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바로코 예술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4.03.08|조회수14 목록 댓글 1

바로코예술--여백의 美와 고독한 내면..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유럽 사회는 뒤부아의 표현에 따르면 '불의 세기'였다.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거부하며 기존의 모든 것을 태우고 파괴하고 빛나게 만들었다. 이를 '바로크'라고 부른다.
대구한의대 건축디자인학부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바로크 시대 예술과 과학, 사상까지 모든 것을 분석한다. 그는 "언제 어디와도 비교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싹튼 다양한 감각과 관능이 예술 속에서 발현됐다"고 이 시대를 규정한다.

비너스와 큐피드와 바커스/루벤스

찰스1세의 아이들 / 반다이크

바로크, 바로크적인 / 한명식 지음 / 연암서가 펴냄 / 1만8000원


겨울풍경(렘브란트)

바로코(Barroco)라는 포르투갈어로 '비뚤어진 모양을 한 기묘한 진주'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 바로크다. 처음에는 유럽을 지배한 고전주의 르네상스의 뒤를 이은 양식에 대한 모멸적인 뜻으로 쓰였다. 바로크의 '명예회복'은 19세기 독일 미술학자들이 부정적 평가로 일관된 바로크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일어났다. 예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은 바로크를 르네상스의 타락도 진보도 아닌 독자적 예술성으로 평가했다.

가죽을 벗긴 소 / 렘브란트

바로크 양식의 외양은 찬란한 황금빛의 화려함과 우아함으로 빛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중세를 막 벗어난 근대인들의 극심한 혼란과 시대의 우울 또한 담겨 있다. 르네상스라는 극단적인 세계관의 변화는 우주 중심에서 밀려난 짙은 고독을 불러왔다. 바로크의 역동성, 오묘함, 장대함, 혼란함, 모호함의 형질은 그런 고뇌와 모순에서 싹튼 문화적 현상이다. 바로크의 뒤틀리고 이질적인 특성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문화적 다양성의 토대가 됐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한복 입은 남자 / 루벤스

르네상스 시기에는 지구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우주의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지적인 패러다임 변화도 일어났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뉴턴의 만유인력 등은 우주와 현실에 대한 기존 인식을 붕괴시켰다. 바로크는 혁명적인 변화를 거친 이후 나타난 모든 것의 시각적 발현이기도 했다.

성베드로대성당 / 베르니니

아폴로와 다프네 / 베르니니

저자가 바로크 미술에서 발견한 두드러진 특징은 확연하게 어두운 배경, 즉 진하디 진한 어둠이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네모난 '먹물 욕조'를 연상시킨다. 테네브리즘이란 기법이다.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극적 효과를 이끌어낸 바로크의 대표 화법. 2차원적 캔버스지만 어두운 배경은 무한한 공간이 된다. 관람객은 3차원적 공간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에드워드와 아들 죤 /레이놀즈

바로크 시대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1656). 마르가리타 공주에 대한 시녀들의 존경 어린 태도와 친밀감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거울 속 국왕 부부가 실제로 어디에 위치했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계란을 부치는 노파 / 벨라스케스

바로크 시대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1656). 마르가리타 공주에 대한 시녀들의 존경 어린 태도와 친밀감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거울 속 국왕 부부가 실제로 어디에 위치했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 거리감이 극대화된 바로크 최고의 걸작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다. 바로크 구조의 4차원적인 공간성을 연극의 '극중극'처럼 실현해냈다. 이 걸작에는 3개의 각각 다른 시선이 존재할 수 있다.

사기꾼들 / 카라밧지오

그림 속 인물들이 내다보는 관람자의 공간, 관람자가 바라보는 그림 속 공간, 그리고 그림의 구성 자체를 반영하는 제3의 공간이다. 이른바 그림 모델인 펠리페 4세 국왕 부부가 존재하는 거울 속 공간은 전형적인 시공간의 경계를 개념적으로 지워버린다. 그리하여 그림 속에서 공간들은 모호한 연속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돈키호테가 돈키호테의 관객이 되고, 햄릿이 햄릿의 관객이 되는 셈이다.
바로크 예술가들은 작품 모델이 지닌 본성을 온전히 유지시키고자 고심했다. 역설적 해결책으로 그들은 존재를 지우거나 흐리게 해 현실과의 거리를 만들어냈다. 바로크는 시선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동시에 표현의 변수를 관찰자의 몫으로 전가시켰다. 예를 들어 초점이 흐려진 사진은 보는 이가 상상을 동원해 스스로 사진을 복원해야 한다. 이른바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기법이다.

레베카(푸생)

미켈란젤로의 걸작 '아담의 창조'와 '최후의 심판' 사이에는 변화가 있다. 전자는 전형적 르네상스 화풍을 띠지만, 후자는 생동감 넘치는 인물과 강렬한 색까지 바로크 회화로 변화한 모습을 보인다. 선명한 윤곽선을 버리고 어두침침한 바로크를 택한 건 예술 의지를 뛰어넘는 어떤 근원에 바로크 화풍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의심하는 토마스 / 카라바조

가톨릭의 마케팅도 바로크가 전성기를 맞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종교개혁은 순진한 중세인에게 이성과 과학의 빛이 스며든 세기의 사건이었다. 다만 가톨릭은 철옹성 같은 권위를 위협받은 상황에 놓였다. 화려한 금빛의 바로크 교회 건축, 살아 있는 듯 옷깃을 휘날리는 인물과 조각…. 이러한 바로크 미술은 잠들어 있던 신앙심을 흔들어 깨우는 종교적 위엄을 부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종교개혁의 저류를 방어하기에 바로크만큼 적절한 대안은 없었다. 시대적 과업을 달성하려 교회는 막대한 물량의 바로크 미술을 쏟아냈고, 이것이 시대의 흐름을 바꿨다.

바로치 / 민중의 성모/ 우피치미술관

이 책은 하나의 흥미로운 가설도 소개한다. 항해술의 발전으로 당대 유럽은 중국 철학을 흡수했으며, 이 또한 우울과 고독과 불안이라는 바로크적 증상의 원인이 됐다는 얘기다. 테네브리즘 기법의 검은 배경도 동양 산수화가 여백을 통해 작가의 주관적 감정을 표현했던 것과 같은 기능을 한다는 설명이다. 바로크 시기 무대에서는 가면무도회나 극중극이 많이 열렸다. 극중극은 스스로의 인생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이중적 삶과 영혼의 불일치로 인한 불안과 우울이 표현됐다. 미술이나 건축에서도 '변신'과 오만한 '과시'가 넘쳐흘렀다. 저자는 이러한 바로크의 다중적 시선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성찰의 구조에 기반한다"고 설명한다.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 / 유디트

숱하게 등장하는 사상과 예술 이야기로 인해 난해하긴 하지만, 오랜 시간 천착한 주제를 가지고 설득력 있게 '역사적 가설'을 만들어내는 보기 드문 미덕이 있는 책이다. 책에 따르면 바로크 예술은 북적대는 군중의 소음 속에서 벗어나 사색과 고독의 공간으로 들어갈 것을 보는 이에 권유하는 역할을 했다.

저자는 과잉과 성과주의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도 존재의 결핍, 무기력하고 고독한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바로크적 정신이 필요하다고 단언한다. 그는 말한다. "바로크는 오히려 시끄러운 어둠 속에서 진저리 치는 우울한 내면을 밝히는 진정한 자아의 빛일 수 있다."

매일경제
[김슬기 기자]


https://m.youtube.com/watch?v=UaBIUZUBeB0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카페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3.08 건강(建康)은
    몸을 단련(鍛鍊)해야 얻을 수 있고
    행복(幸福)은 마음을 단련해야 얻을 수 있다...!
    삶은 웃음과 눈물의 코바늘로
    행복(幸福)의 씨실과 불행(不幸)의
    날실을 꿰는 것과 같다~!
    건강(建康) 가득한
    멋진 시간(時間) 되시기를 기원 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