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박희자 작가

이것이 인생인가

작성자박희자|작성시간21.04.26|조회수49 목록 댓글 2

이것이 인생인가/ 박희자

 

아들이 제 아내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여준다. 녀석의 눈빛에는 아이스크림보다 부드러운 사랑의 빛이 녹아들고 있다. 아들은 올 초에 부장 승진을 하고 나서 해외 출장이 잦았다. 집에 오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었던지 결혼 8주년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려고 내려왔다. 며느리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축하용으로 준비해 두었더니 저녁 디져트로 먹고 있다. 끼어들려다 방해가 될까 봐 뒤로 물러선다.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아들 눈빛을 보니 제 어렸을 적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단짝 친구 소미 집에 초대되어 다녀왔었다. 소미 집은 방이 세 개나 있다고 놀라워했다. 소미 방에 2층 침대도 있고 텔레비젼도 엄청 크다며 걸리버 여행기 대인 국이라도 다녀온 듯 신기해했다. 아들이 우리 집은 왜 부엌하고 방이 한 개밖에 없냐고 묻지 않아 고마웠었다.

늘 씩씩해서 인기가 좋았던 아들이었다. 친구 생일에 초대받았다며 연필을 선물로 들고 신나게 뛰어갔었다. 한참 후에 헐레벌떡 뛰어온 아들은 상기 된 모습이었다.

“ 엄마엄마! 소미 아빠는 원장님이고, 영재 아빠는 부장이라는데 우리 아빠는 무슨 장이야?” 아들이 호기심 가득한 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순간 아들이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 마음 알았기에 당황해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 엉터리였다.

“아빠는 가장이란다 우리 가족 책임지시니까!”

“에이 그런 것 말고 회사에서 무슨 장이냐구요?”

“음~장 장이야 장장!”

“그럼 장 장도 높은 거야?”

”그럼 높지! 장중에 장이니까~~”

엄마 대답이 시원치 않는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는 눈빛이었다. 나는 말을 돌려 상황을 덮고 말았었다.

마음이 편치 않아 저녁에 퇴근해 온 남편에게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당신답지 않다고 내일 당장 사실대로 알려주라는 말을 들으며 내 마음을 들킨 듯 부끄러웠다. 혼기도 되기 전에 서둘러 결혼하던 나에게 친구나 지인들이 남편의 직업을 물어왔었다. 나는 괜시리 주눅이 들어 운전기사라는 대답을 하기 싫었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평소 아끼는 차 상에 오렌지 주스를 준비했다. 받침까지 바쳐 주면서 아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 아들아! 사실은 엄마가 어제 너에게 거짓말을 했단다. 그래서 용서를 빌려고 하는 거야! 아빠가 회사에서 장 장이라고 말했던 것 사실은 그런 것은 없어, 아빠는 운전기사란다. 아빠가 운전을 최고로 잘해서 회사에서 제일 높은 사장님을 모시는 거야! 사장님이 큰일을 하도록 아빠가 도와주는 훌륭한 일을 하시는 거란다”

나는 아들의 두 손을 꼭 잡았지만 말소리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아들은 엄마 마음을 알았다는 듯 내 목을 껴안았다.

“ 엄마! 나 다 용서했으니까 이제부터 엄마 아빠 아프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서 오래오래 살아야 해요!”

나는 아들을 안고 눈물을 흘렸다. 아들은 내게 기쁨을 주려고 마음을 썼다. 학교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풀섶에 핀 풀꽃 한 송이를 꺾어왔다. 현실에 부딪쳐 생기 잃은 엄마 머리에 꽂아주어 내 마음이 나비가 되어 날게 해주었다. 의기소침한 엄마 모습이 보이면 아들은 함께 춤을 추자고 내 손을 이끌어 나를 웃게 했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들은 힘든 사춘기 시절을 보낼 때도 엄마의 인생 굽이를 다독여 주었다.

” 우리 엄마도 엄마 인생을 살아야 할 텐데요 !” 안쓰러워하며 어깨를 감싸 안아주던 아들이다.

부모의 바람대로 아들은 주변을 행복하게 하는 성품으로 자랐다. 꿈을 꾸던 좋은 직장에서 한 계단씩 자신의 입지도 잘 쌓고 있다. 밝고 사랑스러운 아내, 좋은 아파트에 젊은 나이에 남부럽지 않다. 우리 부부처럼 부모의 모자람을 얼버무리지 않아도 되는 형편이다. 호기심 많았던 아들이 원하던 답을 당당하게 해줄 수 있는 삶의 여유와 조건을 갖추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들에게 아직 아이가 없다. 이것이 인생이란 것일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자윤김태선 | 작성시간 24.02.18 아들만 둘 장가보내고 빈 둥지만 가지고 삽니다. 옛 추억 떠올리며
  • 작성자박희자자희 | 작성시간 24.04.05 앗!
    아들 둘이시군요ㆍㅎㅎ
    목매달입니다; ㅋ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