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작성자선머슴아|작성시간24.05.14|조회수100 목록 댓글 5

 

 

 

 

 

접시꽃



 


 

자야, 니는 오늘도
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에미애비 기다리며
배 아프다
입 고프다
마른 침 꾸울꺽 삼키고 있느냐  

숙아, 니는 오늘도
날마다 불러오는 아랫배 쓰다듬다가
쇠 받으러 도시로 떠난 그 사내
온 몸에 땀띠로 송송 돋아나는 그 사내 기다리며
그렇게 징징 울고 있느냐  

분아, 니는 오늘도
열 손톱 열 발가락 봉숭아 꽃물 들이며
때마다 하얀 쌀밥 먹여준다던 그 오빠
널 공주처럼 떠받들며 살겠다던 그 오빠 기다리며
부황 든 볼 발갛게 붉이고 있느냐

 

 

- 이소리 -

 



 
 
접시꽃은 쌍떡잎식물 아욱과의 여러해살이풀이자 그 역사가 오래된 꽃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란다. 봄이나 여름에 씨앗을 뿌리면 그해에는 잎만 무성하게 영양번식을 하고 이듬해 6월~9월경에 줄기를 키우면서 잎겨드랑이에서 짧은 자루가 있는 붉은색, 연한 홍색, 흰색 등 다양한 색깔의 꽃을 피우는데 멀리서 보면 무궁화와 비슷하다. 꽃잎은 홑꽃과 겹꽃이 있고 줄기, 꽃, 잎, 뿌리를 한약재로 쓰기도 한단다. 열매의 둥근 모양이 접시를 닮아서 접시꽃이라 불리었다는데 꽃의 모양도 접시와 비슷하게 생겼다. 꽃말은 애절한 사랑이라고 한다.​

한 번 심으면 저절로 번식해서 해를 거듭하며 꽃을 피우는데, 예부터 이 꽃을 노래한 시인들이 많다. 신라시대 최치원은 오언율시(五言律詩)를 통해 접시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묵정밭 한구석에 피어났기에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출신성분의 한계를 자신의 모습으로 환치시켜 노래했다. 80년대 말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시집의 표제작으로 유명한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은 암으로 사별한 아내에 대한 사랑을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시어를 통해 절실하게 노래하고 있지만 정작 시 속에는 ‘접시꽃 같은 당신’이란 한 구절만 나오고 제목이 ‘접시꽃 당신’일 뿐 이 꽃의 생태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소리의 시 <접시꽃>에서는 이 꽃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존재로 파악한다. 시 속에는 화자가 ‘자야’, ‘숙아’, ‘분아’라 부르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이에 따라 시 전체가 3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화자가 이들을 일컬어 ‘니’라 하는 ‘자, 숙, 분’이 실제 누구를 모델로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시 속에서는 ‘접시꽃’ 세 송이로 나타난다. 즉 화자는 접시꽃을 자, 숙, 분으로 보고 그들을 하나하나 ‘니’라 부르고 있다.​

‘자’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오늘도 / 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에미애비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러니 어린 소녀로 보인다. 그는 ‘배 아프다 / 입 고프다 / 마른 침 꾸울꺽 삼키고 있’다. 화자의 눈에 ‘자’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부모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어린 아이로 보인다. 어느 조그만 접시꽃 한 송이가 화자의 눈에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이에 비해 ‘숙’이라 불리는 사람은 ‘오늘도 / 날마다 불러오는 아랫배 쓰다듬’는 것으로 보아 임산부이다.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은 ‘쇠 받으러 도시로 떠난 그 사내 / 온 몸에 땀띠로 송송 돋아나는 그 사내’이다. 즉 돈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간, 정말 땀 흘려 열심히 일하던 지아비이다. 그러나 숙은 오랜 기다림에 지쳐 불러오는 배를 안고 ‘징징 울고 있’는 여인이다. 마찬가지로 화자의 눈에는 어떤 접시꽃 한 송이가 그런 여인으로 보였으리라.​

‘분’은 누구인가. 이 사람은 ‘오늘도 / 열 손톱 열 발가락 봉숭아 꽃물 들이며’ 오빠를 기다리고 있다. 그 오빠는 ‘때마다 하얀 쌀밥 먹여준다던’ 사람이며 자신을 ‘공주처럼 떠받들며 살겠다던’ 사람이다. 그러니 ‘분’은 연인을 기다리는 처녀이다. 그러나 그 오빠 소식은 없다. 그러니 ‘오빠 기다리며 / 부황 든 볼 발갛게 붉이고 있’단다. 붉은 접시꽃 어느 한 송이가 화자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까.​

​그렇다면 자, 숙, 분 세 사람 모두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다만 기다리는 대상이 부모, 지아비, 연인으로 각각 다를 뿐이지만 아직 오지 않는 점은 같다. 오지 않는, 소식 없는 사람을 기다리는 세 사람 - 접시꽃 세 송이이다. 자식들 버리고 나가버린 부모일까, 돈 벌러 나가 새 여자를 얻었기에 오지 않는 지아비일까, 결혼을 약속하고는 도망친 어느 못된 놈일까 - 시 속 내용만으로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세 사람 모두 대상은 다르지만 굳게 믿고 간절하게 기다린다는 점이다.

그런데 화자는 어찌 접시꽃을 공통점은 있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으로 상상했을까. 줄기에 피어 있는 꽃송이들이, 각기 다른 상황이지만 기다린다는 면에서 같은 꽃으로 보였으리라. 다만 크기나 피어있는 모양 혹은 색깔에 따라 같은 꽃이라 하더라도 화자의 눈에는 달리 보였을 테고 그런 느낌이 시 속 자, 숙, 분이란 사람을 만들어냈다. 그러니 자, 숙, 분이 바로 접시꽃이요, 접시꽃은 기다림의 대상은 각기 다르지만 애타게, 간절하게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주체가 된다.​

​접시꽃을 보며 나는 아름다운 색을 입힌 한지를 생각했다. 그만큼 보기 좋은 모양에 취했다. 그런데 시인은 그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다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 게다가 거기에 서로 다른 기다림의 대상을 연결시켜 애태우는 기다림으로 환치시켜놓았다. 하긴 접시꽃의 꽃말이 애절한 사랑이라 했으니 그 사랑이란 기다림인지도 모른다. 시인의 상상력이 참 놀랍다. ♣

 

 

 

- 이병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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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沃溝서길순 | 작성시간 24.05.14 접시꽃 이야기 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선머슴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17 감사합니다
  • 작성자沃溝서길순 | 작성시간 24.05.14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동트는아침 | 작성시간 24.05.15 좋은글 감사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선머슴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1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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