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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너와 함께"_눅1:26~38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3.12.24|조회수30 목록 댓글 0
Fra Angelico,  The Annunciation of Cortona ,  1433-1434, 150*180cm,  Diocesan Museum (Cortona)

 

나는 마리아입니다. 내가 사는 시대 여자는 사람 수에 들지 않았습니다. 남자 어른만 사람이었습니다. 여자는 그냥 여자였을 뿐,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여자일 뿐인 나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왔습니다. 느닷없이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고 가브리엘이 말했습니다. 이상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인사는 남자 용사에게 하던 말이었습니다. 옛날 기드온이 부족을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할 때, 천사가 기드온에게 이렇게 인사했다고 합니다. "힘센 장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삿6:12)"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말은 남자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었지, 사람이 아니라 여자일 뿐인 나에게 할 말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 더 이상 남자만 사람이 아니라, 여자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 여자 마리아도 사람이라고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신 것입니다. 2023년 대한민국에선 모두가 사람입니까. 그런 줄 압니다. 그러나,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사람은 아니지 싶습니다. 선주민과 이주민이 다르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다르고, 부자와 빈자가 다릅니다. 이주민은 국민이 아니어서 투표권이 없고, 장애인은 근로기준법 제외 대상이고, 빈자는 가난을 세습해주기 십상입니다.

 

2023년 겨울에 가브리엘이 대한민국을 찾는다면, 누구를 만날지 나 마리아는 알겠습니다. 국민이 아닌 이주민,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장애인,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서민, 혐오를 견디고 배제를 감당해야 하는 성소수자, 여전히 공포 속에 일상을 사는 여성에게 가브리엘이 인사합니다.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눅1:28).”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여자인 나 마리아를 통해, “더 없이 높으신 분”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말은 참으로 황당한 말입니다. 이 황당한 말을 하나님께서 이루신답니다. 천사가 엘리사벳이 임신한 사실도 전하며,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눅1:37)”고 하네요. 이 황당한 진실을 나 마리아는 믿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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