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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능성과 위대하심 / 사40:12~17 (1) 지구에 대한 하나님의 전능성과 위대하심

작성자항상 새롭게(김종신선교사)|작성시간17.04.17|조회수156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전능성과 위대하심

40:12~17

 

 

   

본문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어느 정도인지 지구, 인간 삶의 의미, 세계 모든 나라들과 관계해서 보여주시는 내용의 말씀이다. 모든 것을 다 잘 알고 계신다는 의미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성과 위대하심을 드러내고 계신다. 이를 본문에서는 통달의 도라고 말씀하시며 소개 하고 있다.

 

좀 더 발전해서 강조를 하자면, 지구의 기원, 그리고 인류와 관련한 모든 것을 세 방향에서 다루고 있는 말씀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서 지구 땅덩어리, 삶의 의미나 사상들, 세상에 속한 나라들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지속의 의미들과 배경들은 무엇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그 근원에 대해서 규명해 주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지구 자체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위대하심이다. 다음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미들과 사상들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위대하심이다. 끝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과 그 실체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위대하심이다.

 

그럼 첫 번째 내용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 더욱 강하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한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크게 함께 하시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기원한다.  

    

 

1. 지구에 대한 하나님의 전능성과 위대하심

    

 

지구의 기원, 초기의 진행과정과 물질들의 형성과정과 형태, 초기의 과정에서 중도에 일어난 지구 변화 등, 인간들은 지구의 기원 문제, 지구 역사나 인간 기원에 대하여, 지각 변동에 따른 과거와 현재의 지구 형태 등, 현대 인류는 과거 역사들에 대해 그 발전 과정들을 알고 싶어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집대성되면서 지금의 인류사회의 현실로 나아왔다고 본다.

 

하지만 과연 그것들이 정확한 것인가? 할 때는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이점을 염두 하면서 본문에서 첫 번 째 문제에서 무엇이라 하는지? 여기서 그 답을 먼저 찾아야 할 것이다.

 

 

1)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는가?


  

이것이 첫 번째 물음이다. 처음부터 단순하지 않은 물음이다. 그리고 단순한 질문인 것 같은데 벽을 느끼게 한다.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는가? 이것은 크게 몇 가지 차원에서 생각하며 답을 구해야 한다.


  

먼저 이것은 바닷물을 손으로 가지고 논다는 의미에서 이 부분에 대한 답이 있다.


  

우리 인간이 생각할 때 바다가 너무 거대해서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하다. 너무 크기 때문에 거리상 한계에 부딪히고, 물 속 깊이에 대해서 볼 수 없으니까 아예 계산이 안 되고, 물의 양이 어마어마하기 거대한 힘으로 느껴지고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전능성 앞에서는 이 물이 손바닥으로 가지고 노는 아이들에게 있는 조그마한 물 정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있어서 이 바닷물은 우리의 눈에 볼 때의 인식으로 생각되는 거대함이 아니라 물 한 바가지 정도의 양밖에 안 되는 물이라는 사실이다. 어린 아이들이 갖고 노는 물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물, 손안에 들어오는 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우리식으로 생각할 때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성의 첫 번째 의미이다.


  

다음은, 손안에서 들어오는 물이니 한 눈에 훤히 다 보인다는 것이다.


  

바다 속까지 훤히 다 알고 계신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육안에 들어올 수 없는 한계의 바다이다. 그래서 그 거대함과 물의 힘이 느껴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태풍과 함께 거대한 물의 양이 움직일 때, 얼마나 두려움이 느껴지는가?

 

그런데 물속 깊이 지구의 그 어떤 산보다도 높은 산이 있고 바다 가장 깊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발달 된 인류 사회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전능성은 손바닥에 올려놓고 샅샅이 살펴보실 수 있을 정도로 바다는 아무것도 아니 것이다.

 

성경 다른 곳에서는 바다 속까지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손 안에 들어오는 바닷물이니 얼마나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것인가? 어디가 깊은 곳이고, 어디는 물이 회오리가 일고, 바다 속의 조류의 흐름도, 어디가 갈라졌고, 어느 곳이 위험지역인지, 물의 온도가 다른 지역들,

 

어디가 고기가 많고, 계절 따라 옮겨 다니는 고기나 바다 생물들의 흐름에 대해서, 어느 지역에서 이상한 생명체들이 생존하고 있는지, 바다 안에 어떤 자원들이 묻혀 있는지, 모르는 바 없이 훤히 다 들어다 보고 계시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성경 욥38:16, 말씀에서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라고 하나님께서 욥에게 물으시는 말씀이다. 기가 찬 말씀이지 않는가?

 

바다 샘이 무엇인가? 바다 안에 물이 나오는 근원이 있다는 것이다. 짠물의 거대한 힘 속에서 물이 나오는 샘이 있다? 가능한 일인가? 그런데 1960년대 들어서고 특히 70년대 해저잠수용 방법들이 용이해지는 시대가 열리면서 들어가 보았는데 있더라는 것이다.

 

이것을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 성경에서 기록 했고, 욥이 아브라함 시대 때의 사람이라고 하니 더욱 더 먼 이전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여 알도록 하셨다는 놀라운 일이 아닌가?

 

게다가 바다 깊은 곳을 걸어 다닌다라고 표현했는데, 이제야 인간들은 산소통을 매고서 걸어 다니고 있지 않는가? 이는 바다 속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말씀이다.


  

다음은, 하나님의 손 안에 들어오는 물이니 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람이 손으로 퍼 담을 수 있다고 하자!, 아니 가장 큰 바가지를 만들어서 퍼낸다고 하자! 그렇다 할지라도 어디에다 보관하면서 셀 수 있을까? 바닷물을 세고자 함에 있어서 지금의 지구만한 공간이 필요한데, 셈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바닷물을 생각하는 것을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바다를 만드신 분이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들어온다는 의미이다. 셈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물건을 마든 사람은 자신이 만든 물건에 대해서 훤히 꿰고 있다. 하나님의 손 안에 들어오는 바닷물은 셈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성이다. 인간의 눈에 거대한 바다지만 하나님의 손안에 들어오는 것이기에 영원히 하나인 것이다.

 

우리의 계산법으로 물의 량을 생각하는 한계의 인간이다 보니 그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손 안에 들어오는 양밖에 안 되는 것이다. 이는 세고 자시고 할 것이 없는 오직 하나의 물밖에 아닌 것이다.

   

 

2)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이것은, 측량과 관련이 있다. 지금의 우주 공간을 얼마의 크기로 할 것인가? 라는 점에 대해서 신중하게 고려해서 측정했다라는 의미이다.

 

우리 인류는 근현대에 이르면서 우주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 되어오고 있다. 물론 과거시대부터 천문학 발전을 통해서 우주의 기원을 비롯해서 궁금증을 풀고 싶은 열망으로 자연스럽게 우주에 대한 인류의 발견과 업적들은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인류에게 관심을 갖고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우주는 과연 얼마나 넓고, 과연 끝이 있을까? 그 중에서도 우주에 떠 있는 수많은 별 등 중에 과연 우리 인류와 같은 다른 생명체가 있는가? 라는 부분들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 인류가 우주 다른 곳으로 이주해서 살 수 있을까?

 

이에 따라서 수많은 연구들로 인해서 이제는 그 길이 열리는 듯한 동력들이 가동되기에 이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지구의 생명이 다해도 다른 별로 이동해가서 살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시대를 대비해서 선진국을 비롯해서 많은 나라들은 우주시대를 맞기 위해 나름대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우주무기체제 구축은 물론 인공위성과 우주항공 기지 건설 등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인류가 원하는 그 같은 환경들이 현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가운데 하나는 그 우주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여전히 관리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의 확실한 증거를 오늘 본문이 제시해 주고 있다.

 

뼘으로 하늘을 쟀다 이는 손바닥과 손 까락을 펴는 것에서 그 어원을 갖는다. 그런데 이 어원이 유래 된 것이 더욱 재미있다. 왜냐하면 이 손으로 어떤 물체를 만들어서 던져 올리다’, ‘에워싸다’, ‘흩어버리고’, ‘키질하다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종합해서 설명을 한다면, 뭔가를 만들어 공중으로 던지기도, 그것을 두 손으로 에워싸기도, 곡식 까부르듯이 키질해서 없애 버릴 수도 있는 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쟀다라는 것이다.

 

재다라는 이 말은 측량과 관련이 있는데 맞추고, 균형을 잡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주라는 공간을 만들어서 균형을 잡았는데 그것을 손으로 쟀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기가 찬 영적세계의 진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진리는 불신자들에게 닫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세상이 이 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손바닥으로 하늘의 균형을 잡았다.

 

우주의 기반 자체는 물론, 전 우주 안의 공간의 크기와 넓이 높이를 손바닥처럼 정확하게 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 안의 모든 질서들이 균형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 놓으셨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들어 있는 것이다.

 

이를 다른 성경에서는 하늘의 기초를 놓았다혹은 공중에 메달아 놓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뼘으로 쟀다는 것이다. 너무나 정확하게 만들어 놓으셨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주를 너무나 잘 아신다고 성경이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성이다. 우리가 이 점에서 우주 만물을 잘 아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라고 정확하게 그 의미를 알고서 고백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들이 아무리 우주를 알려고 해도 알 수 없고, 정복할 수 있을지? 의문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현대 기독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말하는 대로 따라가려는 교회들과 성도들이 나오고 있다. 가령 예를 들어서 다른 생명체가 있을 것이고, 그래서 외계인이 있을 것이라고 전통교회 목사 입에서 고백되는 말을 듣고 놀랐던 적이 있었다.

 

이 같은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생명체를 창조했다는 신앙이 나오게 되고, 이는 하나님의 창조신앙이 아니라 인류가 만들어가는 복제 세상은 물론 사탄을 수용하는 우주적 생명체를 수용하게 되는 시대로 나아가고, 그에 교회가 호응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3)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라는 의미이다.

   

 

“‘땅의 티끌에 담다라는 의미이다. 여기 의미들은 좀 쉬운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정확성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너무 자주 접했고 많이 들었던 의미들은 기존의 생각들 때문에 은혜를 놓치기 쉬울 때가 종종 있다.

 

티끌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먼지의 일종이다. 하지만 단순히 먼지 하면 안 된다. 흙가루’, ‘음식가루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공적으로 좋이 못한 가루일종이나 폐기물 가루나 공장지대에서 나오는 그 같은 안 좋은 가루 일종으로써 먼지가 아니라, 땅의 티끌이라 했으니까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가루 일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성경에서는 우리를 먼지, 혹은 티끌로 비유해서 말하기도 했다. 그럼 하나님께서 왜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느냐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 같이 좋은 먼지가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라는 의미라 할 수 있다.

 

, 하나님의 전능성은 지구가 이루어져 있는 먼지, 즉 티끌이 얼마나 되는지를 아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류가 살아가는 지구 땅덩어리의 이루는 가장 최소한의 물질이고, 이것이 얼마나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그 양이나 질에 대해서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것을 되에 담아 보았느냐?” 라고 언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는 성경의 곡식 측량 단위로써 무한정한 량을 의미할 때 사용하는 에바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과 인류가 살아가는 지구가 이 먼지 덩어리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신체 조직의 근원이자 지구의 근원임을 말하면서 그것을 하나님께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담아 보았으며라고 함으로써, 이것을 하나님 자신이 잘 관리하고 있다라고 강조하시는 유지, 지속, 보존이란 의미로 사용 된 것이다. 너희 인간들은 이 같이 귀한 것을 개발이니, 연구니, 발전이니 하면서 파괴하고, 역행하고, 무의미하게 만들어가지 않느냐?

 

그래서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았다라고 하시는 말씀은 너무나 정확하게 잘 알고 계신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셀 수도 없는 먼지를 되에 담는 다는 것은 보존이나 지속의 의미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정확하게 지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4) 접시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성경을 읽다보면, 표현 자체에 너무 은혜가 될 때가 많다. 지금 이 표현도 그렇다. 접시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접시저울은 뭐고, 막대 저울은 또 뭔가? 그런데 왜 같은 저울이라 하면 되지 이렇게 구분해서 사용하는가?

 

그러니까 인간 저자들의 기능을 성령께서 감동 하셔셔 너무나 적절하게 잘 사용토록 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의성어, 의태어, 의인화, 뭐 등등이 아니라 직절화법으로 적절하게 표현을 잘 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산이 너무 크니까 밑에 받칠 것이 필요해서 접시저울이라 한 것이고, 언덕은 비교적 작은 단위이기 때문에 막대저울이라 한 것이다. 이것은 지구적 배경과 관계 된 것이다. 왜냐하면 산과 언덕은 생명들의 기운이 서려 있고, 삶의 터전을 제공해 주는 육지의 전형적인 형태로써 배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산과 언덕들을 의미하고 그것을 무게로 다루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무게, 즉 균형을 잡는 무게와 관련해서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바다의 비율과 대조하는 무게라 할 수 있다.

 

이를 성경은 바다의 물을 넘지 못하도록 산으로 막아 놓으셨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을 한하여라고 어원적으로 다루어 놓았다. 한하다란 의미는 경계를 정해서 넘지 못하게 제한해 놓으셨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두 저울들이 한 가지 공통점을 내보이는데, 숙고하고 신중성을 기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땅의 비율과 바다의 힘의 량을 조절하여 잘 조화를 이루도록 하나님의 지혜가 작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거대한 산과 언덕은 그 안에 맨틀 부위들이 받치고 있어서 육지의 2배 가까이 되는 바다의 량과 힘을 지탱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바다의 물이 육지를 가르거나 침범할 수 없도록 해 놓으신 것이다.

 

그런데 현대 인류는 탐욕에 의해서 북극과 남극의 얼음들을 녹이도록 그 어떤 장치들을 함으로써 물의 수압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에도 우리나라 동해안 모래사장들과 해안가들이 깎아지른 절벽들처럼 패이고 있는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뉴스를 반영했다.

 

이 같은 현상은 20년 전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했던 현상이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서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북극 남극 얼음과 빙하들이 녹아내리면서 바다로 흘러들어서 바다의 수위가 올라가고 그에 따라서 바다와 육지의 비율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하니까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 되면 지구는 바다의 물이 많아지고 올라가면서 그것이 지구 육지를 압박하여 지각 변동이 인공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인간의 인위적인 삶의 방식이나 욕심에 의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을 깨고, 스스로 재앙을 불러오는 결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말씀을 맺도록 하자!

   

 

본문 전체에서 지구 땅덩어리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전능성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다. 아무리 지구와 우주가 크고 넓고 거대하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의 공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잘 드러내 보여주었다.

 

지금도 인간의 문명의 발전이 지구와 바다를 정복할 것 같은 무섭고 빠른 속도로 발전을 이루어 오는 현대라 할지라도 바다가 한 번 성을 내면 그 무엇도 삼켜 버릴 수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바다는 하나님의 손바닥에 올라오는 하나의 물장난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 바다의 거대한 힘도 산과 들로 막아서 넘지 못하도록 제한을 해 놓으신 것이다.

 

그 바다 속 깊은 곳에다 샘물의 근원을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전능성은 우주와 지구를 너무나 훤히 들여다보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하나님의 전능성과 위대하심 앞에서 교만한 현대 인류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들로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더욱 믿음으로 두렵고 떨림의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권하며 축원한다.

 

 

다음은 두 번째 단락으로 세상의 모든 의미와 사상에 대해서 잘 아시는 하나님통달의 도에 대해서 함께 나누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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