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유정을 만나다

작성자이헌 조 미경|작성시간24.04.28|조회수91 목록 댓글 3

작가 김유정을 만나다 / 이헌 조미경

 

동국대 대학원 문창과 김춘식 교수님을 모시고, 1박 2일 춘천과 홍천으로 M.T를 다녀왔다.

초록이 싱그러운 봄, 아침에 눈을 뜨면 햇살에 섞여 들어오는 꽃향기를 따라 맑은 공기를 따라 하루를 시작하는 요즘. 강의실을 떠나 문학인으로 글감을 찾고 자연에서 배우는 체험은, 매일 글을 써야 하는 우리에게는 꿈같은 시간이다. 강의실에서 잠깐의 대화를 나누던 학우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봄이 주는 화사함을 나누고, 우리가 배우는 시와 소설 등 문학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에 관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작가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지만, 다녀오게 되면 늘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번 M.T에tj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봄봄, 동백꽃, 솥을 쓴 작가 김유정의 생가터와 그를 기리는 김유정 문학촌을 다녀왔다.

그동안 춘천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작가 김유정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 김유정은 33세라는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너무나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부유한 집안 환경에, 약 6세에 서울로 유학 유모와 함께 생활하며 공부를 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사망은 그를 하고 안온했던 사망의 충격으로 말을 더듬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던 김유정은, 연희 전문학교에 입학했지만, 결석이 잦아 결국 재적 됐다. 후에 귀향하여 고향인 춘천에 금병의숙를 세워, 야학을 통해 농촌 계몽 운동에 힘썼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와 글쓰기에 전념하여 잡지 <제일선>에 산골 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한다. 이어서 소낙비가 조선중앙일보에 입선됨으로써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활동을 이어 갔다.

 

김유정은 등단 이후 폐결핵에 시달리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1937년 다섯째 누이 유흥의 과수원집 토방에서, 투병 생활을 하며 동창인 안회남에게 쓴 편지 前 3.18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생전의 김유정은 음악과 악기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찰리 채플린을 매우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작가 김유정을 낳고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소설들은, 그가 나고 자란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쓰여 졌다고 전해진다.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고 작가의 성장 과정과 사상과 이념을 공감하면서, 나 자신 창작 욕구를 충족시켰다 자부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이번 김유정 작가의 문학촌을 둘러보며, 앞으로 더 많은 책을 읽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작가로서 어떤 생가과 고민을 안고 살아야 하는지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많은 책을 읽고 사색하며, 또한 많은 글을 써야 하는, 자신에게

앞으로 또 이런 기회를 통해서 많은 지식을, 가슴에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번 M.T를 통해서 작가란 어떤 글을 쓸 것이며, 어떻게 독자들의 가슴에 미세하지만 가슴 뭉클한 이미지를 남길 것인지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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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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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클로이2 | 작성시간 24.04.28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보름달^^ | 작성시간 24.04.29 감사합니다~~~
  • 작성자그림자 신사 윤 기명 | 작성시간 24.04.29
    한번 연락 주세요
    여기 오시면

    좋은 M.T 다니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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