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교환학생>한국족보를 찾아온 교포2세 다운이

작성자세부사랑|작성시간16.03.14|조회수63 목록 댓글 0

 

 2014. 8월 다운이가 우리집에 왔다. 미국 중부 테네시주에서 왔는데, 부모님이 모두 한국인이니 100% 한국애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왔으니 건강한 대한민국 젊은이로 착각할 정도였다. 예의도 바르고, 머리도 한국인처럼 깍았고,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것도 영판 한국애였다. 한국말만 약간 어눌할정도 였고 한국말 이해도 잘 했고

말도 곧잘 했다. 어떨 때에는 궁딩이, 영창 닫아라같은 사투리 쓸때는 애가 한국에 살았나 싶을 정도였다.

어디서 한국말을 배웠냐고 물으니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미국인 회사에 다니고 어머니도 일을 한다고 했다. 형제는 제일 위에 형, 누나, 그리고 다운이였다.  

 


날이 지날수록 한국말을 가만히 보니 듣기는 잘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고 쓰기는 잘 되지 않았다.

의식은 미국을 닮아 있어 논리적이었고 집에서 한국 교육을 받아서 동서양이 조화가 잘 된 균형잡힌 애였다.


다운이 아버지와 어머니도 통화를 하고서 우리는 점차 이해를 넓혀 나갔다. 우리를 아빠, 엄마로 부르니 꼭 아버지 어머니처럼 대해주게 되었다. 큰 애는 필리핀 세부에 가고, 작은 애는 미국에 가 아무도 없으니 다운이에게 우리는 자연히 애정이 갔다.

  

다운이는  호기심이 많고 생각이 깊은 애였다. 한국에 대하여 모든 게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로서는 최대한 다운이가 알고 싶은 것에 대하여 답을 해주었다. 다운이가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같아 대견스럽기도 했다. 다운이가 제일 먼저하는 일은 자신의 친척을 찾아가려고 했다. 친가쪽은 아버지의 4촌형이 의정부 쪽에 있었고, 어머니 쪽은 충청도 제천, 이모는 인천 쪽에 있었다. 그분들과 통화하게 하고 명절 때나 서울에 갈 때는 만나고 오게 했다. 그분들이 우리집으로 찾아와서 우리가 지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다운이는 너무도 좋아했다, 외할아버지댁에 가서 친척들을 다 만나고, 친가쪽 4,5,6촌 친척들을 만나서 얼굴 모습이 비슷하고 촌수를 하나씩 하나씩 궤어 맞추고 있었다. 꼭 레고를 하나씩 맞추어 완성해 가는 것처럼,,,


그날도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아빠 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누구죠? 라고 물었다.

왜? 아버지에게 물어보지, 족보가 어디 있느냐고? 아니면 의정부 작은 아버지에게 물어보지라고 했다.

작은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연안김씨로 북한 황해도에서 계속 살다가 6.25 전쟁때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다운이와 연안김씨 시조를 다 찾아주고 미국가면 아버지한테 족보에 올려달라고 해라.

나는 우리 가문의 족보를 꺼내서 조상 뿌리를 찾는 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연안김씨 종친회도 있으니

몇 십대가 내려가도 조상이 누구인지, 자손이 어디에 사는지 기록이 다 되어있다고 했다.

마침내 자신의 조상, 대한민국 핏줄을 마지막까지 찾아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 아버지와는 한국으로 대화하면서 다운이가 족보를 다 찾고 시조가 누구인지, 본관이 어디인지 다 찾았다고 하니 아버지는 정말 그랬냐고 하면서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애가 미국식으로 자라서 조상에 대하여 이야기할 방법이 없었는 데 자신 대신에 한국 전통 교육을 다시켜 준다고 하였고, 막내라서 어린줄만 알았는데 친척을 찾고 조상을 찾다니 믿기지 않는 듯 했다. 나는 다운이가 한국인의 피를 받았는데 땡기는게 있을 수밖에 없죠?


다운이는 한국에서 주위 사람들이 눈빛이 따뜻해서 좋고, 밖에 나가면 뭔가 일체감을 느끼게 되어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뭔가 다른 얼굴, 문화, 옷으로  조연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똑 같은 얼굴, 표정, 못짓으로 주연으로서의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이었다. 다운이의 어깨는 당당했고, 발걸음은 힘이 찼으며, 얼굴은 항상 생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다운이의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고 다운이의 야망과 희망에 불을 질러 주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기기도 했다.그러던 어느날 하루는 지나가듯이 다운이가 "아빠, 군대는 어때요?" 라고 물었다. 내한테 제대로 걸렸다 싶어 내가 다운이한테 언제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군대, 그거 마쳐야 진정한 한국인이지. 조상의 목소리를 듣고 전우들의 함성 소리를 들어야 어른으로 쳐준다 아이가" 라고 했다. 그로부터 틈만나면 부자간에는 군대가 화제였다. "한국 군대에 가면 천만원짜리 미국왕복 티켓까지 정부가 다 끊어준다, 너는 카츄사로 가라, 교포가 군대가면 대접을 잘해준다, 군 동기는 평생 친구다, 각 지역 사투리 다 배운다, 미국가서 한국 기업에 취업할 때 스펙으로 최고다, 여자들은 남자가 군대 안나오면 남자 취급 안한다, 유승준이 봐라 평생 한국 못온다"  온갖 이야기가 우리말로, 영어로 진행되었다. 


미국 아버지와 대화에서 다운이가 한국 군대에 관심있어요 했더니 애가 원한다면 밀어주어야죠 하면서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강인한 정신력도 기르고, 친구들도 생기고, 한국이해하고 일체감 느끼는데 군대만하게 없죠.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라고 하신다.


그외에도 다운이는 한국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자는 것을 이해 못하겠다면서 한국애들이 다니는 야간학원에 직접 가보기도 하고, 한국인 반 친구집에서 자보기도 하고 다양하게 한국을 탐색했다.


일년을 잘 마치고 다운이는 미국으로 돌아가 대학을 다닌다.

그는 한국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았고, 한국의 따뜻한 정을 듬뿍 느꼈고, 주연으로서 당당함도 가져 보았고, 군인이 되면 완전한 대한민국 어른이 된다는 것도 알고 갔다.


그가 한국 군대에 가든 안가든, 이방인이 아닌 당당한 이 땅의 주인으로서 살았던 1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며 한국을 널리 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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