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람 / 하얀 거짓말

작성자망실봉|작성시간24.04.25|조회수269 목록 댓글 5
  고마운 사람


  아내가 휴대폰에 나를 뭐라고 저장해 뒀는지 궁금해 몰래 뒤적였다. 그런데 이리저리 찾아도 나로 추정되는 이름이 보이질 않았다.
 
  호기심에 연락처를 한참 훑어보다 '술단지'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하고 전화번호를 확인해 보니 나였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인생의 동반자이자 아이들의 아버지를 술단지라 부른단 말인가..., 별일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불끈 화가 솟아 나도 아내를 '얄미운 여자'라고 바꿨다.
 
  며칠 뒤 아내가 이를 알아챘는지 자신이 뭘로 저장돼 있냐고 물었다. 내가 비밀이라며 웃자 아내가 쏘아붙였다. 스물여섯 살에 시집와 이사만 열네 번씩 하며 아이들을 키웠는데, 어찌 그 많은 호칭 중에 얄미운 여자라고 해 놓았냐는 것이었다.
 
  나도 할 말이 없진 않았다. "나도 타지에서 직장 다니면서 그 좋아하는 막걸리 한잔 맘대로 마신 날이 없네!"
 
  화가 났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휴대폰에 저장한 호칭 하나로 가정에 불화를 일으킨 걸 뉘우치고 연락처 속 아내의 호칭을 '평생 고마운 사람'이라고 바꿨다.
 
  언제 본 건지 아내는 감추지도 않고 좋아했다. 나도 아내 것을 몰래 봤는데, 글쎄 '오직 한 분'이라고 해 놓은 게 아닌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더니, 옛말에 틀린 것 하나 없다.
 
  아내는 요즘 싱긋 웃고 말투가 신혼 때처럼 곱다. 호칭 하나로 인생살이가 신나지는 것을 보니 산다는 건 참 쉽고도 어려운 일이지 싶다. 이제라도 알게 된 게 다행이겠지.

  "여보 고마워."

 
  이규희 | 강원도 강릉시
  

  하얀 거짓말
 

 
  1950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방치됐다. 생존이 최우선인 참혹한 이 시기에 미 공군 중령이자 목사인 러셀 블레이즈델은 이 아이들을 돌보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을 거두어 서울에 보호소를 만들자 그 수가 수십 명에서 수백 명으로 늘어났다. 한국인 의료진들도 이들을 돕기 위해 모였다.
 
  그해 겨울, 서울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며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아이들을 포기하라." 그와 의료진의 극진한 돌봄에도 혹독한 겨울의 추위가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 가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을 버릴 수 없던 그는 명령에 불복했고, 비교적 안전한 제주도로 모두를 피난시킬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인천항에서 아이들을 이송하기로 약속한 선박들이 긴급 작전에 투입돼 나타나지 않았다.
 
  사흘 밤낮 트럭 한 대로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이동시킨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한 줄기 빛이 그를 비췄다. 다음 날 아침 여덟 시까지 김포 공항으로 오면 공군이 수송기를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남은 건 열다섯 시간, 트럭은 한 대, 아이들은 1069명...,' 모두가 함께 가기란 불가능했지만, 끝까지 차량을 수소문한 그는 인근 마을에서 시멘트를 싣던 해병대 트럭을 발견했다. 그는 상부의 명령이라는 거짓말로 해병들을 움직여 아이들을 김포로 이송, 제주도까지 대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 블레이즈델은 상부에 불복한 대가로 군법 회의에 회부됐지만 처벌은 면했다.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이라는 태도를 고수한 그는 50년이 지난 후에도 한결같았다. 2001년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에 방문한 그가 말했다. 

  "그날의 수송 작전은 용기가 아니라 책임이었습니다."

  박도연 기자



 
  Canaan Cox - Let It Run (Official Video)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망실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25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동트는아침 작성시간 24.04.25 좋은글 감사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망실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25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다가오는 행복한 5월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도
    기운차게 시작해봅시다
    다녀가신 고운 흔적
    감사합니다 ^^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핑크하트 작성시간 24.04.25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오늘도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 답댓글 작성자망실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26 반갑습니다
    핑크하트 님 !
    오늘도 귀중한 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푸르럼이 점점 더해가는
    신록의 계절,,
    평안한 불금보내시고
    건승하세요 ~^^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