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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묻는질문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캐디 직업을 여러분께 당당하게 추천합니다.

작성자들잔듸 소녀 캐디|작성시간16.04.25|조회수10,636 목록 댓글 405

안녕하세요

카페 운영자 들잔듸입니다.

카페에서 캐디세상을 만든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16년이 되었네요

20대에서 40대가 되었으며 만감이 교차합니다. ㅎㅎㅎ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캐디 직업을 추천하려고 글을 적어봅니다.

딱 20살에 돈 많이 준다고 해서 캐디하려고 갔다고 지방으로 가서

2달 교육받고 캐디 될수 있다는 설명회를 듣고 혹시 인신매매인가 싶어서

무서워서 포기하고 이것 저것 조금씩 일하면서 자리잡지 못한채

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카드 빚도 300만원 정도가 있더라구요

잘하는것도 없고 상고 나왔는데 경리는 못하겠더라구요

계산할때마다 틀리고 영수증은 계속 사라져서 월급 몇푼 받는거

빵꾸 때우느라 바빴거든요

 

마침 남친하고 헤어져서 서울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지방근무에 숙식 제공 그리고 고소득인 캐디에 다시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때도 무섭긴 했지만 이번에는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보기로 

했지요 학원 소개로 골프장 면접을 보고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입사하기 전 서울의 마지막 날  두렵고 무섭기도 그냥 가지 말까 하고

망설이며 한숨도 자지못했지만 다음날 무거운 마음을 뒤로한채 

저는 ***골프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입소하고 다음날부터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육생은 한방에 8명이 생활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ㅎㅎㅎ

완전 군대 같았거든요

교육생은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써도 된다고 생각하셨나봐요

뭐~ 30명 정도 교육받았는데  번호 받은 사람은 10명도 안되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아주 좁게 느껴졌는데 방이 점점 넓어지더라구요 

그래도 그때는 골프장에서 캐디 교육 체계적으로 잘 시켜주셨지요

이론교육 ,코스교육,동반교육을 받으며 정신없이 하루가 가고 있었습니다.

여름에 교육 받았는데 정말 덥더라구요 지쳐서 잠들곤했습니다. 

제가 좀 센스가 떨어져서 그런지 동기들 중에서는 제일 늦게 번호를 받았습니다.

못하는것도 자존심 상하고 계속 뒤쳐지는것 같고 다른사람들에게 민폐인가 싶어

밤마다 집에갈까 고민했습니다.

눈감으면 엄마 얼굴도 자꾸 떠오르고...

부모님과 처음 떨어져 지방에서 생활하다보니 부모님도 동생들도 친구들도 많이

그립더라구여 집에 갈까 생각하다가도 마지막에서 카드 빚은 갚고 가자라며

교육기간을 버텼습니다.

9주 교육을 마치고 신입으로 조금 있다가 번호를 받았습니다.

신입때는 오늘은 어떻게 헤쳐나갈까 두려워서 티켓 받을때까지

심장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머리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누구든지 신입때 기억나는 라운드라 있겠지요

저는 번호받고 얼마 안되서  그 골프장에서 진상베스트 화이브안에 계신 회원님을

제가 배치 받았습니다  경기과에서 제가 신입인걸 모르고 절 배치했습니다.

부마스터님이 깜짝 놀라 쫓아오셨고 바꿀 사람이 없다며 잘 하라고 얘기해주시는데

그 말더 떨리고 무서웠습니다.

앞 뒤팀 언니의 동정하는 눈빛또한 저의 심장박동수를 더 빠르게 펌프질했습니다.

인사하고 첫홀가서 홀멘트하는데 내기를 크게 하시더라구요 타당 2만원 내기 하시는데

지금 말로 완전 심장 쫄렸습니다.

회원님 인상이 좀 사나웠거든요  다행이 그날 그 회원님이 공이 잘 맞아서 내기

골프에서 돈을 많이 따서 오바피도 3만원 받고 별 탈 없이 끝났지만 지금도 17번홀에서

롱퍼터 홀인되서 좋아하시면서 오바피준 기억이 생생한것 보면 저 엄청 떨었던거겠지요

벌써 17전 일인데요 ㅎㅎㅎ

 

일 시작하니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교육 받을때에 비교하면 천국이더라구요

그리고 믿기지 않게 하루에 6만원에서 12만원이 제 주머니에 있더라구요

(처음 시작할때는 캐디피가 6만원이였습니다)

그러면서 후회가 되었습니다.  이  좋은 직업을 왜 20살때 기회가 왔을때 왜 놓쳤을까

싶더라구요 그리고 여동생이 있으면 같이 하고 싶을 정도로 캐디라는 직업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무서웠던 라운딩도 천둥 울리듯 울리는 심장소리도 조금씩 잦아들어가며

저는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1년 정도 지나니 무서운것도 두려운것도 없고

이제 편안하게 라운드할수 있게 되더라구요

매일 새로운 고객님과 만나고 매일 다른상황이 펼쳐지니

금방 질리는 성격인 저에게는 딱 맞는 직업이였습니다.

저는 그때 "나에게 천직이다""여기서 뼈를묻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도 질려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 정말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앞이 캄캄해서 가끔 주문처럼 내 자신에게 세뇌를 시키기도 했었지요

그래서 오래 일할수 있었던것 같아요

 

늘 돈에 쪼들리던 저에게 캐디는 풍요를 주었습니다.

쉬는 날은 서울가서 엄마 아빠 맛난거 사드리기도 하고

엄마 좋아하시는 빽도 사드리고 그렇다고 사치는 하지 않았아요 ㅎㅎㅎ

엄마 빽은 사드려도 저는 그 흔한 브랜드 빽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25살까지 늘 가난하게 살아왔었는데 그때 전 참 좋았습니다.

마치 오아시스를 찾은것처럼 가난에서 벗어난것 같았거든요

 

 

기숙사에서 6명이 같이 사는것이 쉽지가 않더라구요 예민한 성격이라

매일 뜬눈으로 밤을 새는 바람에 원룸을 구해서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차도 구입하고 그리고 몇년후 집도 장만했습니다.

  

전 캐디직업을 하고 얻은것이 참 많아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그래서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캐디 직업을 여러분께 당당하게 추천합니다.

 

캐디라는 직업에 고민중이신분 혹시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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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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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두정동 아낙 | 작성시간 20.06.22 너무 공감합니다..ㅠㅠ
    마음을 다잡게 해주시네요..
  • 작성자타블로로사 | 작성시간 22.07.25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저도 어릴때 시작해서 멋모르고 열심히 잼나게 했던거 같아요. ㅋ
  • 작성자곱슬미아 | 작성시간 22.10.25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습니다!
  • 작성자랄랄라 | 작성시간 23.03.02 감사합니다 ㅠㅠ 이게 맞나 고민하던 찰나 오아시스같은 글이네요
  • 작성자꽃을봄 | 작성시간 23.06.07 고생들하셨어요
    그래도 힘든 기억보다 좋은 기억 이 더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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