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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자 작가

CCTV 속에 여자

작성자박희자자희|작성시간21.10.01|조회수28 목록 댓글 0

CCTV 속에 여자/박희자

 

우리 집 주차장은 도로보다 지대가 조금 낮다. 코너 집이라 바람도 모인다. 바람이 불면 동네 쓰레기가 우리 주차장으로 모여든다. 쓸어내도 돌아서면 폐비닐이 모이고 낙엽이 쌓이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간밤에도 바람이 많이 불었다. 아침에 주차장이 너저분한 걸 보고 시간에 쫓겨 그냥 출근했었다. 퇴근해 오니 주차장이 깨끗했다. 청소에 관해서는 요지부동이었던 남편이 청소했다는 사실이 기뻤다. 현관을 들어서며 큰소리로 고맙다고 애교인 양 호들갑을 떨었다. 남편은 무슨 소리냐며 자신은 아니라고 밀쳐냈다. 민망해서 그러려니 생각했었다.

퇴근해 오니 오늘도 주차장이 반짝반짝했다. 마음 써준 남편이 고마워 인사를 거듭했다. 엄지 척도 해 보였다. 남편은 자신이 회유라도 당한다는 기분이 들었는지 버럭 화를 냈다. 하긴, 이 집에 이사 와서 칠 년 동안 빗자루 한번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청소는 마누라 몫으로, 관리는 본인 몫으로 정해 놓고 철두철미하게 지켜온 사람이 무슨!

도대체 누굴까? 바쁘게 사는 나를 안쓰러워하는 201호 일까? 아니면 일이 없어 무료하다던 302호일까? 노크해 보았으나 그들도 모르는 일이라 했다. 혹시, 자주 홍보해오던 청소대행업체인가?

이제는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CCTV를 돌려 봐야 했다. 예상보다 의문이 빨리 풀렸다. CCTV 화면에는 뜻밖에 장면이 펼쳐졌다. 내가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여자가 들어왔다. 앙상하게 마른 체구다. 끌고 온 손수레를 받쳐놓고 주차장 뒤편 청소도구함에서 빗자루를 꺼내 쓸기 시작했다. 작은 키에 등까지 굽어 가냘픈 여자가 백 평이나 되는 남의 집 마당을 쓸고 있다니! 그 모습이 처연해서 나는 울컥했다.

여자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은 5년 전이다. 여자는 철망으로 짠 바구니가 걸려있는 손수레를 끌고 있었다. 작은 수레는 가벼워 또르륵 또르륵 소리를 냈지만 빈 수레에 실려있는 여자 인생의 무게가 버거워 보였다. 우리 집 분리 수거통에는 여자가 찾는 소주병이나, 캔 종류가 없었다. 여자는 주차장을 둘러보더니 대부업체에서 던져 놓고 간 명함을 주워, 가방에 담았다. 소주병이나 캔이 나오면 따로 분리해 놓겠다며 여자와 첫인사를 나누었다.

그날 이후, 여자와 맞닥뜨리는 날이 늘어갔다. 웃고 인사하면서 여자는 마음을 열었다. 행색은 초라했지만, 유쾌한 성격이라 편했다. 여자의 남편이 파킨슨병을 앓는다 했다. 결혼한 딸이 있으나 사위 역시 병이 있어 생활이 궁색했다. 나는 추워 보이는 여자가 따습게 입고, 쓰고, 다닐 옷가지와 모자를 건넸다. 우연히 마주치면 집앞 편의점에서 음료도 나눠마시고 때로는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그리고 절박한 여자를 위해 눈에 보이는 대로 명함 수거를 시작했다. 불법 광고물 수거보상제도가 주민센터에 설치되어 있단다. 수거해가면 장당 몇 푼씩 받는다고 했다. 그런 적은 금액에 명함이 무슨 보탬이 되겠냐마는 여자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우리 집 주변은 원룸과 유흥업소가 밀집돼 홍보 명함이 집중적으로 뿌려지는 곳이다. 어느 날 마음 먹고 길을 나섰다. 꽤 많은 양을 주었는데, 내 자취를 밟은 오토바이 맨이 험상궂은 얼굴로 나를 불러 세웠다. 돈 주고 뿌려놓은 홍보물을 왜 다 주워가냐고 화를 냈다. 무안도 하고 겁도 나서 엉거주춤 서 있었다. 오늘은 필요한 만큼 줄 테니 다시는 주워가지 말라며 한 움큼을 건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갈등이 일었다. 방법이 어쨌든 돈 투자하고 광고해서 먹고 살려는 그들에게는 훼방꾼인데, 내가 계속해도 되겠나 주춤해졌다. 그러나 이미 알게 모르게 여자와의 무언의 약속이 되어 있었다. 모아둔 명함을 건네주면 함박꽃 같은 웃음으로 화답하는 여자를 생각했다. 잠시의 갈등을 벗은 후, 방법을 바꿨다. 그들은 보통 한 번에 세, 네 장을 던져 놓는다. 한두 장은 남겨두는 센스도 알게 되었다. 여자를 위하고, 마음 흐뭇해지는 나를 위한 우리 집 우편함에는 명함이 쌓이고 정도 쌓아졌다.

얼마 전부터 부쩍 내가 출근하는 시간이 되면 도르륵 도르륵 빈 수례 소리를 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청소하는 내 가까이에 다가와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얹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아이고 사모님! 예쁜 옷 입고 무슨 청소를 한다고 그럽니까? 그 말을 몇 번 들었으나 인사로 듣고 웃어넘겼다.

내가 가끔 출근 시간에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해 종종거리던 모습을 마음에 두고 있었나 보다. 돌봐야 할 환자도 있고, 촌음을 아껴 부지런히 움직여서 생계를 꾸려야 할 사람이다. 나를 위해 귀한 시간 뺏겨가며 나눌 큰 정이 무어란 말인가!

어쩌지 못하는 삶의 굴레로 겉모습은 험해도 여자의 마음에는 귀하고 소중한 향기가 가득했다. 그 마음 전해와 나는 향기에 취하고, 남편은 입을 굳게 다물었고, 화면 속에 여자는 웃고 있었다. 12.6

                                               *  한국에세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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