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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20 - 센텐드레 마을을 구경하며 걸어서 광장에 가다!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3.10.07|조회수84 목록 댓글 4

 

헝가리 20 - 센텐드레 마을에서 예술가들이 만든 상품을 구경하면서 광장에 가다!

 

 

2022년 5월 8일 헝가리 북쪽 다뉴브강변에 비셰그라드 Visegrád 에서 09시 26분 버스를 타고는 40여분

을 달려서 예술가들의 도시라는 센텐드레 Szentendre 에 도착해 15분을 걸어서 마을에 도착합니다.

 

 

다뉴브(도나우강변에 자리한 센텐드레 는 페슈트 주에 위치한 도시로 박물관과 전시관예술가 로 유명한

이니 골목에서는 터키 안탈랴에서 보았던 것처럼 샛색의 컬러풀한 양산 들이 하늘에 걸린 것을 봅니다.

 

 

벽화 가 그려진 마을에는 옷이며 가방에 그릇이며 모자와 머플러와 악세사리들을 파는데 여기 상품들은

예술가인 아티스트 들이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것을  파는지라 스카프 3개와 지갑 하나를 삽니다.

 

 

이번 4주 유럽 여행에서 영국과 아일랜드에 벨기에 그리고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를 거쳐서 이 나라  헝가리 에 도착해 여행 20일째에 첫 쇼핑 인데.....

우리는 가난한 배낭여행자에다가 쇼핑에 관심이 없으니 마지막 쇼핑 이기도 합니다.

 

 

분수대 옆에 자리한 레스토랑 으로 들어가 세계 각국의 지폐 가 벽에 붙여진 것을 보며 맥주를 마시고는

나와 다시 변두리 골목길을 찾으니..... 여긴 직접 천에 염색 을 해서 옷을 만드는 가게를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마을 중심부로 찾아가니 블라고베스텐슈카 교회 Blagovesztenska Templom

인데..... 중앙 광장의 상징으로 도나우강 서쪽에 서있는 타워 가 높아 보입니다.

 

 

여긴 바로크 양식의 세르비아 정교회 로 프레스코화는 황제 콘스탄틴과 그리스도 십자가를

가진 어머니 헬레나 가 그려져 있고..... 성화는 세르비아 예술가 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언덕에는 가톨릭 교회  R.K. Plebania Templom  가 보이는데 센텐드레에서 가장 오래된 13세기에

세워진 교회는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파괴 되고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 성당에 서 있는 쇠말뚝 은 중세시대에는 해시계의 일부 라 하며 성당 내부 호화로은 제단 은

170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국보급이라는데 교회 마당은 전망대 구실을 한다고 합니다.

 

 

이 거리에 코바치 머르키트 박물관 Kovacs Margit Muzeum 이 있으니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18세기 소금을 만들던 집이었으나..... 현재는 여류 도예가 코바치

머르키트의 박물관인데 전통 요소에 현대적 옷을 입힌 도자기 작품 이 주류라고 합니다.

 

 

 

길거리에서 커피를 파는 카페 를 지나가다가 문득 카페의 유래가 생각나니.... 커피는

알다시피 이디오피아가 원산 으로 오스만 투르크 제국 내에서 마시다가

유럽으로 전해졌으니....... 문득 동아일보에 실린 커피와 카페 관련 기사가 떠오릅니다.

 

 

폐하는 저를 보내 인도와 그곳 군주들을 개종 하기 위한 수단을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1492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가 항해일지에 남긴 기록이다서구사에서 콜럼버스는 미지의

대륙에 대한 유럽인의 지적 호기심과 더불어 막대한 부를 축적 하려는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한 이후 500년 역사를 서양의 부상

이자 근대의 시작 으로 보는 시각에 맞서 파격적인 주장을 하니, 당시 동양의 패권을 손에 쥔 오스만제국

 우회하지 않고서는 항해가 불가능했던 탓에 콜럼버스가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콜럼버스 항해는 팽창하는 이슬람 세력을 꺽고 신대륙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는 십자군 전쟁  일환이라?

 

 

오스만제국의 술탄 셀림 1 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하는 항로인 북아프리카 모로코 점령 계획을 세우던

중 1520년 9월 22일 전염병으로 숨졌다저자는 그가 모로코를 손에 넣었다면 세계사의 향방 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오늘날의 세상을 만든 건 서구 유럽이 아니라 오스만제국 이었다” 고 주장한다.

 

 

오스만 제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9대 술탄 셀림 1세 (14701520) 의 생애를

조명하며 서구 중심의 역사학자들이 말하지 않은 사실을 들춰낸다중세에서 근대로의

대전환기에 걸쳐 있는 셀림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근대를 주도한 이가 누구인지 명확해진다.

 

 

 

선대 술탄보다 제국을 3배로 확장한 그로 인해 유럽은 오스만제국을 우회하는 항로 를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

대서양 항해를 비롯한 서구 근대사는 세계 각지로 뻗어나간 오스만 제국에 대한 반작용 이었다는 것이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오스만제국 은 유럽에 공공의 적 이었다.  비잔틴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무슬림 에게 빼앗겼다는 공포는 서구 기독교 입장에서 세상의 종말 처럼 여겨졌다.

 

(무슬림연대 를 구축해 몰아내야 한다는 신념이 뿌리내린 이유다스페인 이사벨 1세 여왕 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콜럼버스의 항해 를 지원한 데에는 신대륙 군주를 가톨릭으로 개종 시키려는 목적도 있었다.

 

 

유럽 정복자들이 신대륙 원주민을 학살한 건 그들을 무슬림 으로 여겼기 때문이다이들은 처음 도착한

신대륙을 카이로 라고 믿었기에 원주민 역시 무슬림으로 생각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

저자는 유럽 대항해시대 역사는 구세계에서 수백년간 지속돼온 종교전쟁을 답습한 것일뿐이라 지적한다.

 

 

1453년 5월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묘사한 그림....술탄 셀림의 조부인 메흐메트 2 는

비잔친 동로마 제국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 하고 이름을 이스탄불 로 바꿨다.

 

 

유럽인들은 당시 사건으로 가톨릭의 한쪽 눈이 뽑혔다 고 여겼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역시 셀림이 지배한 오스만제국에 대한 유럽 사회의 반작용 이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1520년 셀림은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 을 정복한 데 이어 이스탄불 다음으로 거대한 무슬림 도시

였던 이집트 카이로 를 점령한다유럽 사회는 세계로 퍼져나가는 이슬람 세력을 바라보며

위기감과  함께 무력감 을 느낀다. “교황의 도덕적 타락 이야말로 오스만제국이 이슬람교

를 퍼 뜨릴 수 있게 만든 원흉”  이라는 루터의 주장이 유럽에서 폭넓게 지지를 받은  배경 이다.

 

 

원제  신의 그림자  (God‘s Shadow)’  가 말해주듯...... 오스만제국이 드리운 영향력 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517년 예멘을 오스만제국에 편입한 셀림은 이곳에서 생산한 커피콩 을

세계로 수출한다오스만제국에 뿌리내린 커피하우스 문화는 지금도 카페 문화 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셀림의 유산 은 대항해 시대와 종교 개혁을 추동하며 세계를 바꿨을뿐 아니라.....

커피 처럼 우리 일상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어쩌면 우리도

수백 년 전 유럽인처럼 여전히 술탄 셀림의 그림자 아래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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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3.10.07 잘지내시죠
    반갑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0.07 이제 가울이네요?
    날씨는 늦가을 같다는.....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3.10.07 글게요
    저도 감기에...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0.11 하아..... 환절기에는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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