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望詞(춘망사)

작성자클로이2|작성시간24.04.26|조회수159 목록 댓글 7

🟦《春望詞》[춘망사]
봄을 기다리는 노래

🔷️薛濤《설도, Xuē Tāo, 唐(당), (768?~832)》

🔘1]

花開不同賞 [화개부동상] 꽃 피어도 함께 즐길 수 없고

花落不同悲 [화락부동비] 꽃이 져도 함께 슬퍼 못하네

欲問相思處 [욕문상사처] 여쭈니, 그대 어디 계신가요

花開花落時 [화개화락시] 꽃 피고 다시 지는 이 시절에
 
🔘2]

攬草結同心 [람초결동심] 풀 뜯어 동심결로 매듭을 지어

將以遺知音 [장이유지음] 그대에게 보내려 마음 먹는데

春愁正斷絶 [춘수정단절] 그리워 타는 마음 잦아질 즈음

春鳥復哀吟 [춘조부애음] 봄새가 다시 와 애타게 우네요
 
🔘3]📌

風花日將老 [풍화일장로] 바람에 꽃잎은 날로 시들고

佳期猶渺渺 [가기유묘묘] 꽃다운 기약은 아득만 한데

不結同心人 [불결동심인] 한마음 그대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공결동심초] 괜히 동심초만 엮고 있네요
 
🔘4]

那堪花滿枝 [나감화만지] 어쩌나 가지 가득 피어난 저 꽃

翻作兩相思 [번작양상사] 날리어 그리움으로 변하는 것을

玉箸垂朝鏡 [옥저수조경] 거울 속 옥 같은 두 줄기 눈물

春風知不知 [춘풍지부지] 바람아 봄바람아 너는 아느냐

⬛풀이

●설도[薛濤, 768?~832]: 당나라 명기(名妓)이자, 여류 시인. 장안(長安)
출생. 자는 홍도(洪度).

유채춘(劉采春), 어현기(魚玄機), 이야(李冶)와 더불어 ‘당대사대여시인(唐
代四大女詩人)’으로 불린다.📌

원래 장안[현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西京)]사람이었으나 어려서 아버지
설운(薛鄖)를 따라 촉(蜀) 땅 쓰촨(四川, 사천)성 청두(成都, 성도)로 들어와
살았다.

부친 설운은 미관말직(微官末職)의 최하층 관리였는데, 촉 땅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졸했다. 설도의 나이 14세였다.

모친이 나이 젊은 청상과부(靑孀寡婦)에다, 집안마저 빈곤한 탓에, 설도는 기
녀로 가기로 결심, 마침내 관기(官妓)의 공식 등록 원부, 악적(樂籍)에 올라,
16세에 미모가 빼어나고 노래까지 잘 하는 기생인 '악기'(樂妓)가 되었다.

설도는 선천적으로 음률에 능통하여 시가를 잘 지었고, 당시 유명한 고위 관리
들과 깊이 교유(交遊)하였다.

한때나마 연인이었던 위고(韋皐), 그리고 기녀 설도가 마음에 두고 짧은 기간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던 원진(元稹),

당대의 명사였던 백거이(白居易)·두목(杜牧) 등등 기라성(綺羅星) 같은 대문
인들과 시와 운(詩韻)에 맞춰 서로 시를 주고받는 '창화'(唱和)를 나누었다.

●작품은 기(起)· 승(承)· 전(轉)·결(結)의 4수로 된 5언절구(五言絶句) 한
시체로 애상적이며, 보고싶은 임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작품에서 그리움과 사랑의 대상은 설도의 나이 42살에 사랑에 빠진 무려 11살
아래 "연하남"📌문인이자 전도유망(前途有望)한 관료이며 정치가 원진(元稹,
779~831)이다. 설도가 768년생이니 '원진'이 11살 연하남이 맞다.📌

중국인물사전에 따르면, 809년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31세의 원진이 감찰어
사 신분으로 지방 순시를 나갔다가, 명기 '설도'의 명성을 듣고 쓰촨 지역에 방
문, 그녀를 만났다.

당시 설도의 나이는 원진보다 11년 연상이었으나, 두 사람은 시를 통해 교류하
고, 이후, 뜨거운 애정을 나누었다. 둘은 석 달 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미시(중년)의 '설도'는 자신의 이상형인 젊은 원진에게 모든 것을 바칠 정도로
한없이 빠졌다.

설도는 원진과 애정을 나누며 100여 편의 연애시를 남겼다. 두 사람의 연애는
당시 쓰촨성 뿐만 아니라 조정에 까지 퍼질 정도로 대단한 화제였다.

그러나 원진의 공직상, 연인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단기간에 끝이 났다.

이후 설도는 시를 써서 자신의 마음을 원진에게 전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춘망사(春望詞)>가 그 중 하나이다.📌

설도는 직접 정성들여 만든 붉은 종이에 시를 써 보냈는데, 훗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모방했다. 이 종이를 후세인들이 ‘설도전(薛濤箋)’이라 했다.

설도는 나이가 들어, 악적(관기 명부)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당대 남정네들의
숱한 구애에도 불구, 결혼하지 않고 혼자 여생을 보냈다.

아울러 옛 기록을 들춰보면, 연상녀와 연하남이 사랑에 빠진 예는 오늘날 못지
않을 정도로 비일비재하다. 원진의 자는 미지(微之)로서 나중에 최고위직인
재상(宰相)의 반열에 올랐다.

●꽃, 풀잎, 봄 새, 봄바람, 눈물 등의 시어를 통해, 보고 싶은 임과 사랑을 나누
지 못하는 애절한 비련(悲戀: 결국은 새드 엔딩의 사랑)을 정제(整齊)된 시어
로 표현했다.

●欲問[욕문]: 묻고 싶다, 여쭈고 싶다.

●相思處[상사처]: 그리운 님 계신 곳.

●攬[람]: 잡아매다, 손에 쥐다.

●將以[장이]: 장차 그로써.

●遺[유]: 주다, 보내다.

●春愁[춘수]: 봄의 근심, 그대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

●佳期[가기]: 설레는 기약, (그대를) 만날 날.

●結同心人[결동심인]: 정을 통한 임과 맺어지다.

●堪[감]: 할 만하다. 견디다.

●玉箸[옥저]: 옥으로 만든 긴 젓가락처럼 흘러내리는 눈물.

●知不知[지부지]: 남들이 알아주던, 몰라주던 상관없이.


🟦가곡 《동심초(同心草)》

○원작자(原作者): 설도[薛濤]

○역시(譯詩): 김안서[金岸曙]

○작곡(作曲): 김성태[金聖泰]

○역/작곡 연도: 1945년

노랫말은 8세기 당(唐)나라 시인인 설도(薛濤)의 작품을, 소월(素月)의 스승
안서(岸曙) 김억[金億, 1896~몰(歿)미상, 1950년 9월 10일 납북]이 위 시
《춘망사》에서 '3번째 수'를 역(譯)한 것이다.📌

1955년 《한국가곡집》에 최초 소개되었는데, 당시, 사임당 신씨(師任堂 申氏,
1504~1551)로 오기(誤記)되어📌잘못 소개되기도 했다.

노랫말의 아름다움, 멜로디의 빼어난 서정성 등으로 인해, 해방 이후 우리 한국
인들이 가장 많이 애창하던 명곡 중 하나이다.

아르페지오(arpeggio, broken chord; 펼침 화음, 분산 화음)로 전개되는 피
아노 반주부가 아름답다.

◇[노랫말]:

<8분의 6박자, 애타는 정으로>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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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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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클로이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26 여여하세요
  • 작성자태양의제국 작성시간 24.04.27 춘망사
    좋은글 잘 보겠습니다
    다시요
  • 답댓글 작성자클로이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27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 작성자태양의제국 작성시간 24.04.27 추천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클로이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27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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