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브장송3 - 옛 성채 시타델에 올라 시가지를 조망하다!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3.09.27|조회수81 목록 댓글 2

 

브장송 여행3 - 로마 시대 성채 터에 건설된 시타델에 올라 시가지를 조망하다!

 

 

6월 2일 리옹 에서 기차를 타고 디종 을 구경항후 다시 부르고뉴 왕국 의 도시 브장송 에 도착해

게스트 하우스를 정하고는.... 구시가지 를 걸어 생장 대성당 Cathedrale St. Jean 을 봅니다.

 

 

그리고 로마 제국 시대의 옛 성 터에 18세기에 건설했다는 성채 Citadelle de Besançon 와

미술관 Citadelle Vauban ses Musees 을 보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을 오릅니다.

 

 

경사가 급한 언덕길을 5분여 걸어 올라가노라니 저 아래로 브장송 구시가지

타원형으로 감싸고 흐르는.... 두강에 걸린 철교 가 내려다 보입니다.

 

 

그러고는 드디어 산 정상에 거대한 성벽 이 보이는데 성문을 들어서기 전에 여기

외성 에서 내려다 보는 브장송 구시가지 의 붉은 지붕들이 인상적 입니다.

 

 

다시 견고하고 육중한 성문 으로 들어가 언덕길을 오르는데 거기 동상 이 서 있으니

 성채를 설계하고 건축을 감독했다는 "에스파스 보방"  이라는 인물인가 보네요?

 

 

여기 성채 Citadelle de Besançon 는 로마제국 시대의 고성 터 에 18세기에 건설한

것인데... 콩테 지방 박물관과 미술관 Citadelle Vauban ses Musees 이 있습니다.

 

 

하지만 매표소가 닫힌게 오늘이 월요일 정기 휴무일이라 그런가 보네요?

여기 언덕길을 더 걸어 오르면 위쪽에 내성 이 있고

그 안에 오랜 성채 와 레지스탕스 박물관  미술관 이 있는 것이지요!

 

 

해서 내성 으로는 들어가지는 못하고 여기 외성 에서 옛 로마 시대의 성터 유적 

둘러 보는데 주변은 개방형 동물원 인양 타조 가 돌아다니는 것을 봅니다.

 

 

그러고는 성채 를 걸어 내려오면서 생각하노라니 문득.....

베르사이유에 소장되어 있다는 그림 두점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프랑스인 장 밥티스트 마르탱 이 제작한 460 x 340 cm 크기의 장식융단인

“ 브장송 점령, 1674년 5월 6일 Siège de Besançon, le 6 mai 1674 ” 이고....

 

 

다른 하나는 벨기에의 화가 아담 프란츠 반 데르 묄렌 이 유화로 그린

“ 1674년 5월 15일, 왕군의 브장송 점령

Prise de Besançon par les armées du Roi, 15 mai 1674 ” 그림 입이다.

 

 

유럽은 동양과는 달리 일부일처제 이고 정실 여성(사위) 이 가문을 상속하기도 했으니

부르고뉴 왕국 의 공주 마리 가 1,47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에게 

 시집을 간후 친정에 후사가 끊기니 부르고뉴는 합스부르크 가문 의 통치하에 들어갑니다.

 

 

그 전에 네델란드(벨기에) 공주 가 부르고뉴 왕국에 시집온 후 친정에 후사가 끊어지니

부르고뉴가 네델란드를 다스리고 있었던 것인데, 저 부르고뉴 공주의 딸이 아들을

낳으니 그는 스페인 공주와 결혼 한 후에 또 다시 스페인 왕실에 후사가 끊어지니 이제

합스부르크가의 카를 5세 는 오스트리아에서 스페인에 신대륙 까지 유럽 절반을 통치 합니다.

 

 

이후 1,592년 코냑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하면서 부르고뉴 는 프랑스령 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그후 이 도시는 다시 합스부르크가에 속하는 스페인 수중에 떨어집니다. 

그후 영국과 네델란드가 전쟁하는 중인 1,672년에 프랑스의 "루이 14세" 는

군대를 델란드로 진격시키니 네델란드 오렌지공은 수문을 터뜨리며 결사항전을 합니다.

 

 

프랑스의 침입을 받은 네델란드가 브란덴부르크와 신성로마제국 및 스페인과 동맹을

맺으니 프랑스군 은 1,674년 여기 브장송 을 수도로 하는 합스부르크가의

일원인 스페인왕국의 영토 였던 프랑슈 콩테 로 진격해 도시를 점령하게 됩니다!

 

 

전쟁 후에 스페인은 자기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 동부지방으로 옛 부르고뉴 왕국

이었던 스페인령 브장송등 프랑슈 콩테 지방을 프랑스  넘겨주었으며....

그에 대신해 합스부르크가 신성로마제국도 알사스 지방 을 프랑스에 할양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영토를 서로 맞바꾼 것인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예전에 게르만족 

부르군트족 수령 군디카르는 413년에 마인강에서 라인강 중류 지역 보름스 

수도로 건국 하나 436년에 서로마와 동맹관계에 있던 훈족 의 공격을 받아 멸망합니다.

 

 

 

이 사건은 나중에 전설화 되어 독일 서사시의 “니벨룽겐의 노래”의 주제가 되었는데

 1부는 부르군트족 크림힐트 와 지크프리트 의 결혼 및 지그프리트의 죽음을....

 

 

2부는 훈족 앗틸라 왕 의 아내가 된 크림힐트의 복수 를 다루고 있는데 바그너 에 의해

4부작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에 수용되어 독일 민족주의 형성 에 기여하였습니다!

 

 

그후 부르군트족 은 손자 군데리크 가 남은 부족들을 이끌고 서로마 영토 내의

론. 손강 유역으로 이동해 443년에 제네바를 수도로 삼고 왕국을 재건 합니다.

 

 

이후 게르만 부르군트족 은 군도르바왕 때 서고트족으로 부터 프로방스를 빼앗고

부르군트 법전을 편찬하는등 전성기를 누리게되나....

500년에 프랑크왕국 의 클로비스 왕 에게 패하여 복속된 후 534년에 멸망합니다.

 

 

게르만 부르군트족 의 후예 부르고뉴 공국 은 843년 프랑크 왕국을

분할 상속하는 베르됭 조약에 의해 서프랑크 왕국(프랑스)

에 할양된 이래 손 강의 동쪽 인근을 영지로 하여 존속해 왔습니다.

 

 

880년 리처드가 부르고뉴 공국의 후작(후일 대공) 이 되었으며 1004년에는 파리

카페 왕가에 의해 프랑스 왕국에 합병 되니 이후 카페 왕가의 방계로서

로베르 1세 가 1032년 부르고뉴 왕국 을 창시하니 1361년까지 12대가 이어집니다.

 

 

이 해에 부르고뉴 왕국 은 발루아 왕조 프랑스왕 장 2세에게 상속되어 없어졌으나 2년후인

1,363년 국왕의 막내 아들인 필리프 2세가 부르고뉴공 이 되면서 공국으로 되살아 납니다.

 

 

백년 전쟁  중인  1430년에  잔다르크 가 출현했을 때 필리프 2세 대공의 4대손인

부느고뉴 대공 샤를 1세 는 잉글랜드와 연합해 프랑스를 공격 하던 중이라

그녀를 체포해 영국군 에 넘기니 종교재판에서 마녀(?)임이 들통나서 화형 됩니다.

 

 

이후 프랑스 왕국  부르고뉴 공국 은 서로 화해 를 하고는 연합군을 결성해 1453년

영국군을 프랑스 영토 에서 완전히 몰아냄으로써 백년 전쟁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루이 14세 에 의해 완전히 프랑스에 귀속된 부르고뉴 대공 의 지위는 루이 15세의

아버지인 황태자 루이 를 비롯한 여러 프랑스 왕족이 대를 이어 사용하였습니다.

 

 

디종과 더불어 브장송 은 게르만 부르군트족 이 세운 옛 부르고뉴 왕국 의 주요

도시 인데, 바그너 는 부르군트족을 소재로 해서 오페라 를 작곡했으니....

 

 

하나는 앞에서 말한  “니벨룽의 반지”  요 또 다른 하나는  “로엔그린”  이니

부르군트 왕국에서 공작의 딸인 엘자가 남동생을 죽인(?)걸

엘자의 후견인으로 있던 프리드리히 백작이 고소한 재판 으로 시작 됩니다.

 

 

부르군트 왕은 게르만족의 재판 관습 에 따라 두 사람이 결투로 진실을 가리라고

판결 하지만..... 엘자 를 대신해 결투에 임할 기사 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십자군 전쟁때 까지도 유럽인들의 재판은 증거위주가 아니라 결투로 해결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앞에 기도 하고 하는 결투라 "결투에서 진 사람이 범인" 인 것이지요?

마지막 순간에 백조가 끄는 작은 배를 탄 백기사 가 나타나서는 결투후 결혼해

주겠느냐 묻고 자신이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결코 물어서는 안된다는 다짐  합니다.

 

 

결투에 이긴 백기사가 엘자와 결혼 하자 패한 백작의 부인이자 게르만 마법사인

프레이아 를 섬기는 오르트루트 는 결혼식장인 교회에 자기가 먼저 입장합니다.

 

 

이름이며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기사 가 성스러운 교회에 먼저 들어갈수

없다며 신분을 밝힐 것을 요구하니 엘자도 궁금증이 더해 갑니다.

 

 

하지만 난처한 위기의 순간에서 어찌어찌해서 왕의 배려로 결혼식을 올렸으나

엘자는 궁금증 을 참지 못하여 결국에는 누구인지 묻게 되고.....

백기사는 성배기사인 파르지팡의 아들 로엔그린 이라 밝히고는 배를 타고 떠납니다.

 

 

이때 후회로 절망한 엘자가 울부짖다가 죽으니 기사는“브라반트의 공작을 보라”고 외치자

마법이 풀린 백조 는 엘자의 남동생으로 변해 공작 가문을 계승 하게 된다는 줄거리 입니다.

 

 

성채 아랫길에서 오른쪽으로 나있는 계단을 내려와서는 옛 성채의 문 이라는

유서 깊은 리보트문 Porte Rivortte 을 보고는 걸어서 강변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구시가지 를 걸어 한바퀴 돌다가..... 좀 전에 보지 못하고

지나친  빅토르 위고의 집 Musee Victor-Marie Hugo 을 찾아 갑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3.09.27 잘지내시죠
    추석 잘지내시고
    건강하게...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9.28 한가위 명절 즐겁게 보내시길.....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