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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자 작가

터전

작성자박희자자희|작성시간21.10.01|조회수40 목록 댓글 0

터전/ 박희자(자희)

 

이것이 옳은가 저것이 옳은가?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종이비행기에 태우고 자정이 넘는 시각까지 헤매고 있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일에 왜 마음이 바쁘냐고 핀잔하는 남편 눈길이 어깨너머로 느껴진다. 남편이 꿈꾸는 전원주택과 내가 원하는 아파트 사이에서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다. 남편은 칠순을, 나 역시 그 나이를 맞게 된다. 그런 우리 부부가 노후를 두고 고민 중이다.

세상이 코로나로 전쟁 중에 임대업을 하는 우리는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착한 임대업자 흉내를 내다보니 전보다 수입은 줄었지만, 공실은 없어 이 정도면 만족이라 생각했다.

칠 년 전 분수에 맞지 않는 큰집을 설계했고 우여곡절 끝에 입주했다. 힘들게 갖게 되다 보니 건물주라는 뿌듯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수면 위에 떠있는 백조처럼 힘겨운 노력이 있었다. 힘에 부칠 때마다 매매를 생각했던 남편이 안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어디 전쟁의 파편이 우리 집이라고 예외일 수 있겠는가! 코로나가 깊어지면서 세입자들이 월세를 내지 못하는 횟수가 늘어갔다. 머리 긁적거리며 전전긍긍하는 그들에게, 매번 고개 끄덕여 줄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고, 남편은 인정에 끌려다닌다며 나를 야단하니 난감했다.

역세권의 입지를 가진 우리 집이다. 곧 동해 남부선 전철 개통을 앞두고 있다. 기회라며 남편은 생각을 바꿔 매매를 서둘렀다. 안타깝게도 우리 지역이 부동산 투기 과열 구역으로 묶여버렸다. 이슈를 노리고 간혹 걸려오던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문의 전화도 없었다. 닭 쫓던 개 하늘 쳐다보듯 하며 어정쩡 지내고 있었다.

쥐구멍에 볕이 들었다. 입주 무렵부터 제테크를 해 보라고 우리를 회유하던 부동산 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LH에서 주택 매입이 있다고 했다. 조건이 잘 맞으니 지원해 보자는 권유였다.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에 침을 튀겼다. 막상 적극적으로 진행되니 남편은 변화가 두려운지 한 발을 뺐다.

이 집을 선택했을 때 우리 부부는 이곳을 마지막 터전으로 생각했었다. 황혼이 되어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둥지를 튼다는 것이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이가 더 들어버린 지금은 남편과 내가 바라보는 간극의 차이가 선명해져 결정이 쉽지 않다. 이번 선택 역시 마지막 터전이라 생각하니 신중함이 더해진다. 어제는 남편이 소망하는 전원주택을 찾아 물 건너고 산을 넘었다. 오늘은 내가 살기에 최적화된 아파트를 찾아 헤맸다.

남편은 이 기회에 일을 내려놓자고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은 공기 맑은 곳에서 텃밭 가꾸며, 건강 위주의 삶을 살자 한다. 허리 병이 있고 손가락 마디가 아프다고 꽁냥 거리는 내게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란다. 본인이 마당쇠로 평생을 모시겠다며 내 마음을 다잡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다. 전에도 전원에 살아 알고 있다. 여자 손이 가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읍소했다. 남편은 고심 끝에 아파트에 살면서 저변에 텃밭을 일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굴에는 황토방 열 채는 족히 짓고 있다.

남편은 아파트에 적응할 정서가 아니다. 지금으로 보아 금연하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소일거리 없이 갇힌 공간에 우두커니 앉아 TV 리모컨과 씨름하면 쉬이 병이 올 것 같다. 남편의 성향은 무언가 움직여 활동하는 사람이다. 만약,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이 남자 홀로 공간에 갇혀버릴 사람이다. 아들들은 서울에서 각자 삶에 바쁘다.

아직 나는 일 뿐만 아니라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 더 하고 싶다. 코로나가 잦아들면 신앙생활도, 취미 활동도 해야 하고, 헬스클럽에서 근력도 키워야 한다.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다녀야 한다. 교통 접근성이 좋지 않으면 모든 것에 제약을 받는다. 어느 날 남편이 저세상으로 먼저 떠나면 전원에 나 혼자 어찌 살까? 주택 관리를 내가 감당이나 할까?

남편은 나의 건강상태를 우려하는 마음이 크다. 당뇨가 지병인 나를 늘 조심스레 바라본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만약 당신이 아프면 내 목숨 살아 있는 한 요양병원에 보내는 일은 없다. 그것은 약속 한다.” 젊은 날 열심히 살아준 아내를 위한 영원한 보디가드임을 다짐하며 약속해준다. 고마운 마음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남편이 바라는 삶에 맞춰 살고 싶지만, 활동해야 할 내 현실에는 괴리가 크다.

이런저런 지혜를 짜다 보니 생각 저 너머에 희미하게 실루엣이 보인다. 세월에 익어간 노부부 모습이다. 할아버지 손에는 연장이 들려 있고, 주름살이 깊게 폐인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져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 분홍빛 두건을 쓴 할머니는 푸성귀를 다듬으며 눈길은 연실 할아버지를 따르고 있다. 다행한 일이다. 요양병원에 가지 않고 서로를 보살필 만큼 건강해 보인다.

상상의 눈을 뜨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 왔다. 지금처럼 의견이 맞지 않아 투닥거릴 날이 우리에게 얼마나 남았을까? 십 년, 십오 년, 길면 이십 년? 그동안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현실이 눈앞에 일이다. 그럴진대 전원주택이면 어떻고, 아파트면 어떠랴! 몸을 실어 사는 터전이 어디 그리 대수겠는가!

늘 나를 향한 해바라기 같은 남편이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마치 백 년을 살 것처럼, 타성에 젖어 건성이었던 날이 많았다. 남편이 바라는 찐 사랑을 나누어야 할 시간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내 마음이 보인다. 남편 마음자리에 내 사랑의 터전을 마련하는 일이 우선순위다. 유수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서 후회하지 않을 노년에 그날들을 생각한다. 14.0

                                          * 수필세계 6집  2021년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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