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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구조적 변천사(28)/ 에큐메니컬(세계적 교회) 운동으로 확대 된 선교개념

작성자항상 새롭게(김종신선교사)|작성시간15.01.09|조회수47 목록 댓글 0

 

 

에큐메니컬(세계적 교회)

운동으로 확대 된 선교개념

 

  

에큐메니컬 운동은 지난 60년대에서 부터 붉어지기 시작했다. 한국교회의 개혁주의 강성으로 인하여 그 흐름이 소강상태로 지속하여 왔었다. 그러다가 21세기 접어들면서 다시 붉어졌고 더욱 그 강도가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 동안 한국 개신교에 비중을 차지하며 중심에 서 있었던 대중적인 목사가 세계 에큐메니컬 협의회 회장에 등극한 것이다.

 

 

개인적 명성을 세계 종교 에큐메니컬 운동의 대표주자가 되어 헌신하고자 기꺼이 자신을 내어 준 것이다오늘의 에큐메니컬 운동을 실현 된 과거 역사와 연결해서 생각해 본다면 중세 가톨릭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통합과 통제로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가톨릭은 로마정부와 기독교의 결합구조로써 현 세계 지구적 통합 구조로의 방향에 매우 적절한 체제였다고 보는 것이다오늘 시대는 각 나라 지역적 통합은 소극적 환경으로 내 몬다. 허지만 지구적 통합은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합법적 방식으로 추구하는 힘이 되고 있다.

 

 

심지어 정교(政敎) 통합 구조가 오늘 시대의 사회적 배경으로 실행되고 있다. 다만 과도기적 현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직은 문제 되지 않을 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간기적 현상으로써 완충지대라 할 수 있다. 사회 모든 구조가 세계화를 위해서 통합되어가는 중간기적 완충지대이다.

 

 

완충지대란 통합구조가 드러나지 않고 힘을 받아 점차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과도기적 공간을 의미한다이러한 배경 속에서 과거 로마정부와 기독교 통합에서 나오는 종교적 통폐합을 추구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오늘과 다른 점은 교회가 주도하는 로마 정부 관료적인 제도권으로 진행 된 통합구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그 뿌리는 가톨릭의 옷을 입은 로마 제도권으로부터 비롯되는 전형적인 세속화의 유형이다. 이는 구약의 바벨론이나 앗수르와 같은 세속을 향해서 나아가는 성질로 동일선상(同一線上)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문제이다. 지극히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중심하는 현실로 그래서 인간적 기반이 중심 되는 제도권적 성질이다.

 

 

인간중심의 현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치우친 교회 통합구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가톨릭교회 보편성의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가톨릭의 입장에서 교회 보편적 교리는 매우 그럴 뜻하게 선언하고 있다. 허지만 우리는 여기에 속으면 안 된다.

 

 

이는 자신들의 권위를 보존하기 위한 차원에서 초기 카톨릭의 슬로건을 그대로 채택할 뿐이다.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 된 교회를 저는 믿나이다.”라고 구술(口述)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어 카토론, kath’olon, 전체에 따라서 보편적 세계 보편적 교회라는 어원에서 그 의미를 가져 온 것이다.

 

 

여기서부터 보편적 개념이 발전되어 공적 개념으로 삼았다. 이 개념 자체는 대단히 광의적(廣義的)이고, 포괄적(包括的)이며, 자부심(自負心)이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모든 민족, 모든 나라, 모든 지역들이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세계적) 교회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크게 3가지 차원에서 해석되고 있다. 먼저는 진리, 구원 등, 기독교 신앙과 관계 된 모든 필요한 것을 언제라도 얻을 수 있는 집과 같은 교회로써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교회는 전 세계에 널려 있으며 어디에서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차원에서 전세계적이라는 의미로써 보편적이다라고 했고, 마지막으로, “교회는 일치(一致)와 다양성(多樣性)’을 본()으로 하는 조화(造化)의 공간이기에 보편적이다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가톨릭의 보편적 교회 교리는 외관상으로 볼 때 전혀 허물이 없다. 오히려 엄청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성경적 배경을 그리고자 한 것처럼 보인다. 허지만 이는 정치적으로 세상을 포용하는 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가톨릭 울타리 차원에서 재정 된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는 가톨릭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조직체로 신적이며, 왕권적이고, 가적이고, 세계적인 배경의 위치가 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실존하는 인간적 요소들을 포괄(包括)하고자 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권력구조로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그 어떤 국가도 가지지 못한 통일성(統一性)과 일체성(一體性)을 바탕으로, 거기다가 종교적인 권위까지 가진 가장 독특한 조직구조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울타리 원리가 형성 된 가톨릭 역사로써 구성되어 점진적으로 확고(確固)하게 굳혀 진 보편적 교회라 할 수 있다. 교황청이 시작 되었던 가톨릭은 로마정부의 비호(庇護)를 받으며 교회의 거룩한 영적 실재(實在)에서 이탈(離脫)하기 시작했다.

 

 

대신 그 자리를 로마적인 권력형 구조로 가상(假想)의 교회적 현실을 만들어 채워갔던 것이다. 교회의 영원성과 신령한 영적 권위는 무너지고 현실 감각이나 세속의 시각에서 비롯되는 가시(可視)적으로 화려한 지상의 권위에 매료(魅了)되어 버렸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가톨릭교회 보편성(普遍性)이 현실적인 공적 위치로 진보되어 지금의 실체(實體)가 된 것이다.

 

 

허지만 이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제자들에게 남기신 사역을 담당해야 하는 교회 근본적인 보편성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기반으로 하는 보편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가 로마 국교 화 된 이후 어느 정점까지도 교회 본래적 보편성은 실제적으로 성경으로부터 나오는 교회 기반과 일맥(一脈)하였다.

 

 

어느 정점까지란 팔레스타인 1세기 공동체 교회시대부터 로마교회 교황권 등극 이전까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교회사(敎會史)는 말해 주고 있다. 이때의 교회 보편성은 성경에 기반을 두는 교회의 순수성 차원에서 복음의 실체였던 교회 기반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허나 교황권 시행 이후부터 가톨릭은 로마권력과 융해(融解)되고 철저히 현실중심의 제도권적 교회 현실로써 공간이 되었던 것이다제도권적 배경이란 지상 권력기반 우에서 교회 기반이 철저하게 현실적 구조로 굳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착각(錯覺)하는데서 부터 일어나는 오류적인 현상이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권력과 정보가 제도권의 힘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교(架橋)자로 얻는 행동의 기술, 치기를 잘하는 자로 등극을 하는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힘스스로 수용하는 자세를 합리화(合理化)시키는 인간적 고안(考案)의 성질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가톨릭은 바로 이 같은 세력의 결정체(結晶體)이다. 이 같은 신앙의 길은 현실적으로 너무 강해져 있다. 비단 가톨릭 배경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우리는 이를 정치력이나 현실 감각의 탁월한 능력자로 치부(致富)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긍정론이 천국의 사명을 경시하는 환경들이 조성되고, 결국 교회 본연의 힘이 약화(弱化)되는 현실이 되고, 참 된 종들이 설자리를 잃어가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로마교회가 역사적으로 교회에 교훈이 되는 것이다. 로마교회는 성경으로부터 이탈 되는 간격(間隔)의 골이 깊어졌고, 이것이 오늘의 교회적 권력 기반시대로 나아 온 것이다로마교회는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선교 패러다임에 근원적인 변질의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종교개혁 이전까지의 중세교회 선교는 전쟁과 직결되었다. 왜냐하면 로마정부와 기독교가 일체 된 하나의 구조였기 때문이다. 로마가 전쟁에 승리하면 그 지역은 곧 바로 기독교 사회로 환골탈퇴의 대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풍자적으로 이교도들을 기독교로라는 슬로건이 중세의 종교성을 대변했다. , 중세기 로마교회 선교는 국가의 영토 확장과 직결되는 차원이었다.

 

 

지금가지 이러한 로마교회의 선교정책의 변질은 역사의 길이만큼 잘못 된 저력으로 질곡(桎梏)의 변천과정을 통해서 완전히 성경과 다른 구조를 지향하는 오늘의 로마교회 기반시대를 가져 온 것이다. 물론 로마교회가 자체적으로 위기를 벗어나면서 세계로 확산 되는 선교적 성공은 거두었지만 그 타락의 성향은 교황이 신의 위치로 등극하기에 이르렀고, 마리아 숭배사상과 안식일 예배의 부활, 기독론 약화와 더불어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의 교회 기반을 가져 오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보편적 교회관 시대의 문을 연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외관상으로는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전통교회 노선을 표방(標榜)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한 교회 기반이다. 왜냐하면 철저하게 과거부터 시작 된 교회를 배제(排除)하는 미래적인 통합구조로써 보편적 교회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배제한다는 의미는 그리스도의 피 뿌리심으로 죄인을 구속하여 하나님의 백성 삼는 순수한 복음을 철저하게 버리는 배경이라는 점이다. 성경은 이 같은 노선을 사단의 회라고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하나님의 구속 경륜이 주도하여 가는 구속사로써 보편성이 아니라 세속나라의 발전선상에서 이루어지는 보편성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목적지향의 성질에서 나오는 지구적으로 기존 모든 구조와 방식들에 대한 파괴적 경향성이다. 가톨릭은 150년 전부터 가톨릭 기반에서 예수의 위치를 무력화 해 왔다. 지금은 그 경향성이 매우 강해져서 가톨릭 안에서 예수님의 위치는 마리아보다 더 못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다.

 

 

물론 아직은 가톨릭 안에서 완전히 제거 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위치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과 같은 교회적 환경을 하고 있다. , 가톨릭에서 교회적 역사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이 아니다허지만 조만간 가톨릭 구조 안에서 통합구조를 적용하는 자들이 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그 마성을 드러내며 교회적 배경들을 모두 거두어내는 본격적인 움직임이 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점진적으로 다가오는 미래세계는 전적으로 통합되는 지구적 일체제 국가로 드러날 것이고 개신교가 없는 세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현재 개신교 안에서 150년 전 가톨릭이 채택한 기독론 약화 움직임들이 일고 있으며 구약 중심의 신앙 노선이 강한 탄력을 받고 있음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개신교적 상황이고 지구적으로 개신교 기반에서는 이러한 가톨릭 증세가 나타난 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라는 사실이다그렇다. 역사 속에서 성경적 교회 기반 우에서 시작했던 가톨릭교회 기반은 왜곡이 일어났고 그 왜곡 기반은 완전히 다른 세상을 지향하는 현실이 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자신들의 실재(實在)로 만들기 위해서 성경을 도용(盜用)하는 것이다. 가톨릭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이는 점진적으로 세속화 되는 역사 속에서 왜곡의 힘이 가미(加味)되고 절대화 되면서 그것이 교회의 중심권에 뿌리를 내려버린 것이다.

 

 

주님은 이러한 종교적 유형을 외식(外飾)하는 자들로 규정(規定)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은 이러한 가미 된 종교 율이 세상을 주도해 간다는 사실이다.

 

 

본서는 이러한 종교성을 이스라엘이 걸어갔던 길로써 중간지대로 명명(明明)하고자 했다. 바로 중세교회였던 가톨릭이 그대로 세속의 구조로 만들어서 걸어온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교적 권위가 그럴 듯하게 진리처럼 포장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종교적인 에큐메니컬 운동은 바로 이 같은 가톨릭 노선을 따라가는 것이다. 현재 에큐메니컬과 가톨릭은 같은 선상에서 고차원적으로 일맥상통하며 세계의 모든 변화를 주도해 가는 파괴적 성질들로 조화를 부리는 마법의 세계를 도용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합법화하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1세기 공동체였던 초대교회부터 시작 된 세계 공교회의 시작을 자신들의 모임의 기원으로 갖다 붙인다. 허지만 이는 그 근원부터 다른 길임을 말해 준다. 초대교회협의체는 오직 한 분, 주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연합이다.

 

 

주님의 피 흘리심의 구속의 은총과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시는 교회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다. 허지만 현대의 에큐메니컬 운동(WCC)은 세계 종교적 통합체적 성격이다. 세계 종교통합이지만 예수 부정의 종교 통합이 그 실상이라 할 수 있다.

 

 

, 전 지구 국가, 사회적인 종교통합 개념이다. 철저히 인류 사회 발전 동력으로써 사회 지향적 종교로 위치가 설정 되는 통합이다. 기독교의 성경적 독특한 울타리의 거룩한 개성들이 사라지는 통합구조이다. 다양성이란 종교적 입장에서 오직 성경의 원리를 절대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의 주관적인 요소들을 부정해야하는 통합이다.

 

 

당연히 교회의 모든 성경의 원리가 갖는 특수성을 버려야 할 것을 필수 요건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이 획득되는 구속사적인 배경 역시 철저히 배제(排除)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1960년 대 들어서자마자 개신교와 구교가 동시에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버린 근원이라 할 수 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속을 이룸에 있어서 통합이 아니다. 이것은 60년대에 본격적으로 적용되어진 개념이다. 교회적 사명으로 적용되는 생명 구원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정치 활동을 포함하는 넓어진 선교 개념이다. 사회학적으로는 발전 된 개념으로 보지만 성경적 선교관에서 볼 때에는 중세교회의 이탈과 같은 경우이다.

 

 

1980년 오스트렐리아 멜본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의 세계 선교 및 전도 대회는 선언하기를, “인권을 위한 투쟁에의 참여는 그 자체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말과 행위로 선포할 교회의 전체적 선교(사명)의 중심적 요소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윽고 1983년 세계교회협의회의 선교와 전도 선언서도 진술하기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개인의 회개를 요청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조에 대한 도전이다. 복음 전도는 이 세상의 구조들, 즉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제도들에 대해 말한다고 했다. 이러한 배경들이 남미의 혁명적 기독교 운동이 등장했고, 이것이 우리 사회 민중 신학 등의 배경이 되었다.

 

 

행동하는 기독교라는 미명아래 혁명적으로 사회를 전복하고자 하는 폭력주의가 교회의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전형적으로 육체 안에 머무르는 비신앙적 교회 환경을 조장한 것이다이것은 세계 교회협의회의 이름 아래서 진행이 되었다. 복음주의라는 세계교회협의회는 바로 현실 인간적 삶의 이유들을 위해서 교회를 이용하는 영적 행음(行淫)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선교 개념은 특히 1961년 국제선교협의회가 세계교회협의회의 세계선교 및 전도위원회로 통합된 이후 그 위원회의 의장이 되었던 필립 포터의 지도 아래 나타났다. 이 선교 개념은 1968년 세계교회협의회의 웁살라 총회에서 공적으로 제안되었고, 1973년 방콕에서의 세계 선교 및 전도 대회에서 강조되었다.

 

 

세계의 이러한 교회적 흐름들이 오늘의 교회시대를 가져 온 것이다. 철저하게 제도권화 된 교회가 된 것이다. 이 제도권은 자연법칙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성질로 역행을 하는 제도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잡성(複雜性)이고, 혼란(混亂), 혼돈(混沌), 혼합적(混合的)인 세계화로 몰아가는 성질이다.

 

 

이는 세상을 위한 교회의 본()을 잘못 만들어 버린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힘을 죄악 된 세상을 위해서 사용하는 제도권적인 교회 통합구조라는 환경을 조성(造成)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교회 본연(本然)의 신령성(神靈性)을 버린 것이다. 현실 지구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앞장서고자 하는 생명력 없는 에큐메니컬적인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힘은 교회 본연의 선교 기반을 거두어 내기 위해서 세차게 휘몰아 쳐 오는 파괴적 힘이 되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들은 그 어느 때보다 깨어서 겸비(謙卑)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 의존(依存)하는 신앙으로 무장하고 시험에 들어 넘어짐이나 배반(背叛)함이 없기를 예비(豫備)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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