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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본4 - 15세기 시료원에서 나이팅게일을 회상하다!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3.07.17|조회수85 목록 댓글 4

 

부르고뉴 본4 - 본에 15세기에 세워진 병원 시료원을 보며 나이팅게일을 회상하다! 

 

 

5월 23일 리옹 파르 디외역에서 디종 으로 가는 15시 16분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달려서 오후 5시에 화이트 와인 의 산지 부르고뉴의 본 Beaune (Chagny)

역에 도착해서는..... 역 앞에 호텔 드 프랑스 레스토랑 타스트'뱅 에

체크인을 하고 4~ 5분을 걸어 동문으로 해서 구시가지 Old Town 로 들어 갑니다.

 

 

라알 광장  Pl. de la Halle  을 지나  시료원  Hotel  Dieu  에 도착해 6.5 유로를 주고는

15세기 1,443년 본의 대법관 니콜라 롤랭 부부가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병원 으로

지었다는 채색 기와에 기하학적 모양의 지붕이 아름다운 시료원 에 입장하니 여기

병원  부엌에는 약 항아리가 있는 약국인데 시료원은 가톨릭 교회에서 운영한다고 합니다.

 

 

약초를 끓여서 즙을 만드는 시설을 지나니 엄청 큰 홀에는 양쪽으로 침대가 놓여져 있는데

옛날 위생환경이 열악했던 시절인 15세기에 현대적인 설비 를 갖추고 위생에 유의해

청결을 유지하면서 약초를 다려 약을 만들어 환자를 치료했다는게 잘 믿어지지

않는데... 병원을 구경하면서 19세기에 근대 간호 체계를 세운 나이팅게일 을 생각합니다.

 

 

엣날 터키의 이스탄불 에미노뉴 Eminonu 에서 배를 타고 보스포루스 해협 을 건너서

위스퀴다르 Uskudar 에 내려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10여분을 걸어서 하렘

Harem 에 도착해 셀리미에 병영 Selimiye Kislasi 을 보았는데... 1853년

크림 전쟁 Crimean War 시 영국인 간호사 나이팅게일 이 활약한 병원 이 남아 있습니다.

 

 

크림전쟁 은 1853년 전투가 시작되어 4년간 지속되니 오스만 투르크 를 향한 러시아

남진을 저지 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사르데냐 연합군이

터키 를 도와 크림 반도와 흑해에서 러시아와 싸운 전쟁인데....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이 야전병원 에서 활동하여 간호학의 발전 을 가져오게 됩니다.

 

 

크림전쟁의 복병은 전염병 이었으니 콜레라 는 1840년에 인도를 출발해 1863년 까지

유럽, 아시아, 미국 등으로 퍼져나갔으니 프랑스군 은 출발 전 부터

콜레라의 공격 을 받았는데 질병은 점차 강해져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았으니 19세기라..... 위생과 의료사정이 열악 했기 때문에 질병이 크게 퍼졌습니다.

 

 

전염병은 불결한 위생상태 가 원인이지만 음식과 약품이 부족한 것도 한몫했으니 연합군과

러시아군 모두 멀리서 군수품이 보급 되었으므로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는데....

영국군은 1854년 11월 한달간 330명의 병사가  괴혈병, 이질, 장티푸스  에 걸려 쓰러집니다.

 

 

질병자 중 50% 가 사망  했고  상처 부위에 2차 감염  생겨 사망하는 병사도 많았는데

침상으로 사용하는 천은 더러워져도 깨끗한 것으로 바꾸지 않았고 빨지도 않았으니...

 영국 병원에서는  셔츠 여섯벌을 빠는 동안 2,000명의 이질 환자  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나이팅게일  은 크림전쟁에서  "페스트 환자 13,000명중 무려 52퍼센트가 사망"   했다는

타임스지 러슬 기자의 보도에 크게 충격을 받고 1854년 11월 38인의 간호사 

함께 이스탄불 스쿠타리 (위스퀴다르) 에 도착해서 야전병원의 개혁 에 노력한

결과 사망률은 100인중 3명 으로 줄게되었으니 "전장의 천사"  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성공회 간호사 들과 함께 간호사 직제의 확립과 의료 보급관리, 오수 처리로 의료 효율을

일신해 '광명의 천사 (The Lady with the Lamp)' 로 불렸는데 그녀는 귀국후 1860년

에는 킹스 칼리지 런던에 나이팅게일 간호 학교 를 창설하고는  간호 시설을 설립 합니다.

 

 

나이팅게일은 의료 구호제도 에 관해 국내외 정부와 조직의 자문에 응하기도 하면서

간호전문 서적 집필에도 힘썼다가 1910년 죽은후 이스트웰로에 매장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를 기려 국제적십자에서는 '나이팅게일상(賞)' 을 마련했으며

오늘날  '나이팅게일 선서'  는  간호사의 좌우명  으로 유명 하지요?

 

 

러시아 는 1814년 빈 회의후 오스만 투르크로 남하 를 대외정책으로 하고 있었는데 전쟁의

계기는 프랑스가 제공했으니 프랑스내 가톨릭교도의 인기 를 얻으려고 나폴레옹 3세 는

예루살렘 성지 에서  가톨릭 교도의 특권  을 투르크의 술탄에게 강력하게 요구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리스 정교도의 보호자 를 자처하는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 황제 가 서로 대립한

데 있었으니.... 1853년 7월 러시아군은 몰다비아를 점령 하였고 서유럽

열강의 지지를 받은  오스만 투르크 는  10월  러시아에 대하여  선전포고  를 하게 됩니다.

 

 

 1853년 11월 러시아 나히모프 제독의 함대 가 소아시아의 시노페만에서 투르크 함대를

전멸 시키자 놀란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는 오스만 투르크 

지지했고 오스트리아  는  러시아에 최후 통첩을 보내 몰다비아등 양도  를 요구 합니다.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 하려는 유럽 열강은 신속이 움직였으니 1854년 9월 영국· 프랑스·

투르크군은 6만을 크림 반도에 상륙시켜서 세바스토폴 을 포위 하지만 콜레라 가

창궐하고 폭풍우가 심한 흑해에 대한 사전 지식은 물론 지도 한장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연합군이 서두르면서 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 했으니

전염병 은 걷잡을수 없이 퍼져 만연했던 것인데... 나이팅게일 이 이를 잡았던 것이지요?

 

 

연합군이 시간을 허비한 그 사이 러시아군은 축성물들을 구축해 요새 방어를 강화

시키는데 연합군은 또 공성포 가 도달할 때까지 한달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세바스토폴의 보루를 공격 하기 시작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합니다!

 

 

그러자 반대로 러시아군이 반격을 시도했으나 역시 실패 하는데... 발라클라바 에서는

영국 근위기병 이 러시아 포병 부대를 정면 공격하다가 참담한 패배 를 맛보았습니다.

 

 

이에 러시아 함대는 함정을 침몰시켜 세바스토폴 항구를 폐쇄 하였고 러시아 육군은

주민들의 지원아래 진지를 구축 하고 포격에 맞서 11개월간이나 요새를 지켜 냅니다!

 

 

하지만 1855년 8월말 연합군에게 세바스토폴을 점거 당하고는 북방으로 퇴각하니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의 러시아 해군기지가 파괴 되었으므로  흑해의 러시아 해군력은 위축  됩니다.

 

 

크림 전쟁 은 가장 참혹한 전쟁 중에 하나로 꼽히는데 니콜라스 1세 황제가 전쟁중에 죽자

1855년 2월에 뒤를 이은 알렉산드르 2세 는 러시아 개혁의 필요성 을 깨닫고는.....

 

 

 1856년 3월  파리 강화조약  을 체결하니  다뉴브 하구를 양도  하고  흑해에 함대를

배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크림 전쟁에서 전투나 질병으로

인한 전쟁의 피해를 보자면 "러시아는 70만명 중에 무려 52만명이 사망" 했습니다.

 

 

연합군의 피해도 몾지 않았으니  오스만 투르크는 30만중에 26만,  프랑스는 40만중에

10만 8천, 영국은 25만중에 3만, 사르데냐 2만중에 2천으로 연합군 합계

97만명중 40만명이 사망 했는데 전투 보다도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1854년 9월 영국과 프랑스 연합함대는 아시아 캄차카 반도의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를 공격

했는데 성공하지 못했으나... 1855년 초에 전력을 보강해 재차 공격해 요새를 점령 합니다.

 

 

러시아는 해군력 으로는 극동을 지킬수 없으니 알래스카를 헐값에 미국에 팔아 버립니다?

오늘날  알라스카가 미국이  아닌  소련의  영토  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19세기에도 저렇듯 위생이 불결하고 병원 시설이 엉망 인데다가 약품이 부족해서 군인들이

저리도 허무하게 죽어나갔는데... 그보다 400년이나 전인 15세기 1443년에 파리도

아니고 일개 지방 도시인   본 Beaune  에  이런  현대적인  병원  이 있었다는게 놀랍습니다.

 

 

1855년 캄차카 반도 요새를 영국 해군에 점령당했던 러시아는 이후 극동해군을 보강 해서

1905년 일본과 러일전쟁을 치루지만 또 대마도 해전에서 패배 하는데.....

(터키,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등 6국이 상대한 러시아를 혼자서 전쟁?) 문득 상명대

교수 ‘박정자의 생각돋보기’ 에  “서양을 통해 읽은 일본 미학”  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바스라지기 직전의 비단, 광택 없는 배경, 기하학적으로 날카롭게 각이 진 사다리꼴의

커다란 검은 관복, 이것은 고요함의 위대한 양식 이고, 엄격한 하나의 건축,

또는 절대 기하학 이다. 초상화 자체가 ‘영웅’이라는 단어의 표의 문자

이며 그대로  하나의  상형문자이고.....  사자를  저승으로  실어  나르는 배  와도 같다.”

 

 

“학교에서 한번도 일본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배운적이 없고 일본 문화가 개방되지 않아

일본문화 자체의 언급이 금기시 되던 시절 ,‘흑요석(黑曜石)의 머리’ (한국어판

‘앙드레 말로, 피카소를 말하다’)  에서 12세기 후지와라노 다카노부(藤原隆信)의

다이라 시게모리 (平重盛)’ 초상화를 극찬하는  앙드레 말로의 글  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롤랑 바르트 의  ‘기호(記號) 의 제국’ 을 읽고는 더욱 놀랐다.  일본 전통 인형극

분라쿠(文樂) 를 보기 위해 기어이 일본에 가서 직접 관람하기도 했다.

 18세기 두 연인의 정사(情死) 를 다룬 ‘소네자키신주 (曾根崎心中)’

였다.   인형의 키는 1m 정도 이고  손, 발, 입  은 물론  눈꺼풀 까지 움직인다.”

 

 

“인형극이라면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이 숨어 있게 마련인데, 여기서는 인형을 조종하는

세사람의 숙련된 인형사가 무대에 등장해 인형과 같이 걷고 뛰고 움직인다.

검은 옷에 검은 천 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어찌보면 인형의 그림자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중의 리더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맨 얼굴로 인형을 조종 한다.”

 

 

“아무런 분장도 하지않은, 수석 인형사의 얼굴은 무심하고 무표정하다. 엄청난 무대 위에서

표정없이 무심하게 인형을 놀릴수 있다는 것이 아마도 굉장한 수련의 결과 인 듯하다.

인형을 쫓아 무대위를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그들은 교묘한 기술을 꾸며대지도 관중을

선동하지도 않는다. 그저 동작은 조용하고 민첩하며 행동에는  힘과 섬세함의 조화  가 있다”

 

 

무심  하기는 객석 위에 돌출된 회전무대에서 스토리를 낭송하는  다유(太夫)  와

샤미센(三味線) 연주자 들도 마찬가지다.  부동의 자세로 앉아 떨리는

목소리, 가성(假聲), 똑똑 끊어지는 억양 등으로 눈물, 분노, 비탄,

애원, 놀라움, 비애 등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 과장은 표면적일 뿐 이다.”

 

 

“그것은 과잉성이라는 규약을 철저히 따르는 양식화(樣式化)된 과잉성 이기 때문이다.

연극을 한참 보다 보면 마치 인형들이 저 혼자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듯

느껴지고, 연인들이 자살할 때는 얼핏 눈물이 핑 돌기도 하지만 인형사나

샤미센  연주자들은  하얗게 씻겨  나간  양파  처럼 일 체의 감정이 배제  되어 있다. ”

 

 

“프랑스등 서양 연극과 달리 분라쿠 는 연극의 프로세스 일체를 드러내 보이며 그 행위가

연극이라는  것을 전혀  감추지 않는다.  가히 브레히트의  소격(疏隔)  효과  이다."

 

 

"그러나 프랑스 평론가로 파리대학 교수였던 롤랑 바르트 는 더 근원적인 문제로

라간다. 만일 조종자가 숨어 있지 않다면 과연 당신은 그를

신격화할 수 있겠는가?  얼핏  푸코의 권력  문제 까지도 연상시키는 구절이다.”

 

 

“가장 최근의 놀라움은 롱랑바르트 처럼 프랑스인인 들뢰즈 가  ‘감각의 논리’  에서

'일본인들은 알고 있다.  우리 인생은 고작 풀잎 하나 알수 있는 시간 이라는

것을' 이라고 쓴 구절을 읽고서 였다. 아마도 하이쿠(俳句) 를 언급하는

듯한 이 구절에서 일본 미학의 정신성 에 대한 들뢰즈의 존경심 이 문득 묻어 나왔다.“

 

 

“우리가 일본 문화의 부정적인 한 면만을 계속 젊은 세대에게 교육시킨다면 일본과의

싸움은 백전백패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자 교수의 글 을 생각

하다가...  문득 동아일보에 이홍우 씨가 쓴  ‘헬조선’  OECD 통계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는 34개 회원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

통계를 발표 한다.  통계 항목은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인 인구 에서 부터

공공부문,  교육, 과학, 노동, 건강, 재정, 환경등  인간생활과 밀접한 분야가 망라돼  있다"

 

 

 "OECD 는 편의상 21개 분야 로 구분해 놓았다.  각 분야 세부 항목 까지 포함하면

'이런것도 조사하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세한 부분 까지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OECD 통계는  선진국 지표  로 인식된다. 정부가 우리나라 통계자료를 발표할 때 곧잘

OECD  자료와  비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얼마 전  ‘한국 아이들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짧다’ 는 OECD 통계 발표가 있었다."

 

 

"먹고 살기 바쁜 한국 부모들이 ‘저녁이 있는 삶’ 을 누리고 있지 못한 결과로 추정 된단다.

우리나라 연간 노동시간이 OECD 국가 최고 수준  인 점을 고려하면 당연하다 하겠다.”

 

 

“우리나라는  순위가 낮을수록 좋은 분야에서는 상위,  반대로 순위가

높을수록 좋은 분야에선 하위권 에 든 경우가 많다.

출산률, 사회복지 수준,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 등은 최하위권 이다!"

 

 

"산재사망율, 가계부채 증가율, 자살율, 노인빈곤율, 남녀간· 내외국인간  임금격차 등은

최고 수준 이다.  특히 인구 10만 명당 29.1명인 자살율은 10여년째 부동의 1위 다.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헬조선’ 이라고 자학하는 현상이 OECD 통계들로 뒷받침 된다.”

 

 

“하지만 스마트폰 보급률, 전문대학 이상 고등교육 이수율 등 우리나라가  ‘긍정분야’

에서 1등 인 것도 꽤 있다.  지난해 GDP 기준 우리나라 경제규모는 세계 13위 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대부분의 분야에서  OECD  평균 정도는  돼야 한다.

각종 통계지표가 우리나라 경제규모에 걸맞은 정도로만 개선돼도

 ‘헤븐조선’ 까진 아니라도 적어도 ‘헬조선’  이라는오명에선 벗어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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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3.07.17 꿀이 많을수록 벌도 많이 모이듯
    정(情)이 많을수록 사람도 많이 모인다...!
    음식(飮食)을 버리는 건 적게 버리는 것이요
    돈을 버리는 건 많이 버리는 것이고
    인연(因緣)을 버리는 건 모두 버리는 것이다...!
    견강과행운이 함께하는 하루길되세요.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18 그렇군요? 인연이 전부라는.....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3.07.17
    아름다운 人生은 바로 지금부터~
    그때 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일이 있다면 지금 하라~!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신의 한 수 같은 人生은 없다.
    친구(親舊)여~
    지금 이 시각을 중요시하라~!!!
    한 치의 앞도 못 보는 게 인간(人間) 삶이라.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18 장마가 지루하게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래 보았자 며칠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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