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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7 - 부다페스트에서 기차로 나기마로스 비셰그라드!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3.07.20|조회수128 목록 댓글 2

 

헝가리 7 - 부다페스트에서 기차로 도나우벤트의 나기마로스 비셰그라드에!

 

 

2022년 5월 6일 류블라냐 Ljubljana 에서 기차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델리역  Budapest-Déli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국회의사당을 보고는 다뉴브(도나우강변에서 부다지구의

왕궁이며 유람선에 일몰 을 구경하고는 걸어서 뉴가티역(서역근처 호텔에 도착해 1박 했습니다.

 

 

2022년 5월 7일 아침에 헝가리 부다페스트 서역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는 오늘은 기차로 멀리

북쪽 다뉴브강변에 자리한 도나우벤트 Dunakanyar  비셰그라드 로 가야 하는지라 체크아웃을 한

후에  배낭을 메고 나와서 호텔 바로 옆에 있는 환전소에서 70유로를 25,600 헝가리 포린트로 환전 합니다.

 

 

그러고는 기차를 타러 인근에 있는 역으로 가는데  이제 부다페스트 를 출발해 북쪽

오스트리아 및 슬로바키아 접경으로 도나우강변인 도나우벤트 Dunakanyar 

가려고 서역인 뉴가티역 에 도착하는데..... 여긴 공사중이라 조금은 혼란스럽습니다.

 

 

공사중인지라 매표소는  뒤쪽 구석에 자리한 컨테이너에서 임시판매소 를 만들었는데 도나우벤트

Dunakanyar 중에서도 중간에 자리한 "비셰그라드"  로  가는 기차표를 1인당

1120포린트씩에 끊어 플랫폼을 찾아가니  기차는 09시 08분에 Szob 행인데 6번 플랫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플랫폼은 10~15번이니 이건 가까운 곳으로 가는 기차이지 싶으니 뒤로

돌아가서  옆구리에 자리한 6번 플랫폼 을 찾았는데 뛰어가니 기차 문이 닫히기에 문에

있는 초록색 버튼 을 눌러서 다시 기차문을 열고는 뒤따라 달려오는 마눌을 기다려 올라탑니다.

 

 

그러고는 우리가 타자마자 기차는 바로 출 하기로 옆좌석의 할아버지에게 이 기차가 비셰그라드 에 가느냐

물으니 맞다기에 자리에 앉는데, 이제 부다페스트 를 떠나니 문득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 선생이 떠오릅니다.

 

 

 

 

2018년에  "tv N"  에서 방영된 "윤식당 2"  의 현장인 스페인 남쪽 카나리아제도 테네리페섬의

가라치코 마을을 찾아 레스토랑을 보고는 돌아오는 길에..... 마드리드에서 비행기를 환승해

1시간 20분 거리인 마요르카섬 팔마시 에 도착해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 선생댁 을 찾았습니다.

 

 

안익태 선생 은 평양 숭실중에서 3.1 만세 사건으로 퇴학된 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 구니다치 고등음악원

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 신시내티 음악원에 입학한 후에 신시내티 교향악단에서 첼로주자로 있다가

1934 헝가리 로 건너와 도야니에게 작곡을 배웠으며 1937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교향악단 지휘자 가 됩니다.

 

 

1936년에 안익태 선생은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참가한 베를린 올림픽 에 즈음해  스코틀랜드

민요로 이별의 노래인 올드랭사인 곡으로 애국가를 부르는 현실을 마음 아프게 생각해 애국가를

작곡 해서 조선 선수와 함께 불렀으며 임시정부에 애국가 곡을 보내니 윤치호 가사 로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옛날부터 애국가는 수십개” 가 있었으니.... 최초로는 1896년 독립협회 회장인

친러파 이완용 (독립문 현판 글씨를 쓴 조선 명필로 후일 을사 5의 주도로 독립문

정초식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스코틀랜드 민요 'auld lang syne' 의 멜로디 로 부른 작사

미상 애국가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죠션 사람 죠션으로 길이 보죤하세")  라고 합니다.

이완용! 하면 친일파 부터 먼저 떠올리는데, 그는 당시 국왕과 모든 대신들 처럼 친청파 였으니 1894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하자 친미파 가 되었고,  일본이 차지한 요동 반도를 3국간섭으로 뺏기자

이를 주도한 친러파 가 되어 저 독립협회 회장으로 거금을 기부해 독립문을 세웠으며 이후 러일전쟁

에서 러시아가 패하자 친일파 가 되었는데 애국자 윤치호등이 훗날 친일파로 변절 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번째로 대한제국의 애국가” 는 1901년 고종이 초빙해 궁정 악대를 맡긴 독일 작곡가 "프란츠

에케르트가 1902년 작곡해 고종 생신때 궁정악대가 불렀는데, 프란츠는 22년전인 1879년에

일본 해군악대에서 근무하다가 1888년 황궁에 근무하면서 1890년에 일본 국가 기미가요” 

작곡해 천황(일왕생일에 불렀다니.... 일본 국가와 조선 애국가를 같은 사람이 작곡 한 것이지요?

 

애국가 작사자 윤치호 는  17세때 일본 도진샤, 21세 상해 중서서원, 24세부터 미국 에모리대

에서 공부하던 1907년에 애국가 가사 를 썼으며 귀국후 독립협회 회장대성학교 교장을

지내며 민족의 힘을 키웠고 1912년 데라우치총독 암살미수 사건인 105인사건 주모자로

3년간 복역했으나 만년에는 친일 강연에 중추원과 조선임전보국단 으로 친일에 앞장 섭니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 는 오랜 조사와 토론 끝에 애국가 작사자 윤치호 에 대해 확정 표결

을 해서 11대 압도적 결과가 나왔으나 애국가의 작곡가와 작사자 두명 모두가 친일파

인 점이 마음에 걸리는지라 결정을 유보하고 미확정  으로 발표한게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윤치호 선생은 애국가를 국가(國歌의 개념 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계몽과 단결을 위해

애국적 찬송가 로 지었다” 라는데  당시 그의 노래가 배재학당 을 비롯한 기독교 학교로 확산되고,

3·1운동 기간 민중이 선택하고 임시정부가 수용해 광복후 자연스레 대한민국이 채택했던 것 입니다.

 

 

윤치호 선생은 1907년 애국가 가사와 후렴이 같아 원형 으로 보는 애국적 찬미가(무궁화가)’ 를 1897

8월 13일 조선 개국 505주년 기념식 때 기념가로 작사했으며 (서재필의 취재노트 Editorial Note)....

독립협회 주최 행사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무궁화 노래(National Flower)’  를 불렀다고 하는 내용이

2013년 발간된 아펜젤러 전기(아펜젤러와 한국: The Appenzellers: Who They Preached) 에 나옵니다.

 

 

안익태 선생 은 1940년 일본 정부 기원 2600년 기념축전 사무국이 요청한 황기 2600

기념봉축 음악을 작곡“ 했고 같은해 12월 도쿄 가부기좌 (歌舞伎座에서 초연

되었는데..... 이 곡은 이후 독일 을 비롯한 유럽에서도 연주 되었으니, 이를 계기로

1941년에 안익태 선생은 부다페스트를 떠나 독일의 베를린 으로 주 활동 무대를 옮깁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안익태 선생은 친()나치 음악가 독일의 거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제자 가

되었고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가 됐는데.... 당시 베를린 필 또한 나치 선전에

활용된 침략의 전령사이자 나팔수였으니.... 베를린 필 자료실장은 슈트라우스가 안익태

를 후원한 이유에 대해  당시 내세울 만한 일본 출신 지휘자가 없었기 때문”  이라고 말했습니다.

 

 

6.25 후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한국 환상곡” 은 1942년 일본 괴뢰인 만주국 수립 10 주년을 기념해

작곡하고 일장기와 만주국기가 걸린 무대에서 지휘했던 "만주국의 자기 표절” 이며.... 일본

천황(일왕을 찬양하는 에텐라쿠 를 작곡했고 군국주의 日獨會 일독회” 의 경제적

후원 을 받았으며 독일에서 생활할때 주독 일본 영사관의 신세 를 졌다는 친일파” 논란이 있습니다.

 

 

기미가요 는 "천황의 통치시대는 천년만년 이어지리라작은 돌이 큰 바위가 되고그 바위에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가사인데... 안익태 선생이 1941년 기미가요를 연주했다는 문건 이 발견됐으니

안익태를 오랫동안 후원했던 일본 외교관 에하라 고이치 (주독 베를린 공사관 참사관

1952년에 일본 음악 잡지 <레코드 예술에 기고한 글로 제목은  '안익태군의 편모(片貌)'  입니다.

 

 

기고문에 따르면 일본 외교관 에하라 고이치는 독일소련 전쟁이 시작되던 1941 명치절

아침에 부쿠레슈티의 일본 공사관 의식 에 참여했는데.... 기미가요 제창때 피아노 

연주하는 청년이 있었으니 지휘자 겸 작곡가 안익태로 이후 전쟁으로 유학이 어려워지자

독소 전쟁이 시작되던 해 부터 베를린의 자기 집에서 그와 함께 살게 됐다"  라고 적었습니다.

 

 

안익태는 그날 오후에 에하라씨를 왕립음악당 연주회 에 초대하였는데 음악당은 만원이었고

곡목은 자작곡인 월천악 (에켄라쿠일본 궁중아악과 베토벤 교향곡 6 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인이 황실 월천악을 교향곡화 한 것에 대해 기이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조선 궁정

에도 아악 이 있으니.... 배리에이션이 나타났고 교향시는 우아한 월천악의 멜로디

에 조선의 궁정악 을 더하여 극적인 효과를 내며 내 가슴을 울렸다” 라고 적었습니다.

 

 

안익태 선생은 1944년 베를린에서 나치 치하의 파리 로 가서는 팔레 샤이요에서 3일간 베토벤

축제 를 시도했으니 첫째 날은 티보와 바이올린협주곡을둘째 날은 코르토와 황제 협주곡

그리고 셋째 날에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하여 성황리에 마치고는 베를린의

에하라 고이치의 집 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중립국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로 갑니다.

 

1942년에 만주국 건국 10주년 을 축하하는 큰 관현악과 혼성합창을 위한 교향적 환상곡

만주’ ” 를 작곡하였고 1943년 7월 독일 제국음악원 정식회원 이 되었으며 1944

독일의 패망이 짙어지면서 활동무대를 중립국인 스페인으로 옮겼는데,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그의 애국가” 는 사실상 국가 로 되었고 1965년 9월 16일 사망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새에 기차는 우리가 내릴 비셰그라드 에 서는데 과거에 요새도시였으며 도나우벤트

Dunakanyar 의 중앙으로 오스트리아와 슬로바키아를 거쳐 동진하던 도나우강 은 헝가리 국경

지대에 이르러 급히 남쪽으로 방향을 트니 부근을 말하는데 수려한 자연경관과 유서깊은 도시가 많습니다.

 

 

도나우벤트 Dunakanyar 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오자면 첫 번째가 센텐드레(예술가 도시)

이고 두 번째가 비셰그라드(요새도시) 이며 세번째가 에스테레곰(옛 수도 로

가톨릭의 성지인데...... 비셰그라드(요새도시는 도나우강(다뉴브강) 남쪽에 있습니다.

 

 

지도를 보자면 우린 남쪽인 부다페스트에서 왔으니 처음에는 도나우강을 건너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기차는 강을 건너지 않았으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 하면 동진하던 도나우강이 여기서 급히 남쪽으로

꺽어지는 지라 그럼 우리가 출발한 부다페스트의 뉴가티역은 다뉴브강의 동쪽 에 위치하기 때문인가 합니다?

 

 

부다페스트 뉴가티역 에서 Budapest-Nyugati 09:08 분에 출발한 EC Terespol (Eurocity) 기차는 09:36

Vac을 거쳐 09:45 분에 나기마로스 비셰그라드역 Nagymaros- Visegrad/Visegrád 에 도착합니다.

 

 

이제 우리 목적지 비셰그라드 시는 강의 남쪽(서쪽) 이니 배를 타고 다뉴브강을 건너야

하는데 이 기차는 스좁 Szob 이 종점이지만,  원래 타려고 했던 08시 28분 기차는

멀리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브  중앙역  Bratislava hl.  까지 간다고  합니다.

 

 

강 남쪽의 비셰그라드 Visegrád 로 가기 위해 배를 타려고 다뉴브강(도나우강) 으로 걸어

가는데... 이 배는 일반 승객은 물론이고 자동차도 여러대 를 싣고 강을 건너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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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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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3.07.20 웃음(Laughter) 사랑(Love) 감사(Thanks)
    영혼과 마음과 생각과 육체가 골고루 건강하고
    건전한 인생을 향유(享有) 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21 웃음과 사랑에 감사.......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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