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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종 3 - 생베니뉴성당에 조선에서 순교한 브르트니에르 신부!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3.09.09|조회수93 목록 댓글 3

 

디종 여행3 - 생 베니뉴 대성당에서 조선에서 순교한 브르트니에르 신부를 회상하다!

 

 

5월 24일 리옹 파르 디외역  Lyon Part Dieu  에서 기차를 타고는 북쪽으로 달려서 2시간

만인 10시 20분에 옛 부르고뉴 왕(공)국 의 수도 디종 빌 Dijon Ville 역에 도착합니다.

 

 

디종 기차역 안에 있는 유인 레프트 라기쥐 Left Luggage : Consigne a Bagage

배낭을 넣고는 역 앞에서 트램이나 택시를 탈까 하다가 그냥 걷기로 합니다.

 

 

기욤문 Porte Guillaume 을 지나 리베르테 거리 Rue de la Liberte 를 걸어서

옛 부르고뉴 시절 왕궁 인  Palais des Etats de Bourgogne  를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걸어서 오래된 노트르담 교회 Eglise Norte Dame 를 찾아 시계를 치는

자크마르상을 보고 벽에 새겨진 올빼미 를 만지며 여행이 무사하기를 빌어봅니다.

 

 

그러고는 걸어서 후기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인 생미셸 교회 Elglise

Saint-Michel 를 보고 오페라 대극장 Grande Theatre 과

뤼드 박물관  Musee Rude  을 지나  생 필베르 교회  를 구경합니다.

 

 

  건너편에 수도원이었던 고고학박물관 Musee Archeologique 이 연결된 생 베니뉴 대성당

Cathedrale  Saint- Benigne 을 보는데... 생 베니뉴 대성당 은 이 고풍스러운

도시 디종에서 가장 웅장한 유적으로 손꼽히는 11세기 베네딕토 수도회 의 성당 입니다.

 

 

대성당은 정면 파사드 가 멋지고 색깔 기와가 만들어내는 기하학적인 지붕을

가지고 있으며 14세기에 현재 모습인 고딕양식으로 개축 하였다고 합니다.

 

 

벽을 따라서 튀어나온 조각상 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수

있으며 지하에는 1007년에 조성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지하묘 가 있다고 합니다.

 

 

3세기에 죽은 생 베니뉴 가 묻혀있으며 뒤편 수도원을 개조한 고고학 박물관 에는 구석기

시대 부터 프랑스 최초 왕조인 5~8세기 메로빙거 왕조 유물 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 성당에 소속된 성 랑페르 드 브르트니에르 Simon-Marie-Antoine Just BreteniAre

신부는  "조선에서 순교"  했는데......  103위 시성식 한분  으로  한글 팜플릿  도 있습니다.

 

 

1791년에 윤지충과 권상연을 죽인  신해박해 에 이어  1801년 주문모 신부와 조선인 신자

100명을 죽이고 400명을 유배보낸 신유박해, 1839년 118명을 죽인 기해박해 에 이어

대원군 때인 1866년에는 선교사 12명중에 9명 과 조선인 신도 8,000명 을 죽인

병인박해 가 일어나자 프랑스는 군함을 강화도로 보내 보복하니 이른바 신미양요 입니다. 

 

 

브르트니에르 신부 는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65년 조선으로 건너와 다음해에

일어난 병인박해 때 순교 했으며,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니

“브르트니에르의 마음은 참으로 비범 하였으므로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순교의 특은을

허락하시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꼭 성인품 에 오르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1864년 6월 파리를 떠나 홍콩을 거쳐 만주에서 조선으로 가는 배를 6개월이나 기다린후

백령도를 거쳐 1865년 5월 어렵게 충청도 내포 부근에 상륙하여 걸어서 서울로

장주교 를 찾아가 한국말을 배우며 밤을 이용해 전교 활동을 시작하던 무렵 1866년

2월 장 주교가 체포되고 며칠후 이선이의 고발과 안내로 신부도 포졸들에게 체포 됩니다.

 

 

“나는  조선 사람인 여러분의 영혼을 구해주려고 나왔으므로  주님을 위해 기꺼이 죽겠소

라고 말하면서 의금부로 이송되어 고문을 받았는데 관리들이 “차마 죽일 수 없어

본국에 돌려보내 주려는데 어떠한가?”하자 신부는“  생사에 구애를 받고 변심하지

않으렵니다” 대답하고 주교 2명, 신부 10명, 일반신도 3명과 함께 새남터에서 처형 됩니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 의 부친인 샬르 쿠베르탱 

은  “출발(Le Depart)”  이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

 

 

세사람 중에 오른쪽이 성 브르트니에르 신부 이며   “아베 마리아” 

작곡자로 유명한 샬르 구노 는 조선으로 파견되어 순교한 여러

선교사들을 위해 가톨릭 성가 284번 “무궁무궁세에” 를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로마 교황청이  우리나라와 접촉한 사례는 이보다 빠르다는 주장이 있으니...

서정보 동아일보 기자는, 우광훈씨는 바티칸에서 필사본을 확인 했다며 “교황,

1333년 고려 충숙왕에 편지 유럽과의 교류 261년 앞당겨져야” 라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로마 교황이 1333년 고려 충숙왕 (1294∼1339)에게 보낸 서한의 필사본 

바티칸 교황청 수장고에서 확인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금속활자의 비밀들’을 제작하는 우광훈 감독 은 “8월

바티칸 비밀문서 수장고에서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 27대 충숙왕

에게 보낸 서한  필사본을 확인해 촬영했다”  고  29일 밝혔다.

교황청은 공식 서한을 쓸 때 이를 보존하기 위해 원본 외에 필사본을 남긴다.“

 

 

 “이 서한 필사본은  라틴어로 작성돼 있으며  ‘존경하는 고려인들의 국왕께’ 로

시작된다. 편지 내용에는 “왕께서 그곳(고려) 의 그리스도인들 에게

잘 대해  주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무척 기뻤다” 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가톨릭은 18세기에 처음 전해졌다는 것이 기존 학설이다. 이 서한

내용이 맞는다면 가톨릭 전래 시기는 고려 시대로

400년 이상 앞당겨지고  유럽인이  한반도에  온 시기도  빨라진다. ”

 

 

“우 감독은 “지금까지는  1594년 임진왜란 때 스페인 출신 세스페데스 신부 

한반도에 온 최초의 유럽인 으로 기록돼 있지만,  이 서한에

따르면 유럽과 한국의 교류사를 261년 이상 앞당겨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 서한의 전달은 당시 니콜라스라는 사제 가 맡았지만 베이징으로 향하는

도중 실종 돼  편지가 실제  충숙왕에게  전달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한편 전북 전주에 본부를 두고  가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단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세계종교평화 협의회 도 6월 말 바티칸 수장고 고문서 담당인

엔리코 플라이아니 박사를 통해 같은 서한을 확인하고 2장짜리 사본을 확보한 상태다.”

 

 

 “세계종교평화협의회  최의령  기획팀장은  “지난달  바티칸에서  우편으로

서한의 사본을 전달받았다” 며  “서신 내용은 현재 번역

중이며 앞으로 가톨릭계와 협의해 올해 안에 내용을 공개 하겠다” 고 밝혔다. “

 

 

여기 디종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30분만 가면 랑그르 Langres 라는 소도시

있는데 1974년에  “한국천주교회사” 를 쓴  “샤를 달레 신부”

고향이니....  샤를 달레 신부는  1852년 사제 서품을 받고  인도  에

발령되어  포교 활동을 하다가 병마에 몸이 쇠약해지자  프랑스로 귀국합니다.

 

 

그는 1874년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다블뤼 주교  등이  파리 외방전교회로 보내온

비망록과 보고서 · 편지 들을 자료로 하여 “한국 천주교회사” 를 출간했으며

달레 신부는 1877년 아시아 지역의 전도를 위해 일본과 중국 동북지방을 방문

하였으나 한국에는 들어오지 못한채 베이징을 거쳐 베트남에서 이질에 걸려 사망 합니다.

 

 

 

몇년전에 프란치스코 교황 이 서울을 방문해 윤지충 바오르등 순교자 124위 시복식 

가졌는데“윤지충 은 어미가 죽었는데도 상복도 입지않고 조문도 받지 않았다.

신주는 불태우고 제사는 폐했으니 이 해괴한 사건으로 1791년 조선은

충격에 휩싸였다.”  더욱 조선에는  예수교 선교사도  아직 들어오기  전의 일  이라!

 

 

1790년 베이징교구 구베아 주교 는  조선 신자들의 문의에 "제사 금지령" 

전하니  채 1년도 안되어 선비 윤지충 같은 희생자  가 나온 것인 데....

 

 

 달레 신부 는 제사 금지 에 대해  “조선 국민 모든 계층의 눈을 찌른 것이다” 라고

탄식했으니  1939년에 가서야 가톨릭 교회는 조선에 제사를 허용  하게 됩니다.

 

 

디종역으로 가면서 생각하니 모데나의 발사믹 식초파르마의 생 햄과 향수트라파니의

소금 에....  마르세유의 비누 처럼 이 도시 디종의 특산물은  "디종 겨자"  입니다.

 

 

유럽에서  겨자는  숍  머스타드 마이유  Moutarde Maille  라고 하는데....

프랑스어로는 무따르드 라고 불리는 "겨자"  는 노랑색

시나피스 알바 와 적갈색 브라시카 니그라 나무로 만드는데 디종 명물입니다.

 

 

인류의 생활에서 소금과 후추 에 이어 3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조미료인 "겨자" 는

알렉산드리아 등지에서는  정향이나 겨자로 고추를 대신  하였다고 합니다.

 

 

 BC 42년에 겨자 제조법이 지중해를 건너 프랑스 에 소개된후 이 도시

디종 에서는 샤를 나뮤 프랑크 왕이 그 제조를 장려 했다고 합니다.

 

 

흔히 프랑스를 "와인의 나라" 라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두군데를 들라면 프랑스

서남부의  보르도 와인  과 여기 동북부에  "부르고뉴 와인"  입니다.

 

 

시간만 있다면 옛 부르고뉴 왕국의 수도 로 고풍스러운 이 도시 디종의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  Escago 에  부르고뉴 와인  을 맛본다지만....  가난한 배낭

여행자 주제에다가일정도 빡빡하니 그만 돌아섭니다. 나의홈페이지 : cafe.daum.net/baik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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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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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3.09.09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9.10 이제 완연한 가을 입니다!
  • 작성자녹차한잔 | 작성시간 24.01.23 그나마 천주교는 제사를 허용했지만 개신교는 아직도 제사를 인정하지 않아 민중사이에서 계속 말썽거리를 제공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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