은 예배당 이 있었는데....  그곳에 프랑크인들이 예배소  를 만들어 놓았다.”

 

 

성전 기사단 은 내가  기도를 드리러 이 사원에 마음대로 드나들도록 해 주었다. 어느날

그곳을 찾은 나는 "신은 위대하시다"  라고 말한 다음 기도 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 때 한 남자가 나를 덮치더니 나를 붙잡고 내 고개를 억지로 동쪽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도를 드릴 때는 이렇게 하는 거야!"  즉시 성전 기사단이 뛰어

와서 그를 떼어놓았고, 나는 하던 기도를 마저 하였다. 그러나 내가 방심한 틈을 타

그 사내가 다시 달려들어 내 고개를 동쪽으로 돌리면서 다시 이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기도는 이렇게 해야 한단 말이다!’  이번에도 성전 기사단이 그를 떼어놓은 뒤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자는 뭘 모르오. 방금 프랑크에서 온지라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은 본적 없었을 것이오.’ 나는 기도를 올렸다고 말하고는

메카 를 향해 기도를 올렸다며 길길이 날뛰는 그의 포악함에 질겁하며 사원을 떠났다.”

 

 

“​한번은 프랑크인 축제 를 구경한 적이 있다.  기사들은 마상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도시를

나섰다. 그들은 남루한 차림의 노파 둘을 데리고 와 경기장 끝에 세웠다. 맞은편

끝에는 돼지 고기를 걸어둔 바위 가 있었다. 기사들은 두 노파에게 달리기 경주를 시켰다"

 

 

"그들이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구경꾼들은 박장대소 를 하였다. 마침내

먼저 목적지에 도착한  노파 한 명이  자랑스럽게  돼지고기를  낚아챘다.”

 

 

​“프랑크의 재판 과정은 가관입니다. ​나블루스에서 나는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재판에서

젊은 대장장이가 늙은이를 고소 하였는데, 법정에서는 이들 둘이 무기를 잡고 싸우라고

명했다.  늙은이는 손가락을 딱딱 마주치면서 맞설 의사를 표시하였다.  싸움이 시작되었다

 

 

“노인이 대장장이를 밀었다.  그는 군중 쪽으로 물러났다가  결투장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수차례의 가격이 오갔는데 어찌나 격렬하던지 결투자의 피 만이 일직선으로 오가는 듯

하였다. 속히 매듭을 짓기를 바라는 영주의 부추김에도 불구하고 싸움은 끝날 줄 몰랐다.”

 

 

“ 노인의 기운이 다 빠지자  대장장이는  그에게  일격을 가해 넘어뜨렸다.  대장장이는 노인

에게 달려들어 그의 눈에 손가락을 찔러 넣으려 하였으나 피범벅이 된 상태라 조준이

힘들었다. 그래서 대장장이는 일어서 결정적으로 창을 꽂았다.  사람들은 즉시 시신의

목에 밧줄을 걸고 그를 교수대까지 끌고 갔다. 보시라. 이걸 프랑크인들은 재판 이라 한다!”

 

 

​“참고로 이때 당시 이슬람 세계는 쿠란에서 정한  논고,  변론,  증언 

이라는 확실한 절차에 따라 재판 을 진행하였습니다.

프랑크인들의 재판 은 말그대로 '신의 뜻에 따르는'  재판 이었지요.”

 

 

“이 밖에도 물의 심판, 불의 심판  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물의 심판은 죄인을 통에 넣고

끝까지 가라앉으면 무죄가라앉지 않으면 유죄 였다고 전해지며, 불의 심판 

경우에는 뜨겁게 달궈진 길을 걸을 때 끝까지 가면 무죄중도에 화상으로 죽으면

유죄 였다고 하니 말 다했습니다. 이런 심판은 받지 않고 싶다고요? 그럼 화형 입니다.”

 

 

​“그들(유럽 기독교 프랑크인)은 물을 가득 채운 커다란 통 을 준비했다.  그리고 혐의 받은

청년의 온몸을 결박한채 배꼽 근처에 밧줄을 매달아 통 안으로 떨어뜨렸다. 말하기를

결백하다면 물통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이니 그 때 밧줄을 당겨 끌어 올릴 것이라고 했다. ”

 

 

“반대로 그가 죄가 있으면 물 속으로 빠질 수가 없다고 한다. 그 불행한 사내는 물

속으로 던져지자마자 사력을 다해 바닥으로 가라앉으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가혹한 법 집행을 받아야만 했다.  신이여, 그들을 벌주소서!

이윽고 그들은 벌겋게 달군 꼬챙이로 그의 눈을 찔러 소경 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느날 무나이트라의 프랑크인 통치자 가 숙부에게 위중한 환자 몇몇을 돌봐줄 의사 

보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숙부께서는  그리스드교 신자 중에서 타비드 라고

하는 의사 한 명을 뽑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며칠 만에 돌아왔다. 우리는 그가

무슨 수로 그리 빨리 환자들을 치료했는지 궁금하여 물어보자 타비드의 대답은 이러했다 ”

 

 

"그들은 다리가 곪아 들어간 기사 한 명과 결핵을 앓던 여인 을 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나는 그 기사에게 고약 을 붙였고, 여인에게는 열을 내리게 하는 식사 요법을 처방

했습니다. 그런데 프랑크인 의사가 말하기를, "이 자는 환자들을 고치는 법을 모르오!"

 

 

“기사를 향해 "어느 쪽을 택하겠소?  한쪽 다리만으로 살아 남는 길을 택하겠소, 아니면

양쪽 다리를 다 가진채 죽겠소?" 환자는 한쪽 다리로 살아남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프랑크인 의사는 나무 작업대 위에 다리를 올려 놓은뒤 기사의 다리를 잘라 버렸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완전히 절단되지 않자 다시 내려치는 것이었습니다.

다리의 골수가 사방으로 튀었고 결국 환자는 즉사 했습니다.

이번에는  결핵에 걸린 여인  을 향해 이러한 진단을 내렸습니다. ”

 

 

"여인의 머릿속에  악마가 들어앉아 여인과 사랑에 빠졌소!"  사람들은 여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는 악마를 퇴치한다는 마늘과 겨자 를 먹였습니다. 그러나 이 처방은 도리어

증세를 악화 시키기만 하자 의사가 소리쳤습니다. "악마가 머릿속에서 나오지 않아서요!"

 

 

“그는 면도칼을 집어들고 여인의 머리 위에 십자가를 그은 다음 두개골이 드러나게 하더니

그 위를 소금으로 문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여인도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제가 필요없겠지요?"  그들이 그렇다고

대답 했습니다.  저는 프랑크인 의사들에  대해  몰랐던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십자군이 통치하던 시대의 모습  이고   1187년 예루살렘 왕국 이 이슬람 아랍군에게

함락된 것을 시작으로 1268년 에데사와 안티오키아에 이어 1289년에 트리폴리 백국

까지 망해 유럽으로 도망쳐 오는지라...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고 외친

교회의 권위가 무느지면서 출생부터 장례까지 교회가 통제하던 속박 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십자군전쟁으로  레반트로 갔던 유럽인 들에 의해 오래전의 그리스 철학자와 과학자들인

탈레스와 아리스토텔레스며 피타고라스에 히포크라테스등 그리스 문명 을 기록한

아랍 서적들이 이탈리아에 전해졌으며 라틴어로 번역을 통해 아랍에 전해져 온

그리스 문명 을 되살리면서 “문예부흥” 이 일어나고 “병원” 이 설립되었다고 여겨집니다.

 

 

여기 시료원 에는 병상 이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생 루이의 방 에는 

최후의 심판등 태피스트리 가 걸려 있으며..... 또 시료원의 재정 자립을 위해 병원

 주변 들판에는  포도원 을 소유하고 있으니 현재까지도  직접 와인을 생산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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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3.07.11
    꿀이 많을수록 벌도 많이 모이듯
    정(情)이 많을수록 사람도 많이 모인다...!
    음식(飮食)을 버리는 건 적게 버리는 것이요
    돈을 버리는 건 많이 버리는 것이고
    인연(因緣)을 버리는 건 모두 버리는 것이다...!
    견강과행운이 함께하는 하루길되세요.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12 그 오랜 옛날 중세시대에
    이런 현대적인 병원이 세워졌다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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