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문쓰는 법 제사지내는 법 유세차 유 단군기원ㅇㅇㅇㅇ년 세차. 연호가 빠져 사라지게 된 내력을 알아보면 거기에 민족의 슬픈 망국한(亡國恨)이 서려 있습니다
작성자星庵(성암)작성시간11.04.11조회수2,492 목록 댓글 1Q: 祝文 中에 [維 歲次 干支 幾月 干支朔 幾日 干支]의 文句를 사용하기 시작한 時期를 하교바랍니다.
(예 : 유 세차 신묘 3월 무자삭 10일 정유)
A:
안녕하세요,,
[퍼온 글들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유'와 '세차' 사이에 '단군기원ㅇㅇㅇㅇ년'이란 말이 빠진 것입니다.]
1). 성균관에서는 석전(釋奠)에서는 단기(檀紀)를 사용하고, 기타의 고유 분향 등의 행사에서는 공기(孔紀 :孔夫子 紀元)를 사용합니다
2). 옛적에는 연호가 빠진 축문이란 상상할 수 조차 없었고 고의로 연호, 즉 정삭(正朔)을 뺀 축문을 썼다간 역(逆)으로 몰려 큰 화를 당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연호든 이 연호를 쓰지 않는 것은 역법(曆法) 자체가 없는 미개인에게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축문에서 어느덧 연호가 빠져 사라지게 된 내력을 알아보면 거기에 민족의 슬픈 망국한(亡國恨)이 서려 있습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되의 추장 출신인 청태종(淸太宗)에게 인조(仁祖)가 남한산성에 서 내려와 삼전도(三田渡)에서 고두배(叩頭拜)를 한 치욕에 떨던 선조들은 청나라 연호를 쓰지 않았습니다.
국가 공문서에서는 청의 정삭(正朔)을 쓰지 않았다가는 당장 또 쳐들어올 것이므로 순치(順治)니 강희(康熙)니 하는 청제(淸帝)의 연호를 썼으나 저들이 알길 없는 사가(私家)의 문세에서는 명(明)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毅宗)의 숭정(崇禎) 연호를 그대로 써서 그 연호가 17년으로 끝난 뒤에도 굳이 숭정 기원후(紀元後) 몇 주갑(周甲 : 60년 주기) 무슨 년이라고 표기하는가 하면 민간에서는 아예 이처럼 환산하기 어려운 연호를 빼버리고 그저 세차의 간지(干支)만을 쓰게 되었습니다.
무한으로 반복되는 햇수를 세는 단위가 60갑자로 줄어든 셈이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축문을 읽을 때 유우… 하고 발어사를 한 다음 잠시 연호를 말할 동안을 침묵했다가 세차로 나가다가 그마저 유세차로 붙여 말하게 된 것이 오늘의 형태입니다.
그렇게 수백 년을 내려오다가 1896년에 고종(高宗)이 대 군주폐하(大君主陛下)가 되면서 건양(建陽)의 연호를 선포하고 이듬해에는 황제로 즉위하여 광무(光武)의 연호로 바꾸니 우리에게도 공사문서 간에 떳떳이 쓸 수 있는 연호가 생겼습니다.
그래도 이 연호에 익숙지 못한 민간에서는 여전히 유세차 유세차를 남발했지요. 그러던 대한제국(大 韓帝國)의 연호도 광무 10년에다 융희(隆熙) 4년까지 14년의 단명으로 끝나고 나라가 일본에 합병되면서 명치(明治) 와 대정(大正) 등의 일본연호가 들어와 공용화 되었습니다.
이것을 민간에서 왜기(倭紀)라고 쓴 기록도 있는데 이를테면 왜놈의 기원이란 뜻이니 청(淸)의 연호가 되놈의 기원으로 비하되던 것과 같은 이유로 배척 내지 기피되었지요.
어쨌거나 그래서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경건한 축문에서는 이따위 연호를 모두 입에 올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밖에 조선조 창업 이후를 통산하는 개국(開國)과 상해(上海) 임시정부에서 만든 민국(民國)등의 연호가 있었으나 일반화되지 못했고 1945년 해방 이후에는 단기(檀 紀)와 서기(西紀)가 공사 간에 써야 마땅한 연호로서 엄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상에게 공경으로 아뢸 때에야 반드시 이 두 가지 연호중 하나를 써야겠지요.
그러나 유세차가 하도 인이 박혀서인지 유 다음에 연호를 넣었다간 선대에서 쓰지 않았고 예문(禮文)에 없는 짓을 한다고 호령하며 꾸짖는 노인이 비일비재입니다.
노인이라고 다 유식한 것은 아닌 때문이지요. 지난 가을에도 서울사직단(社稷壇)에서 봉행(奉行)하는 대제(大祭)에 가 보았더니 축문이 역시 유세차이더군요. 국가 예산을 들여 옛적 나라의 기틀이던 사직단을 복원하여 놓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비는 대제를 올리면서 대한민국의 국정 연호인 단기를 일컫지 않고 빼놓는다는 것은 무슨 논리이겠습니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단군(檀君)이 나라를 연 날이 개천절(開天節)로 기려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경전(經傳)을 보면 성현이 이런 일을 가소(可笑)롭다 표현한 바 있습니다. 개천절이 실은 음력으로 10월 3일인데 양력 10월 3일로 우긴 일이 잘된 일이 아닌 것처럼 이 일도 잘하는 짓이 아닙니다.
참고로 유세차 의 축식 첫머리에 단기 연호를 넣어 이른다면 유 단군기원 사천삼백삼십일년 세차 무인(維 檀君紀元 四千三百三十一年 歲次 戊寅…)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