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도장 / 바른 글씨 쓰기

작성자망실봉|작성시간24.05.07|조회수248 목록 댓글 5
  못생긴 도장
  
  나에게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도장이 있습니다.
 
  "어머, 또 그 도장이에요?" "도장 하나 새로 파시라니까요. 체면이 있지."
 
  "어, 허허허."
 
  진단서나 각종 서류에 도장을 찍을 때마다 의사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다들 성화를 댈 만큼 초라한 목도장. 하지만 나는 20년 손때 묻은 도장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일입니다. 선생님이 중학교에 들어가려면 입학원서를 써야 한다며 도장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교육자 가정에서 7남매를 모두 대학까지 보내느라 도장 하나 새겨 주기도 힘들만큼 어려운 형편이었던 그때, 아버지는 궁여지책으로 당신의 헌 도장을 꺼내 깍아 버리고는 조각칼로 내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
 
  "에이. 몰라…."
 
  다음 날 아침 눈을 떳을 때 머리맡엔 아버지가 밤새 깍은 도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손때 묻어 거무튀튀한 막도장, 삐툴빼툴 서툰 글씨.
 
  친구들은 모두 잘 생긴 새 도장으로 입학원서에 도장을 찍는데 왜 나만 항상 남보다 못한 걸 쓰는지 …. 그 보잘것없는 도장을 꺼내 누가 볼 새라 살짝 찍으면서 또 얼마나 서럽고 부끄러웠는지.
 
  내가 그 못생긴 도장에서 아버지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게 된 건 의대를 졸업한 뒤였습니다. 진단서에 찍을 도장을 찾다가 서랍에서 발견한 아버지의 목도장. 그 우연한 기회에 내 눈에 들어온 건 어릴 때 보았던 보잘것없는 도장이 아니었습니다.
 
  "어이쿠. 아야 ….아야."
 
  아버지가 조각칼에 벤 손가락을 움켜쥐고 있는 동안 그때 그 방안에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20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고급 도장도 있지만 그날 이후 나는 도장을 쓸 일이 있으면 오로지 그 못생긴 도장을 써 왔습니다.
 
  아버지의 숨결, 아버지의 체온으로 쓰면 쓸수록 도장이 따뜻해지기 때문입니다.

  - 옮긴 글 -




  바른 글씨 쓰기
 




한 사람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주로 말보다 사소한 행동에서 힌트를 얻곤 한다. 가령 목소리나 필체, 걸음걸이 등을 보고 짐작한다. 그것은 개인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지표나 마찬가지다. 습관이 될 정도로 몸에 밴 것은 한순간에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글씨를 유심히 보는 버릇이 있어서 서명 본이 오면 제일 먼저 사인부터 본다. 친구 P의 글씨는 ‘기분’과 같다. 어떤 때는 삐뚤빼뚤하고, 어떤 때는 반듯하다. 마치 기분에 따라 글씨가 리듬을 타는 것 같다. 또 다른 친구 D의 글씨는 자타공인 악필이다. 가지치기하다 만 나뭇가지처럼 획이 사방으로 뻗쳐서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다. 그럴 때 D는 ‘천재는 악필’이라는 너스레를 늘어놓곤 한다. 연필로 쓴 편집자의 글씨는 개미처럼 작고 촘촘하다. 저마다 다른 개성이 필체에 스며들었다.


돌아보면 나는 여덟 살 때 ‘글씨 쓰는 법’을 정식으로 배웠다. 담임선생님은 연필을 바르게 잡는 법부터 가르쳐주셨다. 연필을 깎은 부분보다 살짝 위를 잡고 중지로 연필 뒤를 받쳤다. 먼저 직선과 곡선부터 반듯하게 긋는 연습을 시켰다. 차차 받침이 없는 글자부터 받침이 있는 글자 순으로 받아쓰기 공책을 채워나갔다. 네모 칸 밖으로 글자가 삐져나갈까 봐 힘을 세게 주는 바람에 연필심이 툭 부러지기도 했다. 선생님은 모든 글자에 배꼽이 있으니 배꼽을 찾으라고 하셨다. 배꼽은 이를테면 글자의 중심이었다. 모든 글자의 배꼽이 어딘지 찾고 획 사이 간격을 일정하게 띄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글씨를 쓰는 것도 마음가짐을 바르게 가다듬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모든 관계는 적당한 간격이 유지되어야 한다. 인생에서도 필압(글 쓸 때 누르는 정도)을 적절히 조절하듯이 힘을 줘야 할 때도 있고, 빼야 할 때도 있다. 글자의 배꼽을 찾는 것처럼 자기 삶의 균형을 이루는 구심점이 어디인지 알아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처럼.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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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망실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7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동트는아침 | 작성시간 24.05.07 좋은글 감사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망실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7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공유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유와 웃음있는
    넉넉한 오후시간
    보내세요 ~^^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핑크하트 | 작성시간 24.05.07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오늘도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편안한 쉼이 되는 시간 보내세요
  • 답댓글 작성자망실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8 반갑습니다
    핑크하트 님 !
    다녀가신 고운 멘트
    감사합니다 ~
    5월의 푸르름과 함께
    즐겁고 여유로운
    나날들 보내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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