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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탈핵에너지학회

<2022년 춘계 초청강연회> 동일본 지진 현지답사와 핵발전에 대한 성찰(강우일 베드로 주교)

작성자간사 이승은|작성시간22.03.31|조회수173 목록 댓글 0

 

<동영상> 가톨릭프레스
http://www.catholicpress.kr/m/view.php?idx=7302&mcode=

 

<강연회 내용>

1960년대 중반에 일본의 TV 프로그램 중에 ‘쇠주먹 아톰’이라는 만화 영화가 아주 유행했습니다. 그게 사실은 어린이 대상의 만화 영화지만 어른도 많이 본 거죠. 어떤 노 과학자가 만든 예쁘게 생긴 어린이 같은 로봇인데, 그 로봇이 원자력 에너지로 가동이 되는 것이고 엄청난 힘을 가지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당들과 대결해서 세상의 평화를 지킨다는 만화영화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냥 이런 공상과학 만화가 있구나 하며 그냥 신기하게만 보고 말았는데, 그때가 60년대 중반 시절이니까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지 20년 정도 밖에 안 되던 시절이거든요. 그러니까 일본 국민들 안에 원폭과 원자력에 대한 엄청난 피해의식과 트라우마가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원전을 추진하면서 원자력에 대한 그 국민들의 불안을 불식하고 원자력은 평화적 목적을 위해서 사용할 때 굉장히 좋은 것이라는 그런 의식을 심어 주기 위해서 이런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것이라는 분석을 하는 분들이 있고 저도 지금 돌이켜보면 그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그 시절부터 일본 정부는 원전을 전국에 건설하기 위해서 국민들에게 엄청난 홍보 활동을 했습니다. 피해의식과 불안감을 불식하기 위해서 많은 작업을 한 것이죠. 그래서 주민들에게 직접 홍보활동도 하면서 또 원전을 건설하는 지역의 주민들을 초대해서 온천여행도 이렇게 하면서 아주 온천에 몸을 푹 담그고 아주 맛있는 식사 대접도 하면서 하여튼 주민들에게 원전은 참 좋은 거 다 하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이렇게 아주 의식 변화를 시키도록 그렇게 홍보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홍보가 먹혀 들어가면서 일본 국민 대다수는 정말 원전이 깨끗하고 안전하고 경제적이라는 그런 의식이 폭넓게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전하고 경제적이고 청정한 에너지라는 믿음, 거의 그것이 신화로 자리잡았는데 그 신화가 2011년에 동일본 지진과 쓰나미로 완전히 깨졌다고 생각이 됩니다. 

 

일본 국민들이 후쿠시마 제1원전의 전원이 끊기고, 원자로 격납건물이 차례로 수소폭발을 일으키면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이 믿어온 신화가 정말 가짜였구나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발전소를 경영한 동경전력 운영진과 그리고 일본정부의 담당 관료들도 왜 그런 참사가 일어났는지 정확한 사정 파악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지 수습 방법도 대책도 나오지 않고 아주 황당한 얼굴들로 티비화면에 등장하면서 끊임없이 반복하는 단어는 “예상 외의 일이 일어났다. 상정한 것의 바깥에 일이 일어났다. 그러니까 이거는 누구 책임도 없고  우리로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이었다”는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일본 사회 각계에서 지금까지 원전 분야의 전문가라는 분들이 해온 이야기나 또 그들이 펼쳐온 정책에 대해서 대단한 비판과 분석과 이런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죠.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이런 중대사를 소수의 전문가들, 원자력안전위원회 몇몇 사람들 아니면 원자력학회 학자 몇몇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맡겨 놓을 수 없다는 그런 의식이 일본 국민들에게 폭넓게 형성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사실 원전에 대해서 별로 관심도 없었고 아는 것도 없는 문외한이었습니다. 그저 막연히 원자력 분야는 첨단 기술 분야이고 그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미지의 세계라는 막연한 이미지로  살았는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또 그에 대한 일본 사회 전반에 반응과 대응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도 완전히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기술분야의 전문가들이란 자기 기술분야에 있어서는 전문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러나 그 분야를 조금만 벗어나면 전혀 전문가도 아니고 특히 우리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진 문제를 전체적으로 다 책임질 수 있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사고가 터지면서 전문가들과 또 일본 사회 전체에 그 주고받는 대응과정속에서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향유해온 지위와 특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핵발전이 포함하는 위험요소와 또 그동안에 이미 실제로 있었던 사고 처리 내역을 제대로 공표하지 않고, 은폐하고 위장하는 일을 태연히 여러 차례 오랫동안 지속해왔다는 것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일본 학계와 시민 사회에서 제기해온 원전의 문제점과 현실을 저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고민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저는 동일본 지진 후에 센다이를 비롯해서 후쿠시마 그 지역을 3번 방문했습니다. 사고가 난지 한 달 후에 2011년 4월 27일 제가 센다이를 방문했고, 또 그 같은 해 11월 달에 또 한일 주교들의 전체 교류 모임이 있어서 그때 또 다른 주교님들과 같이 방문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2018년 11월에 세 번째 방문을 했습니다. 한국 주교회의는 1995년부터 일본 교회 주교 님들과 함께 한일간에 역사문제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심의 하기 위해서 논의하는 그런 모임을 매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2011년에는 이미 상당기간동안 한일 주교들의 만남이 계속됐었고, 그러면서 굉장히 친분을 쌓아왔기 때문에 동일본 지진이라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한국천주교회 전체에서 이웃나라가 이렇게 엄청난 재앙 속에 빠져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느냐 해서 그때 한국천주교회 차원에서도 대대적으로 모금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면서 모금한 금액을 가지고 센다이 지역으로 송금도 했지만 제가 직접 들고가서 센다이 지역의 교구장인 히라가 주교에게 전달을 하러 갔습니다. 

 

센다이에 도착해서 주교좌 성당을 방문을 했는데, 대지진 일어난지 한 달 조금 지나서 아직도 아무런 수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현장 그대로의 모습을 이렇게 보았습니다. 성당도 제대 뒷면 벽이 내려앉아 있었고 상당한 면적이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래서 아주 불안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센다이 교구장인 히라가 주교님 손수 운전해 주신 차로 함께 시내에서 약  10킬로 정도 떨어진 센다이 공항 쪽으로 저희가 이동을 해서 보았습니다. 공항으로 진입하는 고속도로가 있는데 고속도로를 기준으로 왼쪽은 쓰나미가 와서 아주 아무것도 없는 쑥대밭이 되었고, 오른쪽은 고속도로가 제방 구실을 해준 덕에 파도가 밀려 들지 않아서 그쪽은 괜찮은 모습이었습니다. 공항 주변 모든 시설이 다 파도에 휩쓸려가 버렸서 허허벌판이었고, 공항 주차장에 주차해 있던 차들이 쓰레기처럼 뒤엉켜서 군데군데 더미를 이루면서 쌓여 있었습니다. 자동차들 사이에는 조그만 경비행기들이 또 파도에 떠밀려 가지고 곤두박질치고 있는 그런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공항의 본 터미널을 제외하고 주변의 작은 건물들은 전부 다 파괴되고 못쓰게 되어 있었습니다. 

 

센다이공항을 빠져 나가서 센다이 항구 쪽으로 가 봤습니다. 센다이 항은 상당한 규모의 항구로 평소에 거기서 많은 화물선이나 여객선이 입출항을 하는 곳인데, 커다란 몇천톤짜리 되는 배들이 아예 육지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거기는 일본 자동차들이 외국으로 수출되는 수출기지 였는데, 배에 싣기 위해서 주차장 같은데 대기시켜 놓았던 자동차들이 전부 다 파도에 휩쓸려 가지고서 산더미처럼 쌓여서 거대한 폐차장을 연상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눈으로 보는 모습도 참혹하지만 코에 들어오는 냄새가 아주 굉장히 역했습니다. 어항에서 처리하던 생선류들이 아마 썩어서 나는 냄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면서,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 말은 히라가 주교님께 하지는 않았는데, 제가 속으로 이거 혹시 쓰나미에 떠밀려서 희생된 희생자들에 시신이 썩는 냄새가 아닌가 그런 그 짐작을 해봤습니다. 센다이에서 북쪽 해안을 따라서 시찌리가하마라는 어촌을 거쳐서 시호가마라는  작은 소도시를 지나서 이시노마끼라는 어항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해안가에 있는 모든 건물은 다 초토화 되어 있었습니다. 전쟁이 나서 시가지가 폭격으로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있는. 요즘 서로가 미사일을 쏘고 폭격을 해서 완전히 쑥대밭이 된 것보다 더 아주 그냥 지상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냥 쓰레기만 잔뜩 쌓여 있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이시노마키 시내 한복판을 흐르는 강이 하나 있는데, 꽤 폭넓은 강인데 그 강 이제 바다쪽에서 쓰나미  파도가 강을 타고 밀려 올라오면서 이시노마끼 씨를 완전히 덮친 거죠. 그러면서 강 양쪽에 수산업 작업하는 공장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거기서 가공 하던 수산물들, 생선류들이 다 부패해서 거기도 아주 지독한 악취가 나고 있었습니다. 그곳도 역시 큰 배들이 뭍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항구에서 좀더 높은 지대로 올라가서 이시노마키 성당을 찾았습니다. 이시노마키 성당이 상당히 높은 지역에 있는데, 그 이유가 옛날 100여년 전에 명치시대에 엄청난 쓰나미가 있었고 희생이 컸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성당을 높은 곳에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성당은 무사했습니다. 신자 130명 정도의 작은 성당인데,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주임인 도이 신부님을 만났는데 신부님도 친척과 친지 여럿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찾아갔을 무렵에도 여전히 새로운 시신들이 매일같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시체 안치소에 가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확인해보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히라노 주교님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한달전 3월 11일날 사고가 났을 때 히라가 주교님 자신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주교님은 그때 공교롭게도 동경에 회의가 있어서 신칸센 기차를 타고 상경하는 중이었는데, 도중에 갑자기 기차가 엄청 흔들리면서 급정거를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터널 안에서 급정거를 한것이죠. 기차는 멈춰섰고  정전이 되어서 깜깜한 굴속에 갇혀버렸습니다. 얼마동안 굴속에 갇혀있었냐고 물었더니 이튿날 아침 9시 경에나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거의 18시간을 터널속 기차안에서 갇혀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자기도 그렇게 무서운 체험을 처음 해봤다고 말했습니다. 이때는 시간이 없어서 후쿠시마 원전까지는 찾아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기차로 센다이에서 도쿄로 가는 도중에 후쿠시마 역이 있기 때문에 후쿠시마 역과 후쿠시마 시내를 기차를 타고 통과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역을 통과할 때도 그렇고 후쿠시마 시내를 통과할 때에도 거리에 나와있는 사람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거의 유령도시를 지나고 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후쿠시마시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부터 약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인데, 그래도 시민들은 방사능 노출때문에 두려워서 아무도 집밖에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 제가 다시 방문할 기회가 생겼을 때 후쿠시마 지역을 집중적으로 방문을 했습니다. 원전 폭발 사고가 난지 이미 7년이 지났으니까 많이 사정이 나아졌겠다 하고 찾아갔는데 여전히 후쿠시마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동은 자동차로 하고, 자동차에서 내리면 얼른 건물안으로 들어가고, 집에서도 마당에 나오지도 않고 밖에 빨래만 걷으러 잠깐 나오는 정도였습니다. 자동차로 후쿠시마 제1원전이 있는 곳에서 남쪽 방향에서 히로노마찌로부터 후쿠시마 원전을 향해서 올라가는 북상로를 택해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히로노마찌라는 곳이 원전에서 30km남쪽에 있는데 거기에는 주민들은 없고 원전 관계 회사들, 오염된 오염토를 정리하는 일을 하는 회사 사람들이나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방사능이 강한 지역에서 로봇을 이용해서 제염작업을 할 수 있는 기계를 연구하는 연구소들만 보였습니다. 거기에 일본 정부에서는 히로노마찌라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J빌리지라는 대규모 시설을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J리그의 하나의 축구구장을 만들고 부대시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2년후에 예정되어 있는 도쿄올림픽 시합을 유치하기 위해서 짓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축구장은 근사하게 만들어지고 있는데, 거기도 방사능이 세서 무인지대가 되고 일반 주민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향후 여기에 사람이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그곳으로 여행하는 도중에 도로변에는 일본 지역사람들이 ‘톤 후끄로’라고 하는 시커먼 플라스틱 박스, 우리 농촌 지역에 건초를 담는 플라스틱 더미와 모습이 비슷한 모습의 시커먼  플라스틱 덩어리들이 잔뜩 늘어서있는데 그 안에 방사능 오염토를 넣어서 비닐로 쌓아서 도로변에 거의 제방처럼 잔뜩 쌓아놨습니다. 그때 제가 듣기로 일본 사람들이 1개가 1톤이기 때문에 ‘톤 후끄로’라고 불렀습니다. ‘후끄로’라는 것이 일본 말로 보자기라는 것이거든요. 그 톤 후끄로가 약 2000만개 있다는 것입니다. 사방에 사람들 안보이는 곳에 쌓아놓은 것입니다. 다른 어느 지자체에서도 그것을 받아들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가져갈 수도 없고, 결국 후쿠시마 현 안에서 처리하는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또 가는 도로변에 휴게소에 잠시 들려보면 주변지역 마을들의 방사능 수치가 전광판에 나와있었습니다. 방사능 수치가 0.1μSv/h가 되어야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하는데 어떤 지역은 0.2, 0.3, 0.1 이런 지역들이 있는데 7년이 지났으니까 많이 제염을 했다고 일본 정부에서 이야기하니까요.  어떤 지역은 무려 3μSv/h, 즉 기준의 30배가 되는 방사능이 아직도 발산되고 있는 지역이 있었습니다. 제가 후쿠시마 제1원전을 오른쪽으로 보면서 북상을 하다가 하라마찌라는 마을에 들렸습니다. 거기에는 일본 가톨릭 교회에서 자원봉사센터가 운영되고 있어서 찾아갔습니다. 이곳은 제1원전에서 북쪽에서 약40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이상하게도 40km이면 방사능이 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고가 났을 때 바람이 북쪽으로 불었답니다. 그래서 방사능 먼지들이 북쪽으로 날아가서 하라마찌도 방사능 피해를 굉장히 입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아주 소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하라마찌는 방사능이 0.1μSv/h 정도여서 우선 살아가는데 큰 피해는 없으리라고 보고 자원봉사센터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귀환한 마을주민들은 아주 소수였고, 그래도 하라마찌는 괜찮은 편이라고 했습니다. 하라마찌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미나미소마라는 동네를 지나가는데 그곳은 아직도 방사능이 높았고, 사고 후 7년이 지났는데도 돌아온 원주민들은 20%정도의 주민만 돌아와있다고 했습니다. 상점도 거의 열린 곳을 볼수가 없었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모두 굳게 교문이 쇠사슬로 닫혀져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방사능 오염토를 많이 제거해서 안전하니까 주민들이 귀환해서 살아도 좋다고 홍보하면서 아담하고 예쁜 집들을 새로 많이 지어놓았더라구요. 그런데도 거기 돌아와서 입주한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미나미소마 지역에서 제가 상징적인 장소를 방문을 했는데 바로 목장이었습니다. 그 목장의 타이틀이 ‘희망의 목장’이었습니다. 희망이 너무 없는 곳에 희망을 추구한다는 의미의 목장이었습니다. 그 지역에 농가마다 키우던 소들이 있었는데 소들이 버려진 상태로 왔다갔다 하는게 너무 불쌍하니까 어떤 농민이 그 소들을 거두어들여서 목장안에 두고 먹이를 나름대로 먹였겠지요. 그런데 그 지역의 풀도 다 방사능 오염이 되어 있어서 계속 줄수도 없고, 방사능 오염이 안 된 풀들을 구하기도 힘드니까 사료를 주다가 사료도 부족하니까 못주고 그래서 어떤 사람이 기증한 파인애플을 소들에게 뿌려놨더라구요. 그런데 파인애플을 소들이 먹을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소들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소들의 피부가 털이 막 벗겨져 있고 그랬어요. 정확하게 설명을 듣지는 못했지만 이미 상당한 방사능 피폭이 되서 피부가 정상적이지 않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인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양분되어 왔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일본 전체의 본래 54기의 원전을 가동시키고 있었는데 후쿠시마 사고가 난 후에 전부 stop시켰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시설 점검을 거쳐서 우리도 미디어를 통해서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만, 작년 2021년까지 54기중에 9기를 다시 재가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일본 정부는 계속 재가동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국민들을 설득하고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일본 국민 전체의 불안감과 불신이 상당해서 빨리 재가동으로 가지 못하고 일본 정부도 신중하게 서서히 접근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도 45기가 가동 중단상태에 있습니다. 

 

이런 일본의 상황을 생각할 때 원전 의존률이 일본보다 우리가 더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을 때는 굉장히 미디어에서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위험성에 대해서 문제제기하는 분들도 많이 계셨는데요. 한국 국민들은 지난 10년 사이에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런 위기의식과 문제점들을 다 잊어버리고, 지금 차기 정부는 완전히 뒷걸음질 쳐서 옛날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원자력 발전소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용어부터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라는 용어가 부정확합니다. 서구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처음에 원자력 에너지라는 표현을 쓰다가 요즘은 다 핵에너지, 핵발전, 핵발전소라고 이름을 다르게 부릅니다. 왜냐하면 원자는 물질이 안정되어 있는 최소한의 단위이고 원자상태에 머무는 한 아무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원자에 중성자를 부딪혀서 깨트리면 안정되어 있는 핵이 분열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폭탄으로 쓰면 핵폭탄이 되는 것이고 그 에너지를 파이프에 담아서 물을 끓이는 에너지로 하면 핵발전소가 되는 것입니다. 핵발전소의 시작은 핵폭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핵폭탄 만들고 나서 엄청난 투자와 인력을 갑자기 중단할 수 없으니까 어떻게 이용을 할까 하다가 핵발전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핵발전소의 아버지는 핵폭탄입니다. 한마디로 핵발전은 원자로안에서 우라늄 원자의 핵을 파괴하고 거기서 생겨난 열기로 물을 끓이고, 그 수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하니까 동력의 원리는 증기기관차나 큰 차이는 없습니다. 증기기관차는 석탄을 태워서 발생하는 열로 물을 끓여서 그 수증기의 힘으로 기관차의 바퀴가 회전하도록 했는데, 핵발전소는 석탄 대신에 우라늄 핵을 폭파해서 핵분열과정에서 생기는 열로 물을 끓이는 그 차이입니다.  

 

그래서 핵발전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몇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핵발전 원자로 안에 핵분열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자로 부분과 엄청난 에너지로 물을 끓여서 물과 수증기를 받아서 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시키는 발전기 부분 크게 두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화력 발전소의 경우에는 석유나 석탄을 태워서 물을 끓이고 필요한 만큼의 연료를 공급하다가 온도가 충분히 올라가서 발전량이 충분하다고 생각되면 연료공급을 중단하면 화력발전이 멈추는 것이지요. 그런데 핵발전소의 경우에는 한번 핵분열 작업을 시작하면 마음대로 끌수가 없다는 것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우라늄 핵분열이 일어나면 거기서 엄청난 고온의 에너지가 발생하기 때문에, 원자로를 둘러싼 압력용기가 과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냉각수로 원자로 자체를 식혀야 합니다. 그런데 원자로는 냉각 공정을 위해서 보통 직경 3cm, 길이 20m에 가까운 관들이 수백개 수천개가 들어가있고, 원자로 부분과 발전시설이 연결되는 것도 증기와 물이 통과하는 배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배관을 통과하는 증기와 물은 엄청난 고온과 고압이기 때문에 그 배관을 연결하는 용접부위는 항상 취약해서 언제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핵발전의 원천적인 위험이 상존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배관에 문제가 생겨서 2002년도 4월에 울진핵발전소 4호기에서 방사능을 가득히 머금은 냉각수 45톤이 10분동안 유출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핵발전소로서는 1등급 사고인데 발전소 측에서 발표를 안 하고 언론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일, 원전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온 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원자로에 연결된 수천, 수백개의 배관에서 연결부위에 구멍이 나서 방사능이 유출된 사고가 수시로 발생해왔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냉각수 문제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원자로에 핵분열 때문에 일어나는 고온, 고압을 적당한 온도로 식히기 위해서 냉각수를 계속 가동해야 하는데 냉각수를 돌리는 모터에 전원이 차단되면 원자로 냉강공정이 중단되고, 그러면 원자로가 점점 온도가 올라가서 원자로 자체가 용융 즉 녹아내리는 멜트다운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전에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수소폭발이 일어나고요.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전력을 차단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비상발전기를 4개나 마련하고 예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쓰나미의 엄청난 파도가 밀려와서 4개의 엔진을 다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니까 결국 원자로 온도가 급상승 했고, 외부에서 물을 쏟아붇는수 밖에 없고 그러면서 수소폭발과 원자로 용융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사고 후 한달도 되지 않아 외부에서 물을 쏟아부어서 식히려고 한 물이 다 오염수가 되었는데, 한달도 되지 않아 오염수가 9만톤이 쌓였다고 합니다. 지난 아베총리는 올림픽 열기 전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은 전부 under control 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방사능 오염수는 늘어났고, 오염수를 채우는 탱크를 보관하는 데에도 한계에 도달해서 어쩔수 없으니까 바다로 흘려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원전의 제일 큰 문제가 사람은 먹으면 화장실에 가서 배설을 해야 되듯이 마찬가지로 원전도 핵연료를 먹으면 뱉어 내야 합니다. 사용후 핵폐기물에서 엄청난 방사능 부산물이 쏟아져나온다고 합니다. 세슘, 스트론튬, 요오드, 클립톤, 플로토늄 등 200여종의 방사성 물질이 분출된다고 합니다. 방사능이 아주 높은 고준위 폐기물에서부터 낮은 중/저준위 폐기물까지 다양한 방사성 문질이 쏟아지는데, 그 처리방법이 각각 다른 모양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폐기물을 저장할 수 있는 중저준위 만을 위해서 경주 방폐장을 만들었는데 아직 완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세계 각 원전들은 큰 골치거리이고 숙제입니다. 방폐물들을 어디에 어떻게 안전하게 처리할 것이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원전에서는 둘곳이 없으니까 원전소 부지 내에 쌓아놓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방폐장을 지하 몇백미터에 역사적으로 지진이 있었던 기록도 없고, 지형적인 단층의 이동도 없는 그런 가장 안전하다고 보장된 지역에 방사선 폐기물을 보관할 수 있는 지하터널을 제대로 마련한 곳이 세계에서 핀란드 한곳 뿐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실무자, 노동자들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원자로는 한번 가동되는 내부 기압이 70~150기압을 유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배관 내부에 섭씨 300도의 물이나 수증기가 그 안에 채워지는데 자연히 배관 용접부위에 문제가 생기고, 냉각수가 누출되는 사고가 수시로 터질 수 있는데, 그때 배관을 연결시키는 밸브를 갈아끼워야 되는 작업이 있지요. 그 작업을 기계가 할 수 없고 사람이 해야 합니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데 공사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고준위 방사능에 피폭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위험한 작업을 한수원 직원이나 원전발전소 직원들이 하는게 아닙니다. 하청에 하청에 하청을 준 정말 어디서도 자기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가서 위험한 일을 합니다. 그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원청 회사의 직원은 아무도 거기서 그런 일을 안합니다. 결국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일용직에 가까운 정말 가난한 노동자들이 이 일을 맡아서 하게 되고, 이 사람들이 나중에 백혈병이나 갑상선 암에 거렸을때 아무도 책임져줄 회사가 없는 것입니다. 

 

방사능에 실제로 피폭 당하는 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우크라이나 정부의 2006년도 공식집계가 밝힌 사망자수는 초기 대응과정에서 약 56명의 사고진압 인력이 사망했고, 사고가 나자마자 투입된 소방관이나 경찰인력의 사망이 그자리에서 56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다음에 사고 후 1년 사이에 투입된 작업자들이 약 22만 6천명이었는데 그 중에 2만 5천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백혈병이나 갑상선 암으로 고생한 사람들의 환자 수치는 통계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에 후쿠시마현 주민들 중에 특히 어린이, 청소년 중에 갑상선 암 환자가 급증을 했는데 그전에는 기껏해서 두자릿수, 십여명이었던 갑상선암 환자가 300여명 가깝게 발생했습니다. 다른 지역의 10배를 훨씬 넘는 수치라고 합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암환자 발생이 늘었다는  수치는 인정을 하지만 그 환자가 원전의 방사능 때문에 걸렸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없다고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월성원전의 경우에 제가 월성원전 인근에 사는 주민들을 만나 뵌적이 있는데 그 주민들 사이에도 갑상선 암 환자가 늘어나서 한수원에 항의하고 보상을 요구했지만 거기서도 갑상선 암이 원전 때문에 생겼다는 증거가 어디있느냐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전을 찬성하는 분들의 가장 큰 논거는 경제적 이유입니다. 전기생산 단가가 원전이 제일 싸고, 청정에너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 수록 세계 각국에서 신재생에너지, 태양광발전, 풍력발전의 생산단가는 계속 내려가는 반면에 원전의 생산단가는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원전을 가동함으로써 생기는 사용후 핵폐기물 처리과정에서 드는 경비, 폐로과정에서 생기는 경비가 지금까지 계산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용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원전은 사양산업입니다. 지난 30년간 유럽에서 원전이 50개 줄었고, 미국에서는 10개가 줄었습니다. 우리가 원전을 도입해온 미국의 원래 원전을 제작하는 회사인 웨스팅하우스는 2017년에 파산했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가 일본의 도시바라는 회사로 넘어갔습니다. 일본에서도 도시바라고 하면 알아주는 명문재벌기업이었죠. 그런데 도시바도 다른 여러가지 이유도 있겠지만, 웨스팅하우스를 받아서 적자를 감당을 못해서 작년 2021년 거덜이 났습니다. 기업분할로 회사가 쪼개졌습니다.

 

2022년 금년 1월 27일에 일본 고이즈미 전 총리를 비롯해서 무라야마, 하토야마, 호소카와 등 5명의 전임 총리들이 EU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EU가 지속가능한 에너지 구축을 위해서 여러가지 계획을 세우면서 그중 핵에너지를 배제를 안시킨 것에 대해서 대단한 실수이다라며 우려의 뜻을 전하는 5명의 전임 총리들의 연명으로 서명된 편지가 EU로 발송되었습니다. 그 편지 내용을 읽어보면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에 지난 10년동안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방사능 오염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고, 땅을 잃었고, 집을 잃었고 그래서 엄청난 고난의 세월을 보냈고, 많은 어린이들이 갑상선암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사람들이 다 체험을 했는데, 유럽의 국가들이 다시 그런 참사를 겪게 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바이다. 그렇게 편지 내용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국내에서는 그 편지때문에 지자체 등에서 반발하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일본이 후쿠시마 사고를 잘 정리하고 회복하려고 하는데 찬물을 끼얹는 일을 전임총리가 했냐 하면서 항의하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하튼 5명이나 되는 전임총리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걸로 이런 편지를 온 세상을 향해서 발표할 정도라면 일본 국민 전체가 원전의 위험과 과거에 일어난 사고 때문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고 있는지를 우리는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편지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국내외 많은 연구자들의 조사과정에서 원자력 에너지가 더 이상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청정하지도 않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렇게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동해안의 원전 밀집도는 세계 최고입니다. 원전 5기가 모여있는 월성원전 반경 30km안에 경주 울산권 인구가 150만이 있고, 원전 7개가 가동중이고 2개가 건설중인 고리원전 30km이내 부산을 끼고 있는 주민이 400만명입니다. 그러면 후쿠시마 원전 반경 30km 이내 인구가 불과 17만명이었는데도 그렇게 일본 전국에 영향을 미쳤는데, 만약 월성이나 고리 지역에 원전 어디 한곳에서만이라도 사고가 나고 탈이 나면 550만명의 백성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고가 한번 터지면 수습도 통제도 종말적인 상황이 야기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이러한 대규모의 재앙을 감당할 기술도 수단도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종말적 상황이 될 것입니다. 그때가서 누구에게 책임 소재를 물을수도 없고, 또 내가 책임지겠다고 나설 수 있는 그런 역량을 가진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정치가도, 어떤 지도자도, 이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삼는 모험을 저지를 자격도 권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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