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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아브르2 - 에트르타로 버스시간이 늦어 시내를 구경하다!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4.03.11|조회수86 목록 댓글 0

르아브르 여행2 - 르아브르에서 에트르타로 가는 버스시간이 늦어 시내를 구경하다!

 

 

5월 25일 파리 생 라자르역 에서 기차를 타고 베르농 지베르니역 에 내려 코끼리 열차

를 타고 지베르니 Giverny 마을에 도착해 모네의 집 아뜰리에 와 정원 

수련이 핀 연못 을 구경하고는... 인상파 미술관을 보고 베르농 지베르니

 구 시가지 까지 구경한후에 기차로 루앙 에 가서 시내를 잠시 보고는 하룻밤을 잤습니다.

 

 

 5월 26일 아침 6시 30분에 호텔을 나와서 루앙 리브드로테역 Rouen-Rive- Droite

에 가서는 07시에 출발하는 르아브르행 기차 를 타고 서쪽으로 가다가

도로에서 사이클링 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투어 드 프랑스”를 생각합니다.

 

 

루앙 을 출발한지 한시간만인 아침 8시 05분에 르아브르 Le Havre 역에 도착해서는

기차역을 나와 바로 붙어있는 시외버스 터미널 Gare Routiere Le Havre

매표소로 가서는 에트르타 Etretat 로 가는 표를 달라고 하니 타임테이블 을 내줍니다.

 

 

타임테이블에 보니 현재 시간이 8시 10분인데 에트르타 Etretat 로 가는 국철 버스 24번

페컹 Pecamp 행은 09시 30분에 출발해 10시 37분에 도착 하며 다음 버스는

 10시 01분에 출발해 11시 20분 도착이고 그 다음은 13시 02분 출발 14시 09분

도착, 13시 30분 출발 14시 19분 도착 그리고 막차는 15시 출발 15시 49분 도착입니다.

 

 

에트르타에서 르아브로로 돌아오는 버스는 12시 56분 출발해 14시 01분 도착 인데 다음은

13시 07분 출발, 14시 22분 도착, 15시 05분 출발 16시 11분 도착, 15시 51분

출발 16시 40분 도착 그리고 막차는 17시 27분 출발해 르아브르에 18시 46분 도착 입니다.

 

 

해서 09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10시 37분에 에트르타 Etretat 도착해 2시간 

구경하고는 12시 56분 버스를 타고 르아브르에 14시 01분에 도착하기로

일정을 정하고는 1시간 남짓 시간이 있으니 그동안 르아브르 시내를 구경 하기로 합니다.

 

 

르아브르 역을 나와 전차가 다니는 스트라스부르 대로 Bd. Stasbourg 큰 길을 따라 걷는

데, 오른쪽에 지은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건물 양식만은 옛날 바로크시대 건축

형식을 따라 지었는가 본데 2차 세게 대전시 르아브르가 완전히 파괴된 때문으로 봅니다?

 

 

그러고는 한 블록을 더 걸으니 웅장하면서도 예쁜 건물이 보이니 시내지도로

보건대 법원이지 싶은데..... 너무 이른 아침이라 행인은

별로 보이지 않ssmep 계속 걸으니 르아브르 시청 Hotel Ville 이 보입니다.

 

 

르아브르 Le Havre 는 세느강 하구 북안에 위치한 항구로 무역액은 마르세유에 이어

프랑스 제2위를 차지하며 정유공장은 파리 까지 공급된다는데 1517년

프랑수아 1세가 어촌에 도시를 건설해 동인도 무역회사의 무역항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르아브르는 신대륙의 발견으로 아메리카와 교류하면서 항구의 중요성이 커졌으며

콜베르 수상은 무기고를 건설하고 군함 조선소를 페리 지역으로 이동하도록 지시

했고 1779년에 라파예트가 미국 독립전쟁을 지원하는 군대를 출발시킨 항구이기도 합니다.

 

 

18세기에 나폴레옹이 해군기지로 만든후 제2차 세계대전시 영국과 미군

공습으로 파괴된걸 오귀스트 페레 에 의해 복구되었으며

그리고 화가 뒤피, 작가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의 출생지 라고 합니다.

 

 

페레의 초기 건축 설계 가운데 파리 프랭클린 거리의 공동주택(1903), 랭시의 노트르담

성당(1923) 같은 건물은 초기 모더니즘의 걸작으로 인정받아 왔다고 합니다.

 

 

포르트 오상(Porte Océane)은 바다에서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역 남쪽 5분 생 니콜라스

거리 Sant. Nicolas 의 옛 창고 독보방 Dock Vauban 은 쇼핑센터로 개조 되었으며

영국해협 도크 Bassin de la Manche 에서는 영국 포츠머스로 가는 배가 출항 한다고 합니다.

 

 

르아브르 시청 Hotel Ville 에서 포슈대로 Avenue Foch 를 따라 15분을 더 가면 오세앙문

Porte Ocean 과 관관안내소 Office de Tourisme 가 있으며 해변이 있다지만 시간이

없으니 그만 시청 앞에서 스트라스부르 대로 Bd. Stasbourg 를 건너 바다 방향으로 갑니다.

 

 

파리 거리 Rue de Paris 를 걸어 큰 건축물이 보이는데 시내 지도를 펴 보니 르 볼킹

Le Volcon 인 모양인데 무슨 전사자 위령비 같은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왼쪽 기차역 방향으로 큰 연못이 2개가 있는데 아마도 옛날에는 상업 도크 Bassin

 du Commerce 였지 싶은데 현재는 보토들이 보이니 그럼 유원지로 활용되는 모양 입니다.

 

 

이 도시 이름을 딴 “영화 르아브르”는 핀란드의 아키 감독이 2,011년 만든 영화로

파리 예술계를 기웃거리던 보헤미안 마르셀 막스는 르아브르에 정착해

구두방을 하는데 아내가 아픕니다.어느날 컨테이너에 숨어 밀입국한

아프리카인 중에 도망친 소년 이드리사를 부두에서 발견 하고 집에 데려와 숨겨줍니다. 

 

 

 경감 모네의 추적이 심해지고 아내는 중병으로 진단을 받게 됩니다만 아내의 중병을

모르는 막스는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돈을 마련해 이드리사 를 엄마가

있는 런던으로 가는 배의 창고에 싣는데.... 급습한 경감은 사정을 깨닫고는 모른체

도와주고 아내의 병도 기적처럼 나으니 체리 나무에 하얀꽃이 핀다는 휴먼 스토리 입니다.

 

 

 르아브르 태생의 작가 생피에르 Saint Pierre 는 젊은 시절 각국을 방랑한 후 “프랑스

섬(島)에의 여행”으로 문단에 데뷔했다는데 그후 루소의 열렬한 제자가 되고,

신(神)의 섭리에 의한 자연의 선의(善意)를 증명하려 1784년“자연 연구” 3권을

저술했으며 소설 “폴과 비르지니”는 엑조티시즘(Exoticism) 문학의 선구라고 합니다.

 

 

르아브르 도시를 걷다보니 D 일보 파리특파원 전승훈 씨가 쓴 “나 홀로 피신한 대통령?”

이라는 신문 기사가 떠오르는데 나라마다 국민들의 생각은 다른게 문화의 차이 탓일까요?

 

 

한 달 전인 지난달 13일 금요일 밤. 나는 파리 인질극 테러가 벌어진 바타클랑

극장에서 4km쯤 떨어진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카페 안에

설치된 TV에서는 독일과 프랑스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창밖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 파리 시내에서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상했던 것은 축구 경기를 생중계하는

프랑스 최대 민영방송 TF1 화면에는 '폭탄테러 발생’이라는 자막 한줄 나오지 않았던 것?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TF1은 ‘뉴스 속보’로 테러 현장을 연결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바타클랑 극장뿐 아니라 축구장 인근에서도 자폭테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뒤 나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한국 같았으면 속보 자막이 신속하게 나왔을 텐데…

 

 

그날부터 몇주간 파리에서‘종군기자’역할을 했다. 테러범 검거 작전이 펼쳐지는 생드니

현장에서 총소리를 듣고, 총탄 자국과 혈흔이 선연한 거리를 돌아다녔다. 파리 특파원

부임후 이집트 한국인 관광객 폭탄테러, 시리아 내전, 우크라이나 분쟁 같은 분쟁지역

취재를 많이 다녔지만... 올해 테러의 표적이 된 파리의 상황은 여느 중동국가 못지않았다.

 

 

1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과 ‘11·13 파리 연쇄테러’ 사건을 취재

하면서 프랑스 언론과 시민들의 위기대응 방식에 새삼 놀라곤 했다.

수많은 혁명을 겪은 나라여서 그런지 시민들은 비극적 사건에도 침착하고 차분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점은 ‘희생양 찾기’나 ‘마녀사냥’이 없다는 점이다. 경찰이 테러범

을 번번이 놓치고, 요주의 인물 감시망에 구멍이 뚫린 터라 우리 같았으면

벌써 장관이나 경찰청장이 몇 명쯤 옷을 벗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언론은 테러를 저지른‘이슬람국가(IS)’에 대한 비판과 대응에 초점을 맞출 뿐이었다.

 

 

오히려 ‘군기 빠진 프랑스 경찰’ , ‘무능한 프랑스 정보기관’  같은

비난은 한국의 일부 언론이나 누리꾼들 사이에서 제기됐다.

 

 

 대표적인 것이  ‘축구장 8만 관중 놔두고  나 홀로  피신한  프랑스  대통령’  을 비판한

기사이다.  프랑스 언론에서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침착한 대처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었는데 관련도 없는 한국에선 논란이 되는 것을 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사실 IS가 이날 밤 가장 원했던 것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축구 경기 도중에 자폭

테러로 관중이 패닉에 빠져 수백명이 압사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만일 첫 번째

폭발음이 들렸을 때 경기를 중단하고 대피 소동을 벌였다면 밖에서 기다리던

제2, 제3의 테러리스트가 수만명의 군중 틈에서 손쉽게 자폭 테러를 벌였을 것이다.

 

 

이날 프랑스 경찰은 대통령 참석 행사라 철저한 검문검색이 이뤄진 경기장 내부가

경기장 밖보다 더 안전이 확보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경기를 진행했다고 한다.

 

 

올랑드 대통령은 경기장을 떠나기 직전 VIP 관람석에 있던 정부 관료와 축구

협회 관계자들에게  “모두들 제자리를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한꺼번에  귀빈들이  자리를 뜰 경우 관중이  불안해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때에도 프랑스 국민들은 차분하게 일상으로 돌아가 지구촌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테러에 대한 충격은 그보다 더 크지만 바타클랑 극장은

 다시 문을 열었고 테러가 일어났던 카페에도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IS에

대한 가장 큰 복수는 ‘일상으로의 복귀’라고 말하는 파리 시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여기서 조금 걸으면 구시가지 생 프랑수아 지구  Quartie r St.  Francois  이고  버스

3번을 타고 Perry 에 내리면 앙드레 말로 미술관 Musee Andre Marlaux 이니

쿠르베와 들라크루아 등 17~ 20세기 회화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으며 그

유명한 인상파를 태동시킨 모네의 그림 “인상, 해돋이”는 이곳에서 그려졌다고 합니다.

 

 

 미술관 2층 벽에는 옹플뢰흐 출신 인상파 화가인 부댕의 그림 120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올리비에 메리엘이 2,009년 촬영한 르아브르의 유령선에 이 도시 출신 라울 뒤피와

브라크등 르아브르 미술학교 출신 화가들의 작품도 있으며 모네는 이 미술관에서

보낸 편지 를 읽고 불과 3천 프랑에 그림 3점을 보냈다지만 시간이 없으니 단념합니다.

 

 

그 외에도 르아브르는 해변이 아름답다고 하며 Frederick Lemaitre St. 3블럭

Bd. Francois 대로 건너 12,800개 유리의 110 미터 교회로 2,005년

유네스코 유산에 선정되었다는 생 호세 교회 Eglise St. Josphe 가 있습니다.

 

 

 13세기에 야트막한 언덕위에 지어졌으니 도시의 파노라마를 즐길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그라빌 수도원 Prieure Craville 도 그림의 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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