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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만평

우표로 본 오늘의 인물과 역사 - 12/05

작성자김 민|작성시간17.04.23|조회수89 목록 댓글 0

 우표로 본 오늘의 인물과 역사 - 12/05


우표로 본 오늘~ 12/05     자원봉사자의 날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2006 - 제1회 자원봉사자의 날 

자원봉사활동 기본법

[제정 2005.8.4 법률 7669호] 

제1조 (목적) 이 법은 자원봉사활동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자원봉사활동을 진흥하고 행복한 공동체 건설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13조 (자원봉사자의 날 및 자원봉사주간) ①국가는 국민의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참여를 촉진하고 자원봉사자의 사기를 높이기 위하여 매년 12월 5일을 자원봉사자의 날로 하고 자원봉사자의 날부터 1주간을 자원봉사주간으로 설정한다.

②자원봉사자의 날 및 자원봉사주간의 행사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부칙 <제07669호, 2005.8.4>

①(시행일) 이 법은 공포 후 6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

/법제처 종합법령정보센터

http://www.klaw.go.kr/CNT2/LawContent/MCNT2Right.jsp?lawseq=71052

 

 

  


1995 -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1995년 오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1995년 10월 19일 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것이 계기가 됐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재임 중 재벌 총수 등으로부터 2,838억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뇌물공여 혐의로 재벌총수 7명이 불구속기소됐고 재벌총수 가운데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이 구속됐다.
검찰은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에 따라 모든 재산에 대해 몰수와 추징의 보전청구를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징역 15년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았고 재벌총수 8명을 포함한 기업인 35명은 집행유예와 무죄로 풀려났다. /YTN

 

  

 


1975 - 영동선 완전 전철화 개통  

동서를 관통하는 영동선 전철이 1975년 12월 5일 개통됐다. 철암-북평(61.8km)과 고한-증산(23.7km) 간 전철의 개통으로 산업선인 중앙, 태백, 영동선 320.8km 전구간이 완전전철화되어 무연탄, 시멘트, 철광석 등 각종화물의 신속한 수송에 크게 기여하게 됐다.

영동선은 1972년 12월 6일 내자 24억원과 외자 8백만 달러를 들여 산악지대의 난공사를 극복하고 3년 만에 완공됐다.

영동선의 개통으로 구걸리-북평간의 경우 급행열차는 운행시간이 종전 8시간에서 7시간 10분으로 50분이, 화물열차는 12시간 20분에서 9시간 10분으로 3시간 10분이 각각 단축됐다. 화물수송능력도 하루18회 운행에 연간 187만t이던 것이 28회에 372만t으로 증가, 연간 185만t을 더 수송했다. 철도청은 전국철도화물소송량의 40%를 감당하고 있는 이 선로에 24량의 전기기관차를 더 도입, 모두 90량을 운행했다. /조선

 

 

 


1968 - 국민교육헌장 선포

1968년 12월 5일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됐다. 국민교육헌장은 1968년 1월 18일 박 대통령 지시가 떨어지면서 제정 작업에 들어갔다. ‘건전한 생활윤리와 가치관 확립’을 위한 헌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박 대통령이 내세운 제정의 필요성이었다. 이에 박종홍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초안을 잡고, 사회 각계각층을 망라한 헌장 기초위원과 심의위원 44인을 선출해 수정작업을 거쳐 총 393자의 헌장 전문을 완성했다. 이 헌장은 그해 11월 26일 국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 이날 선포됐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이렇게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된 뒤 각급 학교 학생과 공직자들은 그것을 암기하도록 강요받았고, 각종 입시와 입사시험에 의무적으로 출제되는 등 전국민의 의식에 강제로 주입됐다. 모든 의식행사, 교과서 속표지, 그리고 영어 교과서의 경우에는 영어로 된 국민교육헌장을 실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10년뒤 1978년 ‘우리교육지표 사건’이 발생했다. 연세대 성내운 교수와 전남대 송기숙 교수 등이 주축이 되어 유신말기 국가주의적 교육이념으로서의 국민교육헌장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교수들의 서명을 받으려고 하다가 적발돼, 교단에서 쫓겨나고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그뒤 1988년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교육헌장개정이나 폐기문제가 대두돼기 시작됐으나 곧 흐지부지됐다. 그러다가 1993년 들어 다시 거론됐고 결국 헌장 제정 기념식, 각종 기념식에서의 낭독, 각급학교 교과서 수록이 차례로 중단됐다. 우리나라 국민교육의 지표가 될만한 교육의 이상이 담겨있어야 할 국민교육헌장이 정치권력의 도구화를 위해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무작정 암송되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조선

 

 

 

 

   


1964 - 제1회 수출의 날 기념식 거행 (수출의 날 - 11월 30일)

상공부당국자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왔다. 연말을 꼭 1개월 앞둔 (1964년) 11월 30일, 우리나라의 수출이 사상 최초로 1억 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11월말 현재의 수출실적은 1억 139만 2천 달러.

12월 2일, 이 감격적인 순간의 발표는 김정렴 상공부차관이 맡았다. 박충훈장관은 박정희 대통령의 방독에 앞서 11월 6일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서독에 파견됐기 때문이었다. 상공부는 12월 2일 장관담화를 통해 "수출실적이 1억 달러를 돌파함으로써, 우리가 염원하던 자립경제의 확립과 경제발전의 역사적 기점이 마련됐다"고 밝히고 제1회 수출의 날 기념식을 12월 5일 거행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

드디어 12월 5일 제1회 수출의 날 기념식이 상공부 주최, 대한무역진흥공사 주관으로 시민회관(현재의 세종문화회관자리)에서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사상 두번째로 수출유공업체에 대한 대대적인 표창이 이루어졌다. 최초의 수출상사 표창은 58년 건국1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실시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매년 수출의 날을 맞아 유공자를 표창하고, 수출업계 종사자를 위한 잔치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수출의 날」 행사는 범국민적인 행사가 됐고 수출무드의 진작에 큰 힘이 되어갔다.

http://ceoi.org/7ceoi(text)/7ceoi(text-11).htm

 

 

  


1962 - 계엄령 해제
1962년 오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전국에 내려졌던 계엄령을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계엄령 해제는 12월 17일 실시될 대통령중심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정국의 분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비상계엄은 1961년 5월 16일 전국에 선포됐다. /YTN

 

   

 


1946 - 에스파냐의 테너 가수 카레라스(Carreras, Jose) 출생 

카레라스 [Carreras, José, 1946.12.5~ ]

에스파냐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이탈리아의 테너가수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의 전기영화 《위대한 카루소》를 보고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 8세 때 지방방송에 출연하는 등 일찍부터 공연활동을 시작했다.

바르셀로나 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한 후 1968년 바르셀로나의 리세오가극장에서 도니체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로 데뷔했다. 1971년 파르마에서 열린 베르디 국제음악콩쿠르에서 1위를 했으며, 벨리니·도니체티·베르디·푸치니의 레퍼토리를 소화하고 오페라가수로서 음악적 성공을 거두었다.

1976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vert von Karajan)의 초청으로 잘츠부르크 부활축제에서 오페라 《레퀴엠》에 출연해 명성을 얻었으며, 이어 레오나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주빈 메타(Zubin Mehta) 등 당대의 유명 지휘자들과 함께 《돈 카를로스 Don Carlos》 《라보엠》 《운명의 힘》 등을 비롯한 많은 작품에 출연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특히 1982년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필하모니관현악단과의 협연에서 메조 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와 함께 비제의 《카르멘》을 공연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87년 파리에서 《라보엠》 영상촬영을 하다가 백혈병으로 쓰러졌으나 기적적으로 완쾌하고 재기에 성공하여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의 음악감독을 역임했으며, 1990년 로마월드컵 전야제 때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세계 3대 테너 콘서트’를 시작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 폐막공연, 1998년 프랑스 파리월드컵 전야제, 200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정책철폐 5주년 기념공연, 6·25 전쟁 50주년 2001년 한국공연 등 세계 각국을 무대로 한 공연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음색과 섬세한 표현으로 뛰어나 음유시인으로 불리며,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세계 3대 테너가수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미국의 에미상과 그래미상을 비롯해 프랑스의 디스크 그랑프리상 등 국내외에서 많은 상을 수상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1979년 로열오페라단의 《토스카》 공연 때 처음 내한독창회를 가진 뒤 1993년·1994년·1997년·1999년·2001년에 내한공연을 가졌다. /naver

 

 

 


1936 - 소련,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헌법(스탈린 헌법) 채택

1936년 오늘!
옛 소련은 새로운 소비에트 연방헌법을 채택한다.
제8차 소비에트 대회에서 채택된 이 헌법은 소련사회주의 체제의 성립과 스탈린의 권력장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스탈린 헌법!
소련에서는 1918년과 1924년에 헌법이 만들어졌지만 사회주의 체제가 안정됨에 따라
새로운 헌법이 필요했다.
1924년 레닌 사망당시 트로츠키, 부하린 등과 권력투쟁을 벌인 스탈린!
특히 트로츠키는 영구혁명론을 주장한 박식한 혁명이론가로 스탈린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스탈린에 의해 1929년 소련에서 추방 당했다.
부하린과 카메네프 등도 스탈린에게 숙청당해 스탈린은 도전받지 않는 지도자로 군림하게 됐다. /YTN

 

 

  

 


1933 - 미국 금주법 14년 만에 해제 

1933년 오늘 미국의 4분의 3에 달하는 주(州)가 금주법을 폐지하는 헌법 제21조 수정안을 비준함으로써 역사상 유례가 없던 ‘금주시대’가 미국에서 막 내렸다.
0.5도 鵑?알콜이 함유된 술은 제조도, 운반도, 판매도 안된다는 ‘금주법’이 시행된 것은 14년 전인 1920년 1월 17일. 하지만 구입과 음주는 금지하지 않아 뉴욕의 경우 금주법 시행 전에는 1만5000개이던 술집이 금주시대에는 3만2000개로 증가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판매냐 구입이냐의 숨바꼭질에 해답이 있었다. 금주법은 교회를 중심으로 한 금주운동세력의 입김과 독일계 양조업자에 대한 반감이 작용해 시작됐다. 하지만 그 대상이 유구한 세월 동안 인류와 함께 해온 ‘술’이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실패가 예고됐다. 술을 들고 밖으로만 나가도 초범도 벌금 1000달러에 6개월 금고형에 처해졌다. 평범한 시민들이 범죄자로 내몰렸고 암흑가 조직이 급성장했다. 금주법으로 조성된 막대한 ‘검은 돈’은 정치인과 부패 경찰의 주머니를 채워줬다. 알 카포네로 대표되는 마피아 조직은 밀주(密酒)와 밀수를 통해 밤을 지배했다. 시카고 대학생들은 알 카포네를 간디·포드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걸출한 10인’으로 뽑을 정도였다. 칵테일이 생긴 것도 이때였다.
금주법 폐지는 뉴딜정책의 산물이다. 양조업자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공황이 몰아치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서둘러 금주법을 완화시켰다. /조선

 

 

 

  

 

- Thailand 100                                                 www.soojip.com
 

1927 - 태국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Phumiphon Adunyadet) 출생

푸미폰 아둔야뎃 (부미볼 아둘리아데지) [Phumiphon Adunyadet, 1927.12.5~]

아난다 마히돌(라마 8세)의 동생. 라마 9세라고도 한다. 1946년 6월 9일 형이 저격당해 죽자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그 뒤 스위스에서 정치 ·법률학을 전공하였고, 1950년 시리키트 키티야카라 공주와 결혼하였다. 1968년 6월 20일 입헌군주정체를 명기한 새로운 헌법을 공포, 국왕은 입법·행정·사법권을 행사하고 군의 통수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1971년 11월 수상 타놈 키티카촌이 헌법을 정지시키고, 국정평의회를 설치하였다. /naver 

 

 

 

- 'Portrait of Monet', by Renoir                       - 'Woman in Garden'

 

- 'Lady in Garden'                                                          - Pleasure Boats'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Impression, soleil levant (Impression, Sunrise)'        - 'Waterlilies in Moonlight'

 

 

1926 - 프랑스 화가 모네(Monet, Claude,) 사망  

모네 [Monet, Claude, 1840.11.14~1926.12.5]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가 1926년 12월 6일 사망했다. 86세였다. 식품 잡화상의 맏아들로 태어난 모네는 5세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노르망디 해변 근처의 생트라드레스로 이사해 유년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바다와 함께 지낸 그곳 생활은 그에게 자연에 대한 참신한 통찰력과 자연광선에 대한 그의 재능을 일깨워주었다.
1859년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한 모네는 그곳에서 뒷날 '인상파'라고 불리게 될 화가들과 교유하며 지내다 1870년 프로이센과 프랑스간에 전쟁이 발발하자 런던으로 피신해 터너, 콘스터블 등 영국 풍경화가들의 작품을 접하고 그들의 명쾌한 색채표현에 반했다. 모네를 포함한 인상파가 지향한 것은 자연을 하나의 색채현상으로 보고, 빛과 함께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채의 미묘한 질감속에서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1874년 파리에서는 이들의 첫 그룹전인 '화가-조각가-판화가-무명예술가협회전'이 열렸는데, 모네의 이 전시회 출품작 가운데 하나인 '해돋이-인상'에서 힌트를 얻어 어느 기자가 '인상파 전람회'라는 기사를 쓴 것이 '인상파'라는 이름의 기원이 됐다. /조선

 

 

 


1917 - 조각가 윤효중() 출생

윤효중 [尹孝重, 1917.12.5~1967.10.19] 

배재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41년 도쿄미술학교 졸업, 1948∼1958년 홍익대학 교수로 후진양성에 진력하였다.

1951년 유네스코 국제예술가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고, 1953년부터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55년 예술원회원에 선임되었다. 1957년에는 한국미술연구소를 설립하여 청자 ·백자의 산업화에 힘쓰기도 하였다. 1965년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에 선출되었다.

작품으로 《이충무공 동상》 《민충정공 동상》 등이 있다. /naver 

 

 

 

 - Mao and Lin Piao 

   

1907 - 중국의 정치가, 군인 린뱌오(彪) 출생  

린뱌오 [(임표), 1907.12.5~1971.9.13]

 

중국의 정치가, 군인. 후베이성[] 황강[] 출생. 1926년 황푸[埔]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27년 국공분열 후 난창[]폭동에 참가하였다가 실패하고, 주더[]·마오쩌둥[]과 함께 게릴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공농홍군() 제4군장이 되고 1934∼1935년 장정()에 참가하였다. 1936년 항일군정대학 교장, 1937년 팔로군() 115사단장()이 되었다. 1947년 중국공산당 제7기 중앙위원, 8월 만주(滿)에서 소련군으로부터 일본군의 무기를 접수하고, 둥베이[]인민해방군을 조직하였으며, 사령원, 당중앙둥베이국 서기 등으로 만주를 장악하였다. 1949년 제4야전군 사령원, 당중앙 화중국[] 서기, 10월 중국공산당 정권 수립 후 중앙인민정부 위원, 중앙인민혁명군사위원회 위원,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상무위원, 1950년 중난군[] 군정위원회 주석 겸 중난군구 사령원이 되었다.

1954년 국무원 부총리, 국방위원회 부주석, 1956년 당중앙정치국 위원, 1958년 당중앙위원회 부주석, 정치국 상임위원, 1959년 국무원 부총리, 국방위원회 부주석을 연임하고 국방부장이 되었다. 1959년부터 군 내부에 마오쩌둥사상 학습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65년 〈인민전쟁 승리 만세〉 논문을 발표하고, 마오쩌둥의 ‘농촌으로 도시포위’ 전략을 세계전략으로 확대하였다. 1967년 문화대혁명 속에서 마오쩌둥·장칭[]과 결합, 군의 힘을 동원해 권력을 탈취하고, 1969년 중국공산당 제9기 전국대표대회에서 마오쩌둥의 후계자임을 당규약으로 명기하였다. 1971년 9월 실각하였으며, 반()마오쩌둥 쿠데타를 음모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로 돌아가자, 가족과 함께 비행기로 탈출하여 소련으로 망명하던 중 몽골 지방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naver 

 

 

 


1906 - 작곡가, 지휘자 안익태() 출생

안익태 [, 1906.12.5~1965.9.16] 

평양() 출생. 평양 숭실학교()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가담, 퇴학당한 뒤 일본에 건너가 중학을 마치고 구니타치[]음악학교에 들어가 첼로를 배웠다.

1932년 미국 필라델피아 커티스음악학교에 입학, 첼로와 작곡을 배우는 한편 신시내티교향악단의 제1첼로 주자로 활약하였다. 그 무렵 스토코프스키와 교분을 맺었으며 필라델피아의 카네기리사이틀홀 등에서 독주회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

1934년 헝가리로 건너가 도야니에게 작곡을 배우며 민족주의정신과 기법에 영향을 받았다. 이듬해 빈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 주로 지휘법을 사사하고 1936년에는 몇년 전 미국에서부터 착상해 왔던 《애국가》를 작곡했다.
1940년까지 슈트라우스의 보조지휘자로 있다가 그 이후부터는 독일에서 독자적 지휘활동을 하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에스파냐 여인과 결혼, 에스파냐 국적을 얻고 마드리드 마욜카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으며
영국·이탈리아·미국 등의 저명한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하기도 하였다.

1957년 귀국하여 자작곡 《강천성악()》 《한국환상곡》 등을 지휘하고 61년 다시 귀국하여 국제음악제를 개최토록 하였으며 1963년까지 3회에 걸쳐 주관하였다. 후기낭만파에 속하는 지휘자로서 베토벤, 브람스, 드보르자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작품을 즐겨 지휘했다.

1965년 에스파냐에서 병사. 1957년 문화포상을 받았으며 65년 문화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작품에 《애국선열추도곡》 등 다수가 있다. /naver 

 

 
1901 - 미국의 만화영화 제작자 디즈니(Disney, Walt) 출생

 

  

1901 -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Werner) 출생


 

1890 - 오스트리아 태생 미국의 영화감독 랑(Lang, Fritz) 출생


 

1870 - 프랑스의 극작가, 소설가 뒤마(Dumas, Alexandre) 사망


 

1870 - 체크 민족음악 제창자 노바크(Novák, Vitezslav) 출생

 

  

1867 - 폴란드의 정치가, 혁명가 피우수트스키( Piłsudski, Józef) 출생

 


1791 -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모차르트(Mozart, Wolfgang Amadeus) 사망

 

  

1782 - 미국의 제8대 대통령 밴 뷰런(Van Buren, Martin) 출생

 

  

1443 - 로마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II)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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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표로 본 오늘의 인물과 역사] [우표로 본 오늘~]은 난우중 교사로 있는 화상이 2004년 4월 세계에서 유일하게, 최초로 창안한 <우표를 이용한 매일역사연재물>입니다. 수집한 우표를 이용하여 오로지 취미와 교육적 목적으로 만들고 있지만, 자료의 충실을 기하느라 본의 아니게 저작권에 저촉되는 일이 생길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미리 알려주셔서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이 연재물은 저작권 문제에 걸려 복사할 수 없는 저작물임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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