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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장송4 - 빅토르 위고의 집을 거쳐 “레 미제라블” 을 보다!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3.10.04|조회수143 목록 댓글 0

 

부르고뉴 브장송4 - 브장송에서 빅토르 위고의 집을 보고 밤에 “레 미제라블” 을 보다! 

 

 

6월 2일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 지방의 도시 브장송 에서 게스트 하우스에 배낭을 풀고는 시내를

걸어서 생장 대성당 을 거쳐 산 정상에 위치한 성채 Citadelle de Besançon 를 구경합니다.

 

 

성채를 내려와서는 강변에 있는 리보트문 Porte Rivortte 을 지나 다시 구시가지를 걸어서

"빅토르 위고의 집" Musee Victor-Marie Hugo 을 찾았는데 월요일 휴무라 문이 닫혔네요?

 

 

휴머니즘을 신장시킨 낭만주의 문학의 거장 빅토르 위고 는 1802년에 바로

이 도시 브장송 에서 태어났다는데.....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인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다니다가 열살때 파리 로 이주합니다.

 

 

그는 방대한 문학 작품을 써낸 작가 이자 재능 넘치는 데생 화가이며 정치인

이자.... 만족할 줄 모르는 만인의 연인 으로 “세기의 전설” 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시대의 역사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으니.... 정치가 로 역사의 현장속으로 뛰어

들었으며 인도주의이자 이상주의 적이었던 자유와 정의 를 섬기는 “사상가” 였습니다

 

 

대학에서 법학 을 공부하면서도 시작에 몰두하며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갔는데 14세

때에 저명한 작가 겸 정치가인 프랑수아 샤토브리앙을 닮겠다고 일기장에 적었습니다.

 

 

1822년에 첫 시집  “오드” 로 주목을 받았고.... 5년후 희곡 “크롬웰” 과 시집

“동방시” 를 간행하고 "낭만주의 운동" 의 지도자로 문단의 총아 가 됩니다.

 

 

1831년에는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  으로  빅토르 위고의 명성  은 확고해 졌으며,

쥘리에트 드루에 라는 여배우를 만나 불륜 관계가 시작되었는데......

그녀는 후일 레미제라블의 원고 를 정서하기도 했으며 그의 망명지 까지 따라 갑니다.

 

 

1843년 딸 레오폴딘이 익사 하는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문학활동을 중지한 후에는

정치활동 에 관심을 갖게 된후 왕실과의 친분으로 자작 작위를 받지만.....

 

 

이 무렵 여배우 레오니 당트 와의 간통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된 후에는

대외 활동을 중지하고 칩가하면서.... 대작  “레 미제라블”  의 집필에 몰두합니다.

 

 

1848년에 2월 혁명이 일어나자 위고는 국회의원 에 당선되는데 대통령 선거에서 루이

나폴레옹 을 지지했지만 곧이어 반동 정치 가 시작되자 격렬하게 정부를 비판 합니다.

 

 

1851년 12월에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제정 을 선언하자 반정부

인사 로 낙인 찍힌 빅토르 위고는 벨기에로 피신 했다가 섬으로 추방됩니다.

 

 

1859년에 루이 나폴레옹은 사면령 을 내렸지만 위고는 이를 거부하고 “정관시집”

비롯해서 “레 미제라블 1862”  과 “바다의 노동자 1866 ”  를 간행합니다.

 

 

1870년 프로이센 과의 전쟁으로 루이 나폴레옹의 제2제정이 몰락 하자 위고는

9월 5일 밤에 기차를 타고 파리 에 도착하니 대대적인 환영 을 받게됩니다.

 

 

1871년 파리에서는 코뮌 이 수립되었다가 분쇄 되니 위고는 코뮌 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그 가담자들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에는 반대 했습니다.

 

 

그로인해 위고 는 코뮌 동조자 로 오해 받아 벨기에로 추방 당했고 이후 파리로 돌아와서도

냉대를 받다가 1876년에는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2년후 뇌출혈 로 은퇴합니다.

 

 

1,881년 8월 31일에 유언장 을 썼으니 “신과 영혼, 책임감! 이 세 가지 사상만

있으면 충분하다. 적어도 내겐 충분했다. 그것이  "진정한 종교"  이다.

 

 

나는 그 속에서 살아왔고 그 속에서 죽을 것이다. 진리와 광명, 정의, 양심, 그것이 바로

 이다. 가난한 사람들 앞으로 5만 프랑의 돈 을 남기니 관 만드는 재료 를 사도록!!!

 

 

내 육신의 눈은 감길 것이나 "영혼의 눈" 은 언제까 지나 열려 있을 것이다.

 "교회의 기도를 거부한다."

바라는 것은 영혼 으로 부터 나오는 단 한 사람의 기도이다.  신을 믿는다.

 

 

작곡가  비제,  리스트  및  바그너 등이 그의 작품에 곡을 붙였는데.....

특히 베르디는 오페라 리골레토를 작곡했으며 “나는 꿈을 꾸었네”

는  2009년 영국의 수전 보일이 불러서 인생역전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가 한 말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어리거나 젊을 때 추억 

좋다고는 하나....  “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아직 우리가 살지 않은 날들이다” 라고 했으니 믿어 볼꺼나? 

 

 

보행자 전용 거리를 걸어 도착한 시청 은 16세기에 지어진 궁전으로 정면 왼쪽

끝에 15세기에 만들어진 81.5cm 의 브장송시의 척도 가 놓여 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걸어서 18세기에 건축되었다는  생 피에르 교회  Eglise

St. Pierre 를 지나 장바구니를 들고가는 주부에게 물어

카지노 Casino 라는 이름의 슈퍼 에서 생닭 등을 사서는 호텔로 돌아옵니다.

 

 

도중에  극장 Theatre  을 보는데.... 1784년에 완성된 극장이나

화재로 불타고 단지 정면에 6개의 원기둥 만 남아 있네요?

 

 

다시 강변으로 걸어 브장송 미술관 Musee des Beaux Arts 과 음악 학교 를 볼까

하고 망설이다가...... 몸도 피곤하고 짐도 있어 꺄노 다리 로  을 건넙니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  아다지오  액세스  브장송  라  시티  게스트하우스

Adagio Access Besanacon La City Residence

11 Avenue Louise Michel 는 "방 안에 주방" 이 있어 요리가 가능합니다.

 

 

방에서 밥을 해서는 닭을 볶아 저녁을 들고는 텔레비전을 보는데 마침 영화

“레 미제라블을” 을 방영하기에 두시간 동안 재미있게 봅니다.

“1861년 6월 30일 아침 8시 30분, 창문 너머로 비쳐 드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나는 "레 미제라블"  을 끝냈다네.  이제는 죽어도 좋아.”

 

 

젊은 시절 부터 사회 고발 소설을 구상했던 위고 는 1845년부터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가 무려 16년 만에 망명지인 건지 섬에서 레 미제라블을 탈고 했습니다.

단테가 시에서 지옥 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을 가지고 지옥 을 만들어내려 했다.”

 

 

제목은“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 불쌍한 사람들”주인공은“장 발장 Jean Valjean”

장 발장의 이야기는 소설에서 3분의 1 가량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19세기 초반의

프랑스 사회와 풍습 그리고 다양한 문제에 관한 저자의 견해 가 서술되니 양이 방대합니다!

 

 

다른 위대한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레 미제라블”은 인간의 갖가지 “전형” 을 그려내니 

한 때의 실수로 전과자 가 되었다가 개과천선 하지만....

영원히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 장 발장, 철저한 원리원칙주의자로

집요하게 장 발장의 뒤를 쫓는 형사 자베르,  장 발장에게 자비를 베푼 밀리에르 주교!

 

 

가난과 학대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소녀 코제트사랑과 우정 온 몸을 바치는 열정적인 

청년  마리우스, 어떤 상황에서든 이득을 추구하기에 혈안이 된 악당 테르디니에 등....

장 발장 의 기구하면서도 놀라운 일생은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감동을 독자들

에게 선사하니.... “서사시와 소설, 그리고 에세이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작품” 입니다.

 

 

랑송은 “온갖 탈선과 삽화와 명상 등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소설,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이

가장 멋쩍은 수다 옆에 자리를 같이 하고 있는 하나의 세계요, 하나의 혼돈 이다.”

 

 

19세기 프랑스 문단에는 스탕달, 발자크, 뒤마, 보들레르, 졸라, 베른 같은 위대한 작가들이

저마다의 각축을 벌였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예와 영향력을 누린 작가는 위고 입니다!

 

 

소설  “레 미제라블”  의  영화화는 무려 30여 차례요.....  “파리의 노트르담”

의 영화화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포함하여 10여차례 에 달한다고 합니다.

 

 

“위고는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디킨스 처럼 보편성 을 추구한 작가들 가운데 마지막에

속하니 20세기에 위고와 견줄 만한 작가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블륨 은 말했습니다.

 

 

레 미제라블의 줄거리는 청년 장 발장  빵을 훔친 죄 로 5년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으나

4번의 탈옥 을 시도해 결국 19년간의 감옥살이 를 마치고 중년이 되어 출옥합니다.

 

 

전과자에게 숙식을 제공해 준 미리엘 주교 의 집에서 은식기를 훔쳐 도망가다가 체포

되어 끌려갈 때 미리엘 주교는 자신이 준 것 이라고 증언하여 그를 구해줍니다.

 

 

주교가 올바르게 살 것을 당부하니 장은 비로소 사랑에 눈을 뜨게되어 마들렌 이라는

새 이름으로 사업을 하여 결국에는 재산을 모으고 시장 으로 까지 출세합니다.

 

 

그러나 경감 자베르만 은 끈질기게 뒤를 쫓아다니는데 때마침 어떤 사나이가 장 발장 으로

오인되어 체포되고 벌을 받게 되었을 때 장은 스스로 나서서 대신 감옥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탈옥하여 예전에 자기가 도와주었던 여공의 딸 코제트 가 불행한 생활에

빠져 있는 것을 다시 구출하여 경감의 눈을 피해서 수도원에 숨겨 줍니다.

 

 

코제트는 공화주의자인 마리우스와 사랑하게 되는데, 장은 1832년 공화주의자들의

폭동 으로 부상을 당한 마리우스를 구출 하여 코제트와 결혼 시킵니다. 

 

 

장 발장의 신분을 알게 된 마리우스는 그를 멀리하지만 결국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그에게로 돌아오니 장 발장 은 코제트 부부가 임종을 지켜 보는 가운데 숨을 거둡니다.

 

 

레 미제라블 은 인도주의적인 세계관으로 일관된 파란만장한 서사시적

작품으로서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니 한국에서는

1918년 민태원이 매일신보에  “애사 哀史”  란 제목으로 연재했습니다.

 

 

마눌이 슈퍼에서 사온 생닭 을 요리한 것을 먹으면서 생각하니 요즘은

"요리하는 남자" 가 인기라는 동아일보 박선희 기자의 글이 떠오릅니다.

 

 

돌이켜 보자니 사회는 변하는 것이라... 여자들이 선망하는 남성상 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예전에는 터프한 육식남 에서 섬세한 초식남 

이어 연속극 탓인지 나쁜남자 가 인기를 끌었는데 요즘은 요리하는 남자 라?

 

 

남자가 요리를? 반전의 묘미에다가 제이미 올리버 처럼 귀여운 남자가 몇십분만에

뚝딱 근사한  지중해식 생선 요리  를 선보인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 이라?

 

 

  남자가 요리를 한다는 것은 경제력에 심미안과 감식안 생활방식 및 가치관 과도

연결되는 것이라 이른바 성공한 잘나가는 남자 들이 요리를

한다고 하니 나와는 별무관계라!!! 끓일줄 아는 것은 라면 뿐이요,

차려준 것만 군말 없이 잘먹는 남자갖고는......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 일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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