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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베르니 여행4 - 모네의 집에서 아뜰리에를 구경하다!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4.01.14|조회수110 목록 댓글 4

 

지베르니 여행4 - 지베르니 마을에 도착해 모네의집에서 아뜰리에를 구경하다!

 

 

5월 25일 파리 생 라자르 Paris Saint Lazare 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르농 지베르니 Vernon- 

Giverny 역에서 내려 꼬끼리 열차 를 타고 강을 건너 20분만에 지베르나 마을 에 도착해

10여분을 걸어서 모네의 집과 정원 Les Jardin et Maison de Claude Monet 에 들어 갑니다.

 

 

모네의 집과 정원 은 르누아르, 세잔 등과 함께 1800년대 신 예술운동인 인상파 

일으킨 클로드 모네 가 센 강변을 전전하다가 지베르니의 자연과

물가 풍경에 매료되어 43세에 정착해서는 연못에 수련 을 심고는

장미 오솔길, 작은 배 그리고 필생의 연작인  “수련”  시리즈를 그렸다고 합니다.

 

 

미술 역사상 가장 성공한 미술 사조는 아마도 프랑스 인상주의 가 아닐까요?

인상주의 는 19세기 근대 미술에서 20세기 현대 미술로 넘어가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했다는 평인데 그 중에서도 모네는 빛의 화가 로 불립니다.

 

 

인상파(印象派)  는 자연이 화가에게 주는  “순간적인 인상을 작품에 표현”  하려는 미술의

한 사조로 19세기 후반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인상주의 미술을 추진한

유파인데 대표적인 화가로는 마네, 모네, 드가, 르누아르 등이 있으니 19세기

실증주의와 사실주의 영향으로 대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이 과정에서 표현상의 새로운 기법과 주관적 감각의 반영 을 중시하는 이들이 생겼으니

이들은 자연을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빛과 대기의 변화에 따라 색채 가 일으키는

변화에 흥미 를 갖고 사물의 인상을 중시하여 그림을 그렸으니 이러한 기법은

“풀밭위의 점심”, “올랭피아” 의 마네, “인상·일출” 의  모네,  르누아르로 대표 됩니다.

 

 

모네,  드가,  모리조, 기요맹, 고갱, 시슬레, 르누아르, 세잔 이  1874년 나달의 사진관에서

8회의 전시회를 여니 인상파 라는 이름이 일반화되는데 이들의 표현법과 화풍은 통일성

없이 각자 달랐으나 세잔, 고갱, 고흐 와 같은 후기 인상파 화가들에 의해 발전하게 됩니다.

 

 

클로드 모네 는 인상파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인상, 일출” 에서 "인상주의" 라는

말이 생겨났다는데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했으며

연작을 통해 동일한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탐색했으니 말년의

“수련”  연작은 자연에 대한 우주적인 시선을 보여준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클로드 모네 는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나 소년시절을 르 아브르에서 보냈으며 화가 외젠

부댕 (Eugène Boudin) 을 만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며 외광 묘사 에 대한 기초적인

화법을 배웠으며 이 과정에서 네덜란드의 풍경화가 요한 바르톨드 용킨트

를 알게 되었고....  그로 부터 대기 중의  빛을 포착해내는 기법  을 익혔다고 합니다.

 

 

1867년 모델이며 애인이던 카미유 동시외 (Camille)가 그의 첫 아들 장 (Jean)을 낳았는데

 2년 후에는 르누아르와 함께 센 강변의 해수욕장 라 그루니에르에서 함께 작업하던

모네는 1870년  카미유와 결혼  했으며 프랑스 - 프로이센 전쟁으로 런던으로 이주 합니다.

 

 

그는 런던에서 윌리엄 터너, 존 컨스터블 등의 영국 풍경화파의 작품 을 접했는데 이것은

명쾌한 색채 표현 이란 점에서 커다란 기술적 향상을 가져다 주었으며 1871년

프랑스로 돌아와 파리 근교 아르장퇴유에 집을 마련해 1873년 화가, 조각가,

판화가 등으로 이뤄진 무명 예술가협회 를 조직했는데 이것이 인상주의의 모태 가 됩니다.

 

 

모네 는 1876년 미술품 수집가인 에르네스트 오셰데와 아내 알리스를 만나 부부의

집을 장식할 작품 을 의뢰받았는데 2년후 오셰데 가 경기 불황으로

은행파산 선고를 받고 벨기에로 사라져버리자...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알리스는  여섯  자녀를  데리고  모네의 베퇴유 집 에서  함께 생활 하기로 합니다.

 

 

이듬해 모네의 아내가 사망 했고 알리스와 모네는 연인 이 되었으니...

1883년 모네는 여기 노르망디 지방의 지베르니 

이사해 평생을 살았는데 두 사람은 1892년 오셰데가 사망하자 결혼 합니다.

 

 

모네 는 1893년 지베르니에 정원 을 넓힐 수 있는 대지를 더 구매하고, 그곳에

연못을 만들어 수련 을 심고, 연못 위로  "일본풍의 아치형 다리"  를

놓고는.... 자신이 만든 연못과 정원에서 영감을 얻은 벽화 작업 에 착수합니다.

 

 

“수련”  연작은 모네가 제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제작한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자연에 대한 우주적인 시선 을 보여준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데 파리의

튈르리 정원에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 에 있으며 백내장으로 거의 시력을 잃게 되었지만

그림 그리기를 끝까지 멈추지 않다가 1926년 86세를 일기로 지베르니에서 생을 마감 합니다.

 

 

연못 수련 위에 다리 그림은 인상주의의 창시자이자 완성자로 불리는 빛의 화가

클로드 모네가 59세에 그린 것이니 이때 부터 시작해 모네는

죽을 때까지 20년 이상을 연못 그림 에 매달렸다는데 그는 왜 연못 을 그린 걸까요?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는‘빛은 곧 색채다’라는 믿음으로 평생 빛을

연구한 화가 인데 뙤약볕이나 건물 내의 화실에 머문게 아니고 거센

바람 속에서도 야외 작업을 고집할 정도로 철저한  ‘외광파’  였다고 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포착 하기 위해 빠른 붓놀림으로 그리다 보니 모네의

그림은 늘 미완성 으로 보이기 일쑤였다는데.... 가족을 포함한

주변 인물이나 풍경을 주로 그렸지만 그의 주제는 언제나 "빛"  이었다고 합니다.

 

 

물을 유난히 좋아했던 모네는 평생 센강을 따라 이사 를 다녔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은 바로 파리 외곽의 지베르니 였습니다.

 

 

모네는 43세에 이곳에 이사 와서 죽을 때까지 43년간 살았으니 혼자가 아니라 사별한

아내가 남긴 두 아들 과 두번째 부인 알리스의 여섯 자녀 들과 함께 였다는데...

그는 정원사를 두고 “일본식 다리” 가 있는 정원과 연못을 가꾸는 데도 열심이었습니다.

 

 

지베르니에서 모네는 인생 최고의 모델 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수련 연못 이었습니다.

“어느 날,  연못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계시를 받았다.  나는 팔레트를

집어 들었고 이후  다른 주제는 거의 그릴 수가 없었다.”   유명한 모네의 말 입니다.

 

 

이 그림은 그가 처음으로 그린 수련 연작 중 하나로 풍경화치곤 특이하게도 세로 그림인데

이후에 그려진 수련 연작은 색도 더 풍성해지고 가로 길이도 점점 길어지니 평화와

순수, 부활 을 상징하는 수련이 핀 연못은 노년의 모네에게 ‘평화로운 명상’  장소 였습니다.

 

 

물의 표면에 비친 빛을 포착해 그린 연못 그림은 이후 20세기 추상미술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는데..... 수련 연작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대표작은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림들을 구경하다가 문득 동아일보에 ‘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  이라는

칼럼에 실린  “겨울 새벽의 정신으로 살아가기”  란 글이 떠오릅니다.

 

 

"‘예술가는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법을 배운 자들이다.사진예술가인 데이비드

베일스, 테드 올랜드의 말이다. 지속하는 법을 삶에서 실천한

대표적인 예술가를 꼽는다면 인상주의 거장  클로드 모네  를 들 수 있겠다."

 

 

"모네는 눈 내린 맑은 아침, 까치 한마리가 사립문 위에 앉아 있는 겨울 풍경화 

그렸다. 이 그림은 생각한 대로 그리지 않고 야외에서 설경을

관찰하면서 그린 것이다.사물의 색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빛에 따라

변하고  빛이 대상의 색을 결정 짓는다  는 혁명적인 이론을 증명 하기 위한 것." 

 

 

"그러나 이 실험적인 풍경화는 미술가들의 유일한 작품 발표장이었던 1869년

살롱에서 낙선했다. 검정 색조가 아닌 푸른 색조를 사용해

그림자를 표현 하고  스케치풍의 빠른 붓질로 거칠게  그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눈  내린  대지를  실제로  관찰하면  햇빛이  가려져  그림자가 생기는 곳은 하늘빛만

반사하기 때문에 푸르게 보인다는 사실도,  수시로 변하는 빛의 효과를 추적하기

위해 신속하게 붓질하는 기법을 개발 했다는 것도 당시에는 이해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롱에서의 낙선은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극제 

되었고 그 결과 불후의 화가 모네의 신화 가 탄생한 것이다."

 

 

"‘세모의 사색이 대체로 저녁의 안온함과 더불어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는 이른바 유정

(幽精)한 감회를 안겨주는 것임에 비하여 새해의 그것은 정월달 싸늘한 추위인 

날카롭기가 칼끝 같습니다. 이 날 선 겨울 새벽의 정신은 자신과 자신이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을 냉철히 조망케 한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기 모네의 아뜰리에는 서양화도 많지만 나머지 절반에 가까운 그림은 일본화 인데....

17세기에 청나라가 만리장성을 넘어 명나라가 망하는 혼란으로 중국도자기 대신에

일본 도자기가 유럽에 수출 되면서 도자기를 포장한 일본 목판화 그림 우키요에 

프랑스 화가들에 눈에 뛰어 영감을 받아 인상파라는 미술사조가 완성 됐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류가 유럽을 휩쓸듯, 300여년전 유럽은 일본 도자기 와 옷칠 공예품 에 우키요에

그림 이 새로운 것에 목말라 하던 유럽인들에게 센세이셔널한 감동 을 일으켰으니

모네와 마네, 고흐 등은 우키요에 그림에 흠뻑 빠져 이를 흉내내어 그리기도 했습니다.

 

 

마눌은 밖에서 배낭을 지켜야 하니 교대로 아뜰리에 그림 구경을 하다가 옆에 서양인

부부가 무슨 일인지 말다툼을 하는 것 을 보고는... 문득 떠오르는 것은 동아일보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 에 쓴  “사사건건 간섭하는  여성이 바라는 것은?”   이라..."

 

 

"여자 친구 가 남자 선배로 부터 “콘서트에 가자” 는 제안을 받았다면 친구인

남자입장에선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좋을까. “하고 싶은 대로 해” 라며

대범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반응은 여성을 실망시킬 가능성 이 높다.

그녀가 듣고 싶은 말은.....  “적당히 거절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정도이다."

 

 

"여성은 은근한 구속을 원할때 가 있다. 남자의 구속의지에서 관심과 애정을 확인 하고

싶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녀가 이런 척도를 남자에게도 적용하려 할 때 이다.

 그녀는 그가 가급적이면 모든 일을 상의해 오기를 기대 한다. 

상대를  구속하고  또한  기꺼이  구속받는  게......  그녀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리 상의하고  싶지 않다.   그녀의  간섭을  자청  하거나

허락을 구하는 일로 간주해..... 자유에 대한 위협 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툭하면 그녀의 잔소리를 듣게 되니 자존심도 상한다."

 

 

"그녀에게 있어 잔소리 또는 비평 은 더욱 돈독한 사이를 만들기 위한 ‘친밀함의 표현’

이다. 그러나 그에게는‘듣기 싫은 내용’일수 있다. 게다가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그는 더욱 불편해진다.

어쩔 수 없는 것을 그녀가 자꾸 비평함으로써 자신의 무능력을 들춰내려는 것만 같다."

 

 

"사람 사이에서는 시기나 질투 보다 위험한 게 열등감 이라는 감정이다.

시기 혹은 질투는 남에 대한 감정이지만 열등감은

스스로에 대한 느낌 이어서 눈을 뜨고 있는 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열등감을 자극하는 비평 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녀와의 대화를 피하려고 한다.

그녀에게는 자신에 대한 부정 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랑하는 이에게 존재를 부정당한

그녀는 격렬한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남녀간의 큰 싸움은 이런 식으로  불이 붙는다."

 

 

"미국의 언어학자 데버러 태넌은   “남자가  여자의  말을  남자  방식으로  이해하면

그녀가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고 생각해  무시하거나 맞서 싸우려고 하지만,

여자의 입장을 이해할 경우 사실은 돌봐주고 싶은 의도 임을 깨닫게 된다” 고 지적한다"

 

 

"그가 하루 아침에 바뀌기를 기대하며 그녀가  비평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관심과 보살핌에 대한 남자의 긍정적인 피드백과 소통 이다."

 

 

"그러니까 자유를 지키려는 방어 와 돌봐주려는 간섭 또는 비평의 충돌 

인한 관계의 악순환에 빠지는 일을 방지하려면 서로가

상대방의 언어로 상대의 이야기나 태도를 풀이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간섭이 많은  일수록....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원하며, 정작 그들이 바라는 것은 충분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만족감 이다."  나의홈 : cafe.daum.net/baik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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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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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4.01.14 베리굿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1.15 참...... 이름다운 곳인가 합니다.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4.01.14
    꿀이 많을수록 벌도 많이 모이듯
    정(情)이 많을수록 사람도 많이 모인다...!
    음식(飮食)을 버리는 건 적게 버리는 것이요
    돈을 버리는 건 많이 버리는 것이고
    인연(因緣)을 버리는 건 모두 버리는 것이다...!
    건강과행운이 함께하는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1.15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한 추위도 곧 지나갈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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