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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자기희생

작성자배길지기|작성시간24.01.02|조회수32 목록 댓글 1

알겠니?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이 자살로 이어진다면,

그건 오판이란다.

사실상 친구들을 살인자로 만드는 거니까.



테오가 받은 이 편지글 주인은 그의 형 고흐입니다.

1888년 5월 28일 아를에서 보낸 편지입니다.




이런 고흐가 자신의 가슴에 리볼버 방아쇠를 당깁니다.

1890년 7월 25일 해질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2개월 전부터 묵고 있던 오베르의 라부 여인숙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진 밀밭에서였습니다.



유일한 목격자는 밀밭 위 까마귀들뿐입니다.

그날의 일을 정확히 알기 힘든 이유입니다.




그의 그림 "까마귀 나는 밀밭"으로 당시를 짐작해 볼 뿐입니다.


검푸른 하늘 아래 흔들리는 밀밭 사잇길 위에서

방향 잃은 까마귀들이 헤메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는 테오에게 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다시 일을 시작하는데,

손가락에서 붓이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어.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걸 정확히 알기에,

세점의 큰 그림을 그렸어.


그 중 하나는

혼란스러운 하늘 아래 펼쳐진 넓은 밀밭 그림이야.

극한의 외로움과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내 길에서 벗어날 필요는 없겠지.


나는 너무 늙어서

발길을 새로 돌려 출발한다거나 다른 것을 바랄 수가 없다.

그런 희망들은 떠난 지 오래다.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남겨졌지만...





그러나, 그는 결국 그의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극한의 외로움과 슬픔"이 더 아리게 다가옵니다.









세부화를 봅니다.



가려고 했던, 가운데 길은 끝이 막혀버렸습니다.





다른 두 길은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 몰라합니다.

길을 잃어 버린 길들 같습니다.

지친 고흐를 이끌어 주기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늘은 고흐의 마음처럼, 그의 다가올 운명처럼,

검푸르게 멍들어 있습니다.

그의 표현처럼 "혼란스러운 하늘"입니다.







까마귀들 역시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습니다.

아폴론에게서 벌 받아 검게 변해버린 그 때의 까마귀 같이

당황스러워 보이는 모습입니다.






단단한 땅 위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수확을 며칠 앞둔 밀밭이 정처없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에게 노동과 안식의 소재가 되어주었던

이전의 밀밭과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 그림은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불립니다.

실제 마지막 작품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좋아했던 화가 도비니의 오베르 집을 그린

"도비니의 정원"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삶에 대한 그의 애정이 느껴지는 "나무뿌리"가

그의 마지막 그림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 주장들의 이유를 보면 꽤 그럴 듯도 합니다.


그래도

고흐가 방아쇠를 담긴 곳이 그려진 쓸쓸한 이 그림을

마지막 작품이라고 불러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자살이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버드 법대 법의학 교수의 의견입니다.



총상 각도가 비스듬했고,

총알이 관통하지 못 하고 갈비뼈에 걸려 있었으며,

몸에 대고 쐈다면 있어야 할 잔류 화약이 없었다면서,

자살일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대신,

르네 세그레탕이란 소년의 실수로 총상 입은 거라 주장합니다.


파리의 부잣집 소년은 여름철이면

아버지 별장이 있는 오베르에 머물렀습니다.

심심했던 이 소년은 고흐를 꽤 괴롭혔습니다.



이 자식은 훗날 인터뷰에서,

고흐의 커피에 소금을, 물감상자에 물뱀을 넣었고,

마른 붓을 빠는 버릇이 있던 고흐의 붓에 고춧가루를 넣었다고

고백한 적도 있습니다.



비사교적인 고흐가 작은 시골에서

남몰래 어떻게 총을 구했을지 의아했던 제겐 솔깃한 얘깁니다.


총 맞고 기절 후 깨어나니 어두워져 권총을 못 찾았다는

고흐의 조금은 어설픈 얘기나,

경찰조차 그 총을 결국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귀가 쫑긋해집니다.


"자살은 친구들을 살인자로 만드는 것"이라는

그의 편지 내용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미 벌어진 소년의 큰 실수를 덮어주기 위해,

순교자적인 마음에서 거짓말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고흐라면 왠지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빈센트.

사실 태어나자마자 죽은 형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엄마 손에 이끌려 매주 형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자기 이름이 적힌 묘비를 매주 보면서 자랐습니다.

죽음의 순간을 누구보다 많이 떠올렸을 듯합니다.






그를 평생 짓눌렀을 그 삶의 무게와 쓸쓸함에 아립니다.







글을 쓰는 동안 자꾸 생각이 났던 노래 함께 올립니다.

후반 부분 터억 다 내려 놓는 듯한 부분이 다가옵니다.

https://youtu.be/XeeojS_ku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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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시야가 | 작성시간 24.01.0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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