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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과 페로

작성자카페여행|작성시간23.11.12|조회수191 목록 댓글 1

시몬과 페로 Cimon & Pero

'옛날 로마에 Cimon이라는 한 홀아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Pero라는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예쁘게 키운 이 딸은 시집 가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역모죄에 연루된 Cimon은 아사형(굶겨 죽이는 사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면회는 허용되지만 음식물 반입은 당연히 금지되었죠.
Cimon은 탈수와 영양실조로 서서히 죽어갑니다. 딸이 면회를 왔습니다. 빈손으로 들어온 딸은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가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까웠습니다. 마침 딸은 아기를 출산해 젖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딸은 자기의 가슴을 열어 아버지에게 간수 몰래 젖을 물렸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은 로마 황제는 딸의 효심에 감동해서 노인을 석방해 주었습니다.'

부녀지간의 지극한 사랑을 볼수 있는 사연입니다. 이 이야기는 화가들의 좋은 소재가 되었고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유럽에 크게 유행합니다.

대부분의 제목은 “Roman Charity”이고 부제는 "Cimon(Simon) & Pero"입니다.

Caravaggio (1571-1610)

Jean-Jacques Lagrenée (1739-1821)

Louis-Jean-François Lagrenée (1725-1805)
장 자크 라그레네와 루이 장 프랑소와 라그레네는 형제 화가 ^^

Jan Janssens (1590-1650)

Bernardino Mei (1612-1676)

Adriaen van der Werff, 1708

Dirk van Baburen (1595-1624)

Gaspar de Crayer, 1625

Charles Mellin (1597-1649)

Pieter van Mol (1599-1650)

Jean-Baptiste Greuze, 1767

Johan Zoffany, 1769

Rembrandt Peale, 1811

Barbara Krafft, 1797

Peter Paul Rubens, 1612

많은 화가들이 시몬과 페로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루벤스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시몬과 페로'

1630년 루벤스의 그림입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종교화 분야의 권위자이자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죠. 그는 오스트리아 왕실 전속 화가로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런데 신성하고 거룩한 그림을 그리던 루벤스가 이 '시몬과 페로'라는 작품으로 외설 논란에 휩싸입니다. 당대 사람들이 '시몬과 페로'의 노인과 여인의 행각을 퇴폐적인 성행위라고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시몬과 페로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화가는 루벤스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 그림을 외설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림 속 노인과 여인의 모습은 바로 루벤스와 루벤스의 아내의 모습이었죠. 당시 루벤스는 37살이나 어린 아내와 재혼한지 얼마 안됐기에 사람들의 의심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루벤스의 성적 욕망을 작품에 투영했다는 것이죠.

루벤스의 두 번째 부인 엘렌 푸르망의 초상화

루벤스의 자화상

요즘으로 치면 자신의 그러그러한 셀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것과 비슷할까요?

루벤스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지방으로 낙향했습니다.
결국 1640년 루벤스는 아무도 찾지 않는 집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루벤스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시몬과 페로'는 그의 사후에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전까지의 '시몬과 페로'와 달리 강렬한 생채 대립을 통해 이미지를 형상화 했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죠. '시몬과 페로'는 루벤스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인정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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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3.11.1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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