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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 시

칼새의 방

작성자초원의 꽃향기|작성시간24.04.25|조회수48 목록 댓글 0

 

 

 

 

 

칼새의 방





 

십여 년 전인가, 나는 

상봉동의 바위산에 올라가 

닥지닥지 눌러앉은 서울의 집들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 집이 없었으므로 

눈 높이까지 차오른 저 집들의 어디에 

나도 마음 누일 방 한 칸 있었으면 했다, 

 

가솔들을 끌고 

몇 개월마다의 이사와 가파르던 숨결 

그리고 십 년 후에 나는 내 집 근처 약수터 야산 밑으로 

이삿짐에 얹혀 트럭에 실려가는 

한 성(聖)가족을 본다, 

 

저기 누군가 

아직도 이 도시에서는 모세처럼 

식솔들을 끌고 해마다 출애굽하는 가장들이 있는 것이다
 

어디에 있을 방 한칸을 찾아 절박했지만, 

그러나 방 한 칸 없어 절망조차 없던 그때는 

마른 풀 가득한 빈 들의 시절이었을까
 

인생은 그런 것인가, 

방 한 칸의 희망을 완성하고 

저렇게 나이 들고 무료하면 하릴없이 

여기 와서 빈 물통 채우면서 

나도 고함이나 한번 크게 질러보는 것인가
 

빈 것은 빈 것이 아니라고 우기던 

겨우 그런 나이를 지나서 

저 아래 빈방인 저의 무덤 곁으로 

다시 언덕을 내려가는 것일까
 

어차피 빈방이 없어도 

저기 저 바위가 제 식탁이라는 듯 

모이를 줍고 있는 칼새 한 마리 

누가 뿌린 것도 아닌데 제법 만족한 식사를 끝내고 

칼새는 바위에 부벼 제 부릴 닦으며 즐겁게 재잘거린다
 

저렇게 앉아 있는 모습이 칼새 같지가 않다,
득의한 제왕처럼 날개 짓도 한번 크게 쳐 보이면서 

아직 집이 없으므로 절망의 둥지는 틀지 않고 

칼새는 다만 자유롭게 서성거리면서


 

- 김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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