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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교회되지 못하게 하는 이유들 (3) 현실적 이유

작성자항상 새롭게(김종신선교사)|작성시간17.03.28|조회수96 목록 댓글 0



교회가 교회되지 못하게 하는 이유들

3. 현실적 이유들

 

 

 

인간만큼 간사하고 교활한 존재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속일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상 하나님을 속일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 징게는 없고 현실은 눈앞이고 그래서 괜찮겠지 하면서 교활성을 부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성경에서 지적한 대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악을 행한다라는 의미이다. 이사야 선지자의 글처럼 현실 속에서, 현실이란 이유 때문에, 눈썹 하나 깜박 거리지 않고 변경하고 마음대로 하는 인간의 교만과 잘못 된 담력으로써 강팍해지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현실과 교회는 상호작용(相互作用)의 역행(逆行)적 관계라 할 수 있다. 교회가 현실 속에 있으면서 세상을 역류(逆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교회는 너무 현실에 안주하는 길을 새롭게 택한 것은 아닌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더욱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교회 본연의 길과 다른 교회 시대를 만들어 간다고 말 할 수 있다. 혹은 교회 2천 년 역사의 신앙 유산을 버리거나 방임하는 현대 교회 환경을 조성하는 변질의 시대를 의미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매 시대마다 가장 거대한 이유가 되는 현실과 그 시대의 정황(情況)이란 이유 때문이다. 언제나 성경이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벽에 의해서 일어나는 변질의 질곡의 이유에 의해서 바뀌는 그 시대 문제이다.

 

이는 어느 시대이고 그 시대마다 일어나는 교회 위협의 문제였다. 복음이 전파되어 들어간 지역에서 선교 1세대, 2세대, 3세대를 거치면서 일어났던 문제였다. 교회가 어떤 지역으로 들어가서 완전히 토착화를 이루지 못하고 몇 세대를 거치면서 일어나는 위협의 문제이다.

 

복음이 강렬하게 역사되며 주도했던 초대교회와 중세시대는 교회 중심 시대의 역사가 비교적 길었지만 근현세로 들어오는 어귀에는 그것이 선교 3세대를 넘어가지 못하고 옮겨지는 주기가 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하는 시공간으로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선교 주기가 빨라지고 짧아지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결코 주님의 복음의 능력이 약화 된 것이 아니다.

 

시대가 종말의 최종 종결의 시간대로 향할수록 복음이 들어가는 지역의 인간성이 교활해짐으로 해서 나타나는 현상이고, 인간의 탐욕이 교회 영적 자산을 고이 간직하고 지키려고 하는 신앙심보다 인간의 탐욕이 교회 시대 타락을 빠르게 가져옴으로 길지 못함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선교 3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성경은 제사장들이 예배와 하나님 섬기는 그 자체에 마음을 두지 않고 잿밥, 즉 재물에 더욱 관심을 두는 탐욕의 인간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림으로 나타나는 불안전한 신앙세계라고 지적하여 말한다.

 

오늘은 이 차원에서 교회가 교회되지 못하게 하는 그 이유들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어떤 점들이 현실적 이유로 인해서 교회 안에 발생하는 문제들인지? 이를 구체적으로 짚도록 하겠다.

 

 

먼저 교회 있어서 현실이란 의미란 무엇인가? 이것은 지극히 기본적인 문제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체로써 이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를 확대해석을 하자면, 인간은 이 지상에서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한계 안에 있는 존재이다.

 

이것은 우리가 육신적으로 생명이 붙어 있는 한은 부정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신자들의 현실은 불신자들과 좀 다르다. 좀 다르다고 표현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다름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 신자들은 영적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세상 사람들과 근본 차이를 갖는다. 그럼 영적 존재란 어떤 의미인가? 창조주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고 섬기는 자들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세상에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확인 되는 문제가 아니다.

 

닫혀 있고, 인간 문제를 푸는 열쇠와 같은 부분이다. 닫혀 있지만 인간과 인류 사회 문제를 푸는 해답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이를 미련한 것으로 생각하는 교만성 때문에 닫혀 있는 문제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있어서 현실이란 지상에 머물고, 세상의 부정으로부터 인내하는 장소와 시간으로부터 직접 부딪히는 과정을 가리켜서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성도가 우주 한 공간에서 생활하거나, 죽어서 바다 아래 지하 어떤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상 현존하는 교회로써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어려움을 직접 경험하는 현장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 종살이 현실로부터 벗어나서 광야를 향해서 행진하는 배경을 말하는 것과 똑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는 현실을 가졌지만 그 신앙을 지켜 감에 있어서 주위 소아시아 고대 근동지역의 수많은 문제들로부터 각종 밀려올 유혹과 시험들을 이길 뿐만 아니라 당장은 신앙의 자유를 누리기 위한 장소를 획득해야 하는 전투를 치러야 하는 현장을 말하는 것이다.

 

, 우리가 현실적으로 먹고 살아가야 할 인생의 1, 2, 3차 문제들을 해결해 가야 할 뿐만 아니라 이 가운데서 어떻게 믿음을 잘 지켜가야 할 것인지 영적인 문제를 앉고 살아가는 현장이라는 것이다.

 

이는 육체 문제와 영적 문제를 동시에 짊어지고 가는 존재들이라는 차원에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차라리 세상 사람들은 먹고사는 육의 문제만을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편하기 그지없다. 진리와 영적 세계를 모르고 또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편하겠는가?

 

주님께서도 세상 사람들이 자기 제자들보다 세상살이가 훨씬 더 지혜롭고 강하다는 의미의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비웃는 것이다. 이치에 안 맞는 생각에 목숨을 걸고 정성을 들인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진리를 모른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세상이 영적으로 무지하고 교만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행한 대로 갚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문제이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살면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인간인데 먹고 살아야 하는데 있어서 걸리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사랑도 하고, 자기 꿈도 펼치고, 승진도 하고, 사람들로부터 유명해지는 명예도 가져야 하고, 부와 권력으로 영화로워지고 자기 가족과 가문을 확장해야 한다.

 

성공적인 삶을 살고 후대에 무언가를 남겨줘야 한다. 그 만큼 욕심을 이루는 삶을 마음껏 살아야 하는 것이 세상 현실이다. 세상은 1, 2, 3차 자신과 자신을 위한 생활로 이 지상에서 마음껏 삶을 추구 할 수 있다.

 

그런데 성도들은 신앙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이것도 걸리고, 저것도 걸리고 너무 보폭이 좁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이 세상에서 성경대로, 믿음대로 살라니까 걸리는 것이 너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럴 때 어느 날 나이가 들면서 인간은 회의가 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대충 눈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잘만 잘 살아가는 것이다. 교회에서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목회도 더 잘하고, 장로도 일찍 되고, 중요한 인물들로 인정받는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자기는 항상 거기서 거기고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배척 받는 현실이 아닌가?

 

누구하나 알아주는 현실이 아니다. 내가 꼭! 이렇게 바보 같이 살 필요가 있을까? 이러한 현실 앞에 우리 모든 인간은 봉착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인간에게만 있는 자기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도, 동물도 없는 인간에게 있는 양심의 소리이다.

 

이것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일생 살아가는 동안 한 번 쯤은 만나게 되어 있는 직면의 순간이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언젠가 한 번은 만나게 되어 있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소리 문제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 누구든지 신앙이나 사회에 첫 발을 내 딛는 순간이다. 사회와 직결해서, 인간이 성장을 하여 책임을 질만한 단계로 갈 때 겪게 되는 내면적 배경의 문제이다. ,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달라지는가? 이 때 어떤 사람으로 자신이 첫발을 내 딛는가? 오로지 자신만이 아는 내면에 봉착하는 순간이다.

 

이와 마찬 가지로, 국가, 사회, 어떤 단체에도 같은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이 같은 인간 마음이나 사회 주기를 성경은 50년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지구상의 모든 구조가 바로 이 50년을 주기로 어떤 변질이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 한국 교회 안에도 바로 이와 같은 주기가 있었다. 교회 기반의 변질은 바로 이 같은 아주 결정적인 주기의 순간에서 급속도로 일어난다. 그것은 선교 50년을 기점으로 변질의 기운이 강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교회 기반의 변천은 WCC 관련과 해외로부터 정치 선교사들의 유입은 한국교회 기반 변수에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세계 1960년 대 변화는 한국교회 지금 기반에 바로 미터임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급속도로 지금의 이단 기반들이 뿌리 내리도록 조직화 된 세계 종교기구의 원천의 시점이 시작되었던 기간이었다. 이것이 교리적인 변질이 일어난 기간이었다고 한다면, 이를 기반으로 한 교회 기반의 상실은 그 후에 일어난 이탈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 발전에 맞물리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교회적으로 사회 발전에 따라서 종합되고 조절되고자 하는 정치적, 사회적 성질이 다양해지면서 교회에 대한 요구 역시 교회 내부의 변화를 유도하게 된 것이다.

 

, 교회 밖으로부터 밀려오는 세속의 바람은 교회 내부의 반응을 가져 온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종교개혁 이후 교회 안에 불어오는 주 된 경향성이었다. 세속의 힘이 교회의 변질의 직접적인 환경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것은 사탄의 전략이다. 교회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자신들이 직접 교회 기반을 공략할 때는 오히려 교회의 부흥을 가져 왔던 것이다. 그것을 우회해서 세상이 직접 사회 안으로 교회 기반을 간섭토록 하는 공통지대를 형성하게 한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세상물결로 말하고 있다.

 

교회를 요동치게 만드는 세속화 물결이다. 2천년 교회가 맥을 이어오는 물줄기가 아니라 세속화 되는 새로운 교회 운동의 기반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종말의 최종 종결의 시간대로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기반 변질이다. 어느 시대에도 이 같은 위협은 있었지만 현대에서 일어나는 교회 위협은 신앙형태 아니라 교회 기반 자체의 변절을 가져 온다는 차원에서 다른 문제이다.

 

여기서 교회의 배도물결은 기반 자체를 장악하는데서 일어나는 경건한 교회와 무리들의 맥을 못 추는 교회시대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현재 이를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가장 큰 특징은 종교적 경향성을 의미함이다.

 

이것이 복음적인 울타리 현상의 교회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철저히 세상과 짝하고 세속의 합리성에 삼킴을 당한 교회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럽 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교회 기반에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교회 기반이 이렇게 될 때 성도 개인적으로 나타나는 신앙의 유형들은 자기합리화’, ‘자기정당화경향의 신앙이 두드러진다. 모든 것이 성경이 기준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하고 자신의 사고에서 비롯되는 이런 신앙 행위가 강조되는 성도들의 주된 신앙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성질을 성경은 무엇이라 하는가? 이는 신약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 구약의 종말 시대를 살아가던 구약 성도들과 똑 같은 현상이다. , 메시야의 초림을 기다리던 구약 종말시점에서 주로 나타나던 신앙 유형들과 일맥 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도들의 신앙 유형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러게 규명해 주시고 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경외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29:13)”

 

사람의 계명이라 했다. 이는 바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이다. 생각, 경험(체험), 교훈, 삶 등이다. “이는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라는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각이나 경험에서 비롯되어,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교훈으로 자기 것 화 한 것들이다. 이는 율법 차원으로 만든 가르침을 의미한다. 이것으로 구성하고, 채우려하는 성질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성질들은 행동에서 이율배반적인 모습으로 일관 되게 나타나는 성도들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언행이 안 맞고 거짓으로 행동하는 신앙의 모습이 아닌가?

 

이것이 종교화 된 교회 기반과 그 당대의 신앙의 모습들이라 할 수 있다. 이 때 교회적으로 어떤 현상들이 주도를 하게 되는가? 그 당대의 발전되는 사회상에 맞게 변질되는 교회적 현상이다.

 

온갖 이유들이 새롭게 만들어 지면서 교회 영적 자산들을 손보게 되는 현상이다. 성도들은 더더욱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휩쓸려서 오히려 유행을 부추기는 행보를 하게 된다. 그것이 가장 흔한 것은 가장 합법적인 이유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변질들이다.

 

가령 예를 들자면, 성경이나 찬송가 번역과 관계 되어서 생각해 보자! 외관상 번역이 잘 못 된 오역들을 바로 잡는다는 합법적 이유들이다. 이것으로 성경을 새롭게 출간해 놓는다. 하지만 여기에 도사리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상업성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 내용의 변질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교회 기반이 비교적 적은 곳에서 더더욱 성행할 수 있는 현상이다. , 작은 교회 기반일수록 성경이나 교회 안의 물질적 자산 문제는 인간들을 유혹한다는 사실이다.

 

100년이 넘어갈 때, 성경을 거의 구입하고 상업적인 흐름이 돌지 않을 때, 여기에 관련 된 사업자들은 몇 사람의 필요가 충족 되면 과감하게 성경 번역의 오류문제를 들고 새롭게 성경을 제작해야 한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필요성은 기존 교회 기반에서 이미 말이 먼저 돌게 된다는 사실이다. , 한국교회가 모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를 들고 나와서 새롭게 성경을 번역한 판본을 내 놓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권위는 인간의 필요가 가미 된 숨은 의도가 오역이나 왜곡이란 이유를 통해서 상업성의 목적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 때 떨어지는 그 액수는 천문학적인 돈이 되고 이 때 개입한 인간들은 공로가 인정되어 그 받는 인센티브는 평생을 먹고 살아도 될 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동안 가지고 있는 모든 성경을 다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혹은 언제라도 교회 기반을 변질되게 할 수 있는 인간의 탐욕의 문제인 것이다. 1천 만 명의 성도들이 한 꺼 번에 모두 새로 사야하고 한 동안 걱정 없이 잘 팔리면서 즐거움을 더할 것이다.

 

얼마나 좋은 조건이 되는가? 한국성서공회는 당년은 물론이고 족히 몇 십 년 동안은 계속 돌아가게 해 주는 동력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교단마다 이와 같은 인간의 필요가 주님의 몸 된 교회 기반의 근본적인 변질이 일어나도록 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상업성이란 이유는 물질과 관련 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끝난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성경이 바꾸어지도록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시대는 구약중심의 신앙을 추구하는 유대인들이 전세계를 주도하는 시대이다.

 

이들은 교회사 2천년 동안 그리스도를 비롯해서 신약시대를 부정하는 힘이다. 교회사 2천년 동안이 흘러오는 동안 이들은 숨어서 그와 관련 된 성경의 부정과 변질의 자료와 근거를 너무나 많이 만들어 놓았지 않았는가?

 

오늘 시대에 이르러서 그 같은 노력들은 성공을 거두는 시대가 되었다. 세계 기독교는 여지없이 그 기록들이 너무 급속도로 변질되고, 특히 성경사본들이나 번역본들은 우리 한국교회를 위협하는 직접적인 이유가 될 정도로 변질 되어 있다.

 

그 같은 힘이 이제는 우리한국교회를 직접 겨냥하여 일어나는 시대의 한 가운데로 들어 와 있다. 이것이 바로 이처럼 성경번역이란 합법적인 이유를 통해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의 초자연적인 역사 같은 배경들이나 직접 그리스도와 관계 된 내용들, 혹은 구약성경에서 어떤 특정한 민족들과 관계 된 내용들이 바뀌는 과정이 일어날 수 있다. 이미 그러한 시대는 일찍부터 시작되어 오고 있다.

 

실제로 새롭게 번역 된 우리 한글 성경의 문제점은 오히려 그 이전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결코 유용하게 바르게 해석 된 성경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로 교회 안의 문제점은 이러한 경우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는 변질이 지금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교회를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교회 안에 비신앙적인 배경이나 경향성이 너무 강해져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대적 이유들이 교회를 위협하고, 교회 본래적인 영적 기반들을 무너트리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대의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정신 차리고 신앙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고자 하는 영적 각성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강하게 역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대적하는 이 세대를 향해서도 경계를 해야 하겠지만 교회 안에 들어와서 정작 주님의 몸 된 교회 기반을 무너트리는 세속의 변형 된 기반들에 대해서 경계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그 어느 시대보다 교활해 진 사탄의 노략질로부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는 진리의 사자들로 그 역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우리 눈앞에 바로 드러나고 보이는 사탄의 형태는 분별하기 쉽다.

 

하지만 교회 형태로 둔갑해서 우리 가운데 들어와 있는 세속의 힘이 있다. 우리가 영적으로 민감하게 깨어있지 않으면 분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기반은 우리를 농락하고 유린하는 아름다운 천사로 변장해서 다가와 있을 것이다.

 

여기에 오랜 세월 농락당하여 상한심령들이 되지 말고 깨어서 자신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지키는 성도들로써 그 역할을 잘 감당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신앙의 중심이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면 오히려 교회 변질을 일으키는 편에 서는 것이 훨씬 편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교회되지 못하게 하는 현실적 이유가 아니겠는가? 내가 교회의 변질을 가져오는 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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