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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만평

우표로 본 오늘의 인물과 역사 - 5/18

작성자홍선옥|작성시간17.04.29|조회수311 목록 댓글 0

 

우표로 본 오늘~ 5/18  

5.18 민주화운동기념일, 성년의 날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제30회 공군참모총장배 Space Challenge 2008 (2008.4.4.발행) 

 

2008 - 제30회 공군참모총장배 Space Challenge 2008

국내 최대 모형항공기 대회인 제 30회 공군 참모총장배 '스페이스 첼린지 2008년'본선대회가 오늘 충북 청원 공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렸습니다.
전국 15개 지역 예선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초·중·고교생 1,300여 명이 자유 비행부문의 고무 동력기와 글라이더 종목에 참가해 열띤 경쟁을 벌였습니다.
본 행사와 더불어 T-103 축하비행을 비롯해 KT-1 훈련기 기동시범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펼쳐졌습니다.
/YTN 2008-05-18

http://search.ytn.co.kr/ytn_2008/view.php?s_mcd=0103&key=200805181554549620&q=KT-1

 

 

 

 

- 인류구전및무형유산걸작선정기념 (2004.5.18. 발행)

 

2001 - 종묘제례와 제례악,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선정 

유네스코(UNESCO)는 한국의 종묘제례와 제례악을 '인류 구전및 무형유산 걸작(Masterpiece of the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으로 선정했다고 18일 발표했다.

후안 고이티솔로 등 18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심사위원단은 5월 15∼17일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회의를 갖고 32점의 출품 유산 중 한국을 비롯, 중국, 일본, 인도, 러시아, 이탈리아, 필리핀 등의 구전 및 무형 유산 19점을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으로 선정했다.
걸작으로 선정된 유산들에는 중국 전통 극 등 아시아 유산 6점, 이탈리아 시실리의 인형극 등 유럽 유산 5점, 볼리비아의 오루로 축제 등 중남미 유산 4점, 코트 디부아르, 타그바나 공동체 전통 음악 등 아프리카 유산 4점이 포함됐다. 마쓰우라 고이치로(松浦晃一郞)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18일 걸작으로 선정된 유산들에 대해 인증서를 수여했다.
유네스코는 구전 및 무형유산이 인류 역사에서 차지하는 가치와 보존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1998년부터 이 분야의 걸작 선정 작업을 추진해왔으며, 올해 처음으로 걸작들을 선정하게됐다.
인간 문화재 제도 등을 통해 이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한국은 이번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 제도 설립에도 적극 참여했다. 이번 종묘 제례, 제례악의 걸작 선정은 한국의 문화 유산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한편 유네스코는 유형문화유산 부문에서는 이미 문화 유산 협약(1972)에 기초, 세계 문화 유산 제도를 운영해오고 있다.
한국은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고, 종묘,창덕궁, 수원 화성,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경주 역사지구등 7개 유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있다. 2001-05-19 (파리/연합뉴스) /Google

 

 

 


1997 - 나차긴 바가반디, 몽골 대통령에 당선

몽골 국민들은 `급진 개혁` 대신 `안정과 점진개혁`을 선택했다. 1997년 5월 18일 몽골 역사상 두번째로 실시된 직선 대통령 선거에서 공산당 후신인 인민혁명당(MPRP)의 나차긴 바가반디(Bagabandi, Natsagiin, 1950~ ) 후보는 60.79%의 높은 득표율로 현 대통령인 푼살마긴 오치르바트(Ochirbat, Punsalmaagyn, 1942~ ) 민주연합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바가반디 후보는 승리가 확정된 후 "시장경제 개혁의 속도를 늦추겠다"면서 점진개혁론을 밝힌 뒤 "이를 위해 대통령 권한도 축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950년 몽골서부 자반지역에서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난 바가반디는 196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구 소련 레닌그라드의 대학에 4년 간 유학했다. 유학을 마치고 1972년 몽골로 돌아온 그는 울란바토르의 맥주­주정공장에서 4년간 일해 학비를 모은 뒤 또다시 구 소련으로 건너가 식품공학을 전공하기도 했으며, 이후 모스크바 사회과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학문적 열의가 대단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의 정치입문은 1980년부터 시작됐다. 인민혁명당에 입당한 바가반디는 당원으로서 의욕적인 활동을 하다가 1990년 당중앙위원회 서기로 등용됐다. 이후 1992년 구 소련 붕괴 후 처음으로 열린 총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 지난 1996년 6월까지 국회의장을 지냈으며 1997년 2월의 당대회에서 당수로 선출됐다. /조선

 

 

 

 

- 5.18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 (2000.5.18. 발행)


1980 - 5.18 광주민주화운동 일어남

1980년 오늘 아침, 신군부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로 휴교령이 내려진 전남대 교문에서 계엄군이 등교하는 학생들을 막았다. 계엄군은 학생들이 항의하자 메가폰을 통해 해산을 종용하다 학생들에게 돌진해 곤봉을 휘둘렀다. 부상한 학생들이 계엄군의 포악한 진압을 알리기 위해 금남로로 몰려가 시민들과 함께 연좌시위를 시작하면서 5.18 민주화운동의 불씨가 지펴진다.
이튿날인 5월 19일에는 공수부대원 천여 명이 트럭 30여 대로 도청 앞과 금남로에 진출해 작전명 '화려한 휴가'를 펼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진압봉으로 무차별 구타하는 유혈진압작전이었다.
5월 20일 밤 11시쯤 광주역 앞에서 공수부대의 첫 발포가 일어난 데 이어 다음날인 5월 21일 오후 1시 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집단발포하자 시민들이 무장항쟁에 들어갔다. 이후 계엄군과 시민군의 공방전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결국 5월 27일 오전 막을 내린다. 이날 새벽 4시 기관총과 M-16, 수류탄을 동원한 계엄군의 대대적인 도청탈환 작전이, 개시 1시간 30분 만에 완료되면서 열흘에 걸쳐 전개된 1980년 5월의 항쟁은 참담한 최후를 맞이했다. 신군부는 이 사건을 불순분자와 폭도들에 의한 난동으로 규정했다.

1985년 6월 정부는 이 사건으로 191명이 사망하고 8백50여 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YTN

 

 

 


1970 - 한국-캄보디아, 국교수립

캄보디아는 남북 동시 수교국으로 한국과는 1970년 3월 론놀 정권이 수립되면서 국교가 시작되었으나 론놀 정권의 붕괴와 함께 1975년 4월 공관을 철수하였으며, 교역활동도 중단되었다. 그러나 1996년 5월에 외교관계가 재개되었다. 북한과는 1964년 12월 28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naver

 

 

 

- 금산위성통신지구국 개통기념 (1970.6.2)

1970 -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첫 중계 실시

체신부의 위성통신 금산 지구국이 1970년 5월 18일 오전, 일본 오사카 엑스포 한국의 날 기념식 실황을 TV중계로 성공, 한국통신도 위성시대에 접어들었다. 6월 2일 개국을 앞두고 이날 문공부 요청으로 조심스럽게 중계방송을 한 지구국의 기능은 거의 완전했고, TV에 비친 화면도 아주 선명했다.

이날 중계는 일본 NHK-TV의 협조로 일본의 위성지구국을 통해 통신위성 인털새트 3호로 보낸 기념식 실황화면을 금산지구국이 받아 마이크로웨이브로 대전근교 중계소로 송신, 다시 서울시외전화국의 회선을 통해 서울의 3개 TV방송국에서 각 가정의 수상기에 보낸 것이었다.

금산지구국 개국으로 지금까지 일본을 경유해야 했던 미국 등 각종 국제통신도 미국의 통신위성 인털새트 3호를 통해 직접 송ㆍ수신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세계적 뉴스와 사건도 직접 위성중계를 통해 볼 수 있게 됐다. 한국이 통신위성중계국이 된 것은 세계에서 44번째인데 금산 지구국엔 높이 35m의 지주에 직경 6m의 원형안테나가 장치되어있다. /조선

 

 

 


1968 - 하일레 셀라시에 이디오피아 황제 한국 방문

하일레 셀라시에 1세(Haile Selassie I, 1892~1975)는 1895∼1896년 이탈리아의 침공을 저지한 메넬리크 2세의 친족이다. 1916년 쿠데타에 의하여 실질적인 정권을 장악하고, 국제연맹에 가입, 노예제도의 폐지 등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1930년 왕위에 즉위하여, 이듬해 헌법을 제정하였다. 1935∼1936년에 이탈리아가 침략해 오자 그에 저항하다가 패배하여 런던으로 망명하였다. 1941년 독립을 회복하고, 1955년에는 헌법을 개정하여 절대권력을 장악하고 도로 ·학교 등의 건설에 힘썼다.

아프리카통일기구(OAU)의 지도자로 활약하였으나, 국내의 경제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던 중에 1974년 군사 쿠데타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1968년 5월에 한국을 방문하였다. /naver

 

 

 

- 경희대학교 개교 50주년 기념 (1999.5.18. 발행)
 

1949 - 경희대학교 개교

경희대학교[慶熙大學校, Kyunghee University]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이다.

1949년 배영대학관()과 신흥()전문학교를 합병하여 신흥초급대학으로 설립하였다. 교훈은 '학원의 민주화, 사상의 민주화, 생활의 민주화'이다. 6·25전쟁으로 경영이 악화되자 1951년 조영식()이 인수한 후 4년제 단과대학으로 개편하여 교명을 신흥대학으로 개칭하였고, 1953년 현 교지를 확보하였다. 1955년 문리과대학·법과대학·정경대학·체육대학의 4개 단과대학을 가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고황재단으로 재단명칭을 바꿨다. 1958년 대학원 박사과정을 설치하고, 1960년 경희대학교로 개칭하였다.
1965년 동양의과대학을 합병하고 의과대학 및 약학대학을 신설하였으며, 1966년 경희간호전문대학과 경영행정대학원을 설립하였다. 1972년 교육대학원, 1973년 경희호텔전문대학원, 1979년 국제캠퍼스 신설을 인가받았다. 1980년 행정대학원, 1983년 평화복지대학원, 1987년 산업정보대학원, 1988년 신문방송대학원, 1993년 체육과학대학원을 설립하였다.
2003년 현재 17개 대학원에 서울캠퍼스는 15개 단과대학(예술디자인학부 포함), 12개 학부, 47개 학과(전공)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제캠퍼스는 9개 단과대학, 10개 학부, 2개 학과군 47개 학과(전공)로 이루어져 있다. 부설 연구기관으로 동서의학연구소, 고황의학연구소, 한국조류연구소, 체육과학연구소, 경희동서약학연구소, 비교문화연구소, 아태지역연구소, 민속학연구소, 현대미술연구소, 인류사회재건연구소, 호텔경영연구소, 음악연구소 등이 있다. 그밖에 자연사박물관, 국제교육원, 사회교육원 등이 있다.
서울캠퍼스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1번지에, 국제캠퍼스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 1번지에 있다. /naver

 


 


1942 - 조선의용대, 임시정부 광복군에 편입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는 김원봉()이 1938년 중국의 임시수도 한커우[]에서 창설한 한국 독립무장부대.

당시 200여 명에 달하는 조선독립군이 한커우에 집결해 있던 중, 일본군과 대적하던 중국군이 패전을 거듭하자 김원봉을 중심으로 한 민족혁명당 동지들이 중국 정부 당국과 협의하여 조선독립군을 참전시키기로 하고 조선의용대로 개편하였다. 조선의용대는 처음 2개 구대로 구성되었는데, 제1구대는 박효삼()이 지휘하여 후난[]과 장시[西] 등지에서, 제2구대는 이익봉()의 지휘로 안후이[]와 뤄양[]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본부는 광시성[西] 구이린수[]에 두었는데 나중에 충칭[]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병력이 미미하였으므로 전선에 직접 투입되지 않고 후방에서의 적진 교란, 첩보 및 선전 활동에 주력하였다. 처음에 200명에 불과하던 병력이 1940년 초에는 300명을 넘어서기도 했으나, 동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 휘하에 광복군이 조직된 뒤로 점점 이탈자가 늘어났다. 이렇게 되자 1942년 4월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조선의용대를 광복군에 편입하기로 결의하였고, 동년 5월 총대장 김원봉은 광복군 부사령관과 제1지대장을 겸하고, 의용대는 제1지대에 편입되었다. 조선의용대는 우리 민족으로 구성된 독자적 부대로 중 ·일간의 국제전에 처음 참전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naver

 

 

 


1933 - 미국 테네시강 유역개발공사(TVA) 설립

테네시강유역 개발공사(TVA)는 미국 남부의 종합적 개발을 위하여 설립된 공사()로, 1933년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연방정부에 의하여 창설되었다. 테네시강 본류와 지류에 26개의 대형 댐(노리스·포트라우든·워치바·체터누가·헬즈바·갠터즈빌·호일러·피크위크 댐 등)을 건설하여 홍수방지·전력개발·공업유치·수운()·관개()·위락()시설 등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7개주에 걸쳐 벌어진 이 계획은 국토개발계획의 원형으로서 세계 최초의 대사업이었기 때문에 다른 여러 나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사업으로 고질적이던 테네시강의 범람은 그치고, 내륙 수운을 위한 수운 설치로, 수심이 깊어짐에 따라 내륙운하로서의 기능이 향상되는 등 테네시강의 이용도는 높이 향상되어 1933년의 교통량 3,300만 t 마일이 20세기 말에는 수십억 t 마일로 늘었고, 이에 따른 항구·낚시터·호수 등이 생겨, 이 지역은 급격히 발전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와 발전의 효율성문제와 안전장치 결함으로 TVA는 상당부분 축소 재조정되었다. 본부는 테네시주 녹스빌에 있다. /naver

 

 

 


1922 - 프랑스의 의사, 병리학자, 기생충학자 라베랑(Laveran, Alphonse) 사망

라베랑 [Laveran, (Charles Louis) Alphonse, 1845.6.18~1922.5.18]

1880년 알제리에서 인간에게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기생충을 발견했다. 이러한 발견과, 원생동물 때문에 생기는 질병에 관한 연구로 1907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스트라스부르 의학부에서 교육을 받았고, 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71) 동안 군의관으로 근무했다. 1897년 파리의 파스퇴르 연구소에 합류할 때까지 의사로 활동하면서 군사의학을 가르쳤다. 그는 트리파노소마증·레슈마니아증 등의 원생동물 때문에 발병하는 질병에 관한 귀중한 연구와 말라리아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로 열대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07년 파스퇴르 연구소에 열대병 연구실을 설립했으며, 1908년에는 희귀병리학학회를 세웠다. ... /브리태니커

 

 

 

 


1920 -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출생

요한 바오로 2세 [Joannes Paulus II, 1920.5.18~2005.4.2]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카롤 보이티야(Karol Wojtyla)이다. 1938년 아젤로니아대학교 철학과에 입학, 연극활동을 하며 안드레아 예비엔이라는 이름으로 시·희곡 등을 쓰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학업을 중단하고 연극배우생활에 전념하다가, 1942년 성직에 뜻을 안고 나치하에서 비밀리에 운영되던 크라코프신학교를 졸업, 1946년에 사제()가 된 후, 크라코프대학교 신학교수 등을 거쳐, 1964년 크라코프의 대주교가 되어, 1967년 추기경에 임명되었다.

1978년 요한 바오로 1세가 등위 34일 만에 죽자, 그 후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탈리아인이 아닌 교황은 사상 처음 455년 만의 일이다. 1981년 5월 교황청 앞뜰에서 교인들을 접견 중 한 터키인의 저격으로 부상을 입었으나, 건강을 회복했다. 바오로 6세의 교회개혁 정신을 이어받아, 교회 안팎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1984년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식 때 내한, 103위 복자()에 대한 시성식()을 집례하였으며, 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도 한국을 방문하였다. 1994년 11월에는 <3천년을 맞는 칙서()>를 통하여, 교회가 과거에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불관용()과 전체주의 정권에 의한 인간기본권의 유린을 묵인한 것은 잘못임을 인정하는, 가톨릭으로서는 진일보의 고백을 함으로써, 요한 23세 이후에 조성된 구 ·신교 일치운동에 한층 화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2005년 4월 2일 서거했다. /naver

 

 

 

    


1919 - 영국의 발레리나 폰테인(Fonteyn, Margot) 출생

폰테인 [Fonteyn, (Dame) Margot, 1919.5.18~1991.2.21]

런던 교외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에 홍콩에서 발레를 배웠다. 1934년 새들러스웰스발레학교에서 수학, 그 해에 빅 웰스 발레단(현재의 로열발레단)에서 데뷔, 1935년 A.마르코바의 뒤를 이어 프리마 발레리나가 되었다. 1954년 이래 왕립무용학원 원장을 겸하였고, 1956년 데임(Dame) 칭호를 받았다. 특히 고전발레에 뛰어났으며, 《지젤》《잠자는 숲 속의 미녀》《백조의 호수》 등의 작품에 주역으로 출연, 청순한 연기로 사랑받았다. 출연 영화로 《작은 발레리나》(1947) 《무희 I am a Dancer》(1972) 등이 있다. /naver

 

 

 


1889 - 아이슬란드의 소설가, 극작가, 시인 귄나르손(Gunnarsson, Gunnar) 출생

귄나르손 [Gunnarsson, Gunnar, 1889.5.18~1975.11.21]

발티요프스타뒤르 출생. 17세 때인 1906년 작가를 지망하여 덴마크로 건너가 50세가 되어 귀국할 때까지 그곳에서 머물었다. 자연주의 소설을 덴마크어로 쓰기 시작하여 1912년에서 1914년에 걸쳐 쓴 《보르그가() 이야기 Af Borgslœgtens Historie》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잡지에 기고한 것을 제외하고 그는 평생 동안 약 40권의 책을 썼는데, 모국에 대한 사랑과 종교적·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그의 작품은 거의가 조국 아이슬란드의 사가(saga)와 역사에서 따온 소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염세적 사상이 그 기조를 이루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을 덴마크어로 썼는데, 1939년 귀국한 후로는 아이슬란드어로 집필활동을 계속하였다. 소설 외에 약간의 시와 희곡도 발표하였으며, 번역작품도 있다. 작품으로는 《보르그가 이야기》 외에 《생명의 강변》(1915), 《무법자》(1916), 《의형제》(1918), 《회색의 사나이》(1936), 《행복할지어다, 마음이 가난한 자》(1920), 《욘 아라슨 사교》(1930), 《하얀 그리스도》(1934) 등 일련의 역사소설과 전5권으로 이루어진 자전적() 대작 《산상()의 교회》(1924~1930) 등이 있다. /naver

 

 

1883 - 독일의 건축가 그로피우스(Gropius, Walter) 출생

 


 

1874 - 프랑스의 소설가 타로 형제 중 제롬 타로(Tharaud, Jérôme) 출생

 

 

1872 - 영국의 논리학자, 철학자, 수학자, 사회사상가 러셀(Russell, Bertrand) 출생

 

 

1868 -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Nikolai II, Aleksandrovich) 출생

 

 

1852 - 이디시 작가 페레츠(Peretz, Isaac Leib) 출생

 

 

1836 - 오스트리아의 체스 대가 슈타이니츠(Steinitz, Wilhelm) 출생

 

 

1830 - 헝가리의 작곡가 골트마르크(Goldmark Karl) 출생

 

 

1804 - 나폴레옹 제정 선포, 황제 즉위

 

 

1782 - 프로이센의 장군 뤼트초프(Lützow, Adolf Freiherr von) 출생

 

 

1711 - 크로아티아의 천문학자, 수학자 보슈코비치(Bošković, Rudjer Josip) 출생

 

 

1675 - 프랑스의 예수회 선교사, 탐험가 마르케트(Marquette, Jacques) 사망

 

 

1048 - 페르시아의 수학자, 천문학자, 시인 오마르 하이얌(Omar Khayyam)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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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이 창안하여 2004년 4월부터 매일 연재하고 있는 [우표로 본 오늘의 인물과 역사]는 세계최초의 <우표를 이용한 매일역사연재물>입니다. 수집한 우표를 이용하여 오로지 취미와 교육적 목적으로 만들고 있지만, 자료의 충실을 기하느라 본의 아니게 저작권에 저촉되는 일이 생길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미리 알려주셔서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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