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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구조적 변천사(31)/ 현대 개신교 세계화 울타리 배경의 선교개념(2)

작성자항상 새롭게(김종신선교사)|작성시간15.02.01|조회수36 목록 댓글 0

 

계속 이어서

 

 

 

복음주의라는 개념은 자유주의로부터 성립 된 포괄적 개념이다. 이것은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주의적 배경에서 일어난 개념이다. 인본주의적 수용력을 갖춘 현대 종교구조의 면모(面貌)이다. 지난 60년대 이후 전세계 교회가 이 울타리 안으로 모인 것이다.

 

 

모든 성경적 원리나 교회적 역사관에 대해서 재해석하는 유사하고 세계화되는 원리가 더욱 중요시 되고 있다. 이러한 현대 교회적 배경은 교회가 본래적 선교 개념으로부터 멀어져 가게 하는 움직임들이다.

 

 

종말시대의 사단이 무저갱에서 잠시 놓임을 받는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 놓임을 받은 사단이 오늘에 어떠한 활동으로 나타날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서 직관적인 통찰은 허용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시대적 정황을 볼 때 사단이 교회의 환경을 자신의 발아래 놓고자 발악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을 자신의 발아래 놓고자 시험을 했던 사단이다. 종말의 최종종결의 시간대의 사단은, 무저갱에서 잠시 놓임을 받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지금의 교회적 상황, 사단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시대로 이미 들어 와 있는 것이다. 잠시 놓임을 받은 사단은 최후의 발악을 하는 마지막 힘이기 때문에 강력히 활동하게 될 것을 성경은 명시해 주고 있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처하게 되는 참 신자들의 환난의 때인 것이다.

 

 

이러한 교회 현실적 정황은, 교회의 현실적 제도를 장악하여 성경 중심의 전통적 환경을 각색(remake)하는 현대적 환경과 무관치 않다는 사실이다. 공산주의 세계가 당이 교회 환경을 장악하여 철저히 교회적 환경을 거두어내고 당을 위한 교회로 전락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단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성경적 원리나 신학적 교리 자체를 조절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인간의 속성에 직접 개입하고 들어 온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교회 제도와 직접 관계되는 목회자들을 제압하거나 직무를 제대로 감당 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단의 전략은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오늘 현대의 교회를 섬기는 제도권의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 한 것이다.

 

 

교회 내부 목회자와 성도들의 마음들이 주님을 배반토록 한 것이다. 이것이 종말시대의 불법을 행하는 무리들인 것이다. 복음주의적 교회 제도는 교묘히 전세계의 기독교를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서 관리에 편리성을 도모하는 제도적 구조를 구축 해 놓았다.

 

 

복음주의 교회 제도권에 의해서 세계 모든 기독교의 활동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다. 자신들이 만든 기독교 무대를 오직 자신들만이 추구하는 목적 사회 환경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하여 기독교의 과거, 현재, 미래의 시공간을 마음대로 조작(造作)하게 되어 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도가 중심 된 무형교회의 영속성의 성격이 아니다. 잠시 동안, 최종 종결의 시간대에 허용 된 것이다. 이는 엔트로피 법칙이 지구적으로 작용되는 현상이다. 지구적인 원재료가 다 되면서 새로운 에너지가 형성되어 작용되는데 그것이 바로 파괴적 성질이다.

 

 

이것은 불규칙적 성질이 지구의 주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최종 종결의 시간대의 타락의 완결 자락(自落)에서 일어나는 주 된 성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대적 교회 환경은 과거 실현된 교회의 신앙적 배경을 버리는 노력들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변형적 과도기로 진행되고 있다. 과거 비정상적, 혹은 음성적으로 실현되었던 비전통의 교리나 방식을 극대화 하거나 양성화 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전통적 구조의 보호아래 있는 성경적 원리나 교회적 환경을 약화 내지 방임 구조로 교회 관심에서 밀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현재의 교회적 공간을 만들어 온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시대의 과학적 철학이나 상업적 정보화 구조가 큰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대 지구적 인류와 사회는 기독교의 신앙을 버리고 다른 종교형태를 추구하는 경향성이 점점 강성해지고 있다.

 

 

이렇게 해서 탄생되는 과정들은 고스란히 미래를 향하는 다른 방향의 종교관이 되는 것이다. 이미 교회 구성원들에게서 이러한 조짐들은 드러나기 시작한 지가 오래전의 일이 되고 있다. 교회 내부 목회자와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를 압박하는 형태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복음주의적 교회 배경, 넓혀진 선교 개념의 그라운드이기에 가능해 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 보수주의 진영의 혹자들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반역행위라고 공격할 지도 모른다.

 

 

본서가 현대교회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나 주권 등의 신앙의 본질문제를 다루고자 함과 동시에 어리석은 인간의 타락의 행위가 어디까지 나아가게 되는지를 진리의 원리에 입각해서 현대 교회적 상황문제를 밝히고자 함이다.

 

 

어떻게 보면 본서는 신앙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한다는 인간의 실천적인 배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어그러지게 하는지의 현상의 문제를 일으키는 오늘의 교회시대를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배경에서 광의적으로 밝히고자 하며 교회 본연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고자 함에 있다.

 

 

현대 교회는 참으로 위기이다. 더군다나 경건주의 써클들은 거룩한 명분이란 이름으로 자리 보존에만 연연할 뿐이다. 스스로 거룩한 합리성을 명분으로 말이다. 스스로 이렇게 속삭인다. 언제나 교회 역사에서 이러한 위협 요소들이 있었다는 논리에 충실하게 임하고자 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보전하여 지키셨다는 거룩한 의미들 안으로 들어가 숨고서는 은근히 자기합리화를 대치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교회가 무너져 가는데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성령의 이름으로 합법적으로 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적 신앙이 선동(煽動), 선정(煽情)적인 환경을 조성해 가면서 지극히 성경에 맞는 원리로 잘 맞추어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교적으로 전통신앙을 잘 갖고 다루는 교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더 음흉하고 교활하면서 외형적으로 선한 모습을 잘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에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리듯이 위기의 순간들을 잘 털고 넘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교회의 위기 중에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위하는 것 같지만 철저하게 인위적으로 만들어가는 신앙 배경이기 때문이다. 교묘하게 자신의 의를 잘 포장하여 내 놓으면서 진리는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려고 한다. 인위적인 성향은 그 기준이 교활하게 자신에게 맞추어진 적극적인 삶의 형태를 말한다.

 

 

현대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살아가는 힘이 교회 안팎으로 펼쳐지는 시대라 할 수 있다. 교회 안에서는 다만 성경의 원리로 고백이란 슬로건 뒤로 숨어서 추구하기 때문에 진위여부 알기가 어려울 뿐이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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