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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과 진화론

완전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할 만큼 처음부터 완결시킨 만물인데 뭐가 아쉬워 진화적 방법을 택하겠는가?

작성자Stephan|작성시간24.02.22|조회수30 목록 댓글 0

하나님은 진화를 창조의 방법으로 활용하셨는가?

창조만 아니다
세상의 과학계가 진화론을 정설인 듯 여겨 그리로 다 쏠려가고 젊은 세대가 그 교육을 받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도 창조론에 진화론을 어떻게든 섞어 넣어야 설득력 있고 외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창조만 아니라 기독교의 많은 진리를 세상은 원래 외면해왔는데도.

의도는 좋지만
유신진화론자들은 교회가 하나님께서 창조의 과정에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셨다고 말하면 과학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을 전도하는 데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한때 나도 그 의도에 찬성했지만 지금은 반대한다. 하나를 얻는 대신 둘 또는 전부를 내줄 위험성이 있어서다.

역공
일부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원숭이와 사람이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창조가 기적적으로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도 이뤄졌다고 주장하다가 거기까지 넘어갔다. 하나님의 창조를 현재의 자연과학 수준에 가둬두려다가 역공을 당한 듯싶다.

갈비뼈 신화?
하나님께서 원숭이로부터 진화시키는 방식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유신진화론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성경의 기록은 미심쩍은 신화나 난센스가 되고 만다. 갈비뼈에 담긴 과학적 개연성과 신학적 의미를 탐색하는 일은 정당하다.

엉뚱한 구애
리처드 도킨스조차 성경적 창조와 진화는 양립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가 진화론자들에게 손을 벌리며 창조에 진화를 적당히 학문적으로 뒤섞어보면 어떻겠냐고 구애를 한다. “이러는 걸 보니 너희는 진화를 모르는구나.” 이것이 도킨스의 대답이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는데
하나님과 진화를 적당히 뒤섞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비과학적 오해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할 만큼 처음부터 완결시킨 만물인데 무엇이 아쉬워 진화적 방법을 택하겠는가. 신학적 상식은 과학적 상식을 크게 안 벗어난다.

무엇이 부족해서
성경은 사람과 짐승, 새, 물고기의 육체가 다 다르다고 증언한다(고전 15:39).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 생물들을 종류대로 완벽하게 창조하셔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하셔서 사람을 만드시는 데 진화론이 가정하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하시겠는가.

유일한 관건
사람들은 아담을 마냥 신화적인 존재로만 여기려 한다. 그러나 수천 년의 시간을 한달음에 건너뛰어 세상의 시초에 대해 전할 경우 누가 묘사하든 원래의 첫 사람은 지금 성경의 아담처럼 묘사되는 게 최선이다. 창조주를 인정할 건지가 유일한 관건일 뿐이다.

아담의 역사성
창세기 1장의 기록을 비유로 보기 시작하면 결국 첫사람 아담의 역사성도 의심하게 된다. 이미 여러 신학자들이 아담이 꼭 한 사람의 실존인물일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유신진화론은 과학과 신앙 간의 대화를 시도하려다 성경적 신앙을 차츰 희석시키고 있다.

처음부터
아담이 원숭이로부터 창조되는 데 한 시대의 긴 시간이 필요했다면 현재 10개월의 잉태기만 거쳐 태어나는 아기들은 어떻게 된 걸까.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8)는 명령은 처음부터 완성된 생물체에만 적용된다. 처음부터 창조는 창조고 진화는 진화다.

사실 보도
역사적인 창조를 언명하는 창세기는 역사성의 본질상 단순히 신학적 진리만을 전달하려는 상징적인 비유이거나 신화일 수 없다. 과학적인 서술보다 당대의 고대문화에 맞게 이야기의 방식을 택했을 뿐 창조의 구체적인 사건을 사실로 보도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철학적 과학
과학적 방법론의 하나로서 진화론을 인정해야 한다면 그 범위는 소진화로 제한되어야 한다. 우연에 의한 창조나 종 간의 변이를 당연시하는 진화론은 무신론적 진화주의로 유사과학조차 넘어선 철학적 과학이다. 합리성을 존중하는 창조론이 차라리 순수과학에 더 가깝다.

역사과학의 한계
진화론 자체가 실험과학이 아니라 시공간적으로 아주 제한적인 데이터와 모델에 따른 가상의 역사를 전제하는 역사과학이다. 과학의 생명인 가설, 실험, 입증의 과정이 불완전해서 여전히 가설들만 엎치락뒤치락하는 단계의 이론일 뿐 정설이나 법칙이 된 적 없다.

타협하는 거라면
지금 일부 진보적 지성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유신진화론을 교회가 못 막으면 성경의 권위는 크게 훼손된다. 주류 자연과학계와 창조론의 대화는 필요하고 의미도 있다. 그러나 그 작업이 성경의 권위와 창조의 실체를 타협하는 거라면 그 대화로 누가 무슨 유익을 얻을까.

정설이 아니라면
과학의 발전이 천동설 같은 잘못된 가정을 근거로 이해했던 성경의 텍스트를 재조명하게 해준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학 자체가 정설로 검증되지 못한 진화론이라면 이런 전제를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진화론은 중력법칙이나 지동설 같은 참된 과학이 아니다.

- 안환균, <빛과소금>(두란노) 2018년 7월호 '키워드 단상 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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