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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소스의 이야기 속...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4.04.21|조회수19 목록 댓글 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4월 21일)

어제 했던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나르키소스 이야기 속에는 우리들의 삶의 진실이 들어 있다. 빤히 보이지만 잡으려고 애를 써도 언제나 원점에 서 있는 우리들의 삶, 권력도 돈도 사랑도 삶의 목표도 닿는 순간 저만큼 물러난다. 죽는 순간까지 목표를 세우고 사랑을 얻으려하지만, 마침내 죽음이 찾아오면 허무 속에서 우리는 말한다. “이것이 그 많은 유혹들의 끝인가?” 나르키소스의 비극은 물위에 비친 제 모습을 타인인줄 알고 사랑한 것이다.

자신에게 지독한 사랑에 빠져 죽음에 이르는 나르키소스의 운명에서 ‘자기도취증’을 뜻하는 심리학 개념인 나르시시즘이 비롯된다. 나르시시즘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독일 정신과 의사인 내케(W. Näcke) 이다. 그는 이것으로 일종의 성적 도착증, 즉 스스로의 육체에 대해 성적인 충동을 느끼는 이상 심리를 설명하려 했다. 자기의 육체를 이성의 육체로 보듯 하고, 또는 스스로를 애무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트는 이 말을 정신분석학 개념으로 확장시킨다. 그는 성적 충동 에너지인 리비도(libido)로서 이 개념을 설명하려 했다. 그에 따르면 나르시시즘은 리비도가 대상을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로 집중된 상태를 가리킨다.

<<정신분석학 입문>>에서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을 ‘일차적 나르시시즘’과 ‘이차적 나르시시즘’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나르시시즘을 이해하려면, 리비도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자아, 에고(ego)는 수퍼에고(super ego)와 리비도(libido) 혹은 이드(Id) 사이에 있는 존재이다.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을 의미하는 슈퍼 에고와 본능과 충동의 세계인 리비도 혹은 이드 사이에서 흔들리고 동요하는 불안한 존재가 바로 에고, 자아이다.

나와 남을 구별 못하는 유아기의 어린 아이는 자기와 세상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 시기에 아이는 자아를 향한 ‘자아 리비도’를 대상을 향한 ‘대상 리비도’로 전환하는 활동 능력 이전에 머물러 있어서 자신이 세상과 ‘하나’임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아이는 성장하면서 점차 자아 리비도를 대상 리비도로 전환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고, 더불어 세상과 적절한 교감을 이루며 자기와 세상 간의 긴장 관계를 형성해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어떤 심리적 요인이나 환경에 의해 리비도가 대상에서 자아로 전면 철수하면서 나타나는 퇴행 현상이 이차적 나르시시즘이다. 어떤 문제에 부딪혀 남을 사랑할 수 없게 됨으로써 다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프로이트는 편집증이나 정신 분열증 혹은 자신의 건강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심기증(心氣症, 건강 염려증) 등의 환자들이 상실감에 젖게 되면 이차적 나르시시즘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다시 ‘건강한 나르시시즘’과 ‘병적 나르시시즘’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건강한 나르시시즘은 과도하지 않은, 절제된 자기 사랑이다. 이것은 자신감, 자존심, 명예 의식, 희망, 이상을 낳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한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지나치면 병적인 나르시시즘으로 발전한다. 이것은 대상 앞에서 자기를 지나치게 들어내는 ‘파괴형 나르시시즘’과 대상 앞에서 지나치게 움츠려 드는 ‘리비도 나르시시즘’으로 각각 분류된다.
(1) '파괴형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능력과 특수성을 과대평가하는 한편 타인의 입장과 감정을 헤아리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성향으로 나타난다. 또한 자신의 장점에는 거만함을, 타인의 장점에는 강한 질투심을 드러내며 항상 과장되고 과시적인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2) '리비도 나르시시즘'은 타인의 거절이나 비판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또한 감정이 지나치게 연약하여 쉽게 상처받기 때문에 세상과 가까이 하지 못하고 자아 속으로 점점 더 깊이 후퇴하는 성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병적인 나르시시즘의 밑바닥에는 심리적 공허와 절망이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아 리비도와 대상 리비도 간의 공존이 선사하는 참된 자기 사랑과 자기 확신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병적인 나르시시즘은 닫힌 마음에서 온다. 세상과 타인으로 향하는 마음의 문을 굳게 잠그는 사람은 병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된다.

나르시시즘적인 사람들은 타인을 타인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 이입 능력이 모자란다. 감정이입이란 바로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나르시시즘적이지 않더라도 많은 부모가 어느 정도는 아이들이 '타인'이며 자신만의 개성을 지닌 독립체임을 적절히 인정하거나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 대신 자신의 일부로 여긴다. 이는 마치 좋은 옷과 예쁘게 깎인 잔디와 멋진 자동차를, 세상에서의 지위를 나타내 주는 자신의 일부로 여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통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분리된 개체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각각 실현시켜야 할 개별 운명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분리 문제는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문제가 된다. 개인의 목적과 역할이란 관계, 집단, 다수,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단지 국가의 운영만이 고려되고, 개인의 운명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믿는 것과 관계, 집단, 다수, 사회를 희생하더라도 개인의 운명을 지지하며, 고아들이 굶주릴지 모르지만 사업가는 자기가 주도한 일의 모든 열매를 즐기는 것을 방해 받아서는 안 된다는 두 가지 분리에 관한 주장은 성공적이지 않을 수 있다. 개인의 건강은 사회적 건강에 의존하듯이 사회의 건강도 그 사회에 속한 개인의 건강에 의존한다.

어제가 24절기상 곡우(穀雨)였다. 그런데 비는 오늘 아침부터 하루 종일 내린다. 곡우는 청명(淸明)과 입하(立夏) 사이에 있으며, 봄의 마지막 절기에 해당한다. 곡우의 ‘곡(穀)’은 곡식을 뜻하며 ‘우(雨)’는 비를 말한다. 두 단어가 합쳐져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하는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상들은 곡우를 한 해 농사를 책임질 비가 내리는 중요한 시기로 여겼다. 그래서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다양한 속담들이 전해 지고 있다. 곡우 때는 농사 뿐 아니라, 조기 잡이도 활발해진다. 이 시기에 잡은 조기는 조기 중 으뜸으로 '곡우 사리'라고 부른다. 농사를 중시했던 과거에는 벼를 파종하는 곡우 시기에 죄인도 잡아가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등 중요한 절기였다. 그래 <곡우>라는 시를 오늘 아침 공유한다. 오늘 사진은 오후에 머리를 식힐 겸 내 채소밭을 다녀오다가 찍은 거다.

'곡우'/정우영

봄비 그치자 아침 이내 포근포근 산자락을 감아 돈다.
느른하고 불안하다.
이런 날이면 천산 누옥(漏屋)의 우리 어머니,
육탈의 가벼운 몸 또 근질근질하실 게다.
천명(天命)도 아랑곳없이 떨쳐 일어나 요정처럼 날래게 묵정 밭을 일구실 게다.
어허, 저기.
천산에서 뜯어 흩뿌리는 모정(母情)이 무지개 되어 훨훨 땅바닥에 날아 내린다.
눈이 부셔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너무 환해서 비릿한 눈물 번진다.

곡우 무렵 내리는 비는 생명을 움트게 한다. 잠자던 곡물은 깨어나고, 나무는 몸에 물을 가득 채워 싹을 틔운다. 농부는 볍씨를 물에 담그고 못자리를 준비한다. 한 해 농사의 시작이다. 봄비 그친 아침, 앞산에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 감돌자 시인은 느른하면서도 불안해진다. 살아생전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은 어머니가 “천산 누옥”에서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천상의 “묵정 밭(오래 내버려 두어 거칠어진 밭)을 일구실 것" 같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립다. 다음은 이 시를 소개한 김정수시인의 덧붙임이다. "어허, 저기, 앞산에 무지개 뜨자 불안은 기쁨으로 바뀐다. 천산에서 뜯어 흩뿌리는 모정이 무지개라는 상상력은 참으로 놀랍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고요히 안에 담고 있던 슬픔이 한결 가벼워진다. 천상의 어머니와 지상의 아들은 나비처럼 훨훨 땅바닥에 날아 내 무지개로 연결돼 있고,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사라진다. 그래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까지 사라진 것은 아닌지라 눈물이 번진다. 아직도 보내지 못한 어머니는 시인의 마음속에 영원히 산다." 내 어머니도 내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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