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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2 - 일강 운하에서 카페를 보고 노트르담성당에!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3.11.27|조회수85 목록 댓글 4

 

스트라스부르 2 - 스트라스부르 일강 운하에서 카페를 구경하고 노트르담성당에 가다!

 

 

6월 4일 프랑스 북동부 독일 국경에 있는 알사스 지방 의 중심 도시이자......

유럽의 수도 로 불리는 운하의 도시 "스트라스부르" 의 호텔에서 잠이 깹니다.

 

 

호텔 방에서 휴대한 전기 남비로 밥을 해서 먹고는 체크아웃 후에

배낭을 리셉션에 맡기고는 스트라스부르 시내 관광을 나섭니다.

 

 

메르퀴스 거리 Rue du Maire Kuss 를 기차역 반대방향으로 걸어서는

 퀴스 다리 Pont Kuss 로 시내를 관통하는 일강 I'lll  을 건넙니다.

 

 

그러면 고풍스러운 바로크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오른쪽으로 일강 운하를 끼고 걸어서

보방둑 위쪽으로 양쪽 운하 안에 또 작은 운하가 두갈래로 갈라진 모습을 구경합니다.

 

 

여기 구시가지의 서쪽 일 강이 네갈래로 갈라지는 주변 지구를 "프티트 프랑스"

 Petite France  라고 부르는데...... 16세기 알자스식 나무 가옥  이 많네요?

 

 

이 부근은 "물" 을 필요로 하는 어부와 피혁공, 제분업자 등이 살았다는데 주변에는

꽃으로 장식된 레스토랑 이 많아  산책코스  로 어울리니 구경할만 합니다.

 

 

이 도시 스트라스부르 하면 생각나는게 있으니 공병 장교 루제 드 릴 이 작사 및

작곡했다는 프랑스의 국가  "라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  입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 일어나 왕정이 무느지자 자국에까지 혁명의 불길이 번질까 염려한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  네델란드 및  러시아 등이 반혁명 동맹 을 결성합니다.

 

 

1792년 4월  독일과 오스트리아등 동맹군의 침공  에 맞서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 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한 루제 드 릴 국경

도시인 스트라스부르의 숙소 에서 하룻밤 사이에 가사와 멜로디 를 썼다고 합니다.

 

 

“일어서라 조국의 젊은이들, 영광의 날은 왔다.......  자아, 진군이다...”

라인강변 으로 출정하는 용사들의 심경을 그린 노래로 선율은 차이코프스키 의 관현악곡

“1812년”  과  슈만 의 가곡 “두 사람의 척탄병”  에서 인용되었습니다.

 

 

밝은 선율 이 평범하고 호전적인 가사 를 완전히 살리고 있어 곧 프랑스 도처에서

불리게 되었다는데..... 정식 국가 로서 채택된 것은 1879년의 일이라고 합니다.

 

 

“라마르세예즈”  라는 노래 제목은 당시 프랑스 전국에서 파리로 모여든

 의용군 중에서 마르세유 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파리까지 진군해..... 튈르리 궁전을 습격 한데서 유래합니다.

 

 

Allons enfants de la Patrie    나아가자 조국의 아들딸들아

Le jour de gloire est arrive!   영광의 날이 도래하였도다!

Contre nous de la tyrannie   우리는 폭정에 대항하니,

L'etendard sanglant est leve    피묻은 깃발이 높이 올랐다.

 

 

Entendez-vous dans les campagnes   너희는 들리는가 저 전장속에서

mugir ces feroces soldats!   저들 흉포한 병사들이 고함치는 소리를!

Ils viennent jusque dans vos bras   그들은 너희들의 품 안에까지 다가와

egorger vos fils et vos compagnes!   안겨있는 너희의 아들과 아내의 목을 따려고 한다!

 

 

Aux armes, citoyens !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

Formez vos bataillons   너희들의 대대를 만들어라.

Marchons, marchons!   전진하자 또 전진하자 !

Qu'un sang impur   적들의 더러운 피가

Abreuve nos sillons!   우리들 밭고랑에 넘치게 하라 !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  이 일어난 후에 2년이 지난   1791년  6월 달에.....

루이 16세 국왕이 해외탈출을 시도하다가 체포되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참전을 시사 하니 프랑스가 먼저 선전포고 를 합니다.

 

 

라 마르세예즈  가 나온지 5개월만인 이해 9월에  스트라스부르 서쪽 마른현 발미  에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군과 프랑스가 전투에 돌입하니 발미 전투 Battle of Valmy 입니다.

 

 

프랑스군 사령관 뒤무리에는 발밎너투에서  동맹군에 패해 뵈르됭을 잃고  후퇴 하는데....

파리가 위험 해지자 켈레르만의 지원 을 받아 8시간의 격전을 벌여 프로이센군을

퇴각시켰는데 농민 출신의 의용군 이 왕성한 사기로 귀족군대를 격파한 최초의 전투입니다.

 

 

이때 프로이센의 브라운 슈바이크 공작 의 막하로 종군한 괴테 는 이 사실에 경탄하여

“이제 여기서 부터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  가 시작될 것이다”  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양쪽으로 운하를 낀 절묘한 위치에 조성된 레스토랑 을 본후 중간에 작은 골목으로 내려서서

걸으니 소운하 저편에 자그만 공원 이 보이는데 거기 조각품 들이 많은게 인상적입니다.

 

 

이 도시에도 자전거가 많지만 특히나 세발로 개조된 자전거 를 타는 아주머니를 스쳐

지나 좀 더 걸어 큰 운하 주변에 들어선 예쁜 레스토랑 이며 카페 를 구경합니다.

 

 

여기 스트라스부르 시가지를 구경하자니 로마 시대 에 라인강 서쪽에 군단기지 는

북쪽에서 부터 크산텐  본 그리고 이 도시 스트라스부르 세곳 입니다.

 

 

그런데 대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죽고 장남인 콘스탄티누스에 이어 차남 콘스탄티우스 

정제(황제) 가 된후 게르만 알레마니족 이  라인강을 넘어와서는 이 도시를 점령 합니다.

 

 

로마 제국의 유서깊은 군단기지  스트라스부르  가 졸지에  야만인들의 기지 가 되자

정제(아우구스투스) 콘스탄티우스 는  355년 11월에

배다른 사촌인 율리아누스 를 부제(황제, 카이사르) 로 임명하고 갈리아 를 맡깁니다.

 

 

이제 부제(황제) 율리아누스 는 몇년전에 일어난 마그넨티우스 장군의 내란으로

인해 로마군 고참병이 대부분 전사했기 때문에 신병 에다가

불과 1만 3천 밖에 안되는 병력으로 357년 이 도시 스트라스부르 로 진군합니다.

 

 

3만 5천의 게르만 알레마니족 은 병력수에서 우세하다고 믿고 350년동안 로마 군단

기지였던 스트라스부르 의 견고한 성벽 을 나와 평원 에서 로마군과 대진합니다.

 

 

사즉생(死卽生) 심정이었던 부제(황제) 율리아우스 는 200여명의 친위 기병대

이끌고 무느지는 로마군을 받친후..... 앞장서 돌격함으로써 

 6천명의  알레마니족  을 죽이고 나머지는  라인강  너머로  몰아냈던 것입니다.

 

 

이후  갈리아 병사  를 머나먼 동쪽  페르시아 전선 에 보내라는 배다른 사촌형인  정제

콘스탄티우스의 무리한 요구 를 부하 병사들의 사보타지 로 들어주지 못하게 됩니다.

 

 

예전에 참수당했던 형 갈루스 처럼  반역  으로 몰리자.....  율리아누스 는 어쩔수 없이

거병하여 361년 불과 1만 3천 병력을 이끌고 급속하게 동진해서는

베오그라드 서쪽 시르미움 에 황제 보다 먼저 도착해 도나우 방면 로마군을 흡수 합니다.

 

 

이제 부제 율리아누스 는 3만으로 늘어난 병력으로 정제 콘스탄티우스의 로마군과

결전을 앞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콘스탄티우스가 병사 하면서 놀랍게도

정제(황제)는 내란을 피하기 위해 "율리아누스를 정제(황제)" 로 임명하고 죽습니다.

 

 

율리아누스 황제 는 콘스탄티노플에 들어가 로마의 유일황제 가 되어 라인강과 도나우강의

게르만 과 소포타미아의 페르시아군 을 방어하다 전선에서 죽는데 밀라노 칙령 

처럼 모든 종교를 용인 함으로써 배타적인 기독교로 부터는 배교자 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그러고는 무슨 설치 미술 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건물을 지나 계단으로 운하 아래로

내려서니...... 일부 신문지를 오려붙인 여자 그림 이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운하 를 따라 한참을 걷는데 벽에 그림인지 낙서 인지 모를 그림들이 많이 보이고

이윽고 주변에 교회며 오래된 집들이 많은  코르보  다리  에 도착합니다.

 

 

다시 강변에서 계단으로 위쪽으로 올라오니 고풍스러운 집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른바  스트라부르스  구시가지  Vieille Ville  라 가히 구경할만 합니다.

 

 

골목으로 들어서니 거리의 기념품 숍 들의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장식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부부의 눈길을 끕니다.

 

 

그러고는 오른쪽으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나무로 지은 전통 독일식

주택 이 볼만한데 스트라스부르 가 예전에 독일령 이라서 그런가요?

 

 

바닥에 돌이 깔린 길 을 걷는데 가운데 부분은 돌들이 낮게 깔려 비가 왔을 때

물이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모여 하수도 로 내려가도록 설계한 모습을 봅니다.

 

 

그러고는  골목을 빠져나오니 드디어  큰 광장  이 나오고 붉은색 사암으로 지은 거대한

건물이 앞을 가로막아서니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 이라! 여기 우람한

노트르담 대성당 Cathedrale Notre Dame 은 1176년에 착공해 1439년에 완공했습니다.

 

 

서남쪽 보주산지에서 나는 장밋빛 사암 을 사용해 지었는데 높이 143m 를 자랑하는 첨탑 은

돌로 짠 레이스 라고 불리고 남쪽 출입구에는 마리아의 수면 이라 불리는 조각이 있습니다.

 

 

내부에는 1,574년에 완성된 천문 시계 가 있는데 15분마다 인형이 하나씩

움직여 12시 30분에  12인형(12 사도)  이 모두 움직인다고 하네요?

 

 

13세기에 만들어진 고딕양식의 조각인 천사의 기둥 과 12~14세기 스테인드 글라스

가 볼만하며 높이 66미터  전망대  에서 도시의 전경 을 구경하는게 보통입니다.

 

 

여긴 일반 노인 관광객 말고도 학생 들이 단체로 온게 눈에 뛰는데 외브르 노트르담

박물관등 주변 건물들을 일별하고는...... 전망대 매표소 에 줄을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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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3.11.27
    목표를 잃는 것보다
    기준을 잃는 것이 더 큰 위기입니다.
    인생의 방황은
    목표를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준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끝없는 성숙입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1.28 이제 가을은 지고 겨울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 작성자배길지기 | 작성시간 23.11.27 베리굿 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1.28 고마운 말씀입니다.
    유럽은 어느 도시를 가도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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