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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 무지개_창9:8~21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4.01.06|조회수67 목록 댓글 0
Gustav Dore, The Dove sent from the Ark, 1866

 

구름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구름이 두터우면, 노아는 두렵웠겠습니다. 구름이 짙으면, 노아 마음도 어두웠겠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지요. 일종의 트라우마입니다. 노아 가족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가 죽었던 홍수를 경험한 노아에게, 구름은 상처를 헤집는 발톱 같습니다. 노아는 어쩌면, 궂은 날씨를 예견하는 최초의 신경통 환자일 겁니다.

 

손바닥만한 구름만 보여도 노아는 다시 방주를 지어야할 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는개비만 내려도 노아는 다시 짐승들을 암수 한 쌍씩 모아들였을지 모릅니다. 구름이 보이면 노아의 모든 일상은 마비되었겠습니다. 구름이 보이면 노아의 모든 생각은 멈춰버렸겠습니다. 구름이 보이면 노아는 요샛말로 멘붕에 빠지지 않았을까요.

 

구름이 보일 때마다 멘붕에 빠지고 조바심냈을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창9:11)구름이 보일 때마다 멘붕에 빠질 노아에게, 구름이 보일 때마다 두려워할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괜찮다 다독이십니다.

 

Jean-François Millet,  Spring,  between 1868 and 1873, 86cm*111cm,  Musée d'Orsay

 

그리고 약속의 증거를 보여주십니다. “내가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창9:13~15)하나님께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보여주십니다.

 

구름 속에 무지개가 있습니다. 구름이 보이거든 무지개를 찾겠습니다. 폭우를 머금은 구름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겠습니다. 구름이 아무리 두터워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무지개를 보고 두려워할 순 없으니까요. 무지개 때문에 멘붕에 빠질 수는 없으니까요.

 

혹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구름이라도 결국 이른 비이거나 늦은 비를 머금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11:14).” 비는 이제 땅을 멸하는 것이 아니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비는 멸하게 하는 것이 아니요,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습니다(창9:20)노아가 포도나무를 심는 것은 내일 지구가 멸망한대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숭고한 행동이 아닙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내일부터 다시 땅을 멸하는 비가 내린다면 노아는 포도나무를 심지 않을 것입니다. 노아는 땅이 멸하는 것을 보았거든요. 노아는 땅에서 농사짓는 자들의 최후를 보았거든요. 내일 지구가 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사람은 지구의 멸망을 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혹은 내일은 지구가 망하지 않을 줄 알고 하는 소리입니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는 것은 약속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노아는 구름이 나타나고 또 때로는 폭우가 쏟아지는 하늘 아래 포도나무를 심습니다. 인류를 위한 숭고한 정신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노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포도나무를 심습니다. 심지어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기도 합니다.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창9:21)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에덴을 생각나게 합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2:25)”  홍수로 파괴되었던 땅에 다시 포도나무를 심어 부끄럼없이 에덴동산을 거닐던 처음 사람처럼 노아는 에덴의 삶을 복원한 것입니다. 노아가 사는 땅은 공간적으로 에덴일 리 없습니다(창3:24). 그러나 노아는 에덴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노아는 에덴의 동쪽어딘가에 거하면서도, ‘에덴의 시간을 복원해버립니다. 구름 속에서 무지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구름의 색깔이 회색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구름의 색은 여덟 가지 색깔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구름의 색은 적어도 일곱 색깔에 회색을 더한 팔색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구름에 가려 무지개가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구름 속에 무지개가 있다 하십니다. 

 

땅을 멸망시킬 것 같은 구름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심장을 흔들고, 식은땀을 돋게 하는 구름이 있습니다. 뼈 마디마디를 쑤시게 하는 구름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구름이 보이거든 구름을 보겠습니다. 구름을 보아야, 구름 속 무지개가 보이니까요.

 

아픔 속에 회복이 있습니다. 제국 속에 천국이 있습니다. 죽음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십자가 속에 부활이 있습니다. 구름 속에 무지개가 있습니다.

 

구름 속에 무지개가 있는 줄 아는 까닭에 포도나무를 심는, 땅은 에덴입니다.

 

 

 

글/ 김영준

2012년에 나누었던 설교원고를 증보했습니다 https://cafe.daum.net/churchmindlele/2D0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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