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떤 분께서 식물은 자기방어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올리셨습니다. 흥미가 발동한 저는 여기 저기 자료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미리 보는 결론: 와~! 식물은 정말 대단해!!!)
우리가 머리 속으로 평화로운 풍경을 떠올릴 때면 그 곳에는 항상 식물이 있습니다. 식물은 참 평화롭게 살아갈 것 같지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답니다. 인간에게 있어 평화로운 풍경은 그들 머리 속에서만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식물에게도 평화로운 삶이란 쟁취해야만 하는 그 무엇을 의미합니다.
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곤충, 균류(곰팡이), 바이러스, 동물(인간) 등의 다른 생물체로부터의 위협과 자연환경적 위협. 특히 21세기를 살아가는 식물들은 옛 조상들은 겪어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위협 때문에 몸서리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태계 파괴.
식물은 이 모든 것들과 맞서 싸우면서 살아가야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따라서 수천만년 동안 갈고 닦은 그들의 방어수단에는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 넘는 놀라운 것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식물의 방어수단 중에서 다른 생물체들에 대한 방어법을 위주로 하여 간단하게 살펴 보겠습니다.
◈ 무기를 사용한다 - 식물도 무기를 사용할 줄 안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끔찍스러운 핵무기 같은 것과는 비교하지 마시길. 식물의 무기는 방어용일 뿐이며 또 지구 전체를 폭삭 망하게 하는 야만적 무기는 더더욱 아니니까요.
- 가시: 잎을 갉아먹는 달팽이에게 날카로운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는 식물은 그림의 떡처럼 보일 겁니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 등판을 송곳으로 무장했던 것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 칼날: 잔디를 비롯한 많은 식물은 잎 가장자리에 규산염의 날카로운 칼날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으로 자신을 보호하는데 사용합니다. 풀에 베인 경험 다들 있으시죠? 규산염은 식물이 흙으로부터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입니다. 흔한 재료를 가지고 얼마나 멋지고 유용하게 이용하는지!
- 톱니: 잎 가장자리의 날카로운 톱니도 중요한 방어수단이죠.
- 털: 쐐기털 같은 식물은 온몸에 독털을 가득 가지고 있습니다. 풀 좋아하기로 유명한 토끼도 쐐기풀만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답니다.
◈ 곤충의 도움을 받는다
- 옥수수, 면화 등의 식물은 해충이 자신을 갉아 먹는 것을 알아차리면, 특수한 기체를 방출하여 이웃집 말벌에게 구조요청을 합니다. 그러면 말벌이 달려와 잎을 갉아 먹는 애벌레들을 처단해 주죠.
- 어떤 식물들은 개미와 공생하면서 다른 해충을 막아냅니다. 식물은 개미에게 살 터와 맛있는 진액을 제공하고 대신 개미는 식물을 보호해주는 것이죠. 또한 개미의 배설물은 식물의 좋은 영양공급원이 되기도 합니다.
- 어떤 식물은 해충이 침입하면 맛있는 수액을 바깥쪽에 있는 잎에다 더 많이 보낸다고 합니다. 그러면 바깥쪽 잎에 해충들이 많이 모이고, 바깥쪽은 더 잘 보이기 때문에 무당벌레 같은 정의의 기사가 날라와서 악당들을 처치!
- 얼마전 식물과 곤충의 이러한 재미있는 관계에 대해서 쓴 책을 발견했습니다. 수입서적이었는데, 그 쪼그마한 책 한 권 값이 무려 180,000원 정도 하더군요! 너무해... y.y (책값에 충격먹은 나머지 곁길로 빠지고 있는 나...)
◈ 화학전을 감행한다!
- 어떤 식물은 딱정벌레가 공격해 오면, 암컷 딱정벌레 냄새와 비슷한 물질을 배출한다고 합니다. 가짜 냄새인줄도 모르고 딱정벌레는 점심식사도 팽개쳐둔 채 암컷의 환상을 쫓아 헤매고 또 헤매고...
- 담배는 바이러스가 자신에게 침범하면 경보물질 발산해서 이웃 담배들이 대비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웃의 담배는 그 신호를 받아서는 금새 면역물질을 만들게 되죠. 참! 여기서의 담배는 말보로, 디스... 하는 그 담배가 아니라 그 담배의 재료가 되는 식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보로가 경보물질을?' 하면서 어리둥절했던 분, 솔직히 자백하세요! ^^:)
- 양파, 마늘은 가만 놔두면 매운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상처를 내면 눈물이 좍좍 흐르게 하는 매운 냄새를 내죠. 이것도 양파와 마늘의 자기방어 수단이랍니다.
- 이 외에도 피톤치드(phytoncide), 송진 같은 물질도 모두 식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내는 물질들입니다. 특히 소나무 같은 나무들은 다른 식물이 발붙이지 못하게 독한 화학물질을 자꾸 배출하지요. 소나무 숲에 가 보면 마른 솔잎들만 잔뜩 쌓여 있고 다른 식물들은 별로 자라지 않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도 소나무가 최후의 승자는 아니랍니다. 자기가 배출한 화학물질이 자꾸 쌓이고 농축되서 나중에는 소나무 자신이 중독되는 일이 벌어진다고 하니까요! 인생의 아이러니여...
◈ 기타 등등
- 어떤 식물들은 전혀 예상치 못할 시기에 새 잎을 냅니다. 새 잎이 너무 일찍 나거나 너무 늦게 나면, 그걸 먹이로 삼아야할 애벌레들이 도통 언제 알에서 깨어날지 헷갈리겠죠? ^^:
- 미모사와 같은 식물은 침입자가 자신의 잎을 건드리면, 갑자기 잎을 팍~ 접어 버려서 침입자로 하여금 혼비백산 도망가게 만든답니다.
- 이 외에도 식물들이 자신을 지켜나가는 방법은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 인간이 모르고 있을 뿐이겠지요.
어때요? 아직도 식물은 수동적이고, 멍청하게 앉아서 적들의 공격을 당하는 불쌍한 존재라고 생각하시나요? 식물은 인간이 생각해왔던 것과는 다르게 매우 똑똑하고 적극적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별난 것만은 아닙니다. 그저 예전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그러한 자연이라는 큰 그림 속의 한 부분일 뿐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