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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선지자 (사20:1~6)

작성자희망을주는사람|작성시간14.01.21|조회수345 목록 댓글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바로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오직 나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라(2:4)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사는 믿음, 인본주의적인 자세가 아니라, 신본주의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특히, 그것이 역경 앞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자주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인생의 많은 위기의 순간들이 연출됩니다.

 

사실, 평상시에는 누구나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특별하게 표식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불같은 시험의 순간이 다가오면, 그 불같은 시련 속에 들어가서, 견디어내는 믿음이 있는가하면 그 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지고 마는 허무한 믿음도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은 알곡과 쭉정이를 분간해내기 위해서(3:17), 참된 믿음을 알아보기 위해서, 이와 같은 불 시험을 허락하신다고도 하셨습니다.

 

(벧전4:12~14)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그리고 마지막 심판 때, 즉 추수 때에는 분명히 곡식과 가라지를 따로 떼어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13:20)

13:2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믿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1. 현실에 좌우되지 않는 믿음

 

1) 크고 두려운 현실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북쪽의 크고 두려운 나라 앗수르! 이스라엘까지 점령한 그 나라가 점점 유다를 향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유다의 왕(히스기야)를 비롯해서 백성들의 마음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리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결단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2) 무너지는 주위 국가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니라

 

3) 동요되는 동료들 (내부의 동요)

아마도 유다 내부에서는 항복하자는 의견도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하는 분위기도 일어났을 것입니다. 실제로 과거 이스라엘의 어느 왕(?)도 아람의 대군이 쳐들어오자, 선지자 엘리사를 원망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큰 위기 앞에서 나라안에 내분이 생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경계해야 할 태도입니다. 아무리 외부에서 강한 적이 쳐들어와도, 내부적인 단결과 결속만 잘되어 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는 그러한 경우를 많이 보여줍니다. 그래서 외부의 큰 위험보다도 내부의 혼란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 모세의 경우에도 홍해 앞에서 백성들이 그를 원망함.)

 

믿음의 사람들은, 이럴 때, 현실의 여러 모습들 앞에서 주눅 들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이 제아무리 우리의 의지를 꺽으려해도, “오늘날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적은 오히려 풍랑 가운데서 나타납니다. 현실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일 뿐입니다.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2. 말씀에 주목하는 믿음

선지자 이사야가 가지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프레젠테이션으로 보여줍니다. 선명하게, 확실하게. 그렇다면,

유다는 무엇을 봐야 합니까? 앗수르의 두려운 군대의 칼을 봐야 합니까?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고 다니는 선지자를 봐야 합니까? 삼년이라는 세월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너희들이 의지하고자하는 애굽의 미래를 보라.”

 

1)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의 메시지에 주목하라

이사야는 유대 백성들의 믿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자기의 몸을 직접 사용해서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해줍니다. 물론 이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배려입니다. 이사야는 거기에 순종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지 못할 때에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종(설교자)의 모든 행동, 태도, 표정 하나에까지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 말씀을 듣는 자세입니다. 사실, 커뮤니케이션의 원리에서 볼 때에는 내용보다도 메신저의 표정이나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메신저가 메시지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메신저, 즉 설교자나 선지자의 표정이나 자세가 중요합니다. 또한 청중들도 그러한 부분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2) 그 말씀의 메시지를 형상화(시각화)하여, 확실하게 파악하라

전하는 자가 그처럼 선명한 도식으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면, 받는 자도 영상처럼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망해서 도망가는 애굽 군사의 모습을 선지자를 통해서 미리 보았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3) 계속해서 그 메시지를 묵상하고 사색하라!

삼년 동안

선지자 이사야가 삼년이나 벌것벗은 몸으로 그렇게 하고 다녔다고 했습니다. 왜그랬을까요?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충분히 보고, 생각하고, 사색하고, 결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사색하고, 되새기면서 심령 깊은 곳에 심어두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힘이 나옵니다. 거기에서 믿음의 행동이 나오게 됩니다. 승리와 기적의 씨앗이 심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위기의 때에는 그 분 앞에 나와서 기도할 때입니다!

 

3.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믿음입니다.

 

1)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봐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의지하고 싶었던 애굽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리 강력해보여도, 선지자의 예언처럼, 미래에 가서는 가장 초라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이란, 참으로 가소로운 것입니다. 무너질 때에는 순식간에 무너지게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영원불변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나의 피난처로 삼는 것이 확실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3)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찾아다니면 구차해질 뿐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며 기도를 회복합시다. 애굽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봅시다! 아멘

 

  

 

 

20:1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다르단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니라

20: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20: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20:4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20:5 그들이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20:6 그 날에 이 해변 주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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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기랏여아림 | 작성시간 14.04.27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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