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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구조적 변천사(32)/ 현대 개신교 세계화 울타리 배경의 선교개념(3)

작성자항상 새롭게(김종신선교사)|작성시간15.02.02|조회수43 목록 댓글 0

 

 

 

지난 편 계속 이어서

 

 

 

로마서에서 바울 사도께서 지적하셨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으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가 아니라 자기 의를 위하여 행할 뿐이다라고 하시며 진정한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서 설파(說破)했다. 믿음의 정수를 말한 것이다. 구약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지적하기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믿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의 행위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主權)과 경륜(經綸)에 달린 문제이다. 허지만 현대는 인간의 행위에서 기독교 신앙을 각색(脚色)하고자 하는 경향성(傾向性)의 시대가 되었다. 인간의 이성과 의지는 진리를 왜곡함에 더욱 강해졌고, 신앙은 감성적으로 규명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과 인간의 필요에 따라서 너무 쉽게 달라지는 시대가 열려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무형(無形)교회가 결국은 승리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보호하심이다.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은혜이다. 이 은혜에 의해서 우리가 우리 되고’ ‘교회가 교회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소개하고 있다. 교회의 보전성은 하나님의 은혜가 두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본서는 이를 교회의 신령성의 측면에서 줄기차게 제시하며 다루게 될 것이다.

 

 

종말의 최종 종결의 시간대환란의 때에 저울을 달아 보신다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는 성도의 인내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 대 환란의 공간에서 하나님은 성도의 인내를 보신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무저갱에서 놓임을 받은 사단이 주도하는 시대에 성도는 환란의 기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를 전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이를 은혜의 때가 지나고 환란의 때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성도의 인내를 냉정하게 바라만 보신다고 말하고 있다. 종말의 최종종결의 시간대는 은혜의 때와 같이 적극적으로 돕고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성경 그 어디에도 밝혀서 말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의 인내를 바라보시는 것이다. 성도 개개인이 환란 기간에 놓여서 시험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이때는 보호보다 고난과 고통으로 버림받는 것과 같은 공간으로 던져지고 내버려지는 상태를 말한다. 허지만 그 때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참 된 백성들이 그 환란의 시기를 잘 통과 할 수 있도록 이미 조치를 취해놓으셨다는 사실이다.

 

 

조만간 현대사회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공격 대상이 되는 그러한 공간을 가지고 올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이미 성경은 주님의 입을 통해서 놀라운 예고들을 해 놓으셨다. 시험에 빠지고 의문에 사로잡힌 성도들이 육신에 포로가 되어 배반을 하고 서로 고발하며 잡아들이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교회와 성도가 배도하는 일들이 많아지는데 목사와 성도들이 다른 목사와 성도들을 고발하고 잡아 가두고 죽이는데 내어주는 대 환란의 시대가 일어나게 될 것을 이미 성경은 예고하여 말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갈수록 오늘날 세계 교회적 환경은 그러한 시대를 예고나 하듯이 변질현상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상에서 성경과 신앙의 왜곡들이 편하게 되어졌다. 온갖 현실적 이유들과 자기중심적인 관점으로 변명하는 일들이 능숙하게 이루어지는 현장이 되었다. 특정한 목회자들의 권위는 천국의 특권이 자기 손 안에 있는 것처럼 신앙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졌다.

 

 

이미 오래전에 직위가 감투처럼 되어져 왕처럼 행동하고 있다. 교회를 사고팔고 하는 잘못 된 관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져 왔다. 이제는 이러한 현실적 이유들에 의한 환경이 중세교회의 성직매매와 같은 조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매우 조심스럽게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지만 전별금 차원에서 돈 봉투로 목회직이 서로 통용되는 시대가 되었다니? 오호 통제로다! 그러니 그 누가 전임자나 후임자를 존경하고 인정하겠는가? 이는 한국교회 신앙적이고 교회사적 전통이 이어지지 못하게 하는 조짐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들끼리 서로 존경 못하는 이유들에 사로잡혀서 쉬쉬하는 교회적 배경이 되니 어떻게 성령의 역사가 영혼들을 살리는 교회적 환경으로 인도하시겠는가? 계속 이러한 타락한 불법의 행위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인데, 어떻게 한국교회 전통이 이어지고 그것이 어떻게 주님의 몸 된 교회적 전통으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 이것이 성직매매로 나아가기 전 부패가 교회 안에 싹트기 시작한 대담성이 아니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라는 이름아래 자기중심의 명예와 생활로 전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지 못하는 행위들이 됨에도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당연하다고 하며 왜곡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이것이 우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의 위치와 행위를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우습게 되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교회 기반은 분명히 잘못된 신앙적 배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잘못 된 신앙 유형은 타락한 불순종의 형태일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무너트리는 근원적인 문제이다.

 

 

중세교회를 이미 답습하기 시작한 타락의 기운으로 바로 반역기질이다. 이스라엘이 걸어갔던 그 반역과 대립의 길을 그대로 따르는 오늘의 한국교회 안에서 일기 시작한 타락의 배경이다. 하루속히 이러한 타락기질들을 몰아내어야 한다. 이러한 배경이 교회구조를 장악하고 주도하는 환경을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 한국 교회의 경건성과 신령성을 고집하는 참 목회자와 성도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배경은 바로 세계화가 가져오는 교회의 위협이요 교회 내부의 타락성이 강렬해져 가는 이유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같은 세계화의 힘이 신앙을 고집하고 지키려고 하는 것이 가장 정상이고 바람직한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거룩한 채한다라는 식으로 몰아가며 소위 따돌리기 식 교회 환경으로 교회 안의 신령한 기반을 거두어 내버리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소위 유대적 전통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한 교회적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잘못 된 조직 기반을 중심하기 위해서 교회법이 운용되는 것을 말함이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서 참 된 종들과 성도들을 배제해 가는 잘못 된 교회법이 만들어지고 강화되어 가는 것이다.

 

 

바로 세계화적 흐름이 교회 안에 배도하는 물결을 이루게 될 것이고 참 된 종들과 신자들을 고발하고 옥에 가두는 일들이 일어나는 현실로 연결 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과도기적 현상이 되고 있다.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는가? 분명히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교회가 스스로 이를 바로 잡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인간이 개인적으로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기질이 내일의 진리 문제보다 더 주요한 인간 의지의 문제이다. 이러한 인간적 요소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면서 진리의 수종자들이 사명을 소홀히 하는 현실이 되고 항상 교회적인 위협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이스라엘을 패역한 족속”, 즉 반역한 무리라고 칭했던 것이다. 이는 타락한 인간의 기질이 어떻게 매사에 진리를 왜곡하는 기질이 되는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앞으로도 세계화적 배경은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를 급속도로 원치 않는 방향으로 몰아가게 될 것이다.

 

 

구원을 받지 못한 목회자나 성도들은 여전히 육적인 탐욕에 의해서 가장 합법적인 이유들을 만들어 내며 적극적으로 세계화를 수용하며 상대적으로 신앙을 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현대 교회의 영적 전쟁으로 이어지는 세계화적 배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현대 바벨탑 쌓기에 동참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고린도서가 말하는 것처럼 아직도 육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현실적 탐욕에 기꺼이 노예로 전락하는 길을 택한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양단간에 믿음인가, 불신앙인가? 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할 때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로마서에서 바울 사도께서 지적하셨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으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가 아니라 자기 의를 위하여 행할 뿐이다라고 하시며 진정한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서 설파(說破)했다. 믿음의 정수를 말한 것이다. 구약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지적하기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믿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의 행위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主權)과 경륜(經綸)에 달린 문제이다. 허지만 현대는 인간의 행위에서 기독교 신앙을 각색(脚色)하고자 하는 경향성(傾向性)의 시대가 되었다. 인간의 이성과 의지는 진리를 왜곡함에 더욱 강해졌고, 신앙은 감성적으로 규명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과 인간의 필요에 따라서 너무 쉽게 달라지는 시대가 열려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무형(無形)교회가 결국은 승리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보호하심이다.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은혜이다. 이 은혜에 의해서 우리가 우리 되고’ ‘교회가 교회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소개하고 있다. 교회의 보전성은 하나님의 은혜가 두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본서는 이를 교회의 신령성의 측면에서 줄기차게 제시하며 다루게 될 것이다.

 

 

종말의 최종 종결의 시간대환란의 때에 저울을 달아 보신다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는 성도의 인내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 대 환란의 공간에서 하나님은 성도의 인내를 보신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무저갱에서 놓임을 받은 사단이 주도하는 시대에 성도는 환란의 기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를 전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이를 은혜의 때가 지나고 환란의 때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성도의 인내를 냉정하게 바라만 보신다고 말하고 있다. 종말의 최종종결의 시간대는 은혜의 때와 같이 적극적으로 돕고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성경 그 어디에도 밝혀서 말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의 인내를 바라보시는 것이다. 성도 개개인이 환란 기간에 놓여서 시험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이때는 보호보다 고난과 고통으로 버림받는 것과 같은 공간으로 던져지고 내버려지는 상태를 말한다. 허지만 그 때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참 된 백성들이 그 환란의 시기를 잘 통과 할 수 있도록 이미 조치를 취해놓으셨다는 사실이다.

 

 

조만간 현대사회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공격 대상이 되는 그러한 공간을 가지고 올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이미 성경은 주님의 입을 통해서 놀라운 예고들을 해 놓으셨다. 시험에 빠지고 의문에 사로잡힌 성도들이 육신에 포로가 되어 배반을 하고 서로 고발하며 잡아들이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교회와 성도가 배도하는 일들이 많아지는데 목사와 성도들이 다른 목사와 성도들을 고발하고 잡아 가두고 죽이는데 내어주는 대 환란의 시대가 일어나게 될 것을 이미 성경은 예고하여 말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갈수록 오늘날 세계 교회적 환경은 그러한 시대를 예고나 하듯이 변질현상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상에서 성경과 신앙의 왜곡들이 편하게 되어졌다. 온갖 현실적 이유들과 자기중심적인 관점으로 변명하는 일들이 능숙하게 이루어지는 현장이 되었다. 특정한 목회자들의 권위는 천국의 특권이 자기 손 안에 있는 것처럼 신앙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졌다.

 

 

이미 오래전에 직위가 감투처럼 되어져 왕처럼 행동하고 있다. 교회를 사고팔고 하는 잘못 된 관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져 왔다. 이제는 이러한 현실적 이유들에 의한 환경이 중세교회의 성직매매와 같은 조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매우 조심스럽게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지만 전별금 차원에서 돈 봉투로 목회직이 서로 통용되는 시대가 되었다니? 오호 통제로다! 그러니 그 누가 전임자나 후임자를 존경하고 인정하겠는가? 이는 한국교회 신앙적이고 교회사적 전통이 이어지지 못하게 하는 조짐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들끼리 서로 존경 못하는 이유들에 사로잡혀서 쉬쉬하는 교회적 배경이 되니 어떻게 성령의 역사가 영혼들을 살리는 교회적 환경으로 인도하시겠는가? 계속 이러한 타락한 불법의 행위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인데, 어떻게 한국교회 전통이 이어지고 그것이 어떻게 주님의 몸 된 교회적 전통으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 이것이 성직매매로 나아가기 전 부패가 교회 안에 싹트기 시작한 대담성이 아니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라는 이름아래 자기중심의 명예와 생활로 전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지 못하는 행위들이 됨에도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당연하다고 하며 왜곡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이것이 우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의 위치와 행위를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우습게 되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교회 기반은 분명히 잘못된 신앙적 배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잘못 된 신앙 유형은 타락한 불순종의 형태일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무너트리는 근원적인 문제이다.

 

 

중세교회를 이미 답습하기 시작한 타락의 기운으로 바로 반역기질이다. 이스라엘이 걸어갔던 그 반역과 대립의 길을 그대로 따르는 오늘의 한국교회 안에서 일기 시작한 타락의 배경이다. 하루속히 이러한 타락기질들을 몰아내어야 한다. 이러한 배경이 교회구조를 장악하고 주도하는 환경을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 한국 교회의 경건성과 신령성을 고집하는 참 목회자와 성도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배경은 바로 세계화가 가져오는 교회의 위협이요 교회 내부의 타락성이 강렬해져 가는 이유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같은 세계화의 힘이 신앙을 고집하고 지키려고 하는 것이 가장 정상이고 바람직한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거룩한 채한다라는 식으로 몰아가며 소위 따돌리기 식 교회 환경으로 교회 안의 신령한 기반을 거두어 내버리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소위 유대적 전통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한 교회적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잘못 된 조직 기반을 중심하기 위해서 교회법이 운용되는 것을 말함이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서 참 된 종들과 성도들을 배제해 가는 잘못 된 교회법이 만들어지고 강화되어 가는 것이다.

 

 

바로 세계화적 흐름이 교회 안에 배도하는 물결을 이루게 될 것이고 참 된 종들과 신자들을 고발하고 옥에 가두는 일들이 일어나는 현실로 연결 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과도기적 현상이 되고 있다.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는가? 분명히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교회가 스스로 이를 바로 잡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인간이 개인적으로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기질이 내일의 진리 문제보다 더 주요한 인간 의지의 문제이다. 이러한 인간적 요소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면서 진리의 수종자들이 사명을 소홀히 하는 현실이 되고 항상 교회적인 위협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이스라엘을 패역한 족속”, 즉 반역한 무리라고 칭했던 것이다. 이는 타락한 인간의 기질이 어떻게 매사에 진리를 왜곡하는 기질이 되는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앞으로도 세계화적 배경은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를 급속도로 원치 않는 방향으로 몰아가게 될 것이다.

 

 

구원을 받지 못한 목회자나 성도들은 여전히 육적인 탐욕에 의해서 가장 합법적인 이유들을 만들어 내며 적극적으로 세계화를 수용하며 상대적으로 신앙을 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현대 교회의 영적 전쟁으로 이어지는 세계화적 배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현대 바벨탑 쌓기에 동참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고린도서가 말하는 것처럼 아직도 육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현실적 탐욕에 기꺼이 노예로 전락하는 길을 택한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양단간에 믿음인가, 불신앙인가? 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할 때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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