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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투고

하고싶은 소박한 일 하나

작성자김석연|작성시간20.10.13|조회수43 목록 댓글 0

하고싶은 소박한 일 하나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린 그대로 소복이 쌓여만 있는 마을

조용하다 못해 숨소리 조차 부담 될 것 같은 마을

 

인가라고는 산모랭이를 돌아서도

한참을 더 지나야 나타나는 그런 마을의 외딴집에서

하루쯤 묵었다 오고싶다.

폭설로 오도가도 못하는 그런 날을 택해서

 

방안에 짐을 풀곤 톱을 빌려 뒷산에 올라 가야겠다.

지난 밤 폭설이 내려 뒷산 소나무는 가지를 늘어 뜨리고 언제 주저앉을지 모른다.

생송아리는 여기에서 탄생한다

생송아리는 시퍼런 소나무 가지를 말하지만

우리네가 말하는 생송아리는

한겨울 폭설때문에 그 힘쎈 소나무조차 견디지 못하다가

제 가지를 꺽어 놓고야 마는 바로 그 눈맞은 소나무 가지를 말한다.

 

폭설이 내린 날 산에 가면 가지가 뚝뚝 뿌러져 땅에 나뒹구는 생송아리가 지천이었다

톱만 들고 가서 가지를 잘라 끌고 오기만 하면 된다

소나무 주인 몰래 야간에 소나무 베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뒷산에 올라 서너번만 끌고 오면 하룻밤은 후끈하게 보낼 수 있다.

 

 

정지칸 아궁이 앞에서

미처 녹지못한 소나무 잔가지를 꺽어 수북이 쌓아놓고 소나무갈비로 불을 피운다.

한소쿠리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젖은 나무는 말려가면서 때야 하는데 주변 분위기가 후끈 달아 올라야 불이 붙는다.

두 소쿠리, 세 소쿠리 연달아 갈비를 집어넣고 열기를 올리다가

생송아리 잔가지부터 밀어 넣는다.

소나무 관솔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 화력은 걷잡을수 없이 쎄 진다.

 

짚삼테미를 깔고 앉아 생송아리 타는 향내를 지긋이 맡아야겠다.

마른 장작에서 나는 향과는 달리

눈에 젖었다 마르며 타는 생송아리는 그 느낌이 다르다.

쌉싸르 하면서도 코를 톡 쏘는 향은

마치 한의원에 들어서는 순간 풍겨오는 감초내처럼 사람을 유혹한다.

 

한동안 아궁이 앞에서 열을 받아가며 소나무향에 취하다 보면

갑자기 무얼 먹고 싶겠지.

청국장을 달래서 먹어야겠다.

시골집에 청국장은 언제나 있으니 염려 안해도 된다.

장날에 비닐봉지에 넣어 파는 가루 청국장이 아닌

숟가락으로 뜨면 끈이 끈끈하게 달라붙고

콩자반 그대로인 청국장이 있을 것이다.

큰사발 가득이 뜬 청국장에다 식은밥 한덩이 말아

눈맞은 생송아리가 훨훨타는 부뚜막에 앉아서 한번 먹어 봐야겠다.

콤콤한 청국장이 그렇게도 먹고싶은지 모르겠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잠이 오기 마련이다

비몽사몽간에 옛사람이 등장한다.

할머니 고운 웃음이 보일 것이다

엄마가 혹독하게 나무라는 모습도 보일것이고.....

 

“언년아 ~ 뒷목가에 가 화댕이(소이름) 끌고 온나” 할머니 음성도 들리고

“저러이 마한느무 종개가....” 부아가 치밀어 내쏘는 엄마의 음성도 들릴 것이다.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행운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하루저녁 하룻밤에 세상 더없는 여유를 부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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