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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2.06.29|조회수13 목록 댓글 1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복사본, 1863-1868, 캔버스에 유채, 89.5×116.5cm

코톨드 갤러리의 전시실에 들어선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의아하게 바라보는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풀밭 위의 점심〉이 이 갤러리의 전시실 중 하나에 높다랗게 걸려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그림을 보는 관람객들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엇, 뭔가 이상한데? 저 그림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지 않나?’ 그리고 좀 더 눈썰미 있는 관람객이라면 이런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저렇게나 작았나?’

이 의문은 지극히 합당한 것이다. 실제로 인상파 시대를 연 마네의 역작 〈풀밭 위의 점심〉은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림의 크기 역시 208×265.5cm의 대작이다. 그에 비해 코톨드 갤러리에 소장된 〈풀밭 위의 점심〉은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뜯어봐도 이 그림은 분명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 맞다. 그렇다면 코톨드 갤러리는 ‘감히’ 명작의 복사본을 전시실에 보란 듯이 걸어 놓은 것일까?

코톨드 갤러리에 소장된 〈풀밭 위의 점심〉은 마네가 직접 그린 복사본이다. 1863년 마네가 이 그림을 파리 《살롱전》에 출품했다 낙선하고, 그 후 《낙선전》에 이 그림을 전시해서 프랑스 화단 전체에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는 유명한 사건이다. 비록 마네는 티치아노, 조르조네, 라파엘로 등 고전의 걸작들을 참조해서 〈풀밭 위의 점심〉을 그렸다지만, 19세기의 평론가들과 대중은 배가 처지고 허벅지도 굵은, 예쁘지도 이상적이지도 않은 나체의 여인이 멀쩡히 옷을 차려입은 신사들과 나란히 풀밭에 앉아 있는 이 ‘망측한’ 장면을 보아 넘길 수 없었다. 어디로 보나 이 그림 속에 그려진 여성 누드는 신화 속 여신의 우아하고 완벽한 몸매가 아니었고 루벤스나 앵그르의 풍만하며 매끈한 스타일도 아니었다. 마네가 그린 누드는 진짜로 ‘벗은 여자’, 즉 신화나 여신이 아닌 현실의 여자 자체였고, ‘벗은 여자와 신사들’이 한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몹시도 음란하게 보였던 것이다. 더구나 이야기를 나누는 데 열중하고 있는 두 남자와는 달리 나체의 여자는 관객을 향해 ‘뭘 보는 거야?’라는 식으로 도전적인 눈빛을 내쏘고 있는데 이 역시 관객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마네는 ‘음란 화가’라는 거센 비난을 받음과 동시에 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젊은 화가들, 소위 ‘인상파’ 화가들의 선두 주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마네는 ‘인상파’라는 호칭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며, 실제로 마네를 인상파 화가로 규정짓는 데에도 조금 문제가 있다. 모네와 르누아르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이 야외의 빛, 즉 쏟아지는 자연 일광이 대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무척 중시했던 반면, 마네는 바깥에서 스케치를 하는 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이 〈풀밭 위의 점심〉 역시 야외가 아니라 작업실 안에서 그려진 작품이었다.

그러면 이야기를 되돌려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어째서 평단의 거센 비난을 받았던 〈풀밭 위의 점심〉의 복사본이 코톨드 갤러리의 벽에 걸려 있게 된 것일까? 화가들은 대작을 그리기 전, 연습 삼아 스케치나 습작을 먼저 그려 보는 경우가 많다(코톨드 갤러리에는 쇠라가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그리기 전에 습작으로 그린 작은 그림 20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그러니 혹시 마네가 이 그림을 시험 삼아 먼저 그린 후, 본격적으로 《살롱전》에 출품할 대작을 그렸던 게 아닐까?

그러나 마네는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된 〈풀밭 위의 점심〉을 먼저 그리고 코톨드 소장작을 나중에 그렸다. 두 작품을 엑스레이로 투시해 본 결과, 오르세 미술관의 〈풀밭 위의 점심〉에는 무수히 고치고 붓질을 다시 한 흔적이 보인 반면, 코톨드 갤러리의 〈풀밭 위의 점심〉에는 고친 흔적이 거의 없었다. 즉, 마네는 큰 캔버스에 그렸던 그림을 작은 캔버스에 다시 한 번 옮겨 그린 것이다. 그러나 두 그림에서 다른 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마네가 큰 캔버스에 그린 〈풀밭 위의 점심〉을 앞에 두고 작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대로 옮겨 그렸음을 의미한다.

마네가 굳이 자신의 손으로 〈풀밭 위의 점심〉을 복사한 것은 친구의 부탁 때문이었다. 마네의 친구인 리조네 장군이 그에게 이 그림을 좀 더 작게 그려 달라고 부탁했고, 마네는 그 청을 거절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튼, 인상파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이 작품을 코톨드 갤러리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나저나 코톨드판 〈풀밭 위의 점심〉을 보고 ‘대체 무슨 배짱으로 복사본을 떡하니 걸어 놓은 거야?’ 하고 생각했던 관람객이 계시다면, 이 글을 보고 그 오해를 푸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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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비공개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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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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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6.29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작품과 같은데
    복사본이라니 놀랍네요 ~

    원래 작가의 의도는 위선적인 부르조아를 꼬집는 그림이라고 하지요 ~

    그런 behind 스토리가 있었네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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