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중이 ◈
- 시 : 돌샘/이길옥 -
한 번은 꼭 남 앞에서 당당하고 싶어서
언젠가 꼭 한 번은 맨 앞에 서고 싶어서
일등이라는 문패 한 번 달고 으스대며 뽐내고 싶어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머리 싸맨 적 있었지.
뒤로 밀리면 불안해서
뒤에 서면 눈 밖에 날까 두려워서
뒤에 처지면 못난 놈이라 손가락질받을까 봐서
이를 악물고 코피 쏟은 적 있었지
일등 한 번 해보지 못한 아린 내 속을
맨 앞에 한 번도 서보지 못한 상한 내 맘을
너희가 알아.
잔머리 굴리는 동안
일등의 꿈엔 녹이 슬고 곰팡이가 끼었어.
이제 더는 앞에 서기를 포기해야 하겠어.
꼴찌도 한 몫 당당하게 하거든
뒤에서 일등을 받쳐주는 버팀목이 되거든
별 볼일 없어도 쓸모가 있어
비록 최고는 아니더라도 필요한 사람으로 남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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