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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아래_요1:45~51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4.01.14|조회수101 목록 댓글 0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선 그리스도가 나올 수 없다는 편견을 지녔습니다. 이런 편견을 지닌 나다나엘을 예수께선 거짓이 없는 사람이라 부르십니다. 타인을 향한 편견을 지녔지만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공부하고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 그늘은 뜨거운 날씨에 공부하고 기도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다고 합니다(Its shade was a favorite place for study and prayer in hot weather). 공부는 낯선 지식을 접하는 것이고,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듣는 것입니다. 공부는 내 안의 세계가 작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를 초월한 큰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편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부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진실의 그림자 아래에서 정직하게 자기의 편견을 들여다봅니다. 편견 때문에 나다다엘은 나사렛출신을 인정할 수 없었지만, 공부하고 기도했기에 예수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오랜 편견을 확인하는 건 괴롭고, 진실을 마주하는 건 불편합니다.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려면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공부하고 기도하는 나다나엘은 이런 게 가능했나 봅니다. 그래서 예수께선 나다다엘을 거짓이 없는 사람이라 인정해주셨습니다.

 

사람은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곤 합니다. 학벌과 학력, 경험과 경력, 유산과 혈연이 껍데기인 줄 모르고 자기 자신이라 착각합니다.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3루타를 쳤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위치가 사람의 크기는 아닙니다. 사람은 산 위에 오를 수 있지만, 골짜기에도 사람보다 큰 나무가 많습니다. 높이 올라갔다고 해서 우월한 존재가 아닙니다. 성취를 이루었다해서 위대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늘 아래 있습니다. 나다나엘은 자기가 나무보다 작은 사람임을 알아 나무 아래에서 공부하고 기도하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높은 산을 오를 수 있어도 나무보다 작은 게 사람인 줄 알아, 나무 아래에서 공부하고 기도해야 시야를 넓힐 수 있고 겸손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부분, 나다나엘이 자기 껍데기를 들고 있다, 껍데기의 얼굴은 미켈란젤로의 자화상

 

편견과 착각은 무섭습니다. 편견이 혐오로 악화되기도 하고, 착각이 교만으로 타락하기도 하니까요. 나이를 먹을수록 편견과 착각이라는 껍데기는 두꺼워집니다. 편견과 착각을 벗겨내는 게 공부와 기도입니다. 착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 위치, 내 성취는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나다다엘은 하나님이 주셨다’,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후에 나다다엘은 경계를 넘어 인도와 아르메니아 등지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나누다가 피부가 벗겨지는 형벌을 받아 죽었다고 합니다. 나다다엘에겐 죽음마저 편견과 착각이라는 껍데기를 벗는 공부와 기도였을까요.

 

글/ 민들레교회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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