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좋은 하루
글 · 그림 김져니
9] 더위 · 김져니
나는 더위를 잘 타지 않는다. 흠, 고개를 28도 정도 꺽어 다시
생각해 보아도 더위를 잘 타지 않는다. 나만의 더위나기 비법
덕분이다. 비웃지 말고 들어주시길,
그건 바로 '가만히 있기'다, 휴대폰으로 치자면 최저 배터리 모
드로 있는 것이다. 날이 더워지면 나무늘보처럼 아주 천-천-
히 필수적인 동작만을 취한다. 책장 넘기기 같은. 그러고 있다
보면 어딘가에서 바람도 솔솔 불어온다(못 믿겠다면, 올여름
에 한 번 해보시길).
마치 내가 침착하고 차분한 사람인 것처럼 그려질지 모르겠
다. 하지만 나는 침착하지 않고 차분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저
무더위 속에서 나무늘보처럼 시간을 보낼 줄 아는 것뿐이다.
때로는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이 즐거워지는 순간도 있
다. 나는 조용히 여름이 주는 괴로움을 진득하게 느껴본다. 이
여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며.
글을 쓰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땀
방울 같은, 인생의 힘든 순간들도, 더위처럼 좀 더 진득하게 즐
겨볼 수는 없는 것일까?
아, 아직 나란 사람은 더위만 극복할 줄 아는 초짜인가 보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저는 에어컨이 펑펑 나오는
카페에 있지만, 더위를 피해서 온것은 아니었답니다.
진짜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