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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베르니5 - 모네의집에서 일본 민속그림 우키요에를 보다!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4.01.20|조회수162 목록 댓글 4

 

지베르니 여행5 - 모네의집 아뜰리에서 일본 민속 그림 우키요에를 구경하다!

 

 

5월 25일 파리 생 라자르역 에서 르아브르행 기차를 타고 베르농 지베르니 Vernon- Giverny

역에서 내려 꼬끼리 열차 를 타고 지베르나 마을 에 도착해 10여분을 걸어서

모네의 집과 정원 Les Jardin et Maison de Claude Monet 에 들어가서 아뜰리에 를 봅니다.

 

 

모네 는  연못에 수련  을 심고는 장미 오솔길,  작은 배 그리고 필생의

연작인  “수련”  시리즈를 그렸다는데...  오늘 둘러 보니

일본풍 으로 그린 그림들이 많으니 바로 우키요에의 영향 인가 합니다?

 

 

파리 생라자르역 과 베르농 쥐베르니역 에서도 일본 우키요에 그림 을 많이 보았거니와

여기 아뜰리에에서도 숱한 우키요에 그림들을 보는데 압권은 가츠시카 호쿠사이

Katsushita Hokusai 가 1825년 그렸다는 후지산(富嶽) 36경중 가나가와천 神奈川 입니다.

 

 

반 고흐, 모네, 드가, 르누아르, 피사로 및 클림트 등 화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니

가츠시카 호쿠사이 葛飽北齊 의 그림들은 모네의 그림  릴케의 시 산,

드뷔시의 고향시 바다 등에도 영감을 주었의 이 그림은 대영박물관에 걸려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가츠시카 호쿠사이 보다 더 유명한 우키요에 浮世絵(부세회) 화가로는 우타가와

히로시게 歌川広重 가 있으니 그의 그림 중에 "東海道五十三 역참“ 이 유명한데

첫번째 니혼바시 아침풍경이고 두번째 시나가와 일출이며 세번째 가와사키 나룻배,

12번째가 미시마 아침안개 35번째가 도요하시 강변 ”요시다, 토요강 위의 다리” 입니다.

 

 

우키요에 (浮世繪(부세회) 란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 부터 에도시대 말기(14~19세기)

까지 서민생활을 기조로 하여 제작된 회화로 주로 목판화(木版畵) 를 뜻하며

내용은 대부분 풍속화 인데, 고유 명사로 가부키를 선전 하기 위해 그리기도 했습니다.

 

 

전국시대를 지나 평화가 정착되면서 신흥세력인 무사, 벼락부자, 상인, 일반 대중 등을

배경으로 한 왕성한 사회풍속· 인간묘사 등을 주제로 삼았으며, 18세기 중엽

부터 말기에 성행하여 스즈키 하루노부와 우타가와 도요하루등 천재화가를 배출했습니다.

 

 

우키요에의  “우키요”  라는 말은  중세에  서민들이  전란에  휘말려 빈곤이 극에 달하고

생활이 비참했을때 불교의 염세적인 사상 의 영향으로 현세는“우키요(憂き世)”

무상의 세계 라고 생각되니 내세의 극락정토로 가는 것이 사람들의 바람 이었다고 합니다.

 

 

해서 우키요(憂き世)는 덧없는 세상,  속세 를 뜻하는 말로 미인, 기녀, 광대 등 풍속 

중심 제재로 하는데 목판화 를 주된 형식으로 대량 생산하여 서민의 수요를 충당

했으며 17세기 히시카와 모로노부는 소설 삽화에 판화 고유의 아름다움을 표현 합니다.

 

 

우키요에 는 점차 삽화에서 목판화로 독립 하면서 붉은색의 간결한 채색 과 역동적인

탄에(丹繪), 검정색에 광채의 금속분을 첨가한 우루시에 (漆繪), 붉은색과

녹색을 주조색 으로 하는 목판 채색의 베니주리에(紅摺繪) 등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1765년 스즈키 하루노부 가 다색 목판화인 니시키에(錦繪) 기법을 개발한후 우키요에

판화 기법은 정점에 달했으니 목판에 의한 명쾌한 색면 배치 와 조각도의

생생한 각선의 표현 은 일본의 미니어처라 불릴 만한 독특한 미적 형식을 개척합니다.

 

 

일본 우키요에 그림  이  유럽에  알려져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들이

열광하게 된 것은.....  규슈 이마리에서 도자기 를 유럽에

수출하면서 포장지로 목판화인 우키요에 종이 를 사용했기 때문 입니다.

 

 

안휘성 경덕진  에서 생산된 중국 도자기가 유럽에 수출되던중 청나라가 침입하여  중국이

혼란에 빠지자 네델란드 는 규슈 사가현 아리타에서 생산된 도자기 를 택하는데 이는

임진왜란때 끌려온 이삼평등 조선도공이 일본화한 채색도자기 생산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17~18세기에 규슈 아리타 북부 이마리항 에서 무려 1,000만개의 도자기 가 유럽으로

건너가서는.... 당대의 유럽인들을 매료 시켰던 것인데 유럽인들이 모방하여

유럽 도자기 를 생산할 때 까지 유럽에 일본 예술품의 명성 을 드높였던 것이었습니다!

 

 

1865년 프랑스 화가 브라크몽 이 일본에서 보내져온 도자기 포장지로 사용된 호쿠사이

민화 한 조각 을 발견하고는 마네, 드가 등 친구에게 돌린게 유럽 인상파 탄생의

발단 이 되었으니 자포니즘(Japonism: 일본 미술붐) 이 유럽에 빠르게 퍼지기 시작합니다.

 

 

또한 1867년 파리 박람회 에 출품 된 이래 높이 평가 되기도 했지만 우키요에는 정작

일본내에서는 고작 회고 취미의 애완물 에 지나지 않았으니 미술사적

으로도“에도 하층계급의 미술”로 무시되다가 2차 대전후 뒤늦게 빛 을 보게 됩니다!

 

 

우키요에 그림을 본 인상파 화가 들은 신선한 자극 을 받았으니 고흐 가 우키요에

작품을 수집하고 따라 그렸다고 하는데.... 무려 477점 이나 된다고

하니 우키요에의 강한 색감 이 인상파 화가들에게는 색다른 느낌 이었나 봅니다.

 

 

인상파 화가 들이 줄기차게 지향하였던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겠다는 자세나

빛으로 충만한 화면 그리고 순간의 표정을 놓치지 않는

방법 등.....  일본의  '우키요에'  로  부터  배운  부분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키요에' 는 서양의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인간상 

자연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 등의 테마를 제시하여 주었고, 일상생활 중에

 "미" 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니 일본 미술이 유럽에 끼친 영향 을 알만합니다.

 

 

인상파 화가 중에 고흐 는 자기 방을 우키요에 그림으로 장식 했으며 귀를 자른후 그린

“자화상”  에도 배경은 우키요에 그림 이 덮고 있는등 수백편 에 이른다고 하네요?

 

 

모네 는 부인 카미유 를 모델로 “일본 옷을 입은 여인” 을 그렸으며 또 안도 히로시게

(우타가와 히로시게 )가 그린 우키요에 그림 “오하시 아타케의 소나기”

모방해“ Bridge in the Rain"  을 그리는 등 그 수가 무려 수십편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외에도 프랑스에서는  드가,  마네,  고갱  등 수십명의  인상파 화가 들이

우키요에 그림에 열광 했던 것이니 당시 프랑스는 일본 옻칠 공예 

일본 도자기와 우키요에 그림”으로“자포니즘” 광풍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유럽에 수출된 일본 도자기 들은  “古伊万里 고 이만리“  라고 부르는데....

임진왜란때 남원과 김해 등지에서 끌려간 조선 도공 들은 규슈에 정착 합니다.

 

 

사쓰마번 시마즈씨에게 끌려간 이들은 규슈 남부 가고시마에 심수관가 등을 이루었고

히젠번 나베시마씨에게 끌려간 이들은 규슈 북부 아리타(有田) 에

마을을 이루어  도조(陶祖) 이삼평  의 지도 하에서 도예촌 으로 명성을 쌓게 됩니다.

 

 

사가현 아리타(有田) 에 가면 “고이마리”,  “카키에몽”,  “이로나베시마” 등 도자기를

감상할수 있는데 오늘날에도 일본은 도자기 왕국 으로 통하니 “닛코나 노리다케"

상표의 엔티크는 세계 유명 미술품 경매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 으로 거래 됩니다!

 

 

매년 5월이 되면 아리타에는 20여만명의 관광객 이 운집하는 400년 역사의 도자기 축제 

열리는데 한국에서는 고려청자가 맥을 잇지 못하고 완전히 사라져버렸으며 조선시대

어렵게 익힌 이조백자도 대가 끊어져 버리고는 일본에서 양은 냄비를 수입 하기에 이릅니다.

 

 

그러고는 아뜰리에를 나와서는 마눌과 교대해 들어가 구경하라 이르고는 나는 벤치에 앉아

배낭을 지키면서 휴식 을 취하는데.... 정원에 이탈리아인들로 보이는 한 가족을

보면서....  문득  김순덕씨가  쓴  “같이 살고 싶은 남자, 놀고 싶은 여자”  가 떠오릅니다.

 

 

"단순 과격하게 말한다면,  유럽 남자는 마리오  계(系)  와  실비오 계로

나눌수 있다.  이탈리아 정치가 경제를 말아 먹었다는

다큐멘터리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 친구’  유튜브 에서 보며 한 생각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 출신의 이탈리아 전 총리 마리오 몬티(70) 는 유능하고도 근면

성실한 것으로 이름난 남자다. 본인도“경제학자 사이에서 나는 독일인으로 간주돼

왔다. 칭찬은 아니겠지만…” 하고 고백할 만큼, 밝고 화려한 라틴  기질과 거리가 멀다."

 

 

"마리오 몬티 는 2011년 11월 국가채무가 치솟고 신용 등급이 뚝뚝 떨어져 백척

간두에 선 나라를 떠맡아 경제개혁  을 과감히 해낸 ‘슈퍼 마리오’ 였다.

“이탈리아가 좀 지루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는 그는 같이 살고

싶은 남자 다. 지루할 순 있겠지만 또박 또박 통장 불려 가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여자한테 추파 보내는 걸 예의 로 아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76) 는  연애하면 딱 재미있을 전형적 마초  이다."

 

 

"국가채무를 감당 못하게 쌓아 올려 EU 압력에 쫓겨나다시피 했으면서도 그는 남유럽 태양

처럼 언제나 짱짱했다. 2월 총선을 앞두고는 자기가 소유한 TV 의 정치토크쇼에 나와

스물일곱살짜리 새 애인을 어떻게 홀렸는지  떠벌려 남녀 시청자에게 꿈과 낭만을 선사했다"

 

 

"그래도 그렇지,  미성년자와의 스캔 들 에  뇌물 횡령마피아 연루 까지 23가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정치인을 세 번이나 총리로 뽑아 준 이탈리아 에 의문이 생겼다."

 

 

"잠깐 놀기만 해야 할 남자와 살림  차렸다가  자식 세대 까지 실업자  로 만든

형국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나라를 구해 낸 마리오 중도연합은

실비오 의  중도우파연합 (29.18%)  의 절반 (10.56%) 도 표를 얻지 못했다."

 

 

"의문은 벨기에에서 6월 내내 입고 다니던 경량 패딩 점퍼 

 밀라노  공항에서  벗어 드는  순간  풀려  버렸다."

 

 

"괴테는 이탈리아 밤이 독일 낮보다 밝다 했다.  눈부신 햇살, 뜨거운 몸을 식혀 주는 달고

관능적인 아이스크림, “인생 별거 있나” (이탈리아 말로“돌체 비타”) 소리가 절로

나오는 요리를 온몸으로 체험하니 실비오 가 손을 내밀면 팽그르르 탱고라도 출 것 같다."

 

 

"날씨가 너무 좋아 주로 집 밖에 나와 노는 이탈리아 사람 들은 첫 월급

타면 옷과 자동차 부터 장만한다.  시각 문화와 패션 은 그래서

발전했다. 과장과 아부, 사기(詐欺) 또는 연기(演技) 는 예술의 경지 다." 

 

 

"수천년 역사도 국민성에 작용했다.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이민족에게 당한

오랜 침략 때문에 이 나라에서 믿을 건 핏줄 밖에 없다. 정직과 신뢰

같은 공적 미덕은 가족에게만 바칠 뿐이다. 비효율적 관료주의에

복종하는 척하면서 법과 제도를 외면해  ‘통치 불가능’ 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맘마 미아’ 를 쓴 이탈리아 언론인 베페 세베르그니니 는  “실비오는 이런 이탈리아인의

본능과 약점을 파고드는 비범한 능력 을 지녔다” 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 알림장

숙제를 써 주고 간식비를 번 장사꾼 감각 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어서는, 일흔이 넘어

센스 스캔들까지 일으킨 실비오를 이 나라 사람들은 ‘그’ 가 아닌 ‘우리’ 로 본다는 거다"

 

 

"실비오와는  딴판으로 정치적 좌고우면 없이  나라를 구하고도 국민에게 버림받은

마리오 는 그래도 국익을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TV 프랑스24와의 인터뷰에선

“어떻게 지내느냐” 는 질문에 “아주 잘 지낸다” 며  “긴축재정이 인기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꼭 해야 하는 개혁 이었고  쭉 계속돼야 한다” 고 진지하게 말했다."

 

 

"마리오와 실비오 는 이성 대 감정유능한 테크노크라트 대 포퓰리즘 정치인 을 극명하게

대비해 준다. 르네상스 시대처럼 인간의 악한 면까지 인정하고 현세를 즐기는

라틴문화의 상징같은 인물이 실비오 다. 국민 정서와 지도자의 배짱이 딱 맞았던 것이다"

 

 

"마리오 는 실비오와 같은 이탈리아 북부 상업지역 출신이면서도 독일 슈피겔지에서  “직업

윤리를 강조한 막스 베버 같은 인물” 이라고 평했다. 게르만 정신에선 부와 경제성장

을 근면 검소한 도덕적 행동의 보상 이라고 본다. 유로 위기 속에서도 정치와 경제가

안정적인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등은 게르만 기질 이지, 노세노세 라틴 기질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유로 위기의 본질을 게르만 문명과 라틴 문명의 충돌 

분석했다. 잠자는 공주를 깨우려면 공공지출과 정치비용 감축, 노동유연성과

사법 독립, 세제 개혁 등  다섯 개의 대담한 키스 가 필요하다는 연구 보고서도 나왔다."

 

 

"이탈리아 사람에게 “우리나라도요, 열정적이고 식구들 끔찍이 여기고…” 하다가

놀란 적이 있다. 한국이 남유럽 기질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걸 깨달아서다.

늦게나마 이탈리아에선 나라를  혼수상태에 빠뜨렸던  실비오를 단죄할 태세다."

 

 

"우리나라에선 다 지난 정치논쟁을 또 하느라 나라를 혼수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그 소식이 더 짜증스러운 건 이탈리아에서 듣고 있어서인가.

 유럽에서"    그러니까 일본인은 독일인 같고,  한국인은

이탈리아인 같다는데... 프랑스인은 중간?  나의홈 : cafe.daum.net/baik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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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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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내일향기 | 작성시간 24.01.21 즐거운 시간되세요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1.21 고마운 맔므입니다! 건강하세요!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4.01.21
    삶의 속도(速度)를 줄이고 느리게 사는
    여백(餘白)의 멋과 마음의 풍요(豐饒)에 적응(適應)하기,
    소박(素朴)하고 간결(簡潔)한 생활(生活)에
    더 자부심(自負心)을 가지고 당당(堂堂)해지기,
    늙어서도 보람차고 즐겁게 살아야 인생이 행복합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는 의미와 맥(脈)을 같이합니다.
    좋은시간 되세요.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1.21 여백이란게 아름다운 것은 아는데.....
    마음을 비우기가 쉽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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