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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_출14:10~22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3.05.21|조회수410 목록 댓글 0

계획한대로 살았다면 제대로 살지 못한 겁니다. 계획엔 욕심이 녹아있으니까요. 다행히 하나님께서 욕심 녹아있는 계획을 수정케 하십니다. 욕심대로 계획이 이루어지는 건 하나님께 버림받은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버리기도 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타락한 마음 자리에 내버려 두셔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하도록 놓아 두셨습니다(1:28).계획한 대로 욕심껏 살아냈다면 하나님께서 떠나셨다는 증거입니다. 계획한대로 살아내지 못했다면 일단 안도하겠습니다. 

 

사람이 세운 계획이 어긋났을 때, 하나님께서 사람을 버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합니다. 욕심이 짙게 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동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계획한대로 살아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16:9). 하나님은 사람이 세운 계획표에 갇히지 않습니다.

 

때로 막막합니다. 오도가도 못하는 때 있습니다. 누구도 막힌 길을 계획하진 않습니다. 누구도 쫓기는 삶을 계획하진 않습니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뒤는 쫓기고 앞은 막힙니다. 옛날 이집트 히브리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나름 계획이 있었겠지만, 바다 앞에 서게 될 줄 몰랐을 것입니다. 바다에 난 길을 계획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히브리 사람들은 한 번도 계획하지 않았던 바다 앞에 서 있습니다. 이집트 군대에 쫓기고 있어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뒤는 쫓기고 앞은 막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때입니다.
 

푸생, 〔Crossing the Red Sea〕, 1634,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155.6 *215.3

 

사람은 바다로 막힌 길을 계획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바다로 인도하십니다. 사람에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만 보시는 길이 바다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다를 가르십니다.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시고 물로 벽을 만드십니다. 물로 쌓인 벽 사이를 히브리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꽃길 아닙니다. 질퍽질퍽한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지 않는다면 굳이 걷고 싶은 길 아닙니다. 물로 쌓인 벽은 놀라운 광경이면서 무서운 풍경이기도 합니다. 물로 쌓인 벽이 행여 무너져내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두렵지만 다른 길이 없어 가는 길입니다. 다른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믿습니다. 믿음은 무한긍정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다른 도리 없어 하는 수 없이 갖게 되는 인간 정신입니다. 도저히 머물 수 없어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누구도 지니고 싶지 않은 보잘것없는 인간이 최후에 잡는 지푸라기입니다.

 

예수께선 이렇게 작은 믿음을 겨자씨와 비교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17:6)."바다 복판에 하나님은 나무를 심으십니다. 하늘에서 조감하면, 바다가 갈라진 사이로 지나가는 히브리 사람들이 바다에 심겨진 나무 같습니다. 사람은 위태한 상황에 내몰리나 하나님은 위대한 행렬을 창조하십니다.

 

위태한 사람들이 걸어가는 위대한 행렬을 상상해 봅니다. 바닷물이 갈라져 그 복판으로 사람들이 흐르듯 걸아갑니다. 이집트 제국에서 뽑혀 바다에 심어진 사람들입니다. 바다에 심어진 나무들은 가만히 서 있지 않고 흘러갑니다. 광야에 잠간 잠간 멈췄다가 다시 흘러갑니다. 흐르는 요단강을 가로질러 가나안 땅으로 흘러갑니다. 이집트에서 뽑혀온 나무들이 바다를 흘러 광야를 흘러 요단강을 가로질로 마침내 가나안 땅에서 뿌리내립니다. 마침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됩니다(1).

 

나무는 스스로 원해서 이집트에서 뽑혀 온 건 아닙니다.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말하였다. "이집트에는 묘 자리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다 끌어내어 죽이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여기서 이런 일을 당하게 하다니,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드십니까? 이집트에 있을 때에, 우리가 이미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광야에 나가서 죽는 것보다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더 나으니, 우리가 이집트 사람을 섬기게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14:11~12)"
 
이집트에서 그냥 그럭저럭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게 히브리 사람들 계획이었습니다. 수동적인 노예가 되어 이집트 고기가마를 욕심하며 사는 게 안분지족입니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은 욕심입니다. 욕심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은 가나안이라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계획하지 않습니다.

 

자기 욕심 가득한 계획이 어그러질 때,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시는 때입니다. 사람에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길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겠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40:28~31).」
 
처음 계획이 어그러지고, 어쩔 수 없이 뽑혀진듯 나선 걸음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십니다. 자주 넘어지는 위태한 걸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위대한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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